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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어진(御眞)과 실록(實錄) - 장세균

전주 어진박물관에 봉안돼 있던 조선왕조의 '태조 어진'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월 11일까지 전시된다고 한다. 어진(御眞)이란 임금님의 초상화라 할 수 있다. '태조 어진'이란 조선왕조를 개국한 이성계의 초상화이다. 어진박물관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전주 경기전내에 모셔져 있었다.

 

전주가 고도(古都)로서의 자랑 중의 하나가 '태조 어진'을 모셨던 장소이며 동시에 조선왕조실록도 경기전 내의 실록각(實錄閣)에 안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안전을 위해 서울 춘추관, 충청도의 충주, 경상도의 성주, 그리고 전라도의 전주에 보관했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춘추관의 실록은 백성들이 불을 질러 소실해버렸고 충주, 성주에 있던 실록은 왜군에 의해 불타버렸으나 전주에 있었던 '태조 어진'과 '조선왕조실록'만은 담당관원과 정읍 태인의 안의, 손홍록이라는 두 선비의 헌신적인 보호 조치로 안전하게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순신 장군이 그의 난중일기에서 '약무호남(若無湖南)이면 시무국가(是無國家)'라 하였는데 이 말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진과 실록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전주가 없으면 조선왕조실록과 어진이 없을 것이다. 전주 실록각에 있었던 실록은 태조부터 명종까지 13대까지의 조선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서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태조 어진'과 '실록'은 쌍둥이처럼 똑같이 옮겨다니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주에 있었던 '태조어진'과 '실록'은 담당 관원과 안의, 손홍록이 중심이 되어 실록은 내장산 은봉암으로, 어진은 내장산 용굴암으로 일단 옮겼다가 다시 어진과 실록을 비래암(飛來庵)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다음해 실록과 어진은 정읍현을 출발하여 용안현 ,인천군, 부여현, 정신역, 온양군, 아산현에 도착해서 어진은 아산현 객사에 보관되고 실록은 곧장 황해도 '해주목'까지 가서 보관되었다.

 

다시 정유재란이 터지자 안의 손홍록과 담당관원은 어진을 모시고 수원, 남양다발리, 인천을 거쳐 강화부에서 바닷길로 안주(安州)로 가서 실록과 어진이 만나게 된다. 다시 어진과 실록은 왕명(王命)에 따라 묘향산의 보현사 별전(別殿)에 모셔져서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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