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고 바람 좋은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징검돌 놓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선 집들, 집과 집 사이로 사람이 물처럼 흘렀습니다. 도랑물 흘러가듯 굽이굽이 골목은 모퉁이를 돌며 이어졌습니다.
골목은 주머니. 우리들은 왼쪽 모퉁이에 말뚝박기, 오른쪽 모퉁이에 고무줄놀이, 갈림길에 숨바꼭질을 넣어두었습니다. 막 거웃이 돋을 무렵이었을 겁니다. 뻐꾹 뻐꾹 시도 때도 없이 뻐꾸기를 날리던 형들이 구로동으로 날아가자, 온 동네 누님들도 따라 문래동으로 올라갔습니다. 담장 너머 빨랫줄에 팔랑거리던 정님이의 다후다 검정 치마도, 내 코피를 터뜨리던 수수꽃다리 분내도 골목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습니다.
골목 앞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젊은 어머니가 탈탈 주머니를 까뒤집었기 때문일까요? 한두 알 구슬도 서너 장 딱지도 이젠 없습니다. 약속 없이도 언제나 왁자하던 골목에 돌담 그림자 홀로 서성입니다. 돌담을 기어오른 담쟁이덩굴이 친친 한 세월 봉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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