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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김제와 검은 돈 - 조상진

김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이 몇가지 있다. 우선 김제는 쌀의 고장이다. 백제 때까지 벽골(碧骨)로 불렸으며 이는 볏골 즉 '벼의 고을'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용 저수지인 벽골제도 여기서 유래했다.

 

금만(金萬)평야는 우리나라 최대 쌀의 생산지인 호남평야의 노른자위다. 국책사업인'새만금'명칭도 '금만'에 새롭다는 '새'를 붙인 것이다. 넓은 들녘은 국내 유일의 지평선을 낳았고 지평선축제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음은 모악산이다. '엄 뫼'가 고어로 '어머니 산'이라는 뜻이다. 우뚝 솟아 징게맹개의 젖줄이 되고 미륵도장인 금산사를 품고 있다. 계룡산과 더불어 신흥종교가 융성해 강증산을 길러냈다.

 

그리고 유명한 게 금이다. 이름부터 '금(金)'이 '둑(提)'을 이룬 곳 아닌가. 금이 산을 이룬 금산(金山), 금이 흐르는 냇가인 금구(金溝), 금이 평야를 이룬 금평(金平)저수지 등도 그러하다. 이곳 편상(片狀)화강암에 지하자원이 들어 있는데 중심지는 금산면 청도리다. 이곳을 중심으로 동서 12㎞, 남북 12㎞ 범위가 광상(鑛床)의 주요 분포지다. 또한 금구와 원평 사이에 있는 낮은 계단층 및 평지는 넓게 사금지(砂金地)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 금광과 사금 채취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1900년대 이 지역에 12개의 광산이 있었는데 당시 규모가 큰 모악광산은 함금품위(含金品位)도 10만분의 8g의 광석을 매달 10톤씩 채굴해 일본 제련소로 보냈다. 구한말의 광업조사서에는 1905년 종업원수가 700여 명으로 나와 있으며 매달 4.5㎏의 산금(産金)실적이 기록돼 있다.

 

금구면 오봉리 꼬깔봉 부근 광맥 아래, 들녘에서는 전국의 70%에 이르는 사금이 생산되었다. 그 채굴 흔적이 양성마을 주변에 남아있는 냉굴과 냉천이다.

 

이같은 금의 역사 때문인지 최근 금구면 선암리 마늘밭에서 캐낸 110억 원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곳은 금광이 있었던 꼬깔봉에서 불과 3-4㎞ 떨어진 곳이다.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처남의 부탁을 받고 300여 평의 마늘밭에 묻어 두었다 들통이 난 것이다. 5만원권 22만여 장으로 플라스틱 통 24개에 나눠 매화나무를 좌표 삼아 1m 깊이로 밭 가장자리에 묻었다.

 

금의 화수분이었단 김제가 검은 돈으로 조소거리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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