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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회 사건

오송회(五松會)…소나무 밑에서 5명이 모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만 얼핏 들으면 꽤 낭만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는 29년 전, 전북에서 있었던 권력에 의한 만행의 다른 이름이다. 시집 한 권 때문에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인권을 철저히 짓밟힌 용공조작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1982년 군산시내 한 버스에서 발견된 오장환 시집‘병든 서울’의 필사본이 발단이다. 도종환 시인에 따르면 사연은 이렇다. 이 책은 군산 제일고 교사였던 이광웅 시인이 신석정 시인 집에서 빌려 와 필사한 것이다. 이를 동료교사가 복사했고 한 제자가 빌려가 버스에 두고 내렸다. 버스 안내양이 이 유실물을 경찰에 갖다 주었는데 경찰은 전북대 철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교수는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 등의 구절을 지적하며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자 경찰은 내사를 시작했고 시집 겉장에 싼 종이가 인문계 고교 국어시험 문제지인 것에 주목했다. 석달 이상을 추적한 끝에 독서클럽을 꾸린 교사 등 9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전주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북한과의 연계, 광주항쟁과의 관계 등을 추궁당했다. 당시 40일간 통닭구이 고문,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반복해서 받았다.

 

실제로 이들이 한 행동은 그 해 4월 19일 학교 뒷산에서 4·19가 기념일에서 제외된 것을 한탄하며 막걸리를 마셨고 이때 5·18 얘기가 나와 희생자를 위해 잠시 묵념을 드린 것이 전부였다.

 

이후 전주지검은 이들의 허위 자백을 그대로 법원에 갖고 갔다. 1심 판사는 이들을 대부분 풀어줬다. 그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빨갱이를 풀어 주는게 법관이냐?”고 불호령을 내렸고 이들은 다시 구속돼 2심에서 1-7년 형을 선고 받았다. 1심 판사는 옷을 벗어야 했고 2심 판사는 승승장구해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올랐다. 그 후 이들의 삶은 신산고초 그 자체였고 일부는 세상을 등졌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국가는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킬 것”을 권고했고, 이듬해 광주고법은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법원을 대신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법원은 지난 10일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15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시 있어선 안될 야만 시대의 국가폭력이었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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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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