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20:05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지역 chevron_right 익산
일반기사

원광대 김도종 총장에게 듣는 세계유산 등재 의미 "익산 역사, 세계가 지킬 유산"

"마한백제문화硏 40년전 왕도 고증 나서…역사엑스포 조성, 세계적 관광지 육성을"

 

“백제문화권 세계문화유산등재는 익산시민들의 관심과 자부심, 그리고 학계의 노력이 공동으로 어우러진 큰 성과입니다. 익산의 역사는 한국의 자랑이 아닌 세계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유산이 됐습니다.”

 

8일 원광대 김도종 총장은 이번 백제문화권 세계문화유산등재의 의미를 이렇게 담아냈다.

 

사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가장 먼저 익산이 왕도였다는 고증에 나섰고, 그렇게 40여년이 흘러 연구와 각종 학술세미나를 거쳐 세계문화유산으로 그 이름을 드높였다. 그러나 그 계기는 바로 익산시민이 만들었다.

 

익산을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유산을 가장 먼저 연구하기 시작한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1973년 설립됐다. 당시 익산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지역의 몇몇 어르신과 익산로타리클럽 회원들이 원광대를 찾아 익산군 일원에 펼쳐져 있는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과 같은 훌륭한 역사가 방치되고 있다며 연구와 보존의 필요성을 요청해 설립됐다.

 

당시 박길진 총장과 김삼룡 교무처장, 김태공 박물관장 등이 논의를 거쳐 마한백제문화연구소를 설립해 김삼룡 교무처장을 초대 소장으로 임명하며 시작된 게 바로 익산을 중심으로 한 익산 왕도에 대한 고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익산에 흩어진 역사를 한데모아 연구한 끝에 왕도가 있었다는 고증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며 세계문화유산등재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주, 부여와 공동으로 추진되지 않았고 익산 단독으로 백제문화권 세계문화유산등재가 추진됐다.

 

정부의 중재로 공주와 부여가 함께 백제문화권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익산의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세계문화유산등재가 가능할 정도였다는 게 당시 연구진의 주장이었다.

 

김 총장은 “시민의 요구에 지역 대학이 연구하고 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런 성과는 지역민 모두의 자긍심으로 남게 됐다”며 “앞으로 더욱 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등재의 단초가 시민이었다면 이런 성과의 중심에는 원광대가 있었다.

 

특히 이런 성과의 기쁨과 함께 향후 발전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정부와 지역민의 관심도 필요하다.

 

김 총장은 “역사와 문화라는 큰 틀의 중심에 익산이 서야하는 시기에 와 있다”며 “이미 문화엑스포는 경주에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익산에는 세계의 역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엑스포를 조성하는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역사엑스포장에는 백제문화권을 비롯한 한국관, 미국관, 영국관, 일본관 등 세계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조성해 국내 수학여행과 같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광지로서의 방향성을 제안했다.

 

김 총장은 “세계의 유산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지역이나 국내의 틀을 벗어나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진만 kjm5133@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지역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