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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고장 전북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주교회를 세운 사람은 실학자 이승훈(1756∼1801)이다. 중국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얻은 이승훈은 1784년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에게 천주교 세례를 주었는데 이를 천주교회의 창설로 본다.

 

이후 천주교식 의례가 행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인 서울 명례동 김범우의 집이 대표적인 곳이었다. 1785년 이벽의 주재로 이곳에 수십명이 모여 예배를 보다 체포된 사건이 벌어졌다. 역관이었던 김범우는 유배됐고 고문 후유증으로 1년 만에 죽었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다. 이때부터 천주교는 사학(邪學)으로 규정돼 금지된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는 선교가 아닌 순교의 역사다. 신앙인들은 박해에 피로 맞섰다. 정치적 음모의 희생도 컸다. 천주교 신앙인이 많았던 남인과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이승훈, 정약종이 처형됐다. 기해박해(1839년) 당시엔 서양인 신부 3명 등 119명이 처형됐고 병오박해(1846년) 때엔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엔 무려 6000여 명의 신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1984년 처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땅에 입 맞추면서 ‘순교자의 땅’이라고 한 말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전주 진북동 ‘숲정이’(동국해성아파트 자리)와 전주 남문 밖 처형장(전동성당 자리), 전주 대성동 ‘치명자 산’ 등은 순교의 터다. 숲이 우거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숲정이’는 박해 때마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곳이다. 전동성당 자리는 어머니의 장례를 유교식 상장(喪葬) 대신 천주교 예식으로 치렀다는 죄목으로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이 1791년 12월8일 처형된 곳이다. 김범우한테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빌려 공부한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다.

 

윤지충 등 124위의 시복(諡福)이 결정됐다. 시복은 성인 이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걸 이르는 말이다. 124위 중 윤지충 등 24위가 전북에서 순교했다. 오는 8월13일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프린치스코 교황이 참석할 예정이다. 시복식도 주재할 것이라고 한다. 시복식이 열린다면 순교자 묘역이 있는 성지 ‘치명자 산’이 그 의미를 훨씬 깊게 할 것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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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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