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문화예술 현장 한 가운데에는 문화인력들이 있다. 문화예술 현장은 창작현장을 비롯하여 문예회관, 박물관, 문학관, 도서관, 미술관, 문화의집과 같은 시설은 물론 축제, 체험,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우리사회 곳곳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지역문화 환경을 토대로 창조하고, 가꾸는 역할을 한다. 만약 문화예술 현장에 이들이 없다면 문화예술은 생산할 수도, 매개할 수도, 향유할 수도 없게 된다.
실제로 문화인력은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낮은 임금과 근무환경에 처해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문화인력들은 서로 임금을 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불편한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들의 불편한 진실을 사회가 모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계에서는 지난 2007년도 문화인력 노동실태조사를 보고한 바가 있다. 이 과정에 문화시설 인력들이 높은 학력과 근무활동의 만족도를 보이는데도 실질임금은 턱없이 낮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시 발표책임자는 문화인력의 임금이 10급 공무원 임금의 기준에도 잡히지 않는다고 하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더불어 우리사회에서 직업군으로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문화인력들에게는 보험가입이나 자신의 직업을 공적으로 제출해야 할 때 경험한 경우가 있는 일이지만, 생활에서 불편을 가지지 않는 내용이라고 생각들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표준산업분류로 포괄하지 못함으로써 체계적인 분석의 자료기준도 되지 못하는 유령과도 같다는 불편한 진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2년도 같은 문제로 임금을 비롯한 노동실태를 조사한 보고가 있었으나 내용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날 토론회 자리에는 발표자와 토론자만 참석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간 문화예술이 가시적으로 활성화되어 문화인력은 물론,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가치를 인지하는 관계기관의 관심도 많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변하지 않은 환경에 살아온 문화인력들이 발표회 자리에서 또 다시 임금으로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아픔을 느끼거나, 문화예술현장의 기쁨마저도 앗아가는 '갑'의 눈초리를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13년 가족을 이루고, 전문가로서 문화시설에 근무하고 있는 40대 박사급의 문화인력이 가까이 있다. 이들은 경제활동이 어렵고 직업군에 속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살고 있다. 그래서 문화인력의 이름을 버리고 떠나는 이도 있고, 작은 자리라도 후배에게 건네주고 활동을 접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도 오늘 문화인력들은 현장에 있다. 그리고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소박하게 작고 실질적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처지에 있는 또 다른 동료들을 보며 견뎌내기도 한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창조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 그나마 최근 통과된, 예술인 복지법이 있지만 문화인력 전반을 포괄하지도 않고, 실질적인 내용이 적어서 예술인들들 조차도 관심 밖에 있다.
문화인력은 지역문화예술의 생산자로서 또는 매개자들로서 사회 곳곳에서 지역문화의 가치를 빛내고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실질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든다면, 우리지역은 문화예술이 꽃피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지금 문화인력의 불편한 진실을 담아주는 참된 사회가 요구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