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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

전북에는 보물이 많다. 작은 돌 큰 돌이라 불리는 보석 산업과 석재산업은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보물들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간척사업인 새로운 보물인 새만금(新萬金)까지 눈길 가는 곳마다 보물 아닌 것이 없다. 이어령 전 장관은 그 보물들을 얼마나 대단하게 여겼기에 전북을 두고 문화의 보고(寶庫)라고까지 말씀하셨을까. 하지만 아무리 보물이 많으면 무얼 하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겠는가. 새만금은 1000km반경 안에 중국, 일본, 러시아가 인접한 15억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이 기회의 땅을 선점하기 위해 7월3일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여 한·중 정상공동성명에 새만금 국제비지니스 센터(SIBC)를 구축할 것을 부속서에 첨부했다. 한·중이 협력하여 기술과 인력, 자본의 창조적 융합으로 새만금을 상해 포동浦東으로 만들어 글로벌 씨티(Global City)를 형성하자는 것 아닌가. 우리의 새만금이 끝내 잘 살아갈 수밖에 없을, 전북의 미래를 보정(補正)하는 누름단추가 될 전망이다. 이 새만금을 제대로 잘 가다듬어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일이야말로 우리 전북이 처한 당면의 과제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새만금이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발전하기에 최적지라며 기초계획을 바꿨다. 2030년까지 농경지 72%, 복합도시 28%로 계획된 것을 농경지 30%, 복합도시 70%로 바꾸면서 2020년까지 개발해야 경제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공기를 10년이나 앞당겨 드라이브를 거는가 싶었는데 환경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고 도민의 요청도 간절함이 부족해서였을까? 방향이 4대강 사업으로 급선회하여 2008년 11월에 착공, 22조를 쏟아 부어 2년 만에 4대강사업을 완공시켰다. 4대강 사업의 결과는 총체적 부실공사로 평가받았다. 새만금을 바짝 추켜들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통탄하지나 않을까. 그래도 새만금사업의 조성부지 용도를 변경하고 준공일자를 10년이나 앞당겨놓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할까? 우연이겠지만 세종시, 새만금사업, 4대강 사업의 개발투자비가 똑같은 22조원이다. 그런 건 차치한다 해도 세종시는 벌써 완공되었고 4대강사업은 겨우 2년여에 완공을 보았다. 헌데 우리 새만금사업은 어떠한가. 25년이 맥없이 흘러갔다. 오늘날까지 2조3900억 원을 투입했고 공정률은 약 10%에 머물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개념이 국가행정차원 전반에 걸쳐서 깡그리 증발되었다. 눈 씻고 주시해도 찾아보기가 어렵게 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께 청원합니다. 전북의 산하에 흩어진 보물들을 꿰는 데 앞장 서 주십시오. 새만금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남 아시아권의 새로운 먹거리의 보고입니다. 이름도 새로운 보배 ‘새만금(新萬金)’이라 하지 않습니까. 1987년 5월12일 새만금간척사업 추진계획이 발표되고 22년 9개월 만에 새만금 방조제 33.9km가 준공된 후 아직껏 방조제 좌우로 아득히 바다만 보일 뿐입니다. 새만금산업단지 566만 평을 최우선적으로 조성하여 한·중 경협 단지를 마련하고 차이나타운(Chaina town)을 조속히 유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우선 공항을 먼저 마련해야하고 따라서 외자유치도 가능해야 합니다. 국토균형발전의 견인차로 새만금에 사활을 걸어볼 의향을 여쭙고자 합니다. 옛날 선인들도 “군창(群倉-군산)이 천하의 곳간이 될 것이다”라고, 여러 차례 예지하고 예언하셨습니다. 청컨대 통일시대에 대비한 식량안보태세를 강화하는 청사진을 조속히 실현케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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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2 23:02

하나의 꿈과 다양한 능력

사람은 누구나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해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두 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 첫째,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꿈을 포기하면 꿈을 이룰 수 없다. 끝까지 꿈을 품고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둘째,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도 없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큰 꿈일수록 더 큰 실력이 필요하다.꿈을 이루려면 어떤 실력이 있어야 할까? 다양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실력만으로는 꿈을 이루기 어렵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뛰어난 체력, 공 다루는 능력, 경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판단력 등이 있어야 한다. 이 중의 하나만 가지고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어렵다.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때 정말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다. 다른 꿈도 마찬가지이다.개인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자유, 평등, 사랑, 정의가 이루어지고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려면 모든 국민이 이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를 위한 꿈을 잃은 것이다. 내 회사, 내 정당, 내 파벌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를 위한 꿈을 잃은 것이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는 꿈을 잃은 나라이다. 절대 잘 될 수 없다.꿈을 잃지 않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국가에도 다양한 분야의 실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분야에 아무리 좋은 인재가 많아도 다른 분야에 좋은 인재가 부족하면 나라가 잘되기 어렵다. 그룹 전체의 능력은 머리 좋은 사람만 많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다. 머리 좋은 사람, 실천력이 뛰어난 사람, 감독을 잘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높아진다. 그룹이나 국가의 능력은 다양한 인재가 모일 때 높아지는 것이다.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필요한 것은 사상과 이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온 국민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발전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생각이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눌 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해로운 일이 아니라 유익한 일이다. 여당과 야당이 있고, 진보와 보수가 있어야 나라가 발전한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를 볼 때 답답해하지 말고 우리나라의 보배로 생각해야 한다. 보수도 진보를 볼 때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상과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우리나라가 더 잘 될 수 있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꿈이 같아야 한다. 정말 이 나라 이 민족이 평화와 정의와 번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꿈이 같아야 한다.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나라는 위험해져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삼발이는 다리가 넓게 펴질수록 더 안전하게 설 수 있다. 단, 윗부분은 반드시 하나로 결합하여 있어야 한다. 삼발이의 윗부분이 분리되면 삼발이는 무너진다. 나라를 위한 꿈이 분열되면 나라도 무너진다. 우리 모두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정의와 평화와 번영의 나라를 이루려는 꿈에서는 하나가 되고 생각과 능력에서는 다양성을 갖춰 더 좋은 나라를 이룰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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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5 23:02

전북의 힘

최근 송하진 도지사가 도민과의 약속인 민선 6기 도지사 공약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0개 분야 123개의 사업에 대한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전라북도가 발표한 전북발전 123의 골자는 1억명 이상 관광객 전북방문, 2배 이상 도민 소득 달성, 3백만 도민시대 기반구축이라는 3대 전략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전라북도에 사람과 돈이 모이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 도민이 행복한 전라북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미래다라고 한다. 또한 역사는 발전한다고도 한다. 이 말처럼 과거 속에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해답이 모두 들어있고, 우리가 구축해온 정체성이 농축되어 있다. 얼마전만해도 전라북도를 가리켜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눈물의 땅이라고들 했다.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이면서도 수탈의 현장이었던 곳으로, 풍요 속 궁핍의 땅이라는 의미다. 동쪽은 산간지역이지만, 서쪽으로는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이 넓고 기름지게 펼쳐져 있어 전북은 농도(農道)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60년대 중공업정책이 시작되기 전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세대에 전북은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나라의 곳간이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호남평야를 적시고 서해바다로 들어가는 만경강과 동진강을 두 줄기 물이 감싸듯 정기가 풀어지지 않아 살만한 곳이 대단히 많다고 설명했고, 소설가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의 첫 장에서 김제만경평야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천혜의 축복이 오히려 전북이 굴곡진 역사를 가진 슬픔의 땅으로 전락하는 빌미가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탐관오리들이 욕심을 채우는 곳으로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지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아베가 세운 동진농업주식회사를 비롯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양곡수탈의 현장이자 통로가 되었다. 민선 6기 도지사가 제시한 전북의 희망가를 보면서 필자는 문득 전라북도에도 새로운 꿈이 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지역은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로 불려왔다. 만경, 김제평야는 나라 안에서 가장 큰 평야로 전주, 익산, 정읍, 군산, 완주, 부안, 고창 등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어 전북은 말 그대로 농자천하지대본의 아름답고 기름진 땅이었다. 지평선 위로 해가 되풀이해서 뜨고, 되풀이해서 지는 것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변천에 따라 순응하며 변화한다. 정부가 새로운 만금평야를 만들겠다고 전라북도에 새로운 땅을 만들고 있다. 변산반도와 군산, 고군산군도를 서쪽으로 껴안고, 북으로는 만경평야, 남으로는 김제평야를 웅숭깊게 품은 여의도 140배인 401㎢에 이르는 새로운 땅.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긴 방조제와 함께 283㎢가 간척지로, 118㎢가 호수로 바뀌면서 새로운 만금평야의 역사가 전북에서 시작된다. 새만금개발과 관련해 갑론을박의 여러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공사가 절반이 넘게 진행된 마당에 이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새로운 땅에서 전북의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북의 꿈이 있는가 자문해본다. 그 답은 분명 있다이다. 전북의 미래는 분명 밝다. 어느 집단이든 상위 2%의 사람이 그 집단을 살려내고 있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인재풀이 두텁고 다양해야만 경쟁력이 유지된다. 선진국일수록 인재양성에 관심이 높은 것은, 사람이 인류문명을 이끌고 가는 최고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전북의 힘 역시 사람에게서 나온다. 전라북도의 패배의식이 깊다. 너무 오래 소외되고 굴곡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슬픔의 강인한 힘을 믿는다. 새만금에 가장 근접한 대학인 군산대학교는 전북의 발전을 견인할 최고의 인재풀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10년 안에 군산새만금산단의 수요인력 60% 이상을 양성해 전북의 새로운 꿈을 실현시킬 계획이다. 슬픔의 넉넉한 힘을 이해할 줄 아는 전라북도인은 그 어느 지역 사람보다 강하고, 우수하다. 또한 고난 속에서 단련된 안정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평준화, 표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역의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전북인만이 가진 고유 한 형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신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경제적 수치나 정치적 위상 등이 삶의 질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한 집단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나 사유의 깊이 등 연륜을 지닌 무형의 자산이 진정한 힘이라는 생각을 할 만큼 성숙되었다. 진정한 힘은 우리만 잘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화합을 통한 상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럴 때, 전북의 힘이 커지고, 우리의 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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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1 23:02

디트로이트의 파산 신청

미국 미시간(Michigan)주 동남부에 위치한 공업도시 디트로이트(Detroit) 시가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3년 7월 연방법원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지방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미국자동차 ‘빅3 GM, 크라이슬러, 포드’가 있어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했던 디트로이트, 시민은 180만 명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1인당 소득이 미국 내의 최고였고 세계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이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쇠락해져 지금은 70만 명으로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미국자동차 빅3는 뒤늦게 시의 회생노력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옛 명성을 되찾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울산이 디트로이트를 닮아간다”라는 광고기사를 읽었었다. “소득상위 5%, 세계 자동차업계 최고수준의 임금체계에도 파업투쟁만 한다.” 몇몇 신문1면 광고 타이틀이다. 현대자동차의 파업을 비판하는 내용을 울산상공회의소가 기고한 것이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현대차 근로자1인 평균급여가 연봉 9,400만원이다. 우리나라 가구소득 상위 5%에 해당하는데도 현대차 노조가 더 이상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일을 거부하는 걸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세계 자동차시장을 호령하던 미국 디트로이트의 흥망성쇠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2009년에 파산한 미국자동차회사 GM은 일본차가 몰려오는데도 노조가 파업을 일삼고 퇴직자에게까지 의료비를 지원하다가 파산했다. 지역의 주력 기업이 흔들리자 소재지인 디트로이트가 슬림화되면서 결국 도시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것 이다. 노조 요구에 휩쓸린 자동차회사의 몰락이 대도시의 파경을 가져온 것이다. “울산 파업하는데 美공장 증설하시죠.” 네이션 딜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가 정몽구 현대그룹회장을 만나 미국공장 증설을 요청했다. 주지사는 현대기아차가 미국현지에서 물량부족을 겪고 있는데 공장을 증설하면 필요한 부지와 자금 등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은 130만대, 연간 35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현대차 엘라바마공장과 기아차 조지아공장을 110% 가동해도 74만대밖에 생산할 수 없다. 부족량 56만대는 한국공장 생산물량으로 충당할 수 밖에없다. 때문에 노조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반복된다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런 실정을 미리알고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의 노조는 일자리를 내놓겠다는 파업일색이다.그런가하면 울산이 디트로이트를 닮아간다고 엄살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전북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도 부분 파업을 함께하고 있었고, 군산 GM코리아는 4000명을 감원한다고 선포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도 설계가 지연되어 공장이 텅텅 비어있다. 군산경제의 동력은 이미 가물가물하고 있었다. 울산은 자동차뿐 아니라 정유, 석유화학, 조선 등 경제동력이 다양한데도 울상을 짓고 있는데 전북은 경제의 주동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상공회의소조차 입을 다물고 사회단체들 역시 고요하다. 진즉에 울산이아니라 전북에서 대서특필로 노사협의를 호소하고 새만금 조기개발을 들고 나왔어야했다. 도민 전체가 위기의식으로 팽배하여 와글와글 호소하며 들들들 끓어야했었다. 하지만 이곳 전주에서는 현대자동차 관리자와 협력업체사장들만 애를 태웠고 전북도민들은 아무 영문도 내용도 모른 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가고 있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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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5 23:02

우리와 의리

세상에 ‘우리’라는 말만큼 좋은 말도 별로 없다. ‘우리’는 너와 내가 하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반목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 화목하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온 가족이 하나가 된다면 집안이 늘 평화롭고 행복하며 번창할 것이다. 회사나 학교나 국가도 다 마찬가지이다.그렇다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어떤가? 이 말도 좋은 말이다. 이 말은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이 말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이 말을 특정한 사람들끼리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말은 선거 때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데 많이 사용되어 우리 사회에 큰 해를 끼쳐왔다.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알 수 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사랑과 협력의 범위가 어떠냐에 따라 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사람 중의 하나지만 그도 에바 브라운이라는 여인을 극진히 사랑했다. 만일 사랑을 연인의 범위에 국한해서 본다면 히틀러도 누구 못지않게 사랑이 많고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랑을 외국인에게까지 확대한다면 히틀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한 사람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조폭도 자기들끼리는 형제처럼 사랑한다. 그러나 힘없는 서민은 잔혹하게 착취한다. 만일 사랑의 범위를 의형제에 국한한다면 조폭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범위를 서민에게까지 확대한다면 조폭은 흉악한 자들이다.그렇다면 사랑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해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구에게까지 ‘우리’라고 해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 내 가족에게 우리라고 하는 것은 히틀러도 하는 일이다. 나의 패거리에게 우리라고 하는 것은 조폭도 하는 일이다. 같은 당파에게 우리라고 하는 것은 역사의 모든 간신들도 했던 일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우리라고 해야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고 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가?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특별히 더 우리라고 해야 할 사람이 있다.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이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워진다. 법관이 힘없는 서민에게 ‘우리’라고 하면 서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우리’라고 하면 근로자가 착취를 당하지 않는다. 상인이 소비자에게 ‘우리’라고 하면 소비자가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선거 때 타 지역 출신에게 ‘우리’라고 하면 망국병인 지역감정이 사라진다. 요즈음 의리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의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의리도 누구와의 의리냐에 따라 악한 것이 될 수 있다. 혈연, 지연, 학연에 따라 챙겨주는 의리는 배경 없는 서민을 왕따 시키는 악이지 결코 의리가 아니다. 나와 아무 이권이 없는 사람을 존중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고 대한민국과의 의리를 지키는 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좁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넓은 사랑만 사랑이다. 나와 이권이 있는 사람을 챙기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 나와 아무 이권도 없는 사람을 챙기는 게 의리이다. 이런 의리가 있어야 사회에 정의가 세워지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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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8 23:02

농촌교육농장과 보물창고

익산의 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구마의 역사를 배운다. 번뜩이는 창의력을 키우는 과학 공부도 고구마를 이용한다. 또,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을 보며 우리 집에서 사용한 수돗물과 가스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는지 계산하는 것이 공부다. 그 학교가 ‘농촌교육농장’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익산에서 유명한 고구마를 소재로 온몸으로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멀지 않은 김제의 농촌교육 농장에 가면 붓으로 암술에 꽃가루를 붙여 줄 수도 있고, 장수에서는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슬로우푸드를 비교하며 바른 먹거리의 중요성을 배울 수도 있다.농촌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드넓은 논과 밭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젠 누구나 찾아와 맘껏 뛰놀며 다양한 농촌의 생활과 문화를 오롯이 배우고 가는 산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농업인이 땅에서 작물을 수확하듯 도시인들은 요즘 농촌 곳곳의 보물 같은 교육농장들을 찾아다니며 수확의 기쁨을 얻는다.이런 배경에는 창의인성교육의 영향이 크다. 팍팍한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맑은 공기와 자연 환경은 자유와 어울림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농촌진흥청과 교육부는 농업과 농촌의 교육적 가치를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2012년에 초등학생, 2014년에 중학교 자유학기제 운영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아울러, 농촌진흥청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교과 과정과 연계한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농촌교육농장 550여 개를 육성했다. 볍씨에서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는 군산 가나안 농장, 방목하는 흑염소와 한우 등과 어울릴 수 있는 남원 소풍교육농장 등 농촌의 아름다운 별자리와 천연염색 등 전통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54개의 농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농장 주인은 생업을 하던 농업인에서 자연의 신비와 과학, 역사를 가르치는 ‘농부 선생님’이 된다. 농업인과 아이들 모두 새로운 경험을 하는 시간이다. 자유롭게 뛰어 놀며 어울림과 배려를 배운다. 자기 주도적 학습인 셈이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농업인에게는 자긍심과 보람을 갖게 한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농업과 농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역시 좋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농촌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응답이 2009년 18.5%에서2011년 23.4%로 늘었다. ‘농사짓는 곳’으로만 여기던 농촌을 이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 농촌교육농장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또한, 최근 안전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전한 체험 학습 공간을 만드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부터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제 시범 운영으로 48개 농장을 선정했으며, 올해에는 보험과 응급처지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등 안전 관리를 강화해 총 70개 농장을 선정할 계획이다. 도시의 아이들이 생기 넘치는 농촌으로 뛰어든다는 건 여러 면에서 좋은 현상이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소재들을 농장에 적용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할 때다. 더불어 전북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교육 농장을 찾아내 꿈과 희망의 터로 만들 계획이다.이번 휴가에는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고 농촌이라는 큰 보물창고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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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1 23:02

고도성장의 그늘

군산의 구도심 재정비 사업을 비롯해서 각 도시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테크놀로지 산업의 탈출구로 문화경제 개념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이나 도심문화거리, 공원 등 빈 공간 조성은 도시 외관을 꾸민다는 하드웨어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도시만이 가지는 독특한 내적 세계를 표현한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근대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던 파리에서의 보들레르는 목적론적인 행위에 집착하는 성급한 군중들과는 대조적으로 도시를 응시하면서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사람들을 지칭해 플라뇌르(Flanuer, 산책하는 사람)라고 했다. 최근 도시의 문화공간이 늘어나고 산책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경쟁과 성장의 속도에 모두가 지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청년보”는 중국에서 스트레스와 과로로 돌연사한 인구가 60만명에 이르면서 만만디의 대국 중국이 과로사 1위 국가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인 10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영국 한 의학 잡지의 조사 결과는 더욱 끔직했다. 1억 이상의 인구가 늘 뭔가에 쫓기듯 초조하고 불안한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 것이다. 고도성장과 함께 풍요가 급속도로 유입되고, 성장의 그늘이 산만큼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대한민국이 현재 겪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2013년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기대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산출한 국가별행복지수(HIP)를 보면 1위 코스타리카, 2위 베트남, 3위 자메이카, 4위 벨리즈 순이었고, 한국이 60위, 덴마크가 93위, 미국이 104위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과 행복의 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이다.대부분의 부유한 국가에서는 끼니를 때우고,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에서 지내며,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함께 행복이 증대되던 시대는 이미 끝나버렸다.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선진국일수록 장기화될 소지가 있는 부정적 사회문제가 많이 일어났고, 국민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2013년도 기준 국내 1인당 GDP가 2만5000달러에 다다랐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빈곤이 해결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회가 충분히 부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위치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성장(소득)이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비교와 습관화에 있다. 경제성장 이전에 비해 국내 국민소득이 200배 이상 증가했지만, 우리는 돈 때문에 괴롭다고 한숨을 쉰다. 타인의 소득 증가가 나의 행복을 감소시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경쟁의 바다(레드오션)를 표류하며 속도와 성과를 숭배하는 종족이 되어 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속도와 경쟁에 지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목표는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니라 다수의 행복추구이다.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삶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지금은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 다수의 행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성취와 불안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가 추구할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다. 평등이 해답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질수록 내가 더 불행해지는 현상은 탄탈로스의 갈증과 다름없어 한계가 없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공헌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그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일 불볕더위가 지속되는 8월이다. 어느 때보다 속도에서 벗어난 한가로움이 필요한 때이다. 잠시 멈춰 주변을 바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라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대도시일수록 시민들이 한가롭게 걸으며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 수목이 우거진 산책로가 있고, 그 도시만의 독특한 내적 세계가 있는 문화공간이 그립다. 그곳이야말로 사회의 누적된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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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4 23:02

한국호의 위치를 세월호가 대변하고 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아직도 실종자를 수습 중이다. 세월호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비통한 사고로 우리사회에 크고 많은 의문과 과제를 남겼다. 속수무책의 천재지변이었다면 이리도 큰 비중의 뉴스거리는 되지 않을 것이었다. 너무도 흉측한 인재인데다가 무책임한 처리과정이 화에 화를 부풀렸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은 거친 파도와 풍랑에도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프로펠러를 체결할 때 보면 신축의 변화를 고려 일출 전에 계측을 반복한다. 건조된 선박은 유속이 가장 빠른 해상을 택하여 맹골수도(孟骨水道)보다 더 악조건의 시운전을 거듭한 연후에 선주와 선급의 인정을 받아 인도된다. 그렇건만 세월호는 일본에서 건조한 ‘파도 위’라는 선명을 지워버리고 세월호(世越號)라 개명한 뒤에 복원력 유무도 무시한 채 개조된 불균형상태의 선체를 운항했다. 마치 선명을 과시라도 하듯이 세월을 붙잡아 저승으로 향해갔다. 세상판도를 추월하여 300여명이 넘는 생명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볼모로 엮어 저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선장은 자기가 지휘하는 선박에 긴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및 선적화물의 구조에 필요한 수단을 다하여야한다.”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세월호 선장은 잠시라도 배의 평형을 더 유지하기 위해서 어린학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 하달을 하고서 자신은 허겁지겁 선원들과 함께 배를 빠져 나왔다. 그리하여 저 치욕스런 몰골로 온 세상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1513명의 사상자를 낸 타이타닉호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이 최후까지 타이타닉호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사고 원인은 선박개조, 하물적정량 초과, 선박안전관리 무시 등이었다. 모두가 선사 측 책임이다. 이차적 책임은 여객선을 관리한 정부 담당부처이다. 그런데 왜 대통령의 무능한 국정관리 탓으로 여론몰이를 이끌어 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선량한 국민은 자기나라를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 미국 죤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 구절 중 “당신의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당신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어 보라.”는 대목이 있다.미국의 시사주간지는 세월호 사태를 “고장 난 나라 : 비겁한 선장, 무능한 정부, 한심한 언론’으로 표현했다. 한국호에 승선한 국민들은 지금 집단 멀미 중이다. 세월호가 한국호의 현 주소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2일에 유병언 회장이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동안 하도 참말 같은 추측성·허구성 보도가 난무하였기에 그마저도 얼핏 믿겨지지 않지만 DNA며 지문까지 들먹여 확실하다 했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는 사실이다. 그가 사망하고 난 후로도 쏟아 부은 수사력에 따른 막대한 국고 손실 그리고 억측 보도들에 눈도 귀도 멀어버린 국민들의 정서적 심리적 피해를 과연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고 그에 상응한 답변을 들을 것인가. 하나 같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개조’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법과 정의가 살아있고 공정한 원칙이 우선하는 나라, 공권력이 존중받는 나라, 약자가 보호받고 만인의 권익이 평등한 나라로 새로이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고 싶다. △국중하 대표는 전북대 기계항공 시스템공학부 겸임교수, 어린이재단 전북후원회 회장, 전북지역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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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8 23:02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신입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economy, stupid) 이 문구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 후보가 선거 캠페인에 사용하여 현직 대통령이었던 부시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표어이다. 불과 1년 전인 1991년만 해도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무려 90%의 지지율을 얻고 있었다. 부시의 재선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선거의 천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서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부시는 국민에게 승전보를 가져다줬지만, 지갑은 두둑하게 해주지 못했다. 클린턴은 이것을 꼬집어 이런 표어를 내세우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정말 경제적으로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보다 더 매력적인 공약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를 할 때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표어를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하지 않는가? 후보들이 왜 이런 공약을 내세우겠는가? 국민이 그런 후보에게 표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경제만 살리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그런데 정말 경제만 살리면 행복해질까?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라.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지내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극히 피폐해졌다. 그러나 불과 50년 만에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국민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부모님들이 땅을 팔고 소를 팔아 자녀들을 공부시켰다. 이렇게 양성된 인재들을 통해 나라가 부강해진 것이다. 특히 60~70년대에는 정부가 이공계를 집중 지원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이공계로 몰렸고 이들이 산업전선에 나가면서 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당시는 경제가 지극히 어려울 때였다. 그래서 정부가 이공계를 집중 지원하여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그렇다면 지금도 경제가 가장 큰 문제인가? 물론 지금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의 타락과 정신의 피폐이다. 우리의 도덕이 타락했다는 극명한 증거는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의 피폐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자살률 세계 1위이다. 가장 불행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나라가 가난해서 그런 게 아니다. 부도덕과 정신의 피폐 때문에 그런 것이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고쳐야 한다. 우리는 절대 물질만으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서로 존중하며 화목하게 지내야 행복해진다. 생각해보라. 가장이 돈만 많이 벌어오면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비인격적인 행동을 해도 행복한 가정이 되는가? 오히려 돈은 적게 벌어와도 가족들이 사랑하고 존중해야 행복한 가정이 되지 않는가?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행복한 사회를 이루려면 경제만 생각하던 우리의 마음이 변하여 이웃을 존중하며 돕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신뢰하고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정의와 사랑의 정신인 것이다. △오덕호 총장은 호남신학대 교수, 광주서석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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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1 23:02

농진청 이전과 농생명산업 허브 전북농업

7월 21일, 농촌진흥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다. 2005년 6월 24일 정부의 수도권 공공기관지방이전 기본계획에 따라 전북으로의 이전이 확정된 지 만 9년, 2008년 12월 30일 이전계획이 승인된 지 6년 만에 드디어 역사적인 이전이 시작된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1962년 경기도 수원의 서둔동에서 개청한 이후 52년간 축적된 수많은 정보와 지식, 기술, 전 세계와의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전북혁신도시내의 농업생명연구단지로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전북으로 이전하는 것은 단지 시설과 직원의 공간적·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전통·정신을 새로운 연구시설과 청사에 담아 농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세계적 농업연구의 중심이 될 새로운 농업연구 메카가 전라북도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전라북도 입장에서는 새로운 바이오 경제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첨단기술과의 접목으로 전통농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산업을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육성할 기회를 보다 쉽게 연계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새롭게 출범한 도정의 핵심전략인 ‘사람이 찾는 농촌, 제값 받는 농업, 보람 찾는 농민’ 등 농업 삼락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 도정의 상호 연계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앞으로 농촌진흥청은 바로 이곳 농업생명연구단지에서 기후변화, 식량위기, FTA 등 우리 농업이 마주한 수많은 위기에 대응함과 동시에 농생명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끌기 위한 첨단연구에 청의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농촌진흥청이 전북으로 이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로는 연간 8300억 원 이상의 생산과 2만여 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발생 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전망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가 다음의 몇 가지 분야에서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첫째, 도민 스스로 미래 농업에 대한 가능성과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선진국 중 농업이 강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지금까지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농업과 농촌은 지속되어야 하고 농업인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열정과 패기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전라북도 농업을 이끌 수 있도록 주변의 관심과 격려, 지원이 필요한 시기이다.둘째, 농산업 발전을 위해 구축된 지역 내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전라북도 지역에는 농촌진흥청의 농업생명연구단지, 익산 국가 식품클러스터, 김제 민간 육종단지, 정읍 첨단과학산업단지, 새만금 등 미래 농업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이 진행 중이다. 각각의 연구 및 산업 단지들이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 차원의 전략과 사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셋째, 경쟁력 있는 농기업체를 육성해야 한다. 바이오생명 자원을 부가가치 창출로 연계하기 위해서는 기술사업화와 산업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전북지역에 종자, 식품, 의약, 농기계 등에 관련된 농기업 육성을 위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앞으로의 농업은 단순한 수량위주의 생산에서 벗어나 생명공학, 정보통신, 첨단소재, 인공위성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융합해서 새로운 산업으로 태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가 보다 구체적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앞으로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라승용 차장은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원단장, 연구개발국장, 국립축산과학원장, 국립농업과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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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4 23:02

인문학 부재의 사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인간에 대한 정의는 과거에는 분명 이와 달랐다.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이라던지, 인간에 대한 자비심이 깊은 사람이던지, 바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우리는 생각해왔다. 고작 몇 십 년 사이에 좋은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처럼 달라진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인간 내면에는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가 있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인간은 협업을 통해서만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에 대해 극도로 냉랭한 야수가 될 수도 있고, 정의감과 이타심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교육은 인간의 이러한 비결정성에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백년지계 막여수인(百年之計莫如樹人)이라는 말이 시대를 초월해서 유효하다. 작은 목소리이지만,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인문학 부재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인문학 교육의 부재가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체계적인 야수로 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대형참사가 많은 편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대구지하철 화재, 얼마 전에는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이 있었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 사건은 여러 병폐가 누적된 것이지만 국민소득 2만불, 선진국 진입 등 성장우선주의 문화가 사회전반에 기조를 이루고 있던 탓이 크다.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앵그리맘’으로 대변되는 40대 엄마들을 비롯해서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의 슬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며 분향소로 줄이어 달려갔다. 국민 대다수가 슬픔에 빠지는 ‘집단 멘탈 붕괴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조그마한 위안이라면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선장, 부패한 관료처럼 야수로 진화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 또한 많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본성을 제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와 인문학 부재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인문학이란 인간정신의 본질을 연구해 인간다움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인간다움이란 자신 앞에 닥친 현실 앞에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과거에는 인문학이 일상생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 접근하기 힘든 높은 선반 위의 골동품으로 치부되었다. 삶이 왜 허무한지, 인간의 욕망은 왜 끝이 없는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왜 불안한지…. 일상생활을 뒤흔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문학적 생각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이 실용주의의 사회에서 인류 진화의 방향을 밝고 건강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누구나 일상의 고민에 잠복되지 않고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자기 삶에 대해 왜냐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 대해 왜냐고 질문 할 수 있는 한, 누구도 좋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나의균 총장은 전라북도 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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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7 23:02

새만금이 써 나갈 '해양레저산업'의 성공신화

인류의 역사는 물(水)과 함께 이루어져 왔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이아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문명, 황하강 유역의 중국문명 등 세계 4대문명 역시 강 유역에서 시작됐고 발달했다. 강이나 호수, 하천은 도시 형성과 발전의 필수요건이었고, 도시의 생명선이었다. 이처럼 인류는 물(水)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도전과 응전(應戰)의 과정을 통해 문명을 발달시켜왔다.21세기 ‘새로운 문명을 열어나갈 새만금’ 역시 풍부한 물(水) 자원을 품고 있다. 새만금의 상징물이자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33.9km의 새만금방조제는 내측에 바닷물을 막아 118㎢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내해를 만들어 냈고, 외측은 아름다운 서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새만금에 물(水)은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출발점이자,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해야 할 과제이다.새만금개발청은 아름다운 바다와 드넓은 호소에 둘러싸여 있는 새만금을 「해양레저산업의 메카」로 조성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해양레저에 대한 수요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커지고 있다. 요트, 보트 등 수상레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선진 해양국에 비춰봤을 때 이러한 증가세는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마리나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한 것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해양레저의 수요에 적극 대응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새만금 지역은 33.9km의 방조제가 해일이나 태풍 등의 악조건을 막아주어 요트나 보트를 타고 장시간 해양레저 활동이 가능하며, 주변에 빼어난 자연경관까지 더해져 해양레저산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만경강·동진강 줄기를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어 갈대와 다양한 녹지식물들, 광활한 노출부지의 억새밭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고군산군도 일대는 중국과의 접근성과 친환경 청정 마리나로서의 잠재 가치를 인정받아 작년 3월,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지원 대상 거점 마리나 항만’으로 지정되어 본격적인 개발을 앞두고 있다.이처럼 새만금은 해양레저를 위한 여건을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타고난 여건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가 새만금의 총체적인 성공을 담보하고,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새만금개발청이 해양레저산업을 육성하고자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해양레저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승용차 한 대를 생산하는데 15명의 고용이 창출된다면, 고급요트 한 대를 만들려면 3500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고용효과가 크다. 해양 레저산업이 활성화 될 경우,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확실한 지역경제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새만금산업단지 2공구에 66만㎡ 규모의 조선·해양레저클러스터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 4월 탱크테크사(주) 등 38개의 조선·해양레저기업들과 투자협약을 체결하였으며, 6월에는 새만금 조선·해양레저협회가 설립되는 등 해양레저사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 다지기에 들어갔다.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은 커 보인다.문득, 40년 전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맨손으로 시작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1위가 되었던 신화같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새만금의 해양레저산업도 훗날 후손들의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리는 감동의 스토리를 써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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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30 23:02

소득불균형의 심화

120년 전, 갑오년 농민들은 참다 참다 못해 일어서 삼정문란으로 대표되는 세제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는 수취체제의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을 담세능력의 한계상황으로 내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년 농사지어서 세금내고 나면 식구들의 생계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이들의 현실이었다. 그해 6월, 농민들은 호남의 수부였던 전주성을 점령하고 세금문제를 비롯한 폐정개혁을 위하여 농민권력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나 1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세금문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체의 파멸을 경고하고 있다. 120년 전의 세제 문제가 제도 문란에 의한 불법적인 수탈이 핵심이었다면, 오늘의 세금문제는 부의 집중 현상과 소득불균형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위축과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이다. 1998년 월가의 1%에 대한 시위나 노동자들이 소득격차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시위는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며 또한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다방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지난 300년 간 주요국가의 조세자료를 분석한 결과, 각국의 소득불균형은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총자산에 대한 누진세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즉 소득 상위계층에 대한 높은 과세정책으로 소득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피케티의 이러한 주장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몇 달 사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세계 주요국가나 한국경제의 소득불균형에 관한 비관적인 보고서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들 보고서에 의하면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간 한국의 소득불균형 정도는 아시아 28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소득불균형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의 증가 추이는 중국이 가장 빨랐고, 인도네시아, 라오스, 스리랑카에 이어 한국이었다. 이는 19812007년의 8번째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균형이 더욱 심화된 것이다.피케티의 분석에 의하면, 이러한 소득불균형의 핵심요인은 생산수익률(1.6%)이 자본수익률(4~5%)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땀 흘려 일해서 번 소득보다 금융소득의 생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최고소득계층(상위1%)은 소득의 1/2 정도가 상속자본에 의한 소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피케티의 경고는 2차 대전 이후 칼 폴라니가 현대자본주의의 불안정 요인으로 지적한 바 있는 노동과 화폐, 그리고 토지의 상품화를 비판하며 시장주의에 반대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경제적 행위가 금전적 유인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 행위의 부차적인 속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본과 시장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공교롭게도 갑오년인 올해에, 소득 불평등 구조의 심화는 결국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국내외적인 경고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OECD가 OECD국가 평균의 3배가 넘는 49%에 이르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 해소를 비롯한 한국경제 현안에 대한 권고를 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제기되고 있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는 우리사회의 최대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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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3 23:02

교육발전, 소통과 균형 필요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은 교육이 짧게는 10년후 길게는 반세기후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못사는 나라일지라도 교육이 발전하면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잘사는 나라도 교육이 잘못되면 침체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오늘날 핀란드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국가들이 세계적인 경쟁력과 높은 삶의 질을 자랑하는 것은 평등성과 수월성의 조화를 통한 높은 교육수준과 관련되어 있다. 이에 반해 세계경제위기 이후 재정위기를 맞고 국민 복지의 질이 추락한 남유럽의 이태리는 수월성 교육을 무시하고 평등성만 강조한 균형 잃은 교육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지난 6월 4일 교육감선거에서 17명중 13명이 진보성향을 띠는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언론에서 교육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성향이든 보수성향이든 모두 한국교육의 장래를 위하여 일 할 교육감들이라고 볼 때, 이제 진보와 보수라는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여 보다 멀리보고 균형 잡힌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이 너무 입시위주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강조하는 평등성은 교육에서 중시해야 할 가치이다. 교육기회의 평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환경이라고 해서 또는 낙후된 농촌지역이라고 해서 평등한 교육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원의 낭비이고 사회적 갈등요소가 된다. 그러나 같은 교육기회가 주어진다하더라도 사람의 노력과 능력, 소질 및 개성의 차이 때문에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평등교육이라고 해도 개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의 자율성이 확대되어 지역의 특성과 개인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세계적인 경쟁 환경에서 수월성교육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지구상에 가장 못사는 나라,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한 것은 바로 교육의 힘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수월성교육과 경쟁의 효과가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경쟁은 인류역사에서 혁신과 사회발전을 견인한 원동력이 되어온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 입시위주의 지나친 경쟁교육은 높은 청소년 자살률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평등성과 수월성을 어느 한쪽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교육은 국가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시기에 평준화교육의 단점을 보완하고 외국으로 나가려는 교육수요를 일부라도 국내에서 만족시키자는 의미에서 수월성교육에 초점을 맞춘 자립형사립고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를 상기해보면 당시 진보성향의 문민정부에서 자립형사립고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평준화교육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큰 혜안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이제 평등성이나 수월성, 또는 진보와 보수의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교육은 분명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교육이 이념논쟁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교육을 살리고 다양한 교육수요에 맞추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평등성과 수월성의 조화를 추구해야한다. 이제 모든 교육관련 주체들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여 교육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교육은 진영논리에 매몰된 한국의 정치현실과는 달라야하기 때문이고, 미래 세대들에게 균형 잡힌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육 정상화, 인성교육, 교사의 자존감 회복,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교육은 이념논쟁으로가 아니라 교육현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소통과 균형적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가 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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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6 23:02

'전관예우'라는 미신

지난 5월 28일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가 지명 6일 만에 사퇴했다. 그가 5개월 동안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16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세론(世論)은 그 수입이 전관예우 탓이고 전관예우를 받은 사람이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가 될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 전관예우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전관예우라는 오해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였다”고 말했지만, 여론이나 일반인들의 정서는 싸늘했다. 필자가 법조계에 입문한 1990년대 초에도 전관예우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사법불신의 주된 원인이 전관예우인 점에 이론이 없었고, 전관예우를 없애기 위한 여러 조치도 계속되었다. 변호사들의 판사실 출입을 제한하고, 양형기준제를 실시했다. 전관이 안 생기게 하는 방안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법관들로 하여금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여러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판사나 검사가 퇴직 후 1년 동안에는 최종 근무지에서 사건을 수임할 수 없게 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그 탓인지 개업을 하는 판사들의 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 논란은 지겹도록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판사가 전관변호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주는 그런 전관예우는 요즘 없다고 생각한다. 현직 판사들은 물론이고 다수의 변호사들도 그런 전관예우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젊은 변호사들을 대변하는 서울변호사회 회장도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전관예우는 요즘 보기 어렵다고 한다. 물론 젊은 변호사들이 증거를 신청하면 잘 받아주지 않으면서 전관들의 증거신청은 대부분 받아주는 등으로 절차에서 차별을 한다는 불만이 가끔 나온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젊은 변호사들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오해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판사들이 실제로 전관과 전관이 아닌 변호사를 차별하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전관예우를 찾기 어려움에도, 의뢰인들은 전관들의 영향력에 대한 기대를 품고 전관을 찾는다. 전관이라면 능히 재판결과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관이 의뢰인들의 그와 같은 기대에 편승하거나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십분 이용하여 과다한 수임료를 요구함으로써 의뢰인과 그 전관 사이에, 법정 안이 아니라 법정 밖에서 전관예우라는 미신이 생기는 것이다. 필자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수임한 사건의 종류나 내용을 묻지 않고, 그 수입이 많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전관예우의 결과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관예우가 법정 안이건 법정 밖이건 주로 형사사건에서 문제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안대희 전 대법관이 수임한 사건의 종류나 내용을 묻지 않고 바로 전관예우를 받은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소송가액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민사사건을 선임하였다면 수억 원의 수임료도 적정한 수임료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전관예우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안대희 전 대법관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전관예우의 미신이나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그 정점에 있는 것은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대법관은 법관으로서 최고로 명예로운 자리이다. 그런 자리에 있던 분들이 퇴임 후 전관예우의 의혹을 받아가며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은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다. 조무제 전 대법관이나 김영란 전 대법관 같이 대법관 퇴임 후 대학에서 후학을 기르는 등의 일을 하고 변호사개업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분들의 자발적인 선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법을 만들어 그분들에게 충분한 예우를 하는 대신 변호사개업은 금지해야 한다. 그것이 전관예우의 미신을 없애고 사법 불신을 해소할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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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9 23:02

한·중 경제협력단지, 새만금에서 날개를 펴다

중국은 한반도와 황해를 사이에 둔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함께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가 1992년 한·중수교로 회복되었고, 그 이후 교역량과 인적교류가 급증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분야에서 교류가 확대되었고, 최근 들어 양국의 친밀도는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부쩍 늘어난 중국 유학생들,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에서 목격되는 대규모 중국 관광객들 그리고 한국에서의 중국어 열풍이나 중국에서의 식지 않는 한류 열기는 양국이 한층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현재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세계 경제구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의 세계 경영전략의 핵심은 「중국 자체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해외투자를 강화한다」는 조우추취(走出去) 정책에 있다. 엄청난 국부를 무기로 중국은 거침없는 해외 투자의 행보를 이어갔고,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든 글로벌 금융위기 마저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를 넘어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거대한 용’으로 부상했다.그런데 중국의 과감한 해외투자 추세 속에서 정작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활발한 물적, 인적 교류를 해온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는 왜 미미한 수준에 그쳤을까.‘비단장수 왕서방’으로 대변되는 중국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 때 속된 말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라는 계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중국 투자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나라를 불문하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곳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투자자가 욕심낼만한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갖추는 것이 최우선이다. 새만금개발청에서는 이 깐깐한 해외 투자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새만금 한·중경제협력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경협단지를 조성하고, 중국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기업들의 유치를 추진하는 국가차원의 대형 프로젝트이다. 이 사업은 작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강조한 양국간 경제협력 강화의 일환이자, 연말에 열린 한·중경제장관회의에서 새만금 한·중경협단지 공동개발에 대해 양국이 상호 공감대를 형성한데서 출발했다.한·중경협단지가 조성될 새만금 지역은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유일한 경제특구로서, 새만금특별법에 의해 투자자를 위한 차별화된 행정 편의와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방조제 건설로 새롭게 창조되는 부지로서 무한한 가능성의 시현이 가능하며 까다로운 중국 기업의 입맛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한 환경이다. 그동안 새만금개발청은 중국 상무부,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등 유력 기관과 협의해 한·중경협단지 조성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냈다. 또한 국내 주요 관계기관과 한·중경협단지 조성을 위한 지원협약을 체결했으며, 올해 안에 중국과 협력의 범위와 내용을 구체화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만금 한·중경협단지가 조성된다면, 양국간 비교우위의 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대규모 경제거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새만금 사업의 성공을 담보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를 이끌어 나갈 블루칩이 될 새만금 한·중경협단지 조성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열렬한 지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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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2 23:02

어느 산골마을의 인심

얼마 전 지리산 자락을 지나다가 작은 산골 마을에 들렀다. 신록의 푸름과 함께 탁 트인 마을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이런 곳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경치에 취해 마을 입구에서 넋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을로 들어갔다. 20여 호가 울타리도 없이 살아가는 마을에 들어서니 마침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마당에서 고사리를 삶아 건지는 중이었다. 인사를 하고 마을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뭐 대접할 것이 없으니 이거라도…’ 하면서 커피를 내왔다. 평소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밤잠을 설치는 걸 감수하고 마실 수밖에 없었다. ‘혹시 퇴직 후에 들어와 살만한 집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는, 감자를 삶고 있으니 내려오다가 몇 개 드시고 가라고까지 한다.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온 국민이 애통함과 함께 분노마저 느끼고 있는 이 시기에 할머니는 내가 잊고 있었던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지리산 자락의 민박마을에서 자다 보면, 이른 아침에 민박집 주인이 와서 오늘은 동네 할아버지 생신이라며 등산객까지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이제 모든 민박마을에서는 농사보다 민박과 식당을 전업하는 가구가 늘어났고 외지인이 들어와 교묘한 상술로 토박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부터 옛 인심은 점차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앞의 할머니가 사시는 마을은 아직 민박이나 식당을 하는 집이 한집도 없는 마을이다. 동네 사람들은 열심히 농사지어 자녀교육 시키고 도시 사람 부러워하지 않고 살고 있다. 정월이면 함께 동제를 지내고 아직도 집안 어른의 생신과 제사 음식을 나누고 모르는 손님이 와도 먹을 걸 대접하는 그런 마을공동체 전통이 살아있는 동네다.사실, 산골 마을 인심은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사오십 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제사가 끝나면 한밤중에 제사음식을 이웃에 나르는 일이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오랜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아직 생생하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짧은 기간에 산업사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 돈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세월호 참사가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원불교를 세운 대종사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을 ‘돈의 병’으로 진단하였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이 물질의 노예가 된 사회라고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 모순의 핵심을 언급한 이 주장은 사람보다 돈의 가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사회 전반의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모든 것이 시장주의에 내몰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제도로 바꾸라고 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명령이다. 이는 정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추동하고 감시해야 할 일이다. 이번 참사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버린 우리사회의 끝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을 중시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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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6 23:02

안전교육, 기본에 충실하자

세월호 참사로 마음이 참담하고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기본을 무시한 안전 불감증에 더하여 기업의 불법과 도덕불감증 그리고 관리감독소홀 등 사회안전망의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세월호 참사 후 수습과정에서 허술한 재난수습, 조직간 협력과 일관된 지휘체계의 부재 등 사고수습 기본을 무시하여 희생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안전교육과 훈련, 도덕성, 안전망체계, 재난대피교육, 신속한 재난수습과 관리 및 지휘체계 등에서 어느 하나라도 기본을 지켰다면 큰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본에 충실했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고가 났더라도 수습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사고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안전교육을 통해서 사고를 줄일 수 있고, 또 사고가 나더라도 기본에 충실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기본이 중요하다.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하고 한탄하는 분들이 많다. 외국 언론에서는 후진국형 참사라느니 기초가 되어있지 않다느니 하는 비판이 난무하지만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제 모든 국민이 실의에 차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에서 생사를 가르는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책무를 다한 여승무원과 단원고 교사들, 친구먼저라고 생각한 어린 학생들의 희생, 그리고 목숨을 걸고 바다 속에 뛰어든 잠수사들은 바로 어둠속에서 보여준 희망의 빛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새로운 각오로 안전을 위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또한 피해가족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 기본을 무시하여 세월호 참사를 일으키고 희생을 키운 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국가개조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안전을 위한 교육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사건을 통해서 어른들이 얼마나 기본을 무시하며 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제대로 기본을 실천하고 있는가? 내가 부모로서 일상의 행동에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안전교육은 무시한 채 지식 전달만을 자녀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모두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삶과 행동을 보고 말없이 배운다. 이 때문에 어른들이 기본에 충실한 생활을 하면 아이들도 따라 하기 마련이다. 학교교육에서도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성교육과 안전교육 및 훈련을 통하여 학생이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본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날 때마다 위험요소가 있는 활동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고 사고가 나더라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철저히 실행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체험활동의 장점을 살리면서 안전을 지키는 교육과 실천이 필요하다. 수학여행은 교실 밖 체험활동을 통하여 공동체의식, 협력, 새로운 것에 대한 경험과 추억, 창의력 향상, 친구들과의 우정을 키우는 등 교육적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크다. 문제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떤 교육을 하고 실행하느냐이다.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위험을 극복하고 희망을 주기 위하여 교육한다. 희망을 가르치고 희망을 배우도록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고 위험을 극복하는 안전교육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이 협력하여 기본을 지키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고,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으며, 대한민국이 변하여 품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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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9 23:02

대통령이 할 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야기된 국민들의 분노가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사고현장을 방문하고, 합동분양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국민들의 분노가 직접 대통령을 향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직접 사고현장을 방문하여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을 수 있음에도, 사고 발생 이틀째인 지난 4월 17일 사고현장을 방문하여 관계자들에게 조속한 구조를 지시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이들을 위로했다. 대통령의 지시 이후에도 실종자 구조와 수색이 지지부진하자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 4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신속한 수색을 촉구하며 현장에서 지휘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겠다고 나섰고, 경찰은 이를 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에는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한 할머니 사진이 공개됐는데, 이 할머니가 유가족이 아닌 일반 조문객으로 밝혀지면서 연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습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는데, 그 발언은 국민을 직접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내용면에서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위로하는 사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비등하였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4일 다시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실종자 수색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데 대한 가족들의 불만과 요구 사항을 듣고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 죄를 지은 사람들은 철저히 밝혀서 엄벌에 처할 것”이라면서 “공직자와 정부 관계자도 책임을 못 다한 사람은 엄중문책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6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대통령으로서 어린 학생들과 가족을 갑자기 잃은 유가족들께 무엇이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습니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5월 9일 새벽부터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를 했다. 이렇게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야기된 분노가 대통령을 직접 향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자유게시판에 올랐던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란 글은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사고에서 보인 행태의 문제점을 상식선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국민들의 분노가 직접 대통령을 향하는 사태가 야기된 것도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고의 와중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대형사고를 경험했지만 이번 사고는 과거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어린 학생들이 속절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국민 모두가 지켜봐야 했다. 국민들은 매일 매일 뉴스를 보면서 내 자식, 내 형제가 저렇게 된 것 같은 심정이 되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분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현장을 두 번이나 직접 방문하기는 했지만 국민들의 이러한 분노와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데 실패했고, 진심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에서 청와대에 올라가 대통령을 면담하겠다고 들고 나온 것을 보면, 대통령의 방문과 지시 이후에도 구조 및 수색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했고 유가족들에게 그 원인을 이해시키는 것도 실패했다.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고현장을 찾아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고, 그 결과는 대통령이 사고현장을 찾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을 고려하면 대책 없이 사고현장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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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2 23:02

전봉준의 나라, 이순신의 나라

오늘 4월 28일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순국일이자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일이다. 아울러 소태산 박중빈이 창립한 원불교 대각개교절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살았던 시기와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와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점일 것이다. 전봉준이 살았던 나라는 관료들의 부패와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한계에 이르러 농민봉기가 빈번했던 나라였다. 전봉준은 이에 항거하여 일어섰으나 그의 국가는 백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농민들을 압살하려 들었다. 전봉준은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는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이순신의 나라는 전쟁이 일어나자 늘 나라의 주인이라고 외쳤던 왕실은 도망 가버리고, 전쟁 중에도 갖은 모략과 중상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갔다. 그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의 신념으로 진도 앞바다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원불교 박중빈은 식민지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각오로 인간의 정신개벽을 통한 상생과 조화의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헌신하였다.진도에서 해난사고가 난지 13일이 되었다.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과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피어나는 꽃송이들을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한 현실에서, 줄곧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200명이 넘는 무고한 어린 학생들과 승객의 생명을 앗아간 원인을 선장과 해운회사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는 그토록 무능했던 정부는 온 나라의 슬픔과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책임이 대통령과 정부로 옮겨가는 여론의 통제에는 신속함과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 중계하듯 언론들은 사고의 원인 규명과 정부의 대응 미숙 보다는 사고를 낸 해운사의 추궁에 몰두하고 있다.실로 짧은 시간에 물질적 성장을 이룩한 우리 사회가 OECD 국가의 반열에 들었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우리사회가 소중하게 키웠어야할 정신적 가치나 도덕적 규범을 소홀히 하고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온 나라 국민들은 애통함을 억누르며 과연 정부가 재난 대응에 충실했는지를 묻고 있다. 오죽하면 이번 사고 유족이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했겠는가.이번 사고를 보면서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지금 국민적 희망을 염원하는 노란리본도 오천석의 논픽션 모음집 『노란손수건』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한다. 그 책에 버큰헤이드호의 침몰 이야기가 실려 있다. 630명의 군인과 그 가족을 태운 이 배가 아프리카 남단에서 좌초하여 침몰할 때, 선장과 선원들은 구명보트에 승선 가능한 150여명의 어린이와 여성을 태우게 하고 나머지 선원과 군인들은 군가를 부르며 배와 함께 수장된 이야기다. 버큰헤이드호의 침몰은 19세기 중엽의 일이었지만 이후 모든 국가에서 이 사건을 해난사고 시 선원의 행동 규범으로 삼고 있다. 특히 영국인들은 해난사고 시 누구나 ‘버큰해이드호를 기억하자’ 속삭인다고 한다.엄청난 해난사고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 과연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봉준이 희망한 나라, 이순신이 지킨 나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그런 국가에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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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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