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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장사로 모은 돈, 지구촌 문제에 꾸준히 기부해온 박종순 진북동 통장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 위해 100만원 전달
주민들 뜻 모아 전쟁 상흔 우크라이나 후원도
배 사고로 가족 잃고 30년 전 전주에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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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 전주 진북동 통장.

"저는 땅도, 집도 필요 없어요. 아직 건강해서 일할 수 있으니까 나 하나 먹고 살만큼만 쓰면 만족하고요. 그저 세상에 좋은 일을 조금 하다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야채 장사로 번 돈 100만원을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내놓은 박종순(65) 전주 진북동 통장은 지구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구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해외 결연에 참여하게 된 일을 이야기했다. 한 5년 간 후원금을 보냈는데 허리를 다치면서 생활이 어려워져 그만 두게 됐다고.

"직접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먼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를 한 5년간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는 기쁨이 컸어요. 그 아이가 잘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기보다 어려운 아이들에 관심을 가지고 돌봐줄 수도 있잖아요." 

일본 원전 유출사고, 아이티 지진 때도 기부를 했는데 당시에는 금전 상황이 좋지 않아 대출을 받아 기부금을 마련한 적도 있다는 것이 박 통장의 말이다.

주변에서는 장사를 하면서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그렇게 까지 무리해서 기부를 해야 하느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무얼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 먹고 사는 건 얼마 안 든다'며 웃음 짓고 말았다고.

2년 째 통장으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은 사회의 어려운 일마다 뜻을 모아준 주민들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전해질 당시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를 희망하는 주민들이 많았고, 박 통장은 주민센터와 협의해 라면·생수 등 생필품을 기부 받아 모았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도 마찬가지다. 가본 적 없는 먼 나라이지만 전쟁이 종식되고, 지진의 상흔이 아물어 일상생활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차마 꺼내기 어려운 아픈 가족사가 있다.

30여 년 전, 유람선을 타고 가족여행을 하던 날이었다. 이날 박 통장은 배가 침몰하는 사고로 남편을 잃고 아들과 생이별 해야 했다. 사고 당시 가까스로 구조된 박 통장은 '살아남은 빚'을 갚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다.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돕다 보면 그날 사고로 떠난 목숨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주가 고향인 박종순 통장은 가족을 보내고 '살기 위해' 전주로 왔다. 30대 부터 자전거에 야채를 싣고 시장에 장사를 다녔는데, 차츰 아는 손님들이 생기면서 장사 규모를 늘렸다. 60대를 훌쩍 넘긴 지금은 트럭을 몰고 매일 전주시내 시장 3곳을 돌아다니며 더욱 바쁘게 일한다. 다 이웃들이 도와준 덕분이다. 진북동에 살면서 박 씨가 장사판을 여는 남부시장 까지 찾아와 일부러 물건을 사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동네분들과 대화하다보면 친동생 같고, 언니 같고 그래요. 아파트 단지에서 어르신들이 저를 보면 '딸아'하고 불러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가족처럼 정이 느껴지죠.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30년 세월을 전주에서 살다보니까 태어난 고향과 다름 없어요."

오늘도 시장에 내다 팔 봄동과 달래를 다듬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박종순 씨.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땀흘려 번 돈을 기부하고, 많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은 마음 뿐이다. 

"제가 60년 넘게 살면서 들은 말 중에 우리 도민들하고 나누고 싶은 말이 있어요. '착하고 성실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이에요. 봉사를 하러 가거나 동네 주민들을 만나러 가면 이 말을 전해줘요. 저도 받은 말이니까 나눠주고 싶어서요.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말을 하면 다 같이 행복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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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진북동 #튀르키예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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