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따뜻한 밥 한끼는 다 큰 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준다
우리엄마는 딸에게 ‘황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내가 엄마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아마 4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매 끼니마다 고슬고슬한 냄비 밥을 좋아했고, 아침에 먹었던 국이 저녁밥상에 다시 올라오는 걸 제일 싫어했던, 입맛 까다롭고 유난스러웠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이후였다. 밥상을 차리느라 매일이 분주했고 하루 중 가장 큰 고민이 저녁메뉴였던 엄마였기 때문에, 아빠가 떠나고 한동안은 뭘 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남편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든든한 자식이 되어주고 싶었다. 아직도 엄마는 아빠의 제사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자식들을 차마 못 보고, 주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저 세상에서도 엄마 밥이 그리운 모양이다.
작년 여름,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엄마와 제주도 여행에 다녀왔다. 2박3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은 처음이라, 엄마도 나도 잔뜩 설레서 출발 전날부터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엄마와 팔짱을 끼고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걷다가 문득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저몄다.
“요만하던 니 손잡고 초등학교 입학시키면서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물 날 뻔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니가 엄마 손을 잡고 다니네.”
2박3일 동안 본인이 차려내는 밥 말고, 남이 차려주는 밥들을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니 엄마는 너무 맛있단다. 반대로 제주도 어느 맛집을 가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은 못했던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인가 보다. 엄마의 밥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 것만 같이 마음이 고단한 날, 연락도 없이 엄마를 찾아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엄마가 묻는다. ‘밥은?’ 그리고 뚝딱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작은 상 위에 올려서 축 늘어져 있는 내 앞에 갖다놓고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민다. 밥을 넘기며 목 위로 차오르는 울음을 누르다보면, 어느새 그릇이 비고 배가 든든해진다. 엄마의 따뜻한 밥 한 끼는, 그렇게 다 큰 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곤 한다.
딸에게 늘상 늘어놓는 잔소리는 ‘밥 먹었냐’부터 시작해서 ‘라면 먹지 말아라, 병원 좀 가 봐라, 김치 가져가거라, 이불빨래 가져와라’까지. 이런저런 핑계로 대통령 못지않게 바쁜 척 일색인 딸이지만, 이번 주말에는 바쁜 척 그만하고 엄마한테 가서 ‘나 밥 줘.’ 하고 투정 한 번 부려봐야겠다. ‘얼씨구’ 하며 맞장구 칠 황여사를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난다. 함께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밥상머리에서 도란도란 투닥투닥 젓가락 부딪혀가며 얼굴을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새삼스레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 세월호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도, 어서 돌아와서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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