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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불기(君子不器)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많은 기업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전해 각 분야마다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시민운동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때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던 '전문성 타령'이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경제적 효용성, 생산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분업을 강조하게 되면서 시작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러하듯 전문성도 순기능 못지않게 심각한 역기능을 안고 있다.

 

우선 편협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관심대상을 한정시킬 수밖에 없다. 시간과 역량의 한계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만 집착하면서도 여기에서 얻은 편향적 입장이 '전문가의 이름으로' 고수되며 그 권위로 사회의 주요정책에까지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능주의에 함몰하기 쉽다는 것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전문적 기능 수행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시켜버린다. 전체의 조화나 균형은 '보이지 않는 손'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은 도덕 무풍지대에 안주하는 것이다.

 

4대강, 새만금, 원자력발전소 문제들은 바로 이런 기능주의 전문가들의 편협함이 빚어낸 재앙들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산업적 이득만 계산했지 그것들이 영원히 확대재생산해낼 생태환경의 부작용까지는 보지 못한 것이다. 편리와 돈이라는 부분을 취하려다 삶의 질은 물론 그 기본적 생존조건까지 통째로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분업을 기본조건으로 하는 산업사회에서,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본 세상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갇혀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전문가라면 그 역기능까지를 감안한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은 수단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교양과 도덕심의 문제이다.

 

군자불기(君子不器)는 그래서 나온 말이다. 요즘 들어 인문학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평생교육 차원에서는 중요시 되면서도 중등학교나 대학의 정규교육과정은 여전히 일인일기(一人一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대학은 기업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규격화된 기능인을 양성하라는 윽박지름에 숨 돌이킬 틈이 없다. 많은 교양교육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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