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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네 사람이 도시의 한 여숙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선택을 했다. 고독하지 않으려고 동반자를 불러들였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고독하다는 숙명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의 선택은 엄연한 현실이 되어 각자의 몫으로 돌아갔다.“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 한 지식인의 우유부단한 내적 고백을 드러낸 것이다. 이 경구는 햄릿의 친구인 철학자 이름을 따 호레이쇼 철학이라고 명명된 바 있지만, 지금은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즐겨 사용하는 흔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좀 더 깊은 곳에 있다. 햄릿이 제기한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그런 선택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것은 목숨을 건 ‘죽느냐’ ‘사느냐’ 사이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어느 중년 가장의 이야기나, 수험생의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햄릿식 독백은 그들에게는 사치스런 넋두리가 되었을 줄도 모른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결단이 그들을 얼마나 고독하고 절망스럽게 했을까? 그러나 운명의 갈림길에서 인생을 회의하는 우유부단한 햄릿식 독백이 때로는 죽음에서 삶으로 선택을 달리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팡세’의 저자였던 파스칼은 인간의 삶이란 궁극적으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박 앞에 직면한 가련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 결과 그는 기독교적 신앙을 진실의 길로 나아가는 ‘선택’의 문제로 보았고,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신앙 고백록인 ‘팡세’를 썼다.키에르케고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 그 자체가 인간 삶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삶의 본질적인 형식으로 보았다. “결혼할 것인가? 만일 한다면 후회할 것이요,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역시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날의 삶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무수한 선택을 통하여 삶의 내용을 메워 나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그 갈림길에서 망설인 기억이 있다. 갈림길을 만났다고 해서 되돌아 올 수는 없다. 미지의 길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도 한 길을 택하여야 한다. 그것이 운명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인생행로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갈등을 겪고 있다. 로버트 프르스트의 시 ‘택하지 않은 길’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을 걷다가 두 갈래 길을 만난다. 망설이다가 그는 한 길을 택한다. 그가 택한 길은 사람들이 적게 다닌 풀이 무성하게 자란 험난한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훤히 트인 편한 길보다 내 힘으로 개척하고 싶은 욕망으로 험난한 길을 택한다. 길을 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크지만, 내가 택한 길로 인하여 인생은 달라질 것이라는 신념으로 그 길을 간다.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신에게 묻기도 하지만, 신도 모르는 고독한 운명과 동거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MBC와 KBS가 4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문제들이 터져 나온 것이라 그 결과가 어찌 될지 관심이 크다. 공공재인 방송사의 파업은, 주로 노동현장의 처우와 권리를 쟁점으로 벌어지는 여느 파업과 달리 언론의 자유와 임무라는 공적 명분을 놓고 대치선이 그어지기 때문에 시민들도 한 마디씩 거들지 않을 수가 없다.사실 요 몇 년간 매일 거리에서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는 즐거운 시민의 한 사람이었던 촛불정국의 몇 달을 제외하곤 거의 TV를 켠 적이 없기 때문에 끔찍한 방송 현실을 예전처럼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 꽤 알려졌다는 유명 앵커나 기자들도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어서 한 편으로는 속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나라 안팎의 소식이나 뒷담화들은 주로 페이스북 등 친구들의 입과 글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친구 관계의 필터링으로 어떤 이슈든 편파적으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방송사의 일방적인 편집과 보도 시선의 수용자가 되기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청한 편파인 셈이다. 나처럼 SNS가 갖는 미디어적 기능을 실감하고 사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래도 매스미디어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는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시스템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공적 영역이 아닐 수 없고, 그래서 개인의 차원에서는 TV를 끄고 안 볼지라도 부단히 말하고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늘의 방송현실에 대한 자료와 주장들을 챙겨 읽는데 이럴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진과 영상이 하나 있다. 불타는 방송사를 찍은 한 컷이다. 최근 많은 관람객이 밀려든 <택시 운전사>에서 그것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해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광주시 궁동에 있던 광주문화방송 사옥은 518 민주화운동이 한창 진행중이던 1980년 5월 21일 밤 8시 40분경, 왜곡방송을 내보낸 데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불타버렸다. 황석영 작가 등이 광주항쟁의 나날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는 이 대목을 이렇게 썼다.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했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 프로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전의 다리를 흔들어대는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시민들은 이제 어느 누구도 이 싸움이 더 이상 젊은 학생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절감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감정들이 다음날 문화방송국을 불질러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년판 77쪽.MBC에서 방영한 <제5공화국>에서도 불타는 광주MBC라는 자막과 함께 이날 밤, 언론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충격과 분노가 광주MBC를 불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통제로 재갈이 물린 언론은 광주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었고, 광주시민은 언론의 거짓말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타버린 궁동 구 사옥은 518 사적지 제7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물 앞에 안내 표지가 서 있다.그 화재로부터 37년이 지났지만 우리 방송은 그 현장에서 어디쯤 걸어온 것일까. 내가 방송사의 사장이라면, 기자라면, 매일 드나드는 사옥 현관 한중앙에 불타는 1980년의 광주문화방송 사진을 걸어두겠다. 그날을 기억한다면 저토록 오만방자한 권력의 끄나풀이 여직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오베(Ove)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2016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한동안 지구촌이 떠들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오베 신드롬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롤프 라스가드의 연기도 좋았지만 알만한 캐릭터여서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영화는 59세 된 오베가 상처하고, 직장에서도 잘리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을 순찰하며 전날과 다른 점을 체크한다. 마을로 진입하는 차가 있으면 무조건 가로막는다. 통행금지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지정장소 아닌 곳에 받쳐둔 자전거가 있으면 불끈 들어 창고에 집어넣는다. 아내가 잠들어있는 공동묘지에 가기 전에 꽃집에 들른다. 차례를 지키지 않는 고객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낸다. 아무 데나 오줌 누는 개와 주인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다시 개를 방치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노망난 놈팡이라며 쑥덕거린다. 작가마저도 오베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본 유일한 색깔은 아내 쏘냐 뿐일 것이다.우리 아파트에 오베를 닮은 분이 있다. 어느 날 상가 앞에서 40세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와 다투는 것을 보았다. 이 청년 하는 말이 잠깐 노상주차 했는데 불법주차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흥분한 젊은이는 따발총 쏘듯 불만을 쏟아냈다. 견인하시죠. 애완견 안고 가는 사람에게도 개 00라고 하셨다면서요? 어르신은 그래서, 그래서?를 연발하고 있었다.다툼 끝나고 돌아서며 젊은이가 하는 말은 꼰대 어쩌고였다. 정말로 신고했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하는 말인즉 아파트 주차장에 갓길주차 하지 말라고 쇠기둥을 쭉 박아놨잖아요. 그 옆에 차를 가장 많이 대는 게 저자라니까. 맞장구를 쳤다. 저런 사람 때문에 아파트 질서가 엉망이라니까요. 어떤 때는 금요일 밤 늦게 갓길에 주차해놓고 월요일 아침에야 빼는 사람도 있어요. 어르신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곧바로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오베 생각이 나서 웃었다. 잘 타이르면 될 일을 왜 분노로 바꿔 표출하는가. 딴은 거리에서 난폭 운전자를 보며 조금 과하다 싶게 투덜대는 나이기도 하다. 자동차 유리창 꽉 닫고 하는 말이니 괜찮겠지? 동승자는 이런 나를 이베라고 했다.정의감이라고 해야 하나. 불편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터다. 표현이, 또 그 방법이 문제 아니겠는가.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말한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과 공존하기 위해서 세상은 이래야 하고, 나는 이래야 한다는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고 최인호 작가는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글에서 노인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자기식의 편견이 굳어져서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신축성과 탄력성이 없어져 버리고 고집불통인 비분 강개파와 무기력한 허탈파 그리고 거인 노인 이렇게. 물오른 동상처럼 의연한 노인을 만나면 삶이 즐거우리라고 생각한다.며 거인 노인이 되기를 권한다.어느 블로그를 보니 지적질 꼰대 마인드라는 말이 나온다. 같이 사는 세상, 서로 감싸주고 사랑하면 안 될까.
지자체마다 수많은 영화제를 연다. 벚꽃엔딩 무렵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관객 충성도가 최고다. 자유독립에서 표현의 해방구라는 컨셉을 밀어붙이고 있다. 무엇보다 전주 양반들이 그 어려운 영화제를 잘 참고 지켜 주었다.무주산골영화제는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다. 숙박시설도 부족하지만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텐트치고 영화를 본 후 내년에도 오겠다, 맛있다, 아름답다고 액션을 크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휴양이라는 컨셉이 통했다.전북독립영화제는 전국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출품된다. 정읍에서는 실버영화제가 열리고 또 다른 곳에서 여성영화제를 비롯한 골방영화제까지 열린다.8월 31일에 문을 여는 국제무형문화유산 영상축제에서는 국제경쟁을 도입했는데 천 편이 넘는 작품들이 몰려들었다. 작품의 퀄리티만 놓고 따지기에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아카이브를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영화제 전성시대다. 프로그래머들의 혜안과 적은 돈으로 알차게 치러내는 일당백의 숙련된 영화제 전문 병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영화제는 좋은가? 그렇다. 그러면 문제는 뭔가? 문제는 다시 컨셉이다. 도시의 정체성과 맞물려야 성공한다. 군산이나 부안에서는 해양과 어드벤처의 영화제가 가능할 것이다.그렇다면 익산은? 익산은 호남의 관문 아닌가? 익산은 100년 넘은 철도도시다.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신 비내리는 호남선과 나훈아의 고향역도 익산 것이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고는 안타까운 역사다. 그래서 세계적인 영화감독 재중동포 장률은 <이리>라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던가?익산은 레일로 연결된 도시다. 거대한 역사(驛舍)를 갖춘 도시다. 키스 앤 라이드! 그 역사를 통해 연간 오백만 명이 익산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탄다. 안전하고 편안한 열차로 움직이는 시대가 다시 온 것이다. 서울이 67분밖에 안 걸린다.세계 최초의 영화는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 아니던가. 죽이는 컨셉이다. 제1회 익산역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 있다. 열차와 역에 대한 추억과 낭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아직 대한민국에 철도나 역에 대한 영화제가 없다. 그러니 스테이션 영화제가 가능한 도시가 익산이다.또 극장을 지어야 하나? 새로 짓는 것은 하지 말자. 익산 역 자체가 랜드마크다. 영화제를 크고 길게 하지 말자. 서울에서 오는 열차 자체에 스크린을 설치한다. 운행시간이 짧으면 역 공간에서 후반전을 상영하면 된다. 역 광장이 넓다. 광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서동시장과 중앙동 문화예술의 거리에서는 공연과 볼거리를 제공하면 된다. 원도심 재생사업의 핵심이 될 수 있다.영화제는 개방성을 가진 익산이 전국에 도시 브랜드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코레일과 지역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최고의 전문가가 지금부터 팀을 꾸려도 일 년 더 걸린다.하나 더, 다른 도시에서 철도 혹은 스테이션 영화제를 먼저 하면 익산은 철도박물관도 놓치고 영화제도 놓친다. 굴뚝산업은 싫고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응답하라. 호남선.
백련을 보려고 하소 백련축제가 열리는 김제 청운사에 갔다. 폭염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습한 날씨라 계속 에어컨만 켜고 갔다. 초입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백련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보였다.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는 글귀가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행사장 안에도 화중생련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번 하소 백련축제의 주제인 것 같다. 그러나 과문한 탓일까? 선문답의 주제를 알아내기에 내 속된 지혜는 너무도 설었다.연지에 핀 연꽃보다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무량광전 앞에 설치한 무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래가 절집 추녀의 풍경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백련지로 내려갔다. 거기에서도 연꽃과 우산꽃이 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나도 잔치의 행렬이 되어 연지를 돌았다. 옆 사람 우산의 빗물이 옷에 떨어져도, 흙탕물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튀겨도 눈을 흘기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길을 막아도 재촉하지 않았다. 이쪽 연지에서 저쪽 연지로 무질서의 행렬이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시선만 부딪쳐도 거북해지는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옹색한 마음으로 나를 가두고 살았는가를 알았다한 바퀴를 돌면 갓 태어난 간난아이 손만 한 봉오리가, 두 바퀴를 돌면 동자스님의 합장한 손만 한, 세 바퀴를 돌면 목탁을 두드리는 주지스님의 손만 한 연꽃들이 층층이 키를 세우며 태어나고 있었다. 벌써 꽃잎이 다 떨어져 연실을 만들어가는 것도 있었다. 다른 꽃들은 같이 피었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지는데, 연꽃은 우리네 삶처럼 태어남과 성장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연지를 돌며 나의 머릿속에서는 화중생련의 화두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연꽃은 모두 진흙 속에 피는데 (니중생련泥中生蓮), 어찌 불속에서 핀단 말인가? 화중생련이란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처럼 다비식의 불속에서 얻은 하얀 뼛가루 같은 구도의 삶을 이름인가? 이 거대한 담론 앞에 나는 연지에서 폴짝거리는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나는 정자로 들어가 연잎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보았다. 수천 마리의 새가 군무를 하듯 연꽃은 하늘을 향하여 날개를 펴고 있었다. 연잎에 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늘에서 내려오다 연잎에 떨어져서야 비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 연못 가득 좁쌀 같은 생명의 소리를 퉁기고 있었다또르르 빗방울은 굴러 연잎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빗물이 고여 무거워지면 스스로 머리를 숙여 자신을 비워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연잎도 모두 몸을 비워내고 있었다. 비우지 않고서는 다시 채울 수 없다는 듯 빗물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연잎은 빗물을 다 비워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몇 방울의 물이 남아 있었다. 차마 다 비워내지 못하고 남겨둔 것은 자신까지 버리지 말라는 계시가 아닐까? 자신을 버리면 세상에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비움과 남김의 역설을 물으며 청운사를 나올 때 쨍쨍한 햇볕이 청하산 언덕에서 초롱초롱깨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불볕더위 속에서 꼬부라진 할머니가 깨밭을 매고 있었다. 문득 저 할머니가 화중생련이 아닌가,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차는 큰 도로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올 여름이 하도 뜨겁다 보니까 책 한 권 붙들고 있기도 힘들다. 육체의 온도가 올라가면 정신은 혼미해져 우선 열기를 식히는 쪽으로 자원을 배당하기 마련이다. 출판계에서도 한여름에는 신간을 내는 것을 망설인다. 감각적인 자극이 넘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붙들고 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때쯤에야 책들의 귀환이 시작된다. 전주에서 열리는 2017 대한민국 독서대전도 가을의 입구인 9월 1일부터 3일까지 자리를 잡았다.여느 도서전이 아니라 독서대전이다. 공급자인 출판사들이 주도하는 책잔치가 아니고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방점이 놓이는 축제이다. 하여 이번 전주 독서대전은 예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작가들의 강연과 대화 프로그램(www.jjkorea2017.kr)이 배치됐다. 기조강연에 나선 고은 시인을 비롯해 황석영 김용택 안도현 김탁환 문태준 등 여러 작가들이 독자들과 만난다. 신화와 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의 저자/번역자들과 오래 베스트셀러에 오른 마음이 지옥일 때의 저자이자 사회적 상처들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활동에 적극성을 보여온 정혜신, 이명수 선생의 강연, 페미니즘과 책에 관한 섹션인 여성주체의 기억과 글쓰기를 김서령 작가가 여성작가들과 북토크로 진행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맥락을 정확히 짚어주는 강원국의 글쓰기 코칭을 필두로 전북의 여러 작가가 그룹으로 나서는 장르별 글쓰기 수업이 이어진다. 청소년 대상의 맞춤 독서/글쓰기 지도 프로그램도 있다. 책의 도시 전주의 내공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대 최대의 물량공세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물론 최근 출판 경향을 보여주는 신간과 독자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별 책들을 묶어서 보여주는 북 큐레이션 부스가 경기전 내에서 문을 연다. 지역출판의 역사와 작가와 명사들이 권하는 책들을 엮어놓은 특별전시도 눈에 띈다.이번 독서대전 포스터는 펼쳐진 책에서 퍼져 나오는 수상한 기운을 이미지로 잡았다. 독자가 책을 읽는 순간의 대면이 불러 일으키는 마법을 잘 표현했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기도 하고, 잊었던 악몽을 깨우며 휘몰아쳐오는 깊은 밤 비바람이었다가 스산한 내 인생에 한 줄기 말의 빛을 던지며 더없이 다정한 연인이 되기도 한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장일순)가 있다면, 한 줄 문장에도 정글이 있고 희망과 절망이 한몸처럼 서로를 기대고 있다. 오로지 읽는 자에 따라서 수없이 다른 문이 열리고 닫힌다.한 작가에 빠져 전작주의로 그의 모든 책을 남김없이 찾아 읽으며 깊이 파들어가는 독서는 참으로 행복한 몰입, 헤어나오기 힘든 중독 중의 하나이다. 여러 장르와 다양한 작가를 섭렵하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 한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내 끝없는 책이 쌓이며 넓게 문리가 트이기도 하면서 책을 오래 읽는 자에게는 저절로 지도 같은 것, 저마다의 독서법과 항로가 생긴다. 일생에 빠질 수 있는 중독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중독이 있다면 책을 읽는 독서의 쾌락일 것이다.전주는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갖고 있는 완판본의 도시이자 수백 년을 이어온 기억과 쓰기의 상징이라 할 전주 사고의 고장, 한국문학을 이끌어 온 숱한 거장과 현역 작가들의 문장이 살아 있는 곳이다. 문향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문화도시 전주에서 벌어지는 독자축제에 인생의 진정한 쾌락을 아는 많은 분들이 걸음 하시기를 청한다.
공감 터 길, 전북대학교 정문과 구 정문 사이 500여 미터 구간 예쁜 산책로 이름이다. 원추리, 황국화 등 여름 야생화들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더 걸으면 빨간 컨테이너를 이어 꾸민 갤러리에서 이색적인 전시회도 만나게 된다.며칠 전에는 소잉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팸플릿에 미싱 사진을 인쇄했는데 브랜드가 Sun Star다. 미싱 하면 아이디얼 아니던가. 낯선 느낌이다. Machine이 일본식 음으로 변한 말. 원래 Sewing Machine이었는데, 바느질을 뜻하는 Sewing은 어디로 가고 미싱만 남아 바느질 기계 명칭이 되었다.기억은 어느새 어린 시절 고향 집을 더듬고 있었다. 호롱불 밑에서 골무 끼고 밤새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처음 사온 미싱을 보듬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이웃집 다듬이 소리와 우리 집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묘한 화음을 이루며 협주곡으로 들렸다. 어머니가 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미싱 소리만 들리면 왠지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 너덜거리던 옷이 새 옷 되어 나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소잉아트가 뭔가요? 수줍게 미소 짓던 작가가 설명을 시작했다. 바느질로 만든 예술(미술)작품을 말합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갔죠.여러 가지 옷, 모빌, 가방, 노리개, 지갑. 작품이 나뭇가지나 와이어에 가지런히 걸려있는데, 대부분 형태가 둥글다. 아끼는 물건이나 마음이 모나면 안 된다는, 매듭은 나의 못난 모습이라는, 실밥을 안으로 밀어 넣어 안 보이게 하는 바느질은 억압과 같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했다. 끈 잃은 가방 옆에 나란히 섰다. 시처럼 글을 써놓았다. 가방아! 남들이 가진 걸 갖지 못해서 속상하니? 하지만 너는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따뜻한 손 온도를 느끼며 살게 될 거야.지나온 것들에 대한 기억을 자꾸 지우거나 감출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실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삐뚤빼뚤한 바느질처럼, 삐뚤빼뚤한 모습일지라도 괜찮아! 내보이지 않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영화 <토일렛>의 은둔형 외톨이이면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 모리. 모리는 어느 날 엄마의 유품인 미싱으로 할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운다.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치유가 시작된다. 자기가 만든 알록달록한 치마를 입고 음악 콩쿠르에 나가서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느질이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한석규가 열연한 영화 <상의원>에서 30년 넘게 왕의 옷만을 지어온 어침장 조돌석도 바느질 철학을 말한다. 바느질이란 다른 두 세상을 하나로 묶는 것인 즉, 바늘이 들어갈 때는 자신의 혼을 집어넣고, 나올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지금 우리는 싫든 좋든 항상 다른 세상을 끌어들여 이어가며 살고 있다. 새로운 세상과 낡은 세상, 정상과 비정상, 안과 밖, 진짜와 가짜, 큰 것과 작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경계에서 갈등이 크다.산 지 한 달도 안 된 옷을 팔거나 버리는 사람이, 바느질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세상 이치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소잉아트를 보면서 내 마음에 저장 축적된 세상의 이미지를 모두 꺼내보게 된다.
주말을 앞두고 날아온 <내 사랑> 보세요., 알쓸신잡 꼭 봐. 하는, 카톡 메시지 두 통. 이런 메시지를 못 받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불금에 서울에서 온 후배 영화감독과 함께 <덩케르크>를 보았다. 전쟁의 비참함과 인간의 숭고함을 전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마음이 차올라 휴가를 다녀온 셈 쳤다. 강추다.나, 텔레비전 안 봐. 이렇게 말하면 좀 있어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내게 톡을 보낸 친구는 독서광, 여행광, 술광에 인간광 아닌가. 저리 바쁜 잡학사전이 언제 텔레비전까지 챙겨보는 거지? 하는 경의로 휴일 작업실에서 유튜브로 챙겨보았다.나영석 피디 작품 중 <삼시 세끼> 만재도 편을 고맙게 본 적이 있다. 차승원과 유해진 등이 낚시하고 음식 만들기로 띵까띵까하면서 편안하게 노니는 장면들이 고맙게 다가왔다. 세월호의 여파로 바닷길과 섬 생활이 기피대상이던 때에, 백성들에게 위무로 다가서는 모습에 마음 속 경의를 강의 때마다 설파한 기억이 있다.나피디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귀여운 예능이었다. 특정한 맛집이나 식탐 우선이 아니기에 볼만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컨셉도 좋았다. 슬로시티 전주의 매력을 위해 드론을 띠우고 아재들의 쓰잘데기 없는 수다가 시작되었다.한옥마을보다는 남부시장 청년몰이라는 구체적 공간과 한지체험도 마음이 갔다. 전주국제영화제가 표방한 표현의 해방구라는 지점과 전주사고(全州史庫)를 통한 기록보존의 위대함을 백업이라 표현한 소설가 김영하의 설명은 간결했다. 태조 어진에서 전동성당에 이르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가 내면화된 도시 전주를 표현함에 네 명의 잡학박사들 모두 사랑스러웠다.전주 먹을 게 많아. 전주는 베트남 쌀국수와 이탈리아 음식도 맛있다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곳은 삼천동 막걸리골목 어드매였다(안다!). 어디 만화카페의 라면만 맛있겠는가? 당구치면서 먹는 짜장면도 먹을 만한 곳이 전주다. 국밥을 김에 싸먹는 것에 신기해하며 오징어가 들어간 콩나물국에다 밥을 덜컥 투척하는 지식소매상 유작가는 좀 촌스러웠다. 그래도 전주음식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데 어찌 귀엽지 않겠는가.과거 TV토론에서 눈에서 레이저를 뿜던 유작가는 전주에 갔다고 해서 전주를 아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드러운 배틀랩을 시작했다. 맞는 말이다. 도시를 안다는 것은 도시의 역사와 사회 문화는 물론 길과 골목, 맛집을 넘어 진입금지와 좌회전금지까지를 터득해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잠깐 받쳐도 좋을 불법주정차 그리고 가까운 공용화장실까지 알지 않고서는 안다고 하는 게 아니다.음식 이야기를 품격 있게 전하는 황교익의 사회학적 해석은 용 그림의 눈이었다. 전주는 전주만이 아니다. 전북권의 산물들이 다 모이는 곳이 전주다. 전주 음식은 김제 부안 진안 등 여러 곳의 식재료가 합쳐진 음식문화라는 지적 말이다. 보강 썰을 풀자면, 만경의 윤기나는 쌀과 부안의 싱싱한 해물 그리고 무진장의 산나물, 임실의 간장, 순창의 고추장이 합쳐져야 전주 음식 한 상이 완성되는 것이다.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친구가 한옥마을 여행객이 좀 주춤하다고 했는데, 다행이다. <알쓸신잡>으로 전주가 다시 북적이게 생겼다. 아 참! 내일은 <내 사랑>을 보러 가야겠다. 두 번째 휴가다.
통영 문인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미당시문학관에 가는 길에 고창 선운사에 들렀다. 여름길에서 만난 녹음 속에서 동백도 제 자리를 찾아 숲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동백숲에서는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물소리 들으며 도솔암까지 올라갔다가 물소리 따라 내려왔다. 여염집 마루처럼 친근하고 인정스러운 만세전 마룻바닥에 시원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땀을 거두었다. 우리는 다시 동승하여 한 마장 정도의 미당시문학관으로 갔다. 미당시문학관은 적요했다. 나이가 지긋한 안내인은 나를 알아보았다. 그분을 따라 통영 문인들이 전시실을 돌며 해설을 듣는 동안 나는 혼자 문학관 맨 윗 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는 곳이지만 미당시문학관에 오면 나는 여기로 올라왔다. 우선 소요산 너머로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을 쐴 수 있고, 선운리 전경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어 좋았다. 바로 눈 아래로는 미당의 생가가 있고, 거기서 잠깐 눈을 들어 보면 저만치 미당의 무덤이 있다. 그 왼쪽 멀지 않은 곳에 미당이 닮았다는 숱 많은 머리털과 큰 눈을 가진 외할아버지의 집터가 있다. 미당의 태어남과 죽음이 부르면 달려올 만한 곳에 있었다. 뒤돌아보니 지금도 소쩍새가 우는 소요산과 소요산 넘어가는 질마재가 그림처럼 다가서고 있었다. 미당 시의 신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미당의 태어남과 죽음이, 시와 삶이 손바닥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또 하나의 설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속에 미당시문학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 많은 세월의 이야기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발아래, 문인들이 관람하고 있는 전시실에는 미당 생애의 빛과 그림자였던 국화옆에서의 시와 친일시가 낮과 밤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분은 가셨지만, 짙은 그림자는 남아 빛을 덮어 누르고 있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는데 오히려 빛은 희미해지고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왜 빛보다 그림자 아래로 모여 드는가? 아픔 같은 것이, 한숨 같은 것이 소요산 넘어가는 구름처럼 한 번 가고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마음만 먹으면 바람은 언제든지 구름을 몰고 소요산을 찾아올 것 같다통영에 가면 여러 곳에서 김춘수, 유치환 등의 시비를 볼 수 있다. 그 시비가 통영을 아름다운 시인의 고장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통영의 자연 뿐만 아니라 시의 정서로 마음을 치유하고 온다. 그런데 우리 고장 고창 읍내에 가면 미당의 시비를 볼 수 있는가? 미당시문학관을 찾은 통영 분들에게 어두워지는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옥상에 서 있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그분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미당시문학관까지 내 안내는 끝났다. 우리는 여기서 헤어졌다. 그분들은 남도로 내려간다 한다. 그분들이 떠난 뒤 미당이 걸었을 옛 초등학교 운동장을 나도 걸었다.미당시문학관에도 동백나무가 있었다. 거기 동백나무에서도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제 새끼에게 제 노래를 불러주는 동박새가 미당시문학관 뜰에도 살고 있었다.△ 정군수 관장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전북시인협회장, 전북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신아문예대학 문창과 교수, 혼불선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G20 회의 참석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찾은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선생의 묘지를 찾아 그의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두 분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을 헌정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윤이상이 누구인가. 세계적인 작곡가로 추앙받는 예술가이지만 박정희 체제 하인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서울로 강제연행되어 간첩죄를 뒤집어쓴 채 온갖 고초를 겪고 수감되었다가 독일 등 국제사회의 항의를 받고 추방되었고 끝내 그의 생전에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이역에서 운명했다. 루이제 린저가 쓴 윤이상과의 대담집 <상처받은 용>을 보면 남과 북으로 갈린 조국의 현실에서 끝내 독일로 귀화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과 열망이 생생하게 전해진다.남과 북이 대립하면서 독일과 프랑스 등 해외에 거주하던 우리 지식인, 예술가, 유학생, 동포들이 공안사건의 먹이감이 되면서 인생이 부서졌고 끝내는 그리운 조국이 원수가 되고 영영 등을 돌리게 되었다. 동포사회도 양분되었고 조선이냐, 한국이냐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살아있는 생명을 둘로 갈라 쪼개고 네것내것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으면 다 적성, 빨갱이, 인민의 적이 되는 야만의 세월이었다. 유럽과 일본 등의 우리 외교공관은 그런 체제 대립의 일선현장에 선 첨예한 국가 기구였고 자국민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일을 우선하기보다 저쪽으로 넘어가지 않나 감시하고 통제하는 공안의 역이 제일이었다.지난 분단의 세월 동안 남과 북 우리 모두는 눈이 한쪽으로만 쏠린 넙치, 가자미들이었다. 다른 쪽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하므로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바쳐진 통영의 동백은 이제 남과 북이 모두 불구의 시간을 헤어나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제대로의 시간을 살자는 호소처럼 보인다.일찌기 문익환 목사는 <꿈을 비는 마음>이란 시에서 벗들이여! / 이런 꿈은 어떻겠오? / 155마일 휴전선을 /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라고 적었다.문재인 대통령은 독일통일조약 협상이 이뤄졌던 역사적 현장인 베를린 구 시청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촉구했다. 독일은 우리처럼 민족 내부의 살육을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갖고 있는 분단국가는 아니었으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양 체제를 다 겪으면서 유럽 국가 내에서도 독특한 내면을 갖고 있다. 이전의 문학 전통도 탄탄하지만 현대 독일 작가들의 작품에 배어 있는 다층의 역사 의식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다.통독 이후의 시간들도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겪어야 할 미래를 미리 통과하고 있는 것만 같아 더욱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그곳 독일, 분단체제가 휘두른 칼날에 스러진 순정한 소망이 묻힌 자리에 어처구니없는 꿈의 상징처럼 한 그루 동백이 심어졌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 이 지긋지긋한 분단 체제 남북국시대의 상흔처럼 붉은 통영의 동백이 긴 겨울의 뒤끝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인디언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잠시 쉬면서 자신들이 온 길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이유는 걸음이 너무 빨라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그런다는 것이다. 컴퓨터 부팅시간을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운전할 때 신호등 앞에서 마른 침 삼키며 발 떨기 일쑤인 나다. 영혼이 몸보다 앞서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잔뜩 움츠릴 때도 있다.인도영화 〈세 얼간이〉에 나오는 비루 학장을 떠올린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쫓기듯 말한다. 빨리, 빨리 달려. 그렇지 않으면 짓밟혀 죽어. 그는 하루에 단 7분간 휴식하는 중에도 그 시간마저 아까워 낮잠과 음악 감상 그리고 면도까지 해결한다.세상의 속도에 맞춰 앞만 보고 돌진한다. 유유자적 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서두르는 삶은 조급증과 화를 부른다니 주의해야 한다. 삼성의료원 나덕렬 박사는 전전두엽에 충동조절센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조급증과 화를 조절한다고 말한다. 작은 일을 반드시 마무리하세요. 그리고 순간의 여유를 즐기세요. 축구에서 골이 나는 것은 순간의 응집력이랍니다. 그는 서두르는 이유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부연한다. 화가 나 있을 때 내면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존심이 건드려졌다면 그곳이 약한 부분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려야 한다.가만히 있으면 경쟁에서 뒤질 것 같은 마음, 새로운 자극이 반복될수록 충동적이고 조급해지는 마음. 앞쪽 뇌보다 뒤쪽 뇌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외부 자극에 익숙해 있는 사람, 사람들.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창조보다 복사나 편집에 능통한 이들은 형이상학적,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없다.마음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일본 영화 〈안경〉은 주인공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외진 바닷가로 보낸다. 그곳에서 할일은 마냥 기다리는 것뿐이다. 무엇을? 지나가는 것을. 나는 자유를 안다. 길을 따라 똑바로 걷는 것이다. 어쩌다 인간이라 불리어 내가 여기 있는가.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감사 체조를 한다. 무료함에 진일토록 몸을 맡긴다,영화 〈푸른 소금〉은 귀여운 킬러 세빈과 전에 전설적인 조직 보스였지만 지금은 요리 수업 동기생인 두헌(송강호 분)이야기를 다룬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들은 천연덕스럽게 달콤 짭짤한 사랑을 나눈다. 세빈이 묻는다. 아저씨! 세상에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는데 무엇인지 알아? 답은 한참 뒤 두헌이 조직 선배들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 대접하는 자리에서 나온다. 세 번째는 지금입니다. 여러분, 지금 싸우지 않고 뭣들 하는 겁니까? 불안이 표출되는 대목이다.우리나라 13개 슬로시티를 돌아보며 줄곧 생각한 게 지금이다. 다녀와서 전주 한옥마을에 모인 수많은 탐방객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내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하던 일 계속하고 있었다. 성향과 목적을 묻자 해설사가 말했다. 슬로(Slow)는 속도가 아닌 방향과 철학, 교감과 공감의 개념입니다. 무엇에 못 미친다는 뜻을 가진 늦다는 것과는 의미가 달라요. 천천히는요. 개별적 특성에 따라 달라요.제발 천천히 가자.
전주부성을 한 바퀴 돌았다. 도청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강의를 마치고 스물 댓명 청중들과 뙤약볕을 걸었다. 객사에서 만나 북문터로 향했다. 성벽은 헐리고 표지석만 남은 북 서 동문자리는 햇볕 피할 데가 없었다. 그래도 풍남문에서는 아치형 성문이 만든 그늘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웨딩거리 큰길가에 자리한 강점기 시절 세워진 박다옥 건물을 두고 멤버들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풍남문 주변 고물자골목을 지나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변한 전주부공익질옥에도 들렀다. 1930년대 지어진 붉은색 벽돌의 전당포는 창연했다. 지쳐 쉬어야 했다.우리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으로 올라갔다. S다방처럼 빈티지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다방이기에 선택한 곳이다. 20여 년 전, H마담은 망한 커피숍을 다방으로 만들었다. 역발상은 좋았지만 인스턴트커피와 자판기 그리고 카페에 밀린 다방이 잘 될 리는 없었다.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오너이며 레지 역할까지 하는 H마담의 다방학개론을 듣기 전에 모두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수업료다. 스마트폰 부동산 플랫폼으로서 다방이나 알만한 젊은 친구들이 찻잔을 날랐다. 마담 혼자 커피를 타야했기에. 누구도 이 귀여운 막내문화에 툴툴거리지 않았다. 찻잔이 모자라 유리컵 아닌 머그잔에 담긴 아이스커피라니.강사인 내가 다방과 커피숍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엽차잔과 재떨이가 놓인, 성냥골을 분지르던, 선을 보던, 예술인의 안식처였던 공간임을 노인처럼 이야기했다. 한 때, 돈 없는 예술가들의 사무실로, 유명한 화가 또 서예가들의 전시공간이었다는 대목에서 잠시 아지트를 뺏긴 어르신들이 다방문을 열고 나가셨다. 커피를 다 탄 마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다음은 다방경력 40년의 레전드 H마담의 다방학개론 플래시백 요약이다.70년대 여수에서 올라와 처음에는 하꼬비 생활을 했어요. 그릇 닦고 청소하는 시다죠. 월급은 적고 통근하기도 어려운 데다 잠 잘 데가 없어 다방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을 잤어요. 하꼬비를 졸업하고 마침내 아가씨가 되고 경력이 쌓이면 카운터에 앉아요. 그냥 돈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네 A다방입니다.하고 전화를 받고서 도청 김과장님, 전화 왔습니다.하는 방송을 했어요.아침 일찍 오시는 분들에게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커피를 대령했지요. 다방엔 규율이 엄해서 애인이 있으면 쫓겨나야 했어요. 양장에 하이힐의 레지 시절을 지나 한복 입는 마담이 됐지요. 마담은 여름에는 하얀 모시적삼을 해 입었어요. 얼굴마담은 차만 많이 팔면 되지만 책임마담은 수입이 부족하면 월급에서 채워 넣어야 했어요. 제가 팬을 한 오륙십 명 거느렸는데 다방을 옮기면 다들 이쪽저쪽으로 우르르 몰려왔었지요. 영화배우 김진규씨와 하반영 선생님도 기억에 남아요.허마담의 화양연화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셀링으로 충분했다. 한 사람의 저물어가는 생애와 탈근대의 풍경을 두고 문화자원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시간적 요소를 파는, 장소마케팅으로 스토리텔러가 있는 A다방은 전주스러운 곳이다. 전통과 근대, 탈근대가 내면화된 도시 전주부성 시간여행을 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관광객들은 다방으로 가 쉬시라.
한 달포 전 기령당(耆寧堂)에서 400주년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나는 그곳을 찾았다. 전주 시내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완산 언덕바지에 위치한 기령당은 우리 고장이 어떤 곳인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곳이다. 기령당은 노인들이 모이는 곳을 말하는 데 우리나라는 예부터 원로 노인을 모시는 풍속이 있었다. 국가에서는 기로소(耆老所)를 만들어 관직 은퇴한 원로들을 우대하곤 했다. 회갑을 넘긴 지역 원로들이 모이는 이 기령당은 예부터 어른 공경의 관습을 잘 담아낸 기구였다. 단순 교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역 내 비공식 자문기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임으로도 알려져 왔다. 기령당의 고색창연한 건물, 그 주위를 덮고 있는 기품과 남아있는 기록들이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숨겨져 있지만 중요한 문화유산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기령당처럼 사회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하나 둘씩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에, 책 속에,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내서 집적해 두는 일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두 명의 전문가나 정치가들의 제안이 아니라 도민, 시민들의 집단적 합치가 새로운 문화의 창을 열어 왔다는 점을 되새기고 싶다. 해방이 되자마자 봉안전을 부수고 힘차게 높이 세운 독립운동기념비,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종합경기장 등은 집단지성의 힘이 발현된 유산들이다. 21세기의 문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자산인 박물관 건립도 집단의 협치로 이루어져야만 한다.자타가 인정하는 예향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박물관 통계를 보면, 다소 실망스럽기만 하다. 2016년에 나온 전라북도 통계에 의하면, 도내 국공사립 및 대학 박물관은 45곳으로 파악되었다. 전국적으로는 780 곳이 운영 중이니, 도내 박물관은 전국적 분포에서 약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우리가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곳이 박물관이다. 재미를 떠나서 방문한 지역에 대해서 좀 더 알고자 할 때 필수 코스가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의 운영은 중요하다. 비단 관광객을 대상으로만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도민의 자긍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박물관이 지속적으로 세워져야 할 이유가 또 있다. OECD 주요국가와 비교하면, 1관 당 인구수가 독일은 2만 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2.3만 명이다. 일본은 3.7만 명이라고 하니 박물관 수로 보면 후진국에 속한다.세계적으로 정평있는 박물관을 보면, 다양한 문화적교육적 기능을 하고 있어서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도시 자체보다 박물관으로 더 유명세를 얻는 곳도 적지 않다. 박물관은 나이, 학력,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라도 개방된 곳이어서 민주적 교육을 실천하는 장이 된다.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발굴연구해서 그것을 기초로 좋은 전시를 하는 것이 박물관이다. 최근에는 교육을 넘어서 놀이, 휴식 기능도 추가하면서 박물관이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의 연구를 거듭해서 훌륭한 콘텐츠를 가진 박물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후손들이 대대로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문화공간의 탄생을 꿈꾸어 본다.
황석영 작가만큼 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현장에서 맞닥뜨린 사람이 있을까. 개인사도 겨울 파도처럼 너울 쳐서 그의 자전은 역사와 개인이 부딪히며 내는 파열의 고통과 신산으로 가득하고 또 한편으로 광장과 깃발의 환희로 크게 나부낀다. 해방 전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어린 날 잠시 살다가 월남한 그는 한국전쟁, 419, 516, 유신과 베트남전쟁, 1026, 518,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사 격변의 현장 모든 곳을 살아낸, 드문 작가다. 80년대 말에는 홀연 방북하여 우리 언어의 반쪽인 북쪽의 현실을 작가의 눈으로 목격하고, 때로 개입하며, 남북 모두로부터 탈주하여 잠시 망명객이 되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영국 런던의 테러, 미국 LA폭동 등 그가 가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세계사적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 귀국하여 또 몇 년 징역을 살면서 그의 편력에서 유일하게 왜소했던 감옥 체험까지 완결했으니 한 생애에서 이처럼 많은 사건들의 세례를 받은, 축복받은 작가는 황석영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며칠 전 출간된 황석영의 자전 <수인 囚人>은 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 개인의 역사를 담은 책으로 한국현대사 외전이라 부를만한 책이다.그의 책과 인터뷰, 사회적 언급 들을 빠짐없이 읽으며 오랜 애독자로 살아온 내가 황석영 선생을 특별한 경모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그가 높고 빛나서가 아니라 어쩌면 본성적인 것 같은 그의 양아치 기질 때문이다. 세상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작가라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황석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끊임없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현장을 찾아 움직였다. 그의 초기 문제작인 <객지> <삼포가는 길>은 산업화 초기의 노동현실, 도시화와 해체되는 농촌공동체 를 담았고 <탑> <무기의 그늘>은 베트남 참전의 그늘을 다룬 문제작이다. 그가 정리한 광주항쟁의 진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시대와 호흡하는 작가정신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황구라라는 별칭으로 주변 지인들에게 더 자주 불리며 조야에 너무도 유명한 그의 입심은 종이장을 뒤적이며 머리 속에서 얻은 잡지식이 아니고 이처럼 윤리적 규범과 보편상식의 범속한 테두리를 자주 횡단하며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나는 반듯한 범생이 대가들보다 황석영의 이 좌충우돌을 몹시 사랑한다. 그의 문학은 좁은 울타리 안을 맴돌지 않고, 그의 언어는 문체로 세우는 관념의 나라에 자족하지 않는다. 이제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고 세계와 개인으로 직통하는 세계시민으로 글을 쓰는 그의 후기작들을 고대하고 있다. <여울물소리> <심청>에서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황석영만이 써낼 수 있는 문학의 영토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인생을 돌려 놓을 수 있다면 파가(破家)의 사주를 바꾸고 싶습니다. 언어로 수많은 인생의 집을 짓는 작가이지만 자기 현실에서는 집을 부수고 나온 운명. 황작가의 출간 인터뷰에서 이 한 마디가 가장 아프고 공감된다. 안온한 집으로 석방되지 못하고 자청하여 세계의 감옥을 전전하는 그의 오랜 수인 생활이 있었기에 그의 문학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세계와 홀로 대적하는 작가의 전범을 온몸으로 밀고 온 황석영 선생은 우리 문학과 시대의 황홀한 한 빛이다. 오랜 시간을 돌아 모든 사물과 관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황석영 작가를 비롯해 우리 문학의 많은 목소리들이 작가를 제약하는 어떤 굴레도 없이 개성 넘치는 언어의 집을 짓는 문화의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온 나라가 커피 열풍으로 뜨겁다. 도심은 한 칸 건너 커피숍이고 거리마다 커피 향이 진동한다. 테이크아웃 용 컵 하나 들고 있지 않으면 이방인이 된 듯 뻘쭘하다. 속칭 당 떨어지는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이 약인 양 커피를 찾는다. 시고 쓰고 단맛이 뒤섞여 우르르 몸속을 파고들면 마법에라도 걸린 듯 기력이 솟는다.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에서 종이 커피잔을 들고 참모들과 산책하는 모습은 서민 대중이 공감하는 한 편의 시였다. 커피가 음료 이상의 기능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누가 뭐래도 당신이 타주는 커피란다. 누구나 격의 없이 즐기는 커피는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언어다.요즈음 문 블렌딩이 인기다. 커피 마니아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블렌딩 방식을 말하는데, 이 커피 배합 방식이 특이하다. 4:3:2:1(콜롬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순) 비율이다. 컬럼비아의 시고 달콤한 맛, 브라질의 마일드하고 구수한 맛, 에티오피아의 감칠맛쓴맛, 과테말라의 시고 스모키한 맛이 섞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맛을 창출하는 것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까지 어우러졌으니 어련하지 않을까. 호사가들은 이를 황금비율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명성을 얻기 시작하더니 벌써 전주도 K 커피숍 등에서 선을 보인다. 로스팅한 콩도 살 수 있을 것 같다.커피 블렌딩이란 특성이 다른 2가지 이상의 커피를 혼합하여 새로운 향미를 가진 커피를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밥으로 치면 비빔밥이나 짬뽕 같다고나 할까. 최초의 블렌딩 커피는 예멘의 모카커피와 인도네시아 자바커피를 혼합한 소위 모카 자바 커피라고 전해진다. 모카의 신맛과 자바의 쓴맛이 섞여 신묘한 맛의 조화를 이루니 애호가들이 열광하였던 것 같다.단종 커피를 즐겨 마시는 나는 외지에 나갈 때 낯선 커피로 인해 고충을 많이 겪는다. 구미가 안 맞는 커피에 입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맛을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터지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을 어쩌랴. 무슨 커피의 배합이냐고 질문할 계제도 아니어서 손으로 내리는 커피(핸드드립) 전문점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블렌딩은 이처럼 까다로운 것이다. 물론 생콩의 품질이나 로스팅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누가 뭐라고 해도 요체는 품질 좋은 콩과 적정 배합비율이다.커피를 탐미하다가 블렌딩에 두 가지 법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어떤 블렌딩을 해도 맛은 한가지라는 사실이다.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에서 캐러멜 맛이 나는 게 예이다. 다른 하나는 특화된 블렌딩 커피의 맛도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리뉴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중 프랜차이즈 커피의 맛이 상향 평준화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블렌딩은 다양한 맛을 한데 모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 나름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어느 결사체의 이념과 같은 것 아닐까. 하나의 성공을 위해 다수가 결집하는, 자기 것을 적극적으로 보태야 하는. 미각이 살아있는 한 블렌딩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맛의 연금술 블렌딩,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통합의 과학이고 언어라는 것이다.
전주성에 다녀왔다. 풍남문에서 객사에 이르는 전주부성 아닌 덕진에 있는 전주종합경기장 말이다. 이승우와 백승호 등 깡다구들의 U20 월드컵경기 때문에 K리그 클래식 전주 수원 공성전(攻城戰) 더비가 원조 전주성에서 열린 것이다. 마지막이란다.1963년에 지어진 전주종합경기장다시 찾은 성은 옛날처럼 늙었다. 팔달로와 백제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경기장은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장군 박정희의 등장을 알리는 제44회 전국체전의 산물이다. 전북도민들의 성금으로 경기장을 짓고 민박으로 체전을 치렀다. 팔달로도 그 때 뚫렸다. 2만8000명을 수용한다는 경기장은, 땡볕과 육상 트랙 때문이었을까, 옛날에 졸업한 중학교 운동장 느낌이었다. 의자는 좁았고 화장실이 낡아서 야외 컨테이너 임시화장실을 사용했다.수원은 없었다. 이재성은 물이 올라 자유자재의 패스를 구사하는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미드필더 김진수와 수비수 최철순도 제 몫을 했다. 결국 형광녹색 유니폼을 입은 전북현대는 코너킥 세트피스 상황에서 김신욱의 헤딩골에 이어 장윤호의 골로 원정깡패 수원삼성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성벽 뒤에서는 용감한 법이라 나도 아들도 열심히 응원을 했다. 경기 후 마지막 구장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인구 120만 부자도시답게 수백 명의 응원단들과 블루윙즈는 염기훈을 앞세웠지만 전북의 지능적인 포백에 막혀 힘 한 번 못쓰고 졌다. 서정원 감독은 고개를 떨구었다. 응원단들은 열을 다스리려고 시내 한옥마을 쪽 막걸리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하지만 잘 생각하셨다. 먹는 게 남는 것이다.전주월드컵 경기장도 전주성이라 부른다. 사실 전주종합경기장 출입구가 한옥 디자인에 성문의 태극문양을 보고 팬들이 자연스레 붙인 이름이지만 진짜 부성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경기장은 합죽선 지붕, 솟대 기둥, 열 두 줄 가야금 닮은 케이블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육교 겸 호남제일문 역시 이 동네가 전주성임을 나타낸다. 하여 전북현대의 전주경기를 전주성 전투라 한다. 성을 가진 도시 수원 전주 더비 매치를 공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65만 전주시민과 180만 전북도민의 성원 속 전북현대는 닥공으로 컸다. 이제 시민의 축구응원 추억이 깃든 전주종합경기장이 사라진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한숨이 남아있는 야구장도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에 호텔과 컨벤션센터 그리고 시민의 정원이 들어선다고 한다. 거대자본의 대형마트와 쇼핑몰이 들어오는 것을 막은 좋은 수비다.축구도 전주 문화관광상품으로리버풀과 맨체스터, 뮌헨과 파리 모두 최고의 축구팀을 가진 도시들이다. 특히 생제르맹은 파리라는 도시 브랜드의 덕을 보는 팀이다. 과연 축구팀 전북현대는 전주라는 도시 브랜드 덕을 보는지 생각해 볼 일.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경기장, 첼시의 스템포드 경기장,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 자체가 관광상품이다. 이런 점에서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전주성 문화관광상품은 덕진연못 전통정원을 지나 월드컵경기장에서 완성될 것이다.전주성에서 연승을 거둔 U20 한국팀이 잉글랜드에 삐끗해 수원성에서 16강전을 치른다. 6월 8일 전주에서 치러지는 4강전에서 이승우 백승호의 건방진 골세레모니를 보고 싶었는데, 참.
며칠 전의 일이다. 어느 도시의 헌책방을 지나게 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곳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어서 호기심이 더 발동했다. 겉에서 보니 다 허물어질 듯 위태로운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작은 생활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옛날 상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안채는 살림집이고, 도로로 면한 곳은 바깥채를 달아내어서 가게로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책방은 아주 작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서 가뜩이나 큰 내 몸이 더 뚱뚱해 보여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부 풍경에 은근히 놀라웠다.근현대 생활사 속 정겨운 이야기들허리를 굽혀서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니 살림집이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이 오순도순 살았던 많은 이야기를 가진 가족들의 공간이 시간을 멈춘 채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방이 비좁아지자 동네에서도 손꼽히는 솜씨를 가진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방을 넓혀주었다는 이야기, 찌는 듯한 더운 여름날이면 마당에서 뽐뿌로 뽑아 올린 시원한 물로 목욕했던 이야기, 600장의 연탄을 한꺼번에 쟁일 수 있는 지하창고를 만든 이야기 등등.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일반 박물관과는 또 다른 느낌과 감회를 가지고 잠시 옛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조그마한 안방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용했던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옛날 장롱과 찬장, 재봉틀과 다리미 그리고 아직도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한 오래된 라디오가 탁자 위에서 음악을 들려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니 아련한 추억들이 내 발을 붙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를 쉬이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니 과거도 현재도 흘러가도록 두자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지난 세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아이들은 더욱 더 모를 것이고. 그렇게 시대가 흐르다보면 후대에 누군가 나타나서 만들어내는 그런 역사로 후손들은 우리의 시대를 배우게 될 것이다.그 헌책방 안채에는 600장의 연탄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지하창고를 할아버지가 손수 만드셨는데, 이는 며느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어른들의 배려와 사랑이 담긴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연탄을 사용했었구나 그리고 그 연탄을 지하에 보관했었구나하는 정도로만 알고 끝내기에는 우리 세대의 경험은 무궁무진하다.600장의 연탄을 재워두고 200포기 김장을 하면 부모님들은 겨울나기 준비를 끝내고 비로소 따뜻한 방안에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그러나 60장의 연탄 구입도 힘겨운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또 불량연탄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연탄과 씨름했던 이야기, 어디 그뿐이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는 슬픈 사연들도 많았다.부모가 살아 온 이야기를 자녀에게근현대 생활사 속에는 안타깝고 불운한 일도 많았고, 정겹고 사람냄새가 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바로 우리 주변에도 이같이 정겨운 이야기가 수없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남겨 두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 부모님들이 살아 온 시대의 이야기들을 자녀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바로 미래를 위한 유산만들기 작업이 아닐까한다.
이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돌아가 이념적인 잣대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일이 없는 문화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도종환 의원이 13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 후 열린 예술검열 주제 대담에서 한 발언이다. 그가 정치에 참여하면서도 시를 계속 써온 현역 시인이자 박근혜 정부 때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 논란을 제기한 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새 정부 출범, 검열없는 사회홍준표 후보는 정권의 판단에 따라 국책지원사업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 하는 식으로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근간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이제 새 정부가 섰으니 검열 없는 창작환경을 보장하는 것에서 문화예술 진흥의 르네상스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이번 대선에서 주요정당의 문화예술 관련 정책공약은 비중도 약하고 안보 노동 등의 굵직한 이슈에 밀려 정책 발표의 시기와 세부적 깊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에 민관 협력형의 문화예술 장기비전을 담은 〈창의한국〉이 나온 적이 있는데 새 정부에서는 예술창작자들과 향유자들의 다양한 논의를 모아가며 그보다 훨씬 진전된 정책들이 세워지고 적극 시도되기를 바란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창작 환경을 위한 입법과 제도 보완을 약속하며 관련기관 독립성 강화-문화관련 기관장 인사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추천를 받겠다는 문재인의 약속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난 정부들에서는 권력과 가까운 인사가 문화계의 지원 예산 배분권을 틀어쥐고 문화계를 농락해왔다. 또 다른 권력자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부처의 과도한 권한을 축소하고 잘못된 일에 관여해온 관련자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면서 문화계 내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처방이다. 문화예술에서부터 중심- 주변, 상부-하부, 지시-추종의 낡은 관계를 혁파해야 한다.문화에 균형과 발전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문화는 됫박을 고르게 깎아치는 균형의 영역이 아니고 수치를 들이대며 지표 달성을 확인하는 계량 중심적 사고와 연결되는 발전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나 고갈난 바닥을 채워 평형수를 채우는 정책이 먼저 시도되어야 한다. 예술인들의 권리보호, 복지를 기본으로 깔면서 문화시장에서의 독과점 해소, 주류 장르에 치여온 무용, 연주, 국악 분야 등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소수 장르를 북돋아주는 정책을 써야 한다.문화에도 균형발전을문화향유의 격차가 엄연한 데 이를 현실적으로 줄여가는 정책들도 매우 중요하다. 개인들 모두가 창조성을 맘껏 발휘하게 하는 예술교육의 정상화를 강조하고 소득, 지역, 연령에 따른 문화소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문화기반시설 지역 간 불평등을 〈문화균형발전〉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지역문화진흥법, 문화기본법 제정을 약속하고 문화예산을 2%대로 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은 잘 잡은 방향이다. 사물이 보다 낫고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감이라는 발전 본래의 어의에 충실한다면 개발을 넘어 성장과 진보를 아우르는 말이기에, 문화발전은 매일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문화예술의 본성에 더욱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품격있는 문화예술의 힘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가 새 정부의 국정 비전 중 핵심요소로 자리잡아 군비보다 문화! 예술로 평화! 가 구현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다린다.
어버이날 찾아간 요양병원 뜰에 지면패랭이꽃이 타는 듯 피었다. 꽃 잔디라 부르는 꽃이다. 요즈음 이곳저곳 편하게 피어있어 자주 보지만, 오늘 여기서 보니 유난히 화사하고 눈이 부시다. 지면(地面)으로 퍼지는 특성이 있고 패랭이꽃과 비슷하여 저 이름을 얻었단다. 꽃말이 희생이라는데. 어쩌면 한 시절을 살라 희생하고 지금은 여기서 외로움과 싸우고 계신 어르신들과 운명이 비슷할까. 애잔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향이 진동한다. 여기 계신 내 어머니의 젊음도 한때는 저와 같았겠지.봄에 핀 화목이 가을에 또 피는 현상알고 보니 꽃의 삶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와락 피었다 지는 것이 끝이 아니고, 저들 햇가지 나온 자리에서 하나둘 계속하여 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이를 막핀꽃이라 부른다. 봄에 핀 화목이 가을에 또 꽃을 피우는 현상.을 말함이다. 맥문동과 개나리도 이와 같다. 이곳 어르신들도 막핀꽃처럼 한 시절을 다시 구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즈음 진달래, 철쭉, 벚꽃도 계절과 상관없이 자꾸 꽃을 피우는데.우리 영화 〈장수상회〉에는 김성칠이란 치매 어르신이 나온다. 아내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다. 어르신은 급기야 자기 이름까지 잊게 된다. 어느 가을날 아내 금님은 화단 돌 틈에서 막핀꽃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한다. 금님이 성칠과 나란히 앉아 소원을 빈다. 이 사람 저 꽃처럼 다시 활짝 웃게 해주세요. 이때 성칠이 떨리는 손으로 꽃을 쓰다듬는다. 혹시? 그러나 성칠의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물으니 전라북도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입소 인원이 3만여 명에 이른다. 이 어르신들, 다시금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실까. 반면에 세상은 이분들의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호자들이 꼭 손님 같아요. 그리고요. 오자마자 금방 가요. 면회 안 오는 침상이 더 많아요. 한 요양보호사의 말이 양심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얼마 전 이 요양병원 벽에 포스터가 하나 붙었다. 상단에 큰 글자로 우리는 괜찮아요. 이렇게 씌어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자세히 보니 아래쪽에 지게를 진 할아버지 그림이 보인다. 이 어르신 안자(字)를 짊어지고 힘겹게 걷고 있다. 안자를 번쩍 들어다 문장을 다시 구성해보니 우리는 안 괜찮아요.가 된다.5월은 가정의 달이고, 어르신들의 날이 있다. 그런데 포스터는 저렇게 아프다고 말한다. 저 안자 지울 수 없을까? 꽃도 아쉬워 가을이면 다시 피는데, 하물며 사람의 여생에 꽃눈 형성의 기회가 안 주어진대서야. 지면패랭이꽃은 필요할 때마다 솔솔 부는 바람과 촉촉한 빗물이 찾아와 몸을 돌봐준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육신 구부린 채 외로움으로 떨고 계신 어르신에게는 누가 필요한 양분을 공급할까. 어느 치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보호자들이 병상의 어르신 앞에 가까이 오지 않는 이유가 의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쉬운 말이 어렵게 들린다.어르신에게 "무엇을 해드릴까요?"메이 아이 헬프 유? (May I Help You?)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무 데서나 하지 말고 어르신 계신 곳에서 직접 무엇을 해드릴까요? 이렇게 여쭙는 것이다. 5월(May)이니까. 꽃이 무성한 5월만이라도.
전주는 영화다. 50년대 전주충무로를 이뤘던 역사에 이어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이기에 하는 말이다.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결코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제가 아니다. 사실 국제와 필름에 오래도록 방점을 찍어 대한민국 2강의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전주나 축제에 방점을 두는 전주양반님들이 오래도록 잘 참아준 덕에 전주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영화, 소리, 한지, 서화 그리고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전주부성 고사동을 찾은 스타 박해일은 단정했고 하지원은 길라임 아닌 심사위원으로 가오가 있었다. 토요일 저녁, 정우성을 보려는 젊은 여성관객들의 줄은 돔을 한 바퀴 돌 정도였다. 김지미 임권택 안성기 그리고 전주가 낳은 불세출의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이 참가한 〈비구니〉GV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무엇보다도 개막작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의 서늘한 사랑영화였다. 근래 개막작 중 최고의 영화를 맛본 영화신도들은 〈리틀 하버〉 〈네루다〉 등 좋은 영화에 입소문을 낸다. 영화제는 꽃심을 향해 순항중이다.전주는 영화지만 영화가 다는 아니다. 이 동네가 인구나 도세가 한참 딸리는데 문화 수도라 하는 이유는 소리꾼도 꾼이려니와 들을 줄 아는 귀명창이 많아서이고 이 동네가 한지와 서화의 도시인 것은 감식안을 가진 양반들이 많아서이다. 여기 두 가지가 더 있다.전북은 축구다. 전주성을 키워드로 구글링하면 전북현대가 뜬다. 닥공! 닥치고 공격의 대명사 전북현대모터스는 유아독존 1강이다. 수원삼성이나 서울FC는 라이벌도 못된다. 하늘에는 한국의 즐라탄 김신욱이 있고 땅에는 다비드 실바라 불리는 이재성이 자리한다. 요즘 골맛을 못 보는 이동국은 좋은 아빠로서만도 프랜차이즈 스타다. K리그 클래식 춘추전국시대를 진즉 평정한 후 아시아챔피언스리그까지 먹어버린 전북현대는 거의 국대급이다.인구 65만 도시에서 경기장에 삼만 명을 채운다? 오오렐레∽를 부르는 녹색전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성이 아득한 스루패스를 날릴 때 믿고 달려가면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뚫는 김신욱의 닥공은 새로운 시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전북은 문학이다. 김용택과 안도현, 이병천을 비롯한 전북작가회의 그룹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리백이다. 최근 최고의 시빨을 보여주는 박성우와 이병초, 유강희와 문신 등 작가그룹은 최고의 스쿼드를 자랑한다. 그래서, 전북현대! 한 판 붙자. 작가 팀 감독 정양 시인은 최강희 봉동 이장님과 악수를 주고받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작가회의는 김용택 시인이 김신욱을 마크할 것이다.전북은 축구와 문학이다전북작가회의 주최 전국백일장에 즈음해서 이 게임이 열리면 뉴스마다 메인을 장식하고 월드컵 경기장이 차고 넘치리라. 전북문화의 품이 넓어지리라. 이 도전에 전북현대가 즉시 응답하지 않으면 조금 늦게 연락이 올 것으로 믿는다.5월 20일, U-20월드컵 코리아 개막일이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전을 예약했다. 여기에 또 다른 메시와 호날두가 있을 것이기에. 이어 한국대표팀과 기니의 경기가 있다.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 백승호 이 친구들이 앞으로 박지성과 손흥민이 될 것 아니겠는가. 이날 새로 선출된 대통령도 전주월드컵경기장에 오시면 좋겠다.
이제 전주에는 덕진공원이 없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우리의 미래
전주시 산하기관 비리 척결에 나서라
우리 학교는
국회개원 60돌을 맞는 우리 - 이병렬
'백워드루킹'보다 '과거지향형'이 좋아요
소설 '28'·메르스 사태
전주를 글로벌 스튜디오로 조성 바람직하다
코로나19 시대 이후 교통 환경의 변화와 대응
'입각하여'보다 '따라서'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