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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남한산성이 한국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유네스코는 22일(한국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계속한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확정했다고 문화재청이 이날 밝혔다.이로써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3건이 한꺼번에 처음으로 등재된 이래 창덕궁과 수원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을 거쳐 남한산성에 이르기까지모두 11건에 이르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역사유적지구,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합치면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4건을 헤아린다.이날 등재 심사에서 남한산성은 세계유산 가운데 인간이 남긴 기념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유산’이 되기 위한 6개 조건 중에서도 기준(ⅱ)와 (ⅳ)를 충족했다고 평가됐다.등재기준 (ii)는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 계획 등에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 등재기준 (iv)는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보여주는 건물, 건축,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탁월한 사례”에 해당한다.이에 따라 남한산성은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로서의 군사유산이면서,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는 점 등이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포곡식이란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산성을 말한다.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남한산성은 일상적인 왕궁과는 별개 산성이면서도 병자호란 때는 왕이 일상적으로 거주한 왕궁이라는 ‘비상 왕궁’(emergency palace)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면서 “이런 산성은 세계적으로 남한산성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4.06.23 23:02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조선시대 15세기 중엽 창건"

2012년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가 불교미술사 측면에서 뿐 아니라 심곡사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물로 평가됐다. 이 같은 사실은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사학회 공동 주최로 18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과 사리장엄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나왔다.익산 미륵산 내 심곡사 칠층석탑에서 나온 유물은 백자사리호 1점, 금동불입상 2구, 금동불 7구가 봉안되어 있는 금동불감 등으로, 발견 당시에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올 4월말 보존처리가 완료됐으며, 이날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되면서 유물의 특징과 성격을 규명하는 세미나가 열렸다.단국대 엄기표 교수는 익산 심곡사는 현존하는 유적 유물로 보아 늦어도 조선시대에는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법등이 지속되면서 익산지역 불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특히 칠층석탑에 대한 해체 보수 과정 중 기단부 중대석의 상면 사리공에서 사리구가 확인되고, 지대석의 상면 사각형 홈에서 예기치 않았던 불감이 출토 수습돼 그동안 분명하지 않았던 석탑의 건립 시기와 심곡사의 연혁을 살필 수 있는 유용한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그에 따르면 심곡사는 늦어도 조선 초기 창건됐으며, 조선 후기 건립된 여러 기의 부도가 유존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도 유력한 승려들이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사리구와 명부전 불상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 중창이나 중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았다.엄 교수는 특히 심곡사 칠층석탑이 조선시대 들어와 불교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불사가 적었던 시기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의 전환기 석탑 양식을 함께 보이고 있어 양식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보았다. 기단부 중대석 상면에 사리공을 마련한 점은 특이한 사례에 해당되며, 금동불감은 전해지고 있는 수량도 적지만 심곡사 칠층석탑처럼 출토지가 명확하고 용도와 기능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심곡사 칠층석탑은 석탑의 치석 수법과 양식, 불감의 조성 시기 등을 고려할 때 조선 초기인 15세기대에 초건된 석탑으로 보았으며, 조선 초기의 정치적 상황과 불교계의 현황, 높은 수준의 제작기법인 불감의 봉안이라는 사실들을 고려할 때 석탑의 발원이나 후원이 왕실이나 유력계층과 연계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전정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불상의 조성시기를 고려해 볼 때, 심곡사는 이르면 10세기, 늦어도 14세기 중엽에는 창건된 사찰로 보이며, 15세기에 중창불사가 있었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심곡사 칠층석탑 안에 봉안되어 있는 사리장엄구 가운데 기단 중대석에 봉안되어 있는 금동불입상 2구는 전라도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10세기 전반의 불상이며, 지대석 방형공에서 발견된 금동아미타삼존불은 원대 라마양식 불보살상의 영향을 받아 14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았다. 15세기 중엽 칠층석탑을 조성하면서, 사찰에서 전세되던 이러한 상들을 매납한 것으로 파악했다.이날 세미나에서는 또 권혁남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가 심곡사 칠층석탑 사리장엄의 현장수습에서부터 보존처리가 완료될 때까지의 전 과정과, X-선 형광분석기를 이용하여 얻은 성분 분석 결과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한편, 심곡사 칠층석탑 사리장엄을 소개하는 테마전 장엄과 공덕을 금산사심곡사와 공동으로 18일부터 8월2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전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불감, 송광사 고봉국사 금동불감, 순천 매곡동 석탑 출토 불감 등 불감 비교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6.19 23:02

남원 실상사에 고려시대 정원시설 발견

남원 실상사에서 고려시대의 대형 정원시설이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정안)는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사적 제309호) 양혜당과 보적당 건립부지에서 독특한 모습의 고려 시대 사찰의 원지(苑池)를 온전한 상태로 확인했다고 밝혔다.또 연못을 중심으로 건물지 2동, 석렬(石列) 1기, 담장지 1기 등도 확인됐으며, 연화문(蓮花文) 수막새, 초화문(草花文) 암막새, 실상사(實相寺)라는 명칭이 조각되어 있는 기와 조각 등 유물 80여 점도 함께 발굴됐다.이번에 발견된 정원시설의 원지와 수로(水路) 시설은 다른 사찰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다. 원지는 장축이 동서방향인 타원형에 가깝고, 바닥은 천석(川石, 강돌)을 편평하게 깔아 축조했다. 연구소는 이곳의 원지가 고려 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선종 가람에서 원지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유구로 판단했다. 특히, 고려 시대 불화인 관경16관변상도(觀經16觀變相圖)에서 연지와 배수로가 확인되고 있어 고대 정원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았다.문화재청은 오는 16일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유구와 유물의 처리정비 방안 등에 대한 전문가 검토회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6.12 23:02

[실상사 발견 고려시대 정원시설] 강돌 촘촘히 깐 타원형 연못·수로

남원 실상사에서 발견된 정원시설은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초대형 고려시대 정원시설이다. 조계종 산하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정안 스님)는 실상사(주지 응묵) 담장 바깥 구역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강돌을 바닥에 촘촘히 깐 평면 타원형의 독특한 모습인 연못과 여기에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로(入水路)와 빼내는 배수로,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건물터 2동을 비롯한 정원시설을 찾아냈다고 11일 밝혔다.이 중에서 연못인 원지(苑池)와 관련 수로 시설은 그 규모와 완벽한 상태,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 양식이 단연 관심을 끈다.길이 16.05m에 폭 8.06m인 연못은 바닥에 강돌을 대체로 한 줄씩 편평하게 깔아처리하는 한편 주변 호안석축(湖岸石築) 또한 같은 종류의 강돌을 쌓아올려서 만들었다. 바닥 중앙에는 다른 강돌과는 달리 청색 빛이 도는 돌을 안치했다. 돌 사이에는 명황색 점토와 숯을 이용해 방수처리를 했지만 내부에서 뻘층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맑은 연꽃 같은 식물을 기르지는 않았다고 추정된다.이곳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로(入水路)는 현재까지 발견된 규모만 길이 42.6m 구간에 이른다. 폭 1.2m이며 강돌을 바닥에 깔고 측면에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조사단은 이런 직선 수로가 연못과 만나는 지점에 잇대어 만든 다른 수로를 주목했다. 이 수로는 곡선에 가까우며, 연못 한쪽 면을 따라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이런 수로 형태는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정원 시설에서는 신라 포석정과 마찬가지로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던 연회인 곡수연(曲水宴)과 관련 깊은 것으로 알려져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 곡수 형태의 수로는 길이 13.8m에 폭 1.0m였다.조사단은 이번에 발견한 원지는 그것이 위치하는 방향성을 고려할 때 실상사 경내에 위치한 고려시대 초기 목탑 터와 동서방향 축이 일치한다면서 나아가 이 일대에서는 고려 초기 유물이 집중 출토하는 점으로 보아 이 정원시설은 실상사 경내 목탑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이와 같은 수로 갖춤 정원시설은 고려시대 불화에 비슷한 형태가 보이며, 일본에서는 후루미야(古宮)유적이나 헤이조궁(平城宮)의 동원(東苑) 등지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견됐다.나아가 이번 발굴에서는 연화문 수막새, 초화문 암막새, 實相寺(실상사)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를 비롯한 각종 유물 100여 점이 수습됐다.이번 발굴 지역은 현재의 실상사 담당 바깥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 실상사는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넓은 거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정원시설이 드러난 곳은 실상사에서 양혜당과 보적당이라는 부속 건물을 세우기로 한 곳이지만, 유적이 드러나지 않은 다른 곳으로의 설계 변경이 불가피해졌다.더불어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장엄한 모습의 현재 상태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정비하는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했다.이번 발굴 현장은 오는 16일 오후 2시 전문가 검토회의 개최에 즈음해 일반에도공개된다. 연합뉴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4.06.12 23:02

전주한옥마을, 소리로 들썩들썩

주말 연휴 전주 한옥마을 태조로 쉼터에는 장구 소리가 울렸다. 쿵다쿵다 타쿵타쿵. 궁채와 열채를 잡은 고사리 손이 장태수 강사의 구음과 손짓을 주시하며, 장구의 오른쪽왼쪽을 번갈아 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하자 인근 경기전에서는 명인 명창의 소리와 몸짓이 초여름 저녁을 수놓았고, 반달이 뜬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밤샘콘서트에는 경계를 허물고 편견을 깨는 국악 무대가 펼쳐졌다. 한옥마을로 가족 여행을 온 성예빈 양(15경기 김포)은 낮에는 흥겨운 길거리 공연이, 밤에는 전위적이고 연주법이 특이한 공연을 보며 국악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한옥마을이 한바탕 소리와 놀고 있다. 전주시와 (주)문화방송전주MBC,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주최주관하는 전주대사습놀이가 지난 7일 40주년의 막을 올렸다. 7~8일에는 한옥마을 문화시설과 덕진공원 등에서 각종 기획공연과 전국대회, 학생전국대회의 예선 등이 펼쳐졌다.특히 지난해 신설된 또랑광대경연은 나이를 불문한 참가자들의 열정이 돋보인 무대였다. 동네 소리꾼을 발굴하고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만든 무대에는 창작판소리, 다섯바탕, 민요 등이 어울려 지나는 관광객의 발길과 시선을 잡았다.7일 오후 1시30분 전주여명카메라박물관에서 열린 예선에는 13팀이 참가해 경합을 벌였고 다음날 같은 시각에는 9팀이 본선을 겨뤘다. 본선에서도 23살 대학생부터 백발의 90살까지 열정과 끼를 발산했다.최연소 참가자인 라지원 씨는 대학 4학년 여자선배가 1학년 남자 후배에게 들이댔다 차인 경험을 춘향가 중 사랑가와 접목해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새콤달콤 과일빙수, 아메리카노. 아니 싫소. 아웃백 가랴 토다이 가랴 라루체 가랴. 무엇을 먹으려느냐며 가야금 병창과 함께 선보였다. 이어 86살의 부인을 고수로 두고 참가한 최고령 이영두 씨는 갑옷 의상과 창 소품까지 준비하며 열정을 보였다. 그는 적벽가 중 군사설움 장면을 풀어낸 뒤 나이가 많다고 포기하지 마라며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9팀 가운데 1등인 천하제일명창상은 창작판소리 울엄마를 부른 임인환 씨(익산)에게 돌아갔다. 그는 일상에서 일어난 소소한 경험을 재치있게 풀어냈다. 예선전에서 주어진 시간을 넘기는 열의을 보이다 사회자에게 뒤에 기다리는 어르신들 공연하기 전에 진을 빼놓는다며 타박을 받기도 했지만 100만 원 상금의 주인공이 됐다. 2등인 어전광대상은 춘향가를 부른 이광휘(전주), 3등 한량소리상 라지원(전주), 4등 방안퉁소상 적벽가의 새타령을 부른 이병호(전주) 참가자가 받았다. 또랑광대경연의 심사위원을 맡은 오진욱 연출가,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정민영 국립민속국악원 단원, 방수미 국립민속국악원 단원은 참가자들의 실력이 기대 이상이었고 창작판소리와 판소리 5바탕, 판소리를 재구성한 작품등이 모두 불려져 진정한 의미의 또랑광대가 모일 수 있는 대회였다며 국악전공자와 비 전공자를 떠나 또랑광대의 취지에 부합한 팀을 선별했다고 전했다.전주대사습놀이는 8일 오후 경기전 특설무대에서 학생대회 본선, 9일 정오 같은 곳에서 최고의 명창을 뽑는 본대회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4.06.09 23:02

5년간 땀방울로 찾아낸 고대 전북인 흔적

고대 전북인 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과 전주역사박물관은 공동으로 오는 10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에 있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굴 그리고 기록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 문을 연 뒤 지난 5년간 도내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찾아 낸 유물 200여점을 시대에 따라 9개로 나눠 구성했다. 도내에 살았던 선조의 삶과 죽음이 담긴 유물을 볼 수 있다.청동기 시대 생활유적으로 각각 전기중기후기에 따라 정읍 갈선리, 익산 송학리, 군산 축산리에서 발견된 붉은간토기, 돌도끼, 그물추, 돌살촉 등 50점이 선보인다.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로 전주 중동과 만성동 등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청동칼 등 26점을, 원삼국시대는 김제정읍 등에서 발견된 시루, 연통형토기 등 12점을 전시한다. 부안 옥여고분군, 남원 사석리고분군, 장수 삼봉리고분군 등에서 나온 항아리와 철기류마구류 등 34점으로 가야의 고분문화도 살필 수 있다. 전주 동고산성과 정읍 이문유적에서는 후백제부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기와 등 22점으로 후백제의 왕도였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진안 봉곡도요지, 정읍 청석과 청학유전 토광묘, 군산 축산리유적 토광묘 등에서 나온 조선시대의 백자 대접, 청동수저 등으로 당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전주문화유산연구원 유철 원장은 그동안 축적된 자료를 전공자, 지역민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특별전을 진행한다며 앞으로도 매장문화재 전문 연구기관으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조사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전했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4.06.05 23:02

"옹기, 전북에 가장 적합한 관광자원"

전북의 옹기는 가장 항아리답습니다. 먹거리가 풍부해 음식문화가 발달하고 가장 적합한 흙이 김제 황산에서 나는 황토여서 옹기다운 맛이 살아있습니다.국내 최초 옹기 전문 박물관인 서울시 도봉구 삼양로에 있는 옹기민속박물관의 이영자 관장(69)은 전주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옹기다고 강조했다. 순창 출신으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 또는 수더분한 만며느리의 마음같은 옹기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에 적합한 관광자원이다고 덧붙였다. 옹기는 잿물을 덮지 않고 진흙만으로 구운 질그릇과 진흙으로 구운 뒤 오짓물(잿물)을 입혀 다시 구운 오지그릇을 아우른다. 크기에 따라 배꼽 이하 50~100㎝ 는 항아리이고 이보다 큰 것은 독이라 불린다. 이 관장은 숨을 쉬는 옹기에 음식을 담으면 플라스틱 용기에 있을 때와 맛이 다르다며 웰빙 시대를 맞아 독문화가 다시 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전북에는 옹기를 만드는 곳이 산재하고 동막, 점촌 등의 지명이 들어간 곳은 옹기를 구웠던 곳이다며 장인의 손을 거친 차별화된 작품과 기계화로 대량생산하는 생활 옹기의 두 가지 방식으로 현대에 적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옹기민속박물관은 지난 1991년 고려민속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200여종의 3000점이 넘는 옹기와 민속생활용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수집은 1960년대부터 남편인 고(故) 정병락 씨가 시작했다. 처음에는 벼루, 종지 등 조그만 것에서 차츰 크기가 커졌다.이 관장은 우리나라의 생활그릇이 60년대부터 플라스틱으로 급격히 바뀌면서 전국을 돌며 사라지는 옹기를 수집했고, 초기에는 그냥 가져가라는 분이 많았다면서 옹기의 장점이 알려지고 다시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가격이 올랐다고 설명했다.지난 1993년에는 이 관장이 남편을 이어 박물관을 맡아 이름도 바꿨다. 현재 다양한 기획전과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이 관장은 남편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박물관을 안게 된 뒤 옹기를 공부하기 위해 관련 학술대회나 강연을 쫓아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빠졌다며 해마다 전시회와 도록 발간을 하면서 공부하는 즐거움과 인생의 희열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는 26일 전주시청에서 숨 쉬는 그릇 옹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펼친다. 옹기의 정의와 제작 방법, 특성, 가치와 함께 그에 담긴 조상의 지혜를 이야기로 들려줄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4.05.22 23:02

"동학군 장군 유골 빨리 안장해야"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동학군 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20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안장되지 못해 안식처 마련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19일 온라인 블로그 혜문닷컴에 전주역사박물관이 보관중인 동학군 장군의 유골(머리뼈)을 조속한 시일안에 안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혜문 스님은 이날 전주역사박물관을 방문해 유골을 열람했다. 유골이 보관된 수장고는 항온항습이 제대로 작동해 유골 훼손 등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지난 1995년 일본 북해도 대학 창고에서 발견돼 이듬해 고국으로 봉환됐으나 영구 안치를 위한 묘역을 지금껏 찾지 못해 박물관 수장고에 20년 가깝게 위탁 보관돼 왔다. 도내 시민사회단체들도 그동안 영구 안치를 위한 대책을 요구했으나 아직도 해결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유골은 측면에 한국 동학군 수괴의 수급(머리), 사토 마시지로로부터라고 먹으로 쓰여져 있으며,동학당이란 글씨와 함께 1906년 전남 진도에서 채집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발견되면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의 노력으로 한국 봉환이 이루어졌다.혜문스님은 홋카이도 대학이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1996년 한국에 반환한 동학군 지도자 유골이 안장되지 못하고,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반인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동학군 장군의 유골을 세간의 무관심으로 20년간 방치한 행위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라며 갑오동학운동 120년을 맞아 조속한 시일안에 유골을 안장할 것을 박물관측에 촉구했다고 밝혔다.이와 관련, 문병학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유골 안치를 위해 지난해 정부에 7억원의 예산을 요청했으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추진하는 기념공원 내 추모관 건립과 중복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산 반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업회측은 김제 원평 구미란에 있는 무명 동학농민군 묘역 인근에 안장을 계획하고 특수지원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계획하고 있는 추모공간은 묘역과는 거리가 있어 추모공간 건립이 이루어지더라도 반환 농민군 유골의 안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학계에서는 혁명 전승지에 건립된 정읍 황토현에 국립묘지 같은 대단위 묘역을 조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쪽의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현재 37기가 안치된 구미란의 무명 농민군 묘역을 정비해 이곳에 안치할 경우에도 묘역 정비와 사적지 지정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해 역시 쉽게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은 북해도 대학의 한 표본고에 90년 동안 방치됐던 것을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천도교동학혁명유족회 등이 공동으로 봉환위원회(상임대표 한승헌 변호사)를 구성해 1996년 5월 봉환식을 갖고 한국으로 봉환했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5.21 23:02

전북 문화재 보수·관리 엉망

전북지역 문화재 중 상당수가 엉망으로 관리되는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인 점검과 대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또한 국보(國寶) 1호 숭례문이 복원 5개월 만에 단청이 훼손되고 목재에 균열이 생긴 것은 기본원칙을 무시한 복구작업 때문이며 일부 재시공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고, 국보 31호 첨성대는 매년 조금씩 기울고 있는데도 원인조사나 안전조치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감사원은 1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문화재 보수 및 관리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총 93건의 감사결과를 시행했다고 밝혔다.이번 감사는 숭례문 부실복원과 관련한 국회의 감사 요구에 따라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문화재청과 서울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등 9개 시도를 대상으로 실시됐다.보물 제1516호인 김제 귀신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의 경우 정기조사에서 보존처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보존처리를 위한 보수, 정비사업 대상으로 선정하거나 정밀안전진단, 보존처리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문화재 훼손이 심해질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보물 제825호인 익산 숭림사 보광전, 보물 제827호인 김제 금산사 대장전, 보물 제826호인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보물 제291호인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은 소방관련 자격증 소지자가 배치되지 않은 문화재로 적발됐다.또 정읍 남고서원 홍실문 설치, 김제 금구향교 대정전 주변정비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화재 수리기술자가 배치기간 중 해외에 체류하는 등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지적됐다.이와 함께 지정문화재 검토 가치가 있는 매장문화재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전주 만성동 동경출토지,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3차 유적지, 남원 송동 신평 산업단지 등은 학술적 가치가 높아 지정문화재 검토 가치가 있는 매장문화재라는게 감사원의 지적이다.정기조사 결과 불량인 시도 지정 문화재에 대한 보수 및 정비가 지원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전북도는 2010년 도지정문화재 등 494건에 대해 정기조사를 실시, 45건은 그 상태가 불량해 보수정비 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사하고도 8건에 대해 보존처리 등 적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문화재 훼손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이번 감사에서 지적됐다.문화재에 설치된 소화시설의 수원(물)이 확보되지 않아 화재 발생때 기능을 할 수 없는 것도 무더기로 지적됐다.정읍 피향정, 완주 화암사 극락전과 우화루, 완주 송광사 대웅전과 종루 등은 소방용수 확보율이 크게 부족해 화재 발생때 위험 요인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한편, 지난 2008년 화재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의 복원이 5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해 6월 완성됐으나, 검증되지 않은 값싼 재료가 사용되는 등 부실 투성이어서 단청과 지반 등의 재시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숭례문의 경우 문화재청이 지난 2009년 12월 민간업체 두 곳과 숭례문 복구공사 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애초 정한 공사기한(5년)에 맞추려다 곳곳에서 부실시공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 문화재·학술
  • 위병기
  • 2014.05.16 23:02

꼬고 엮고… 끝없는 '지승앓이'

석재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유난히 손재주가 많아 정말 못만드는게 없으셨다. 당신 쓰시던 도구부터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까지 다 만들어 내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저녁엔 엄마와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결혼을 해서 전주로 온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공예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책을 사서 보고 따라하는 정도였기에 차마 공예 한다고 말을 못했지만, 아버지의 솜씨를 고스라니 물려받은 나는 곧잘 이것저것 만들어 냈고, 그걸 보고, 집에만 있기 아까운 솜씨니까 공방이라도 하나 내봐라 하시는 시아버님의 말씀에 힘을 얻은 나는 본격적으로 한지공예를 시작하게 되었다.며느리에게 등록금까지 대주시며,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 시아버님 덕에 지승공예 기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한지공예로는 석사1호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그저 좋아서, 정말 미치도록 좋아서 날마다 종이를 엮었다. 하나를 하면 또 다른게 하고 싶어지고, 점점 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거푸집을 만드는 것부터 마지막 옻칠까지 내손으로 다 해야 겠다는 생각에 옻칠도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작품들이 하나 둘씩 완성되었지만, 지승에 대한 욕심은 갈증이 되어, 한없이 부족하고 목이 마르게만 느껴진다.지승공예는 종이를 꼬고 엮어서 기물을 만드는 세계유일의 공예기법으로, 선조들의 지혜와 한지의 우수성을 알게 해주는 너무나 훌륭한 공예이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짧아야 몇 달이 걸릴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점점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갔고, 이제는 맥이 끊어질 정도로 지승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적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나는 이렇게 좋은데, 왜 사람들은 이걸 모를까? 내가 제대로 보여줘야지!아직은 부족하다 싶어 미뤄왔던 전시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져가는 지승공예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전시를 열고자 한다.물론 앞으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우고, 작업하고, 그렇게 내 목마름을 채워나가겠지만, 더 많이 보여주고, 후진양성에 힘써, 사라져가는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가고, 나아가 세계에 지승공예의 우수성과 작품성을 알려야겠다는 게 꿈이며, 사명감까지 든다.△한지로 엮어낸 김선애 공예전(15일부터 21일까지 전주우진문화공간)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4.05.16 23:02

대둔산 동학 항전지 문화재 추진

동학농민혁명군의 대둔산 최후 항전지를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본보 보도(4월 2일자 1면)와 관련, 완주군이 이곳을 문화재로 추진키로 의견을 모으고, 이에 필요한 행정절차에 들어갔다.완주군은 지난달 동학농민혁명 전문가와 함께 대둔산 7-8부 능선에 솟은 암반지대에 자리한 최후 항전지를 현지 방문하는 한편 역사적 가치에 대한 학계의 자문을 받았다.완주군은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 15-1번지 암반지대 상단에 위치한 동학농민군 최후 항전지는 1894년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 18일까지 3개월 동안 관군과 일본군에 당당히 맞서 싸우며 동학농민군이 최후를 마친 곳이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며 고귀한 혁명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 이곳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최후 항전지는 일반 등산객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난지대에 자리 잡아, 항전 당시 원형과 흔적이 상당부분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완주군은 문화재 지정을 위한 사전절차로, 최후 항전지의 토지 소유주인 산림청에 사용승락을 요청할 계획이다. 완주군은 최후 항전지의 지적공부상 지번이 370만9640㎡에 이른다며 이곳을 문화재로 지정하려면 우선 필지를 분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은 최후 항전지 일대 가로 100m, 세로 100m(약 1만㎡)를 분할, 이곳을 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군은 최후 항전지 토지분할은 문화재 지정과 대둔산 개발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해법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김경모
  • 2014.05.14 23:02

오바마가 반환하는 우리 문화재 9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우리 측에 반환하는 문화재는 대한제국과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인장 9점이다. 이들 문화재는 한국전쟁 참전 미군이 덕수궁에서 불법으로 반출한 것으로, 참전한 미국 해병대 장교 후손이 보관하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미국 국토안보부 수사국(HSI)에 의해 압수됐으며 불법반출이 밝혀짐에 따라 이번에 반환이 결정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문화재 반환 행사에서 이들 문화재의 반환 경위 등을 소개할 예정이며, 박 대통령은 이에 사의를 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환 행사에는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배석한다. 반환 예정 문화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황제지보(皇帝之寶)'로 이는 대한제국의 국새 11과(顆)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문서에 직접 사용한 국새를 중국에 서 하사받았으나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그동안의 국새를 폐지하고 자체 제작한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고종 황제의 자주독립 의지가 담겨 있다. 대한제국 국새는 1897년께 10과가 제작됐고, 고종의 비밀 외교를 위해 1과(황제어새)가 190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 이들 국새는 손잡이 모양에 따라 귀뉴(龜紐거북 손잡이)와 용뉴(龍紐용 손잡이)로 구분되며, 재질은 순금도금, 천은도금, 옥, 금은합금 등으로 제작됐다. 국새 11과 가운데 대한국새, 황제지새, 황제지보 3과 중 2과, 칙명지보 2과 중 1과, 시명지보 등 6과는 일제가 강탈한 뒤 미군정청에 반환했지만 625 전쟁 도중 다시 분실됐거나, 애초부터 분실 과정이 불분명한 상태로 현재 찾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5과 가운데 이번에 반환되는 황제지보 3과 중 1과(용뉴에 옥 재질)를 제외하고 나머지 4과는 칙명지보 2과 중 나머지 1과, 제고지보, 대원수보, 황제어새 등이다. 이 가운데 황제어새는 2009년 재미동포가 구입해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있다. 또 나머지 3과는 625 전쟁 때 분실됐지만 1954년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됐으며 칙명지보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제고지보와 대원수보는 국립전주박물관에 각각 보관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반환하는 또 다른 문화재들은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유서지보(諭書之寶)와 준명지보(濬明之寶), 향천심정서화지기(香泉審定書畵之記), 우천하사(友天下士), 쌍리(雙리<璃에서 王 대신 벌레충변>), 춘화(春華), 연향(硯香) 등이 있다. 수강태황제보는 왕과 왕비, 세자, 세자빈 등 존호를 올릴 때 의례용으로 사용하는 왕가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인 어보(御寶) 가운데 하나다. 1907년 고종 황제가 수강태황제로 존봉(尊奉존경하여 높이 받듦)되는 의식을 기념하고자 제작한 것으로 상세한 내용이 융희원년존봉도감의궤(隆熙元年尊奉都監儀軌)와 고종가상존호옥책문(高宗可上尊號玉冊文)에 기재됐다. 종묘에서 신성하게 관리하던 어보는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의궤를 통해 366과가 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24과가 국내에 소장돼 있고, 나머지 42과 는 분실됐다. 분실 어보 가운데 39과는 행방불명 상태이고, 외국 소재 3과 가운데 이번에 환수되는 고종어보 외에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남게 됐다. 유서지보는 지방의 절도사나 관찰사 등의 임명장에 사용한 인장이며, 준명지보는 왕세자 교육 담당 관청인 춘방(春坊)의 관원에게 내리는 교지에 사용한 도장이다 . 향천심정서화지기는 조선 헌종의 서화 감상인으로 향천은 헌종의 호였다. '세상의 선비와 벗 하다'라는 의미의 우천하사와 '두 마리의 용'이라는 뜻의 쌍리, '봄꽃'의 의미를 지닌 춘화 등은 모두 조선왕실의 인장이다. 이번에 반환되는 문화재는 대한제국 황실의 보인(寶印)과 부신(符信나무나 종이에 기록한 뒤 도장을 찍은 뒤 두 조각으로 쪼개 나중에 맞춰보며 증거로 삼던 물건)을 설명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라는 책과 조선 시대 여러 왕이 애용하던 인장을 집대성한 서적인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에 상세한 그림과 설명이 나와 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4.04.25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