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에너지 열정 흘려 보내지 말고 맘껏 뿜으며 살아야
아니, 그 전에, 지난 몇 주간 다른 사람이 눈물을 보이는 모습은 본 적이 있었던가. 까마득하다. 그럼 격정적으로 화내는 모습은? 본 적 없음. 가벼운 웃음이야 그렇다 쳐도,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려 가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역시 기억에 없다. 뒤늦은 깨달음, 요즘 누군가가 얼굴 근육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짧은 영화의 촬영을 앞두고 스태프들이 좁은 작업실에 모여앉아 이런저런 회의를 나누던 날이었다.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져 짧은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슬쩍 스쳐지나가며 보니 한 스태프가 페이스북을 뒤적거린다. 웃긴 글이라도 건졌는지, 엄지손가락이 닳도록 연신 ‘ㅋ’ 버튼을 두들기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웃긴가보다 하며 슬쩍 얼굴로 시선을 옮겼는데, 이런, 웃음기 하나 없이,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금 웃긴 거 보지 않았냐, 고 묻자 오히려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받아치는 거다. 아니 엄청 웃겼는데요 하고.
그가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던 그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얼마 전까지 ‘영혼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인기였다.
어디 나사가 한 군데 풀려 있거나, 혹은 그런 것처럼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아 보이는 행동을 두고 ‘영혼 없는 칭찬’이라던가 ‘영혼 없는 리액션’같은 말로 우스꽝스럽게 포장했던 것이다.
내 추측은 이렇다. 그 포스트에 달려 있던 수백 개의 댓글은 아마 그 친구가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적혔을 것이다. 이것 좀 보라느니, 진짜 웃기다느니, 글로만 봤을 때는 시장통을 방불케 했을 그 모든 감탄사와 남발되는 초성들은 엄지손가락만 놀리는 그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차곡차곡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입꼬리를 올리는 수고조차 필요 없이, 즉, 영혼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줄어들 때마다 인간은 조금씩 죽어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크던 작던 내면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얼굴에 표정을 띄우는 것조차 꽤 피곤한 일이다.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에너지원이 신통찮으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부터가 고달프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에너지원을 ‘열정’이라고밖에 정의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나는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 동력원을 끊임없이, 아낌없이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혼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다른 표정을 짓고 다양한 감정을 만끽하며, 그렇게 매 순간 생기를 마음껏 뿜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보통의 경우 그 에너지는 사실 남아도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만큼 낭비는 없다.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 봤다. 간만에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구길대로 구겨 봤다. 안 쓰던 몇 군데가 뻐근하다. 아직은 탱탱한 얼굴. 잡티 하나라도 더 생기기 전에, 지금까지 몸 쓰고 머리 쓴 만큼 열심히 ‘얼굴 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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