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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우리 문화

▲ 박학래 군산대 철학과 교수
이번 학기에 교양 강의를 진행하면서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각자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전통 문화 공간을 찾아 둘러보고 답사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아직 마감일이 지나지 않았지만 수강생의 70% 정도가 착실히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상태이다. 한국 사상, 특히 우리의 전통 사상을 수강하면서 배운 내용을 참고해서 지역의 문화재를 자세히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한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한 수강생들의 보고서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새삼 '우리 문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특히 수강생들이 제출한 보고서 말미에 적힌 지역 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감상은 이 말을 더욱 생각하게 하였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머리말에서 인용하여 인구에 회자(膾炙)되었던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兪漢雋)은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라고 하였다.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이라는 사람이 여러 그림을 모아 엮은 화첩에 발문을 쓰면서 언급한 이 글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애호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이 글귀에서 지역 문화에 대한 지금의 지향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한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호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그리고 지역 문화를 통해 지역민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전승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한준의 언급에서 읽어낸 코드는 무엇보다 지역 문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주체적인 문화에 대한 앎으로부터 출발하여 지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내용을 확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날카로운 지성의 학술적인 글만이 지역 문화 이해에 도움이 되는 유일한 통로는 아닐 것이다. 작은 석탑에 조각된 조그마한 부조에 얽힌 지역민의 삶의 이야기가 지역 문화를 다시 보게 하고, 그 깊이를 더하게 하여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알아야 한다고 해서 그저 사실적 비판적 기술에 의지해서는 문화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고,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연결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전국 각지에서 지역학의 중심 내용으로 관심을 쏟고 있는 내 고장 스토리의 발굴과 확산은 의미가 깊다. 특히 스토리텔러 양성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앞장 서는 것은 지역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인천의 한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토리텔러 양성과정에서는 실제 살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어 지역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이고 있으며, 삶의 터전인 지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역사가 담긴 장소를 직접 방문하여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자기들만의 강의안을 만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등 열정적인 강의를 펼치고 있다. 타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민에게 전하는 이야기의 생산자가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는 이야기, 나아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꿈과 희망을 디자인하는 창조자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우리 지역에서도 다양한 지역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성과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지향해야 방향은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문화를 찾고 가꾸고 만드는 문화 창조자가 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전승된 지역 문화와 얽힌 이야기와 내용도 찾고, 현재의 문화로 가꾸고, 미래의 문화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문화의 소비자로만 머물지 않고 생산자의 위치에 서게 되지 않을까 한다. 낯선 지역 문화가 살갑게 우리의 곁에 오게 하는 길을 찾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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