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주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받으려고만 하면 관계가 제대로 작동 안돼
퉁쳐. 됐지? 그날 내 고등학교 동창이 올린 페이스북의 글은 이렇게 끝났다. 내용인즉 오랜만에 동창의 지인이 전화를 해서 사무실 개소식에 오지 않아 서운하다고 하자 동창 역시 그 지인에게 너 역시 그동안 내 일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마찬가지 아니냐며 타박한 것이었다. 준만큼 받는 것인데, 너도 주지 않았으니 나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나는 슬며시 웃다 댓글을 달았다. “상호성의 법칙이구먼….”
상호성은 영어로 reciprocity이다. 그런데 reciprocity를 의미하는 다른 용어가 있으니 사회적경제 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호혜성이다. 보통 상호성이라고 하면 앞의 경우처럼 그저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대칭적인 관계가 떠오른다. 그런데 호혜성이라고 하면 뭔가 다른 좀 더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호혜성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호혜성 중 일부에게만 해당된다.
호혜성에는 크게 세 가지가 존재한다. 부정적 호혜성, 대칭적 호혜성, 일반적 호혜성이 그것이다. 부정적 호혜성은 자기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며, 대칭적 호혜성은 자신과 상대방을 동등하게 고려한다. 앞에서 말했던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반적 호혜성은 나보다 상대방을 더 중요시한다. 그런데 호혜성이 ‘주고받음’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호혜성을 이야기할 때 보상의 즉각성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부정적 호혜성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기 때문에 즉각적이지만 대칭적 호혜성조차도 주는 만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준 다음에 받을 때까지의 기간이 너무 길면 관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 반면에 일반적 호혜성은 준 다음에 받을 때까지의 기간도 정해지지 않고 준만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도 없다.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가 소개한 쿨라교역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트리브리앤드 제도에서 이뤄지는 쿨라교역은 제도 내의 한 섬의 원주민들이 다른 섬의 원주민들에게 귀중품을 주는 것으로 마치 원(圓)처럼 순환적으로 진행된다. 이 순환은 무려 10년까지도 걸리는데 선물을 받은 이들은 그것을 갖지 않고 다른 이에게 주어버린다.
쿨라교역은 ‘주고받음’의 관계가 나의 이해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목적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듯 주는 것에 초점을 두는 방식의 ‘주고받음’이 쌓여서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만약 이러한 ‘주고받음’이 어디에선가 중단될 때, 즉 주는데 받지 않거나 받고나서 주지 않으면 관계는 종결될 것이다. 반면에 ‘주고받음’이 계속 될 때 그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게다가 주고, 받고, 받고나서 다시 준다는 것은 관계가 수평적임을 말한다.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것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처럼 존중과 배려의 관계가 쌓여간다면 그것을 사회적 유대의 구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주기보다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보다 더 많이 받을 때 마치 좀 더 특별한 존재인 양 생각한다. 그러나 주지 않으면서 받으려고만 하면 관계가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이것이 일반화된다면 그것은 사회가 파괴되어 감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가 호혜성을 중요시하고 그것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일반적 호혜성의 형성, 즉 사회적 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원 사회적경제 현장 연구자
△김정원 연구자는 자활정책연구소장과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 정책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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