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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 상식들

익숙하단 이유로 상식을 그냥 받아들여서는 안돼 / 보편적인 기준 참고해야

▲ 공현 청소년 인권운동가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합헌 판결을 내리는 ‘곡예’를 부렸다. 강제 지문날인 제도에 별 문제가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판결했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그나마 3명의 재판관이 ‘모든 17세 이상의 국민에 대하여 열 손가락 지문 전부를 날인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범위를 벗어난 것’,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지적한 것이 위안거리일까.

 

만 열일곱 살 때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가서 순순히 지문을 찍은 것은 내가 각별히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이번에 강제 지문날인이 위헌이라고 재판을 냈던 청구인들은 모두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주민등록증 없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겪는 불편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그들이 부러워지곤 한다.

 

나는 신분증을 만들러 가기 전엔 열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가며 지문을 날인해야 하는 줄도 몰랐고, 이걸 왜 하는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날인을 했던 것이다.

 

지문날인을 했을 때, 기묘한 불쾌감이 등줄기를 쓸고 지나갔다. 이 나라는 내가 언젠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그때 범죄 현장에 지문을 남길지도 모르니까 내 지문을 전부 다 보관해놓겠다고 하는 건데, 대체 내가 왜 그런 의심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만약 국가가, 혹은 지문정보가 유출돼서 다른 사람이 이를 악용하거나 나에게 누명을 씌운다면 큰일일 것이다. 비밀번호야 바꿀 수라도 있다지만, 지문은 떼어낼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도대체 왜 큰 반발이 없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지문날인을 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처럼 여 있다. 그래서 국가가 지문정보를 수집해가는 것의 문제점은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 필요성이나 효용성은 과대 평가된다. 수사나 치안, 신분 확인 등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신분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 정보를 강제로 받는 나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 국민 지문정보’가 없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국보다 경찰이 수사를 더 못할까? 신분 확인을 특별히 못할까? 설득력이 없는 이야 다른 많은 나라 정부들이 불쾌해 할 이야기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져 있는 ‘상식’이 꽤 비상식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중고등학교 대부분에서는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교복을 없애면 큰 문제라도 생길 것처럼 걱정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나라들이 오히려 소수이며, 자유롭게 사복을 입어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교사의 정치활동도, 세계적으로는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이 보장된 경우가 많다.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상식을 그냥 받아들여선 안 된다. 상식이 정말로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인지 따지려면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며, 나아가 더 보편적인 기준을 참고해봐야 한다.

 

나는 자신의 상식이 혹시 ‘비상식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보통의 시민들보다도 한층 더 ‘익숙한 상식’을 넘어 인권과 헌법의 기준에 따라 판결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그렇지 못한 행보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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