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하면 흔히 혁명을 떠올린다. 동학혁명의 횃불이 워낙 높이 타올랐던 탓이다. 그래서 과격한 이미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정읍은 알짜 선비의 고장이다. 호남지방에서 선비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불의(不義)에 대한 저항정신이 선비정신과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읍의 선비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는 곳은 태산 일대다. 지금의 태인과 칠보 산내 산외 옹동 북면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 일대는 본래 백제의 태시산군(太尸山郡)이었는데 신라때 태산(太山·太는 泰로도 통한다)으로 고쳤다.
태산지역에 유교문화의 씨를 뿌린 이는 신라말 대문호이며 정치가였던 최치원이다. 886년 태산태수로 부임해 뛰어난 학문과 덕행을 남겼고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이다. 이 사당은 당초 태산사로 불렸으며 고려말에 훼손되었다가 조선 성종때 유림의 발의로 다시 세워졌다. 그 뒤 숙종(1696년)이 무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태산 선비문화의 중핵인 이 서원에는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을 배향했다. 무성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 전북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또 일제때는 최익현 임병찬 등이 의병을 일으킨 거점이었다. 최근에는 안동의 도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장성 필암서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선 선비 고장답게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흔적이 있다. 최치원 재직시 포석정처럼 자연을 이용해 물에 잔을 띄우고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이같은 풍류는 조선 초 정극인으로 이어졌다. 그는 벼슬을 버리고 처가인 이곳으로 낙향해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인 상춘곡을 남겼다.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삼은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고현동(古縣洞)향약(보물 1181호)을 정리해 오늘까지 전승시켰다. 27책이 현존하며 조선시대 최초의 것으로 평가된다.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 어려움을 함께 돕는 이 향약정신은 500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밖에 호남 제일의 정자인 태인의 피향정(보물 제289호)과 호남 사대부 가옥의 대표격인 산외면 김동수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 등도 선비문화의 향기가 묻어있다. 9일 제11회 태산선비문화제가 열렸다. 옛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을 체득하는 계기였으면 한다.
/ 조상진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