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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세(故鄕稅)

고향은 누구한테나 다정함과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는 정감 어린 말이다. 저마다 과거가 있는 곳이며 추억과 정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고향은 공간과 시간, 마음이라는 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이자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는 고향은 그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쓰러져 방치된 초가집, 문패만 덩그러니 걸려 있는 빈집들이 많다. 추억 속의 사람들도 찾을 길이 없다. 시인 정지용(1903∼1950)은 그리움을 안고 찾아온 고향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고향'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을 떠나면 출향관(出鄕關) 또는 이향(離鄕)이라 했고, 타의에 의하여 고향을 잃으면 실향(失鄕)이다. 그런 사람은 나그네요 그 삶은 타향살이이며 고향을 그리워 하는 시름이 향수(鄕愁)다.

 

시골의 고향은 이제 저출산·고령화의 대표적인 곳이 돼버렸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과 울산 등 신산업지역에서 블랙홀 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면서 농촌의 고향마을은 공동화현상이 심각하다.

 

수도권-지방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이 때에 이른바 '고향세(故鄕稅)'를 신설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나비축제로 유명한 이석형 전 함평군수가 엊그제 주장했다. 고향세란 수도권 주민이 낸 소득세 또는 주민세의 일부를 자신의 고향이나 농어촌 지자체에 선택적으로 납부하게 하는 제도다. 대략 3500억원(2006년 기준)의 지방이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고향납세제도가 2008년 도입돼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홋카이도 니세코 정(町)의 '고향만들기 기부제도', 나가노현 야스오카무라의 '고향을 그리워 하는 기금' 등이 그런 예다.

 

논란이 있지만 타향에 사는 출향민들의 향수를 담아내고 고향발전에 정성을 보탠다는 데에 큰 뜻이 있겠다.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바로 그 심정의 반영이겠다.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일이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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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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