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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밥이 그리운 날

엄마의 따뜻한 밥 한끼는 다 큰 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준다

▲ 김주희 토요문화학교 코디네이터
살다보면 가끔,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그러다 아프기도 하고, 주눅이 들어 눈물 나는 날도 있다.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남자친구 먼저 챙길 거면서, 꼭 이렇게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 돼지고기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 제사 때마다 끓여주는 시원한 소고기 무국, 백숙 해먹고 남은 닭고기로 끓인 육개장까지. 하다못해 시원한 보리차에 찬밥 한 덩이 말아먹는 것 뿐인데도 엄마가 해 주면 왜 그렇게 맛있는지. 암만 해도 엄마가 밥에다 뭘 타는 모양이다.

 

우리엄마는 딸에게 ‘황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내가 엄마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아마 4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매 끼니마다 고슬고슬한 냄비 밥을 좋아했고, 아침에 먹었던 국이 저녁밥상에 다시 올라오는 걸 제일 싫어했던, 입맛 까다롭고 유난스러웠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이후였다. 밥상을 차리느라 매일이 분주했고 하루 중 가장 큰 고민이 저녁메뉴였던 엄마였기 때문에, 아빠가 떠나고 한동안은 뭘 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남편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든든한 자식이 되어주고 싶었다. 아직도 엄마는 아빠의 제사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자식들을 차마 못 보고, 주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저 세상에서도 엄마 밥이 그리운 모양이다.

 

작년 여름,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엄마와 제주도 여행에 다녀왔다. 2박3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은 처음이라, 엄마도 나도 잔뜩 설레서 출발 전날부터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엄마와 팔짱을 끼고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걷다가 문득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저몄다.

 

“요만하던 니 손잡고 초등학교 입학시키면서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물 날 뻔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니가 엄마 손을 잡고 다니네.”

 

2박3일 동안 본인이 차려내는 밥 말고, 남이 차려주는 밥들을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니 엄마는 너무 맛있단다. 반대로 제주도 어느 맛집을 가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은 못했던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인가 보다. 엄마의 밥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 것만 같이 마음이 고단한 날, 연락도 없이 엄마를 찾아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엄마가 묻는다. ‘밥은?’ 그리고 뚝딱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작은 상 위에 올려서 축 늘어져 있는 내 앞에 갖다놓고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민다. 밥을 넘기며 목 위로 차오르는 울음을 누르다보면, 어느새 그릇이 비고 배가 든든해진다. 엄마의 따뜻한 밥 한 끼는, 그렇게 다 큰 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곤 한다.

 

딸에게 늘상 늘어놓는 잔소리는 ‘밥 먹었냐’부터 시작해서 ‘라면 먹지 말아라, 병원 좀 가 봐라, 김치 가져가거라, 이불빨래 가져와라’까지. 이런저런 핑계로 대통령 못지않게 바쁜 척 일색인 딸이지만, 이번 주말에는 바쁜 척 그만하고 엄마한테 가서 ‘나 밥 줘.’ 하고 투정 한 번 부려봐야겠다. ‘얼씨구’ 하며 맞장구 칠 황여사를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난다. 함께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밥상머리에서 도란도란 투닥투닥 젓가락 부딪혀가며 얼굴을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새삼스레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 세월호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도, 어서 돌아와서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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