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오랫동안 특별한 사람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무대 위의 전문가와 객석의 관객은 분명히 구분되었고, 창작은 선택된 소수의 몫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지역 곳곳에서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실버합창단, 시민연극, 직장인 밴드와 같은 시민예술은 더 이상 주변부의 활동이 아니라, 도시 문화를 곳곳에서 지탱하는 힘이자, 시민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문화와 예술의 민주주의가 더욱 크게 확장되고 있다.
시민예술의 가장 큰 가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완성도 높은 공연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연습하고, 의견을 나누고, 실패를 겪으며 관계를 쌓아가는 그 시간과 경험에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삶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의 취미였던 개인 활동은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공동체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즐거움은 지역의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전북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중 예술 중심이던 축제와 문화행사에 시민 예술팀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무대예술을 담아내던 공연장은 다양한 생활문화 공간, 시장, 골목, 주차장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술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토양을 넓히는 일에 가깝다. 토양이 넓어질수록 그 위에서 자라는 예술 역시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예술은 도시의 지속가능성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대규모 예산과 일회성 이벤트에 의존하는 문화는 쉽게 소진되지만, 시민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 활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참여한 사람들의 삶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시민예술 역시 꾸준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가 ‘사업’을 넘어서 시민들의 삶 속의 ‘생활’로 자리 잡을 때 더욱 확장될 것이다.
물론 시민예술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다. 전문성 부족, 지속성의 어려움, 참여자 간의 갈등 등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시민예술이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찾아가기 위해 배우고 조정할 수 있다는 여지와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기회를 열어두는 것이다.
앞으로의 문화정책은 시민예술을 보호의 대상이나 보조적 영역으로 바라보기보다, 도시 문화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행정은 방향을 정해주는 주체가 아니라, 시민의 실험이 가능하도록 공간과 시간을 열어주는 역할에 가까워져야 한다.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은 도시를 바꾼다. 시민예술이 확산된다는 것은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도시는 느리지만 조금씩, 그리고 분명히 단단해진다. 시민예술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그 중심에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형래 프로듀서는 전북대를 졸업하고 경희사이버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석사를 받았다. 뮤지컬 ‘맘’, ‘왕과의 산책’, ‘곡두식당’ 등 다수 작품을 기획, 연출 및 출연했으며 전북문화관광재단 심의위원, 전주문화재단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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