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04:47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경칩(驚蟄)

오늘은 잠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한자로는 놀랄 경(驚), 겨울 잠자는 벌레 칩(蟄)을 쓴다. 땅속에서 동면하던 벌레가 봄 기운에 감짝 놀라 나온다는 뜻이다.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날이다.

 

경칩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를 지나,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 사이에 있는 절기다. 이 때는 동물 뿐 아니라 산천의 초목들도 물기를 머금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한다.

 

농가월령가는 이 즈음의 풍경을 이렇게 노래한다. "반갑다 봄바람이 변함없이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힘차게 싹이 트고,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워라. 보습쟁기 차려 놓고 봄갈이 하여 보자." 묵은 먼지가 덮인 농기구를 정비해 한 해 농사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이 때는 담배 모를 심고 과일밭도 가꾸기 시작한다.

 

경칩에는 많은 풍습이 있었다. 우선 물이 고여 있는 곳에 개구리들이 낳은 알을 건져 먹는 습속이 있었다. 이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데 좋고 몸을 보한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의 얘기일 듯 싶다.

 

또 경칩에 흙 일(土役)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았다. 빈대가 많은 집에서는 경칩에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했다.

 

이 때쯤이면 농가에선 장 담그기를 했다. 장은 맛의 1년 농사인 만큼 정성을 들였다. 또 농가에선 겨우내 인분이 쌓인 변소를 펐다. 퇴비더미에 파묻어 두면 귀한 거름이 되었다. 지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농토에 보약같은 존재였다. 경칩무렵 고로쇠 나무 밑둥에 상처를 내 수액을 마시기도 했다.

 

또한 경칩은 연인들의 날이었다. 젊은 남녀가 은행나무 주위를 돌면서 정을 다졌다.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는 암수 구별이 있어 서로 마주 보아야 열매를 맺는다. 이 은행나무 열매를 서로 입에 넣어주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것이다. 초콜릿을 선물하는 서양의 발렌타이나 화이트데이보다 훨씬 더 상징적이다.

 

이러한 경칩 풍경도 거의 사라졌다. 날씨도 지구 온난화 탓인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고 개구리가 깨는 시기도 빨라졌다.

 

어쨌든 산과 들엔 맥박이 뛰듯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산이 안면을 씰룩거리며 말을 걸어 온다. 약동의 계절, 봄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상진 chos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