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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공판 기록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4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가 일본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열린 재판은 여섯 번.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8일에 걸쳐 열린 졸속 공판이 전부지만 뤼순 관동법원 재판정에 선 조선의 청년 안중근은 의연했다. 그는 그 재판정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어떻게 침탈당하고 있는가를 알리려 했으며 자신의 철학을 세계에 전하고 싶어 했다. 남아 있는 공판기록이 전하는 내용이다.

그 현장의 공판기록은 우리가 위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철학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만큼 사료의 의미와 가치가 크다는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철학과 사상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는 여의치 않다.

이러한 상황이 안타까워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공판 내용을 번역해 재구성한 역사책을 펴냈다. 출판인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다. 안중근 의사의 삶과 철학을 제대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그에 따르면 재판기록은 1000부 정도의 책으로 출간되어 있을 뿐이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를 펴낸 김 대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선 재판정 양측의 주장 속에는 한마디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안 의사의 분오와 침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전한다.

이 기록을 보면 안중근의사는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범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선정부를 대표하는 의용대장으로서의 자격으로 재판을 받고 싶어 했단다.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복잡하고 치밀한 속성이 있다. 하얼빈 의거의 진실 또한 그런 점에서 좀 더 깊이 해석되고 조명되어야 한다’는 김 대표는 재판 기록은 그 날의 숨은 진실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고뇌와 분노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살아 있는 자료라고 소개한다.

안중근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무술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서예에도 출중했으며 한학에도 밝았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 을 집필할 정도였으니 그의 사상과 철학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오늘, 문득 안중근 의사의 삶과 철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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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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