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06:23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문신(文身) - 장세균

일반적으로 몸에 문신이 있으면 조직 폭력배로 인식을 해왔다. 몸에 문신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화가 변하면서 연예인들까지 문신을 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특히 미국의 프로 레슬러들은 몸에다 갖가지 문신을 하고 링에 등장하는데 관중석 팬으로부터 열광적 환호를 받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는 금기(禁忌)의 영역을 좁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간다. 그래서 문신 즉 ,영어로는 '타튜(Tattoo)'가 이제는 개인의 '자기 표현방식'의 하나라는 인식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문신은 신체의 '자기 결정권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신도 엄연히 패션의 하나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에게 있어 문신의 역사는 오래이다. 조선의 성종(成宗)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섹스 스캔들의 여주인공은 그 유명한 어을우동(於乙宇同)이었다. 그 스캔들 내용이 성종실록에 나오는 것이다. 어을우동의 팔뚝에는 대여섯 명의 남자 이름이 문신되어 있는데 문신을 남긴 목적은 남자가 어을우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사랑의 증거를 남기는 애정문신이다.

 

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등에다 부인이 울면서 문신을 새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문신이 나쁜 마귀(魔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문신은 마귀를 쫒아낸다고 보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형벌문신(刑罰文身)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조선조에서는 도둑질하다 들킨 도범(盜犯)에게는 처음인 초범자에게는 오른팔에 '도(盜)'자를 문신하고 두 번째 저지르는 재범(再犯)일 때는 왼팔에다 '도(盜)'자를 문신하여 평생 전과자임을 나타냈다. 고려때는 도범에게 팔에다 문신을 하지 않고 얼굴에다 문신을 한 것에 비하면 범죄자의 인권을 많이 보호해 준 셈이라고나 해야할 것이다.

 

우리말에 '경을 친다'는 말은 바로 신체에다 문신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문신이 일반화 되어 눈썹이 많지않은 성근 눈썹을 위해 인위적인 눈썹문신도 있다. 특히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미용문신은 성형기술과 함께 비약적 발전을 할 것으로 내다보여 진다.

 

/ 장세균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