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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스트리트 댄스 맥 잇는 '한국공연문화예술연구소'

"꿈을 현실로"…거리에서 활활 피는 열정

▲ '한공연' 소속의 비보이팀 TN 멤버들이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울어도 멋있고, 굶어도 근사한 열정. 바로 젊음의 특권이 아닐까?

 

춤을 추는 청춘. 노래하는 젊은이. '한국공연문화예술연구소(이하 한공연)' 이름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짐작이 안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매일 밤 젊은 예술인과 청소년들이 모여든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흥겨운 연습이 밤마다 있는 곳. 바로 비영리 문화예술단체 '한공연'이다.

 

익산에 있는 이 연구소는 실력 있는 댄서를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익산에 흩어져 각자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아리를 모아 연합체 형태의 비영리 단체를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함께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30여개의 동아리가 함께 하고, 직접 공연을 기획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익산에서 '춤 좀 춰본 친구들', '노래 좀 불러 본 친구들' 에어플레인(댄스), JMF(음악), 율쿠스틱(밴드) 등 지역에서는 이름깨나 날리던 쟁쟁한 동아리가 모여 있는 것만 봐도 그저 그런 단체는 아닌 게 분명하다.

 

'한공연'을 이끌고 있는 주축 맴버는 여형일 소장과 임정민 사무국장이다. 팝핍, 비보이 이런 장르를 한다고 해서, 팔팔한 20대를 상상했건만, 30대의 철든 노땅들이 나와 있었다. 여 소장은 32살, 임 국장은 31살. 팝핍을 꺾고 비보이를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해맑게 웃는다.

 

"아이들이랑 땀을 흘리면서 부딪치다 보니까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고 같이 실력도 키우고 공연 준비도 하니까 여러모로 좋아요. 대단한 댄서들이 지역에서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목표에 와 닿았을 때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려 설 자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후배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죠."

 

얼굴은 30대 젊은 아저씨, 눈빛은 10대 청소년. 이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었다.

 

10대 청소년 시절 춤 좀 췄고, 양보해서 20대까지 취미 활동했다고 하더라도 남자가 군대 갔다 오고, 취직하고, 그러다보면 철이 들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춤을 추는 취미 활동은 당연히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사회 통념이다.

 

그러나 두 젊은이는 생각이 달랐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좋아하는 취미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모였고, 그래서 함께 만들어갈 생각을 했다.

 

지난 1999년부터 활동하던 익산의 'TN'이라는 댄스팀을 전신으로 2011년 5월 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 동기는 거창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가 좋아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더 이상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없었다. '왜 활동이 중단될까?' 이런 단순한 물음에서부터 시작했다. 어릴 적 춤은 음악과 춤을 계속하는 거였는데, 현실은 특히 지방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녹록치 않았다.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 뭉쳤다. 공간과 조직력을 키워서 꿈을 펼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처음에 연구소를 얘기를 꺼냈을 때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왜? 지금도 우리끼리 잘 하는데?' '무슨 이득이 있어' '귀찮게 시리'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부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이에 비전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바로 '라스트포원'였다. 비보이의 신앙적인 존재. 전주·익산 출신의 비보이 그룹이다. 지금은 전세계 비보이의 우상으로 꿈이 현실이 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열심히 얘기했다. '라스트포원'의 리더(이원기)가 일부러 시간을 내 익산에 내려와 지도하는 훈훈한 모습에 후배들은 감동했다.

 

2011년 연구소의 첫 기획공연은 시골 산골 국화꽃이 만발한 곳에서 열렸다. 관객은 60대 이상의 어르신들. 국화꽃 보러오셨다가 시끌벅적한 비보이, 팝핍 베틀에 처음에는 적잖이 놀란 표정들이셨단다. 그러나 음악은 통하는 법, 나중에는 음악에 맞춰 나름대로 춤을 추시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비보이들이 오히려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관객, 무대, 어느 것 하나 좋은 조건이 없었다. 반신반의했던 회원들도 이 공연을 가장 잊을 수 없는 공연으로 꼽는다. 이후 연구소 회원들은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직은 거리 공연을 어색하게 보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춤을 출 때, 박수를 쳐주는 단 한 명의 관객이 있어 힘이 솟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생업·학업으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1년에 7~8번의 기획 공연을 한다. 초청공연은 한 달에 5건 이상.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 익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연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도시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공연문화를 선도하는 한공연. 이들이 추구하는 '꿈을 현실로~'처럼 이들의 꿈이 무지개처럼 화려하게 펼쳐질 그날을 기대하며 응원을 보낸다. 익산 어느 길거리, 골목에서 춤 추는 친구들을 만나면 '파이팅~' 을 보내며 함께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다.

 

● 비보이 그룹 '라스트 포원'

 

- 도내 출신…전세계 마니아들의 우상

 

지난 2005년 전세계 비보이(B-boy) 팬들은 마치 신들인 듯 열정적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열광했다.

 

고난이도 동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는 그들의 신명난 몸짓 하나 하나에 환호를 보냈다. 비보이 월드컵이라 불리던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 세계에 한국의 비보이를 알린 우리 지역 출신 비보이 그룹 '라스트 포원(Last 4 One)'.

 

라스트 포원이 결성된 건 1997년. 전주 쇼핑몰과 전북에 있는 각 이벤트 공연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전국 문화부장관배 청소년 댄스경연대회 2위.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댄스그룹의 음악에 매료돼 초등학교 때부터 춤에 빠져든 뒤 중학생 때 완산 청소년수련실, 전주청소년 문화의 집 등에서 만나 팀을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2005년 서울로 상경. 비좁은 옥탑방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춤을 춰야만 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날도 많았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 지고, LA 타임즈 특집으로 소개될 정도로 전세계 비보이 마니아에게는 신 같은 존재다. 우리지역에도 제2의 라스트 포원을 꿈꾸며 익산의 '한공연', 전주의 '소울 헌티스', 군산의 '옐로우 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김진아 문화전문 시민(익산문화재단 경영기획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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