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4 21:25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화요 인터뷰
일반기사

강준만 교수는

한국사회의 금기 영역에 도전하는 '글쓰기 투사'

1956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 목포에서 다니다 서울로 이사했다.

 

숭실고를 졸업했으며 대학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들어갔다. 학과 선택은 당시 인기 있는 과를 고르다가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 한때 회계사가 되기 위해 공부도 했었지만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졸업 후 MBC PD로 들어가 1년 남짓 근무했으나 곧 미국에 유학, 위스콘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전북대 교수가 되어 전주에 정착했다. 곧 서울로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서울을 오갔으나 제자들과의 술자리 이야기로 발목을 잡혀(?) 지역에서 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글쓰기인데, 이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이래 사회적 관계 대신에 혼자서 연구하고 글 쓰는 일을 일상으로 선택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스스로 '물리적 고립'을 택한 셈이다. 이 물리적 고립은 그를 한국사회의 금기 영역에 도전하는 글쓰기 투사로 만들었다. 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쓰기는 한국사회에 뜨거운 이슈를 던졌고, 그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토론과 비평의 문화가 성장했다.

 

90년대 초반, 실명비판을 전개한 일인매체 〈인물과 사상〉을 창간한 이래 〈김대중 죽이기〉 〈전라도 죽이기〉 〈서울대의 나라〉 〈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남좌파〉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입시전쟁잔혹사〉, 그리고 〈한국현대사 산책〉 〈한국근대사산책〉 〈미국사 산책〉와 문화를 미시사로 접근한 시리즈 등 200여권의 책을 냈다.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저작양과 정직한 글쓰기로 '영향력있는 비판적 지식인'이란 평가를 받지만, 그는 '양적인 승부'를 늘'부끄럽다'고 토로한다. 인터넷이 확산되기 전에는 오로지 팩시밀리로만, 인터넷 시대가 된 이후에는 이메일로만 소통했으나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다녀오면서 휴대폰을 마련했다.

 

그러나 통화는 역시 원만치 않고 가장 좋은 소통 수단은 이메일이다. 근래 들어 생각도 생활방식도 변화가 있는데, 지금까지 혼자 하는 글쓰기에 오로지 몰두했던 생활반경을 사회적 소통에 열어두고 가끔씩 모임에 나가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러나 여전히 글쓰기에 전력투구하는 일상은 변함없어 지난 5월에는 한국사회의 멘토열풍을 분석한 〈멘토의 시대〉를, 7월에는 안철수 서울대교수를 대통령후보로 공개 지지선언하는 〈안철수의 힘〉을 냈다. 미국에서 1년 생활하면서 부딪쳤던 궁금증을 500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교양영어사전〉을 조만간 발간할 계획이다. 대학생과 중학생 딸들의 교육에는 방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데,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과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권한다.

 

그동안 글쓰기를 위해 모아놓은 수많은 자료들과 수만 권의 책들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가 큰 과제지만 아직은 송천동 자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 보관하고 있고, 그 공간은 학교 연구실과 함께 그의 즐거운 글쓰기를 유지하게 하는 작업실이다. 2005년, 제4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