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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배려가 탈출의 열쇠다

▲ 안재영 광주교육대 교수·박물관장·KBS시청자위원
현대에서 삶은 그 무엇보다도 태도와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필자는 새로이 다른 두 대학에서 행정학과와 미술대학을 다닌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는 법적인 요소가 강하고 또 하나는 창의성이 강한 과목들 이었다. 예술을 행하며 느낀 것은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작가로서 자의식을 갖게 하는 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예술이 홀로 행하는 것이 강하다면 사회학, 행정학, 법학 등은 상대방을 생각하며 간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 ‘나’란 하나의 타자(他者)다”라는 말을 했다. 나 혼자로는 온전한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역설적 상황을 표현한 말로 이처럼 상대가 있는 사회는 때로는 방어하고 때로는 관철하면서 실무적으로 상대하고 큰 흐름은 지켜나가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오래전부터 협력 차원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열풍이 불었다. 어디서나 서로간의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일종의 품앗이다. 이 같은 모습을 위해서는 절제와 배려를 통해 자신의 큰 흐름을 유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본 사회관계에서도 절제와 배려를 모르면 평정심을 잃고 상대방의 인사도 이유 없이 받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상대방과 말 한마디 섞어보지도 못했지만 앞으로 부닥칠 일도 없을 것 같고, 선입견도 있고, 주위 사람들의 귀동냥들이 혼동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만 절제와 배려로 무장된 사람은 웃으며 계속 인사를 한다. 절제와 배려를 모르면 흔히 말하는 호불호의 성격 강한 사람으로 편중된다.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상대방이 바르게 제대로 행하고 표현한 것에 민감하게만 반응한다. 오히려 불안감은 편을 가르고 보복한다. 호불호는 약자나 잘못한 사람을 아우르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에게 기세를 세우는 기질을 보이고 으레 과오를 덮기 위해 위장하고 나름의 무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그 한 사람이 사라지기 전 까지는 모든 것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암튼 요즘 세상은 정신자본을 중심으로 절제, 배려가 유익함을 만들어 낸다. 과거는 줄서기 하나로 얼렁뚱땅 하였지만 지금은 학력과 배경이 아닌 진정의 노력 없이 이겨낼 수 없다. 그 이유는 깨끗함과 도덕성을 무기로 하는 무한 경쟁시대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것이란 탐욕을 경계하는 절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한다.

 

이것이 없다면 질투와 시기, 원망만 난무하게 된다. 신뢰와 협력의 원천은 도덕심이고 글로벌시대는 올바른 욕심과 올바른 이기주의가 필요하다. 배 아파서 술수 부리는 시대의 호불호는 이젠 안 된다. 창조와 혁신을 잘하고자 한다면 하나의 주특기만 가지고는 안 되는 상황이 되었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고자(thinker)가 될 수 있는지를 찾아서 폭넓은 시각을 배우고, 원전과 근본을 찾아 거기서 자신 고유의 결론을 도출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현대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의 전철에 얽매이지 않고 이미 곪아 터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 곧 절제와 배려가 탈출의 열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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