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6-21 01:01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전통문화예술

지난 해 1월 세계경제포럼의 막이 내리던 시간 스위스 휴양도시인 다보스에 때 아닌 아프카니스탄 민속음악단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전쟁으로 얼룩진 아프카니스탄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 연주하는 전통민속음악이 잔잔하게 울려 펴지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긴장과 열기를 식혀 주는 듯 했다. 소박하면서 진솔한 전통민속음악이 초과학시대를 사는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귀중한 유산으로 재인식시키는 순간이었다.인간을 중심에 둔 융합이 먼저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의 공공 및 민간 부문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당면한 의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자리다. 이 연례회의에서 채택된 포럼의 논제는 당해 연도 경제, 정치, 사회, 환경 분야의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첨단 과학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천명하는 그 자리에서 제3세계의 전통민속 음악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과학과 민속예술, 산업혁명과 오래된 전통. 이 개념의 짝을 우리는 상반되는 것이라고만 본다. 얼핏 보면 대조의 짝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 교류와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초현대적 과학만 가지고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전통 속에서 이어져 온 문화와 예술을 아끼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4차 산업혁명도 성공할 수 있다. 오로지 기술과 과학, 권력과 돈만 추종하면서 신산업을 개발해 간다면, 이 나라는 물론이고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지도 모른다. 아프카니스탄의 여성들이 들려준 전통 민속음악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우리는 요즘 이곳 저곳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첨단 과학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려야 하고, 청년 일자리도 늘려야 하고, 국력을 더 키우고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경제와 정치 일변도의 주장을 가지고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승자가 되기 힘들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휴머니즘 정신, 더불어 살아야 하는 배려의 정신,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공유의 정신이 앞서야만 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다.그래서 문화와 예술을 아끼는 나라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해 갈 수 있다. 로봇, 사물인터넷, 바이오산업, 빅데이터 등 오늘날 산업의 특징은 인간을 중심에 둔 융합에 있고, 이 융합에 성공 모델을 세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 가치를 잃지 않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와 예술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가는 법고창신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4차 산업혁명 발전모델 전북에서프랑스 사람들은 문화와 예술을 유독 사랑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적은 급료로 근근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음악회, 전시회를 가기 위한 비용은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주말에 열리는 문화예술에 흠뻑 취하기 위해서 라고 할 정도다. 우리 고장이 예향이었던 이유도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전의 그 명성을 우리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문화와 예술이 과학에 시녀노릇을 하거나,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만 복무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암울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고장보다도 아직은 전통문화와 예술을 아끼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이 중심에 선 4차 산업혁명시대의 발전모델을 바로 우리 고장에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4.25 23:02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는 힘은 아름다움이다

세월호 이후 한동안 말도 글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이 상상을 압도하여 말문이 막히고 그저 억억 하는 신음소리에 눈물범벅일 뿐이었다.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가 죽어갔는데도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죄책감에 짓눌려 한동안 삶의 자잘한 기쁨을 누리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온몸을 감싸는 분노에 질식할 것 같으나 출구를 찾지 못해 생기는 울혈 같은 것이 많은 사람들 안에 들어앉았다. 배의 형상, 바다, 노란 리본, 그만한 또래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가슴이 저며왔다. 그날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보통의 장례 절차에서 시간에 바래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슬픔의 경감이라 할 탈상은 아직 치르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주검들이 있었고, 선체는 가까스로 육지에 올렸으나 진실은 미처 인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세월호 진실은 미처 인양하지 못해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에 대한 호평을 여러 곳에서 들었으나, 사두고도 오래 책을 펴보지 않은 것은 고통에 대한 일종의 회피였을 것이다. Axt 최근호에 실린 김탁환 작가 인터뷰를 읽고 난 뒤에서야 〈거짓말〉을 펼쳐 들었다. 희생자의 주검 대부분을 수습한 민간잠수사들의 이야기다. 잠수사들은 모시고 나온다는 표현을 썼다. 죽은이에 대한 경의 그리고 깊은 바다속에서 주검을 수습하는 일의 소중함을 함께 이르는 말일 것이다. 맹골수도에서 평생 하지 않아도 될 포옹을 한 잠수사들은 격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잠수병으로 고통 받으나 어느 쪽으로부터도 온전하게 이해받지 못한다. 국가로부터도 충분한 치료는커녕 냉대를 받고 사정을 모르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돈벌이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소설은 주검을 찾아 심해로 내려가는 잠수사들의 현장을 정밀하게 그려내면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처지와 시선을 매우 냉정하게 담아낸다. 우리 사회의 축약도가 거기 있다.이 소설의 압권은 수색과 수습의 과정에서 생생하게 전해지는 그 장면 그 냄새 그 물소리이다. 독자도 잠수사가 되어 깊은 물속 세월호 선체 안을 헤매고 다닌다는 실감에 사로잡힌다. 세월호가 남긴 내상의 치유에 전력해온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이 실감이야말로 뜻밖의 위로가 된다고 썼다. 그 고통에 나도 함께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깊은 공감을 느끼며 같은 주파수를 공유한 사람들은 의도치 않아도 서로에게 치유적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이른바 빅스토리를 주로 써오며 역사소설가로 알려져 온 김탁환에게 이 소설은 자기 문학세계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김 작가는 소설 작업을 심장을 바꿔 끼운다라고 표현했는데 세월호의 모든 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녹여내고 문장으로 표현하다보니 매우 고통스러운 창작일 수밖에 없었다. 김탁환은 이 책 출간 이후 20년 넘는 작가 생활에서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들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 방식으로 소설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원했고, 지금 써야 할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집필에 집중했다는 그의 작가로서의 헌신에 독자가 박수를 보낸 것이다.기억하는 것으로 싸우자김탁환 작가가 〈거짓말이다〉 소설을 퇴고하던 중(2016년 6월)에 주인공 나경수의 모델인 김관홍 잠수사가 목숨을 버렸다. 작가는 허망한 심경 중에도 다시 사람들을 만났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8편을 모아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냈다.소소한 기쁨들이 큰 슬픔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 우리 곁의 아름다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와 구원이라고, 작가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건넨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4.18 23:02

사진 느낌

봄꽃 잔치가 한창이다. 찰칵찰칵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마음이 절로 열린다. 익산 숭림사 앞 꽃길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꽃보다 사진이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한 장씩 넘겨본다. 내가 찍은 사진, 내 사진, 내가 찍은 내 사진. 사진은 느낌을 찍는 것이라는데, 찍을 때 느낌이 아니다.정녕 눈에 보이는대로 찍힐까지우고 말리라. 마음에 안 드는 순서대로. 가만있자, 기준을 어떻게 정할까? 한 장 한 장이 한순간의 증거이고,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인데. 다시 살펴보게 된다. 사진치료자 주디 와이저는 심리적 도구로서 사진을 정의한다. 사진은 우리 마음의 발자국이고, 우리 삶의 거울이며, 우리 영혼의 반영이고, 적막한 한순간 우리 손안에 쥘 수 있는 응고된 기억이다.셔터(Shutter)는 세상을 여닫는 장치다. 건물 셔터나 카메라의 그것이나 뜻이 같다. 한번 열었다 닫는 일이 그저 단순히 들어오고 나가는 일 같지만, 따지고 보면 이처럼 거창한 심리적 기제를 담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은 찍기보다 보기가 더 어렵다.최근 주목받고 있는 사진치료(Photo Therapy)에서는 사진 지각의 주관성을 강조한다. 영화 〈클로저〉에 이에 관한 장면이 나온다. 실연당한 여인 엘리스는 사진작가 안나의 전시회에 걸린 울고 있는 자기 사진을 보며 말한다.거짓투성이죠. 남의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찍었어요. 사진은 세상을 아름답게 왜곡시키죠. 전시회는 말짱 사기극인데, 사람들은 거짓에 열광하죠.앨리스는 자기가 눈에 보이는 대로 찍힐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착각이라면, 자기중심의 지각이라면 저 말은 푸념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삶에서 시간과 공간은 고정되지 않는다. 상황도 마찬가지다. 박제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봄꽃 마당을 일전하고 나서 꺼내본 내 자취가 그것을 증명한다. 기분이 좋았다면 좋은 대로 사진도 그렇게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영화에서 안나가 인물사진을 찍을 때 하는 말이 있다.등 곧게 펴세요. 눈썹 올리지 말아요. 뻔질해 보여요.눈썹 내린다고 뻔질하지 않으리란 보장 있을까. 저 뻔질은 누가 느끼는 것일까. 느낌에 다양한 관점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요즈음 직장인들 단체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 공허한 느낌이 앞선다.하나, 둘, 셋 파이팅!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저 풍경. 선전을 기원하는 일종의 풍속도 같다. 일전을 불사할 태세로 사진을 찍는대서야. 저 사진 게시판에 보름쯤 걸릴 것이라는, 사진 뽑아서 모두에게 나눠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느낌이 있다. 한때는 사진 찍기 전에 사진사가 입술에 침을 바르라고 했다.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하나 더 있다. 김치!하는 것 말이다. 치~ 하면 입꼬리가 올라가 예쁘고 편한 얼굴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있는 그대로 찍고, 찍히고있는 그대로 찍으면 안 될까? 파이팅 하지 말고, 입술에 침 바르지 말고. 무엇을 찍는가. 왜 찍는가를 생각하다 보면 느낌도 찍히지 않을까. 가족사진, 행사 사진, 여행 사진, 꽃 아래 독사진. 위장된 평화 연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찍고 찍히자. 요즈음 무보정 사진 광고가 인기를 끄는 것은 사실성(寫實性)을 중시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 아닌가 싶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4.11 23:02

만경강에 바친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의 서문에 만경강에 바친다.고 썼다. 몇 년 후, 이 작가는 소설 『칼의 노래』 작가의 말에서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고 썼다. 김훈처럼 자전거는 없지만 드론을 들고 만경강에 나가보았다. 대아 댐에서부터 어우보 지나 망해사까지. 벚꽃 핀, 안개 낀,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그리고 해가 지는 만경강을 붙들었다. 오래 보니 아름다웠다.지는 해 보며 명상할 수 있는 최적지여기 만경강 어름, 춘포역 가까운 방뚝에 문학공원이 생겼다. 이 강이 낳고 기른 정양 시인, 윤흥길 소설가, 홍석영 소설가, 말석에는 안도현 시인의 시도 돌비에 새겨져 있었다. 안타까운 일은 공원 자리에서는 강이 잘 안 보인다는 것. 조금 아래쪽 강폭이 가장 넓게 휘어지는 사행하천 지점을 택했으면 좋았을 텐데.만경강 둑 안쪽 둔치의 논들이 모두 사라졌다. 경작재배 금지. 농사과정 속 농약이나 비료가 흘러들어 수질을 망치는 것을 막고자 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일부러 꽃을 심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인데, 홍수가 한 번 쓸어가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지. 숨어하는 사대강 사업으로 오늘도 둔치에는 포크레인이 계속 삽질을 하고 있고 거대한 트럭들이 제방 위를 달린다.문학공원을 지나 목천포에 이르면 잘라진 만경교가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멘트 다리가 낡았다고 철거하려다 김제방면과 익산방면의 교각 서너 개씩만 남겨놓은 것. 만경교는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윤흥길의 소설 「기억 속의 들꽃」의 무대다. 익산국토관리청은 잘라진 다리 이곳에 데크를 설치하고 소설 속 장면들을 새겨놓았다. 밥값 했다.해지는 쪽으로 더 내려가면 새챙이다리가 나온다. 이곳 또한 붕괴위험의 진단을 받은 곳이지만 청하면의 몇몇 생각 깊은 분들이 보존하고 가꾸어서 시민들은 낚시를 한다. 한 때 망둥어 천지던 신창진에는 이제 새만금에 막혀 붕어가 입질을 하고 김훈의 표현대로 다리가 긴 하얀 새들이 논다.세상 그렇다. 임진강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모두 갈비집과 카페에 모텔 아니던가. 그러나 만개의 이랑을 적시는 이 복된 강은 고산천에서 망해사까지 쓸 만한 점방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논들에 젖을 흘려보내는 수문조절장치 말고는 인위적인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김훈은 모텔도 삽질도 없는 이 강 너머로 지는 해에 반했을 것이다.여행의 트렌드는 변한다. 불국사나 콜로세움 같이 인류가 남긴 거대 문화유산에서 요즘은 한옥마을과 골목 등 시간 여행을 즐긴다. 언제까지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뭐냐? 자연이다. 만경강에는 안개가 피고 기러기가 날고 매일 해가 진다. 지는 해를 두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적의 장소가 만경강이다. 그러니, 부디 만경강 가에는 그 어떤 것도 만들지 말고 짓지 마라.강을 파헤치고 강물 막은 죄 씻어라강의 끝에 소담한 절집이 있다. 바다를 잃은 망해사 앞은 이제 담수로 바뀌고 있다. 그 너른 땅에 골프장과 카지노를 지을 구상을 하는 중생들에게 한 마디 한다. 서해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새 땅에 망해사 지을 터를 전라북도민들에게 돌려주시라. 거기 한 오천 평 절집 지을 곳을 보시하여 수많은 게와 고동들, 서해 훼리와 이 앞길을 지나간 세월호의 넋들을 위로하게 하라. 강을 파헤친, 강을 막은 죄를 씻을 마지막 기회다. 그 절 세울 땅을 만경강에 바치시라.

  • 오피니언
  • 기고
  • 2017.04.04 23:02

시골쥐와 도시쥐

이솝우화로 널리 알려진 시골쥐와 도시쥐는 어린 시절 누구라도 한번쯤 읽어 보았을 이야기이다. 도시에 사는 쥐가 시골로 내려와서는 먹을 것이 형편없는 것을 알고, 시골쥐를 도시로 초대한다. 도시에 오면 세상에 맛난 것은 다 먹을 수 있다고 도시쥐는 장담하고 돌아갔다. 시골쥐는 기대에 차서 도시로 갔다. 맛난 것을 먹을 수 있는 대신 각종 위험과 위기에 노출되어 근근히 살고 있는 도시쥐의 볼품없는 꼴을 보고 시골쥐는 미련없이 시골로 갔다는 이야기이다.도시재생에 과거 시골문화 활용을이 이야기는 물질적인 풍족을 얻는 대가로 각종 유해환경과 싸워야 하는 것 보다는 여유있는 삶이 좋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 보면, 시골의 넉넉한 인심, 서로를 돌보며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이 있다. 창고, 곳간을 드나드는 쥐와 같은 미물들도 같이 살아간다는 철학이 있었던 예전 시골의 문화가 새삼 그리워진다.이런 뜻에서 인본주의가 살아있던 과거 시골문화를 도시재생 등의 사업에 활용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거꾸로 도시문화를 시골에 심으려는 정책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 시골은 인재의 산실이 되었고, 그 인재들이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서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매사에 모범을 보이며 살았다. 안으로는 엄격한 규율과 협동을 강조했고 밖으로는 중재와 외교 창구가 되어 주었다. 촌의 이런 정신적 지도자들을 우리는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도시형 리더십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포괄적이고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시골형 리더십이 마냥 그리워진다. 엄격함과 자애, 협동과 중재로 마을에 좌정해 있던 진짜 지도자들이 소리없이 우리 곁을 다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을 통해서 실낱같은 희망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두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꽃다운 나이 20살 때 소록도에 와서 평생 환자들을 돌보다가, 80을 넘기고, 모국으로 돌아간 두 수녀님이 계신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뒤늦게나마 이 분들의 처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힘을 보탠 촌의 인심이 두 번째 미담이다. 더 이상 환자들을 돌 볼 수 없으니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된다고 옷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고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두 노인수녀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고흥군에서는 조례를 새로 만들어서 연금지급을 결정했다. 더 나아가서 이 미담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가난한 다큐멘터리 작가들에게도 지원의 손길을 뻗쳤다. 그래서 영상제작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우리나라 공동체 정신 되살려야두 분을 맨손으로 돌려보냈으니, 우리가 자칫 도리를 못할 뻔 했다. 그런데, 고흥군수와 군민들은 적은 예산을 쪼개며 일조를 하였다.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갈채를 보낸다. 시골의 인심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도시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도 마음은 간절하지만, 선례도 없고, 예산도 없어서 그런 일을 추진할 수 없다고 했을 지도 모른다.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소리없이 전해지는 공동체정신이 있다. 자발적이면서도 엄격한 규범과 윤리 그리고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협치를 스스로 실천했던 정신적 지도자가 그 안에 좌정하고 있었다. 오늘날처럼 계산에 능숙한 지도자들이 이끄는 느슨한 협업 수준의 정신으로 공동체는 운영되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3.28 23:02

두 권으로 읽는 이땅 여성의 사회사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부제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 〈여자전(女子傳)〉은 인물 인터뷰로 유명한 김서령 작가가 최근 다시 펴낸 책이다. 한국 현대사만큼 굴곡지고 우당탕탕 흘러가며 숱한 이야기를 골짜기마다 부려놓은 장강도 드물 터인데 그 역사의 한복판을 맨몸으로 헤쳐온 여자들 이야기 일곱 편을 묶었다. 왜정시대-해방-인공-뒤집어지고 총칼 들고 나타나고 다시 뒤집어지고, 다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또 살아나고.한국 현대사 헤쳐온 여자들 이야기내 살아온 사연을 다 풀어놓으면 책 열 권으로도 모자란다는 분들이 어디 한둘일까. 하지만 기록으로 남은 분들은 극히 드물다. 평생학습센터 등에서 드물게 여는 생애사 쓰기, 한글학교에서 비뚤비뚤 글씨와 서툰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분들의 인생을 읽을 때 특별한 감동이 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정작 어느 교과서에서도 기록되지 않은 진짜 이야기의 소중함을 우리는 놓치고 산다.〈여자전〉은 개인사의 곡절을 뚫고 나오면서 제 삶의 진액으로 역사를 써오신 분들을 다룬다. 동상으로 발가락이 빠져버린 지리산 빨치산, 팔로군이 되어 모택동 대장정에 참여했다가 나중엔 중공군으로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던 여자 군인, 만주에서 일본군 성노예의 고통을 겪은 위안부, 월북한 좌익 남편을 기다리며 수절한 안동 종부, 50년을 죽은 사람만 쳐다보며 살아온 옛날식 미혼모, 피난지 부산에서 창문 너머로 배운 춤으로 평생 춤꾼의 길을 간 누구, 참혹한 전쟁의 기억은 없으나 일상에서 남성과의 전쟁을 가혹하게 치른 미술관 주인. 신분과 학력, 고향과 환경은 제각각이었으나 한 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운명을 좌우한 결정적 요소였다. 〈여자전〉은 지금 이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전사(前史)이자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고통의 기원과 삶의 장엄함에 대한 한 백서로 찬찬히 읽어봐야 할 책이다.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말 그대로 요즘 핫한 책이다. 변호사로 있을 때 남다른 필력을 보여주던 금태섭 국회의원이 먼저 읽고 감동하여 300권을 주문하여 다른 의원실에 돌렸다는 책이다. 요즘같은 소설 불황의 시절에 출간 4개월만에 1만 5000부가 나갔다.최근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복잡하고 자폐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이 소설은 82년생(서른 다섯)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실체를 선명한 사진처럼 보여준다. 대학을 졸업한 후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한 살에 결혼해 딸 아이 하나를 키우고 사는 김지영. 그가 겪는 낭패의 순간들은 오늘의 여성들이 매일 마주쳤을(혹은 마주치게 될) 장면들의 연속 컷이다. 임금차별, 유리천장, 성희롱, 감정노동, 일과 육아, 시댁으로 상징되는 봉건유제와 낡은 의식. 이 모든 것들에 쥐어 짜지면서 김지영은 미쳐가고, 어느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문이 트여 그동안 감춰두었던 가슴 속의 깊은 말들을 터뜨리기 시작한다.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려움모든 장면에 공감할 여성들은 물론 하늘의 반쪽을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남성들에게 함께 읽자고 권하고 싶다. 이 땅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사방에 진주한 이 봄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상처와 갈망이 세상을 향해 마침내 터뜨리는 오랜 시간의 발화임을 깨닫게 한다. 다시, 봄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3.21 23:02

영화 '눈길'에서 만난 치유

두 소녀가 눈에 밟혀 며칠을 울었어요.영화 〈눈길〉을 본 한 심리상담사는 가정파탄으로 오갈 데 없는 자기 내담자도 함께 떠올렸다고 했다. 영화는 순백의 설원에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매끈하고 잘 생긴 자작나무들을 여러 번 보여준다. 그 숲을 일본군 위안부 소녀 둘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걸어간다. 자세히 보니 자작나무는 몸 곳곳에 시꺼먼 흠집이 나 있다.사람은 실감으로 세상을 살아많은 세월이 흐른다. 영화는 홀로 당차게 사는 할머니 종분을 비춘다. 종분은 위안부 갈 때 납치를 당했기에 공적 기록이 없다. 자작나무 숲을 같이 걸어가던 친구 영애 이름으로 살고 있다. 연립주택 옆집에는 홀로 사는 여고생 은수가 있다. 정학당하고, 집세도 공과금도 못 내서 곧 거리로 나앉아야 할 처지에 놓인 절박한 아이다. 늦은 밤, 종분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은수에게 처음으로 자기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지옥보다 무서운 나날을 영애와 둘이 의지하며 버텼다고, 기진맥진한 몸을 끌 듯하며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그 부대에서 홀로 살아남았다.영화가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세계를 닮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대고모 밑에서 자란 감독은 외톨이로 세상을 떠돌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영화는 항상 우울하고 죽음에 대하여 지순(至順)하다.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죠? 실감(實感)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무엇인가에 닿았을 때 전달되는 에너지, 그 느낌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감독은 또 문을 강조한다.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의 원제는 두 번째 문인데, 이는 세상을 여는 장치를 뜻한다. 그러니까 삶이란 소중한 사람과의 애착, 연대 그리고 또 다른 문을 여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일본군의 만행, 위안부 참상 등을 다룬 영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번도 자신의 아픔을 들춘 적 없는 종분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은수가 실감을 느끼게 하려고, 다른 문을 열게 하려고 자기를 버렸다. 은수에게 전달된 할머니의 에너지는 구원으로 전환된다. 이제 할머니는 세상을 향해 자기가 먼 길 다녀왔다는 고백을 해야 한다. 자기 주민등록 만들고, 다른 문을 열어야 한다.고통을 내보내는 방법 터득해야지구에는 명칭과 방법을 달리하는 심리치료법이 400여 개 있다고 한다. 세상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인간의 심리 정서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치료법들이 비례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 살면서 고통이 들어오는데, 내보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영화치료도 여러 방법의 하나이다. 각종 영상매체를 심리상담심리치료교육에 활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심리적생리적 채널을 통해 전달되는 효과가 커서 날로 이용자가 느는 추세다.오늘 영화를 통해 극한상황을 이겨내는 두 인물을 모델링 했다. 영화 보는 동안 경험한 수용성은 고통과 두려움에 대하여 내적 전환을 도와준다. 그 험한 시간 나를 지탱한 힘은 나를 속이는 데서 나왔다.라고 말하는 종분을 보면서 나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문을 열지 생각하게 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3.14 23:02

미래문화유산, 대간선수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하는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과 박태원의 「천변 풍경」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70년대 영화 〈바보들의 행진〉과 〈별들의 고향〉까지. 미래유산이란 우리가 지금 보고 사용하던 것을 후대에 남기고 싶은 가치를 말함이리라. 고궁이나 종묘 같이 거창한 공간 말고 장충동의 체육관과 족발골목 그리고 문학작품까지 포함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완주~익산~김제~군산으로 이어져전주가 쉬고 있을 리 없다. 한옥마을 말고도 서학동 예술인마을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깨끼나 두루마기 한복을 만들고 과거 미군 군복을 줄여 검은 물을 들인 스모루바지와 양키시장에서 흘러온 청바지를 수선하던 풍남문주변 청바지골목이나 김남주 시인과 신영복 선생의 청춘을 가둔 전주교도소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골목과 하얀 페인트의 큰집 역시 백성들의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음에 보존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리라.완주 익산 김제 군산을 아우르는 미래유산이 있다. 이름하여 대간선수로다. 한 때 나이아가라 폭포라 불리며 유원지였던 대아댐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산면 어우보 취수구에서 갈라져 해지는 옥구저수지가 그 종착점이니 장장 80킬로미터에 이르는 수로가 그것.5년 뒤면 만들어진지 100년이 되는 엄청난 사이즈의 이 인공수로는 현재도 농업용수와 음용수 그리고 공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시멘트 콘트리트로 노출되어 있는데 삼례 독주항처럼 넓은 곳은 폭이 20미터, 목천포를 기역자로 돌아 전군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8미터 정도의 좁은 물길은 보는 이 없이 무심히 흘러간다.걸어보자. 밥을 벌어다 주던 물길에 이야기가 있으니. 거북이 등이 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밤을 세워 물꼬를 트고 큰물에 배수를 하며 쌀농사를 짓던 백성들의 보릿고개 눈물이 있으니 말이다.강점기 시절, 대아댐 건설과 만경강직강공사 또 이 인공수로의 건설은 당시 최대의 SOC사업이었다. 중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건설에 몸 바친 현장노동자들의 사진과 자료는 농어촌공사가 잘 보존하고 있다.대간선수로의 물은 근대 수리시설이나 도작문화의 역사에 그치는 게 아니다. 삼례를 지나 신흥정수장으로 흘러들어가는 물만도 하루 7만 톤에 이른다. 기나긴 수로를 타고 각 가정의 수도꼭지에 배달되는 물로 익산시민들은 커피물을 끓이고 밥을 짓는데 사용한다. 오늘 저녁에도 말이다.오래된 것에는 유지 보수비용이 많이 든다. 완주공단과 수로 주위 논에서의 농약 오염 등 관리와 감독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곳 상류지점의 물을 파이프로 가두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 결론은 아니다. 청계천도 오픈했고 노송천도 복개를 걷으려는 계획이 있는데, 그 물길 덮으면 안 된다. 작가들은 이 물길의 시절을 작품으로 남기고 감독은 다큐멘터리로 기록해야 한다.'쌀의 고장' 문화정체성 바탕대간선수로를 전북의 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이 동네가 쌀의 고장이라는 문화정체성을 바탕으로 한다. 정체성 같이 거룩한 입장 말고 그 눈동자 그 입술로 지켜보던 전북사람들이 만든 영화 〈피아골〉이나 〈선화공주〉, 센베이의 풍년제과, 결혼예물을 준비하던 국수 이창호가 살던 시계점 또 풍남문 타종소리까지 당연히 미래유산이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지 않던가 말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3.07 23:02

한지 양말과 화지 타올

며칠 전 일본 하네다 공항 출국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점심도 먹어야 했고, 오랜 만에 귀국 선물도 살 겸 상점가를 둘러보았다. 에도시대 풍으로 외관을 꾸민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연히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화지로 만든 목욕용 타올이었다. 아이디어 상품으로 상까지 받았다는 선전과 함께 진열대 위에 소복이 싸여 있었다. 목욕용 타올로는 비싼 편이었지만, 만원이 안 되다 보니 여행선물로는 괜찮은 가격이었다. 전통 기술·현대 문화 접목해 만든 상품홍보영상물까지 돌아가고 있어서 한참을 그 제품 앞에 서 있었다. ‘이 타올이 진짜 종이로 만든 것 맞을까요?’라는 그리 낯설지 않은 멘트를 들으면서, 그래도 이 제품은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로 만든 양말이나 넥타이 보다는 훨씬 실용가치가 크다는 점이 먼저 떠올랐다. 목욕할 때 사용하는 타올이므로 까칠까칠한 질감이 좋을 것이고 몸에 직접 닿는 것이니 화학섬유보다는 천연 제품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색다르게 느껴진 것이로구나. 현대인들의 생활문화를 꿰뚫어 보면서 전통 종이 제조기술의 우수성까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전주시가 한지를 보전·전승시키려는 노력을 떠 올리면서 한참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최근에는 한지장의 신규 지정, 흑석골 한지생산단지 조성사업, 한지 임용장·표창장 사용 정책 등을 발표했다. 그런가하면 한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올리고자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선조들이 만들어 왔던 물건들을 현대에서 쓰임새 있게 하려면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요구한다. 전통과 현대문화 모두를 깊이 이해해야만 전통 기술의 전승자나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다. 화지 목욕 타올은 비록 하찮은 생활용품이지만, 전통 기술과 현대의 문화가 마주해서 만든 상품이다. 목욕이 생활화되었고, 천연제품에 대한 요구가 높은 현대의 소비자들의 생활문화를 꼭 집어 낸 것이다. 그러나 한지섬유로 만든 상품들은 전통이든 현대든 문화를 접어 둔 채 개발된 경우가 많다. 전통 기술을 이용해서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전승과 산업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면 여러 영역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 제조기술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종이 문화에 대한 면밀한 검토, 그리고 상품화 전략에 대한 초감각적인 아이디어 등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어느 한 부분만 특화시켜 개발하기 보다는, 융합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인들 따로, 연구자 따로, 상품기획자 따로, 이처럼 따로 따로 개발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예산만 무한히 낭비한 채 곧장 어느 기관의 보관창고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작은 생활용품에 스며있는 전통문화전통기술과 현대의 문화를 융합해서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든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의 헹켈사가 만든 칼은 대장장이 마을이 그 원조이다. 스위스의 시계도 디지털시계의 출현으로 고전하는 줄 알았더니 여전히 최고의 수공업 시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바틱제품들 역시도 전통기술과 현대문화를 접목시켜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한 케이스이다. 공항 안 한 점포에서 우연히 마주친 목욕용 타올 때문에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하지만, 작은 생활 용품 속에 전통문화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2.28 23:02

책이라는 쾌락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책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 안에 남겨진 무언가를 보물찾기 하듯 책을 뒤적거렸다. 사랑에 깊이 빠졌을 때에는 책 안에서 사랑의 지도를 더듬었으며 목숨을 던지고 싶은 절망의 순간에도 책을 읽으며 희망의 날갯짓을 찾았다. (윤소희 서점을 헤매다)헤어나오고 싶지 않은 '읽기' 중독세상의 여러 중독 중에서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사랑과 책일 것이다. 읽을 때마다 낯선 세계가 시작되어 한없는 환상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서 그것은 같은 마법을 지녔다. 맺었다 풀기가 쉽지 않고 배타적 독점의 특성이 강한 사랑과 달리 책은 어느 페이지에서 멈추든 너그럽게 우리를 보내준다. 읽는 자에 따라 한없이 깊은 우물이었다가 가볍게 건너 뛸 수 있는 개울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목록은 함부로 전시할 수도 없고 목록만으로는 전모를 짐작하기 어려우나 누군가의 책장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에 매혹되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서가를 훔쳐보는 짜릿함은 매우 독특한 관음이라 생각한다. 책의 가장 위험한 중독성은 아직 읽지 않은 책에 있다. 언젠가, 하고 염두에 두었으나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그 실물의 무게와 표지를 만지며 감각하고, 빠르게 몇 문장을 읽어내려갈 때의 아찔함이란 아직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애인을 갈망할 때와 닮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와 나와 사이에 놓인 시공을 압축하고 들이밀며, 때로 돌아서고, 등을 졌으나 뒷모습으로 온통 그를 바라보고, 그가 나에게 가하는 기습적인 폭력에 덜덜 떨다가 후드득 온몸을 적시는 쾌감에 진저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나를 향해 포획의 그물을 던지는 매혹의 문장들을 예감하고 미리 전율하는 것에 그 중독성의 핵심이 있다.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은 읽는 자의 전 존재를 흔드는 한 권의 책에 대한 서늘한 비유다. 그런 흔들림을 자청하지 않는 자, 책을 읽지 않은 자의 세계란 얼마나 지루한 얼음의 세계랴.책을 읽으며 한 문장이 거듭 새롭게 밀려오는 경이를 발견하는 쾌락의 맞은 페이지에 자신이 직접 글을 쓸 때의 희열이 자리한다. 나의 시간과 환상을 빚어낸 책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존재로 비상한다. 산다는 일이 이처럼 읽고, 쓰는 것이 끝없이 자리를 바꾸며 무수한 파문을 이어가는 꿈과 쾌락의 연속임을 실감할 때 우리는 내 하나의 일생이라는 유한성을 넘어 수많은 타인들의 시간 속에서 공존하고 영생하는 것이리라. 읽고 읽히며 전승되는 이 불멸이야말로 책이 건네는 쾌락 중에 최상일 것이다.자신이 직접 글을 쓸 때의 희열간혹 작가는 삶이 어둡고 불행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글을 쓰면서 간신히 현실의 불행을 이겨내며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 작가가 글을 쓸 때의 희열이 대체불가능한 종류이며 / 글에 관한 생각만으로도 뇌 속에서 희열의 호르몬이 솟구친다는 것을 / 그러므로 호흡의 매 순간마다 글이 작가의 존재와 더욱더 얽히고 / 잠 속에서도 무의식 속에서도 찰랑거리며 /호수처럼 무수한 겹의 파문으로 번져가고 영원한 거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 그리하여 생이 많아진다는 것을 / 생의 순간이, 작가의 자아가 무수하게 중첩되고 증폭된다는 것을 / 그러므로 작가는, 가장 솔직한 의미에서, 쾌락의 한가운데서 살아간다는 것을 /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배수아)

  • 오피니언
  • 기고
  • 2017.02.21 23:02

마윈과 포레스트 검프

새해 설계를 위한 전북지방우정청과 우체국쇼핑 공급업체 대표자 워크숍은 색다른 이슈로 활기가 넘쳤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있었던 마윈 회장의 인터뷰 내용이 화두였다. 그의 알리바바는 지난해 광군제 때 60억여 개의 상품을 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배송하고 17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려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해가 바뀌자마자 다보스에 나타났으니 그의 입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미국에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그다. 인터뷰 시작과 함께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한 우려가 있자 트럼프에게 시간을 좀 주자.라며 익살을 부린다.'인생은 험난, 그래도 전진하라'포괄적 글로벌화, 작은 기업들을 위한 생태계 조성, WTO의 약자중심 기능재정립, 세계전자무역플랫폼 구축.좋은 말이 많이 나왔지만, 나의 관심은 그가 할리우드 진출을 표명한데 쏠렸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행복과 건강이란다.영화 보면 행복해요. 미국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좋아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돈을 벌기 위해 고래를 잡는 사람은 없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새우를 잡는다고 했어요.그래서 자기도 지속해서 작은 사업들을 추진하고 해결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인생은 험난하다, 그래도 전진하라, 신경 쓰지 말고.1994년에 나온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1950~80년대까지의 미국의 아픔을 조명한다. 매카시 선풍으로 인한 지식인들의 위축, 흑백분규,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 히피 문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등.영화가 해결사로 내세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IQ가 75밖에 안 되는 지적장애인 포레스트 검프이다. 이 이름은 포레스트 나단 베드포드에서 따왔다고 한다. 남북전쟁 때 남군을 이끌었던 장군으로 지독한 흑인 박해자이자 노예제도를 고수하려 했던 사람.포레스트는 지능이 모자라지만 달리기 하나는 잘한다.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가 하면 월남전에 참전해서 큰 공을 세우기도 한다. 탁구를 배워 국가대표가 되고, 죽의 장막 중국도 다녀온다. 제대 후 새우잡이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정원사로 일한다. 커다란 사건의 소용돌이마다 존재하는 주인공. 이 사람은 어디서든 지거나 죽지 않는다.제니라는 여인이 있다. 포레스트의 애인. 대학을 중퇴한 후 술집에서 노래하고, 반전운동에 참여하며 술과 마약에 빠져 산다. 주인공은 언제든 그녀가 찾아오면 넓은 가슴을 내어준다. 한 시절 미국의 아픔은 이렇게 두 인물로 대비되는데, 급기야 병든 여인은 하늘나라로 간다.'30명 이하 업체가 더 나은 세상을'키 162cm에 체중 45kg. 지방 삼류 대학을 나와 영어 강사로 전전하던 마윈. 20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중국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포레스트 검프와 동일시했는지 모른다. 이날의 이야기도 큰 틀은 영화다. 30년이 흘렀다. 앞으로 30년, 30대, 30명 이하 고용업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며 인터뷰는 끝난다. 30이라는 숫자에 천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가 추구하는 건강과 행복의 실체, 할리우드의 내일, 워크숍에서 귀 쫑긋 세우고 경청하던 전북의 30대 특산품 사업자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2.14 23:02

봄 느린 기차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오래된 로망이다. 파리로 향하는 TGV 안에서 줄리 델피는 에단 호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낯선 열차 안에서 사랑을 만나는 꿈? 안타깝게도 KTX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좁은 나라에 이렇게 열차가 빠르니 의자 조절하고 스마트 폰으로 문자 몇 통 보내면 목적지에 다다른다. 언제 계란에 소금 바를 시간이 있겠는가?임피에서 춘포까지 아주 느리게 가는1914년에 건립된 춘포역사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전라선이 속도 때문에 버리고 간, 이 역은 이제 열차가 서지 않는다. 하지만 열차마니아들에게 춘포역은 성지다. 아울러 80살 넘긴 임피역 역시 연인템 중 하나이다. 발 빠른 인스타 커플들은 이미 다녀갔다.춘포역 주위에는 일제 강점기시절 호소가와 농장건물이 아직 남아있고, 만경강이 지척이다. 임피 가까운 이영춘가옥을 지나 군산에 이르는 길은 시간여행의 최적지 아닌가. 그래, 임피에서 춘포까지 아주 느리게 가는 기차를 달리게 한다면? 그래서 모였다.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시범 운행, 다음에는 매주 운행, 그리고 주말에 느린 기차 운행이 정례화 되는 날을 만들어 봅시다. 까마귀떼 교복군단으로 김제에서 익산으로 통학하던 역장과 함열에서 덕진으로 전북대를 다니던 교사 그리고 건축학과 교수, 소설가와 시민 등이 함께 했다. 근사한 이름이 필요했다. 하여, 나온 이름이 봄 느린 기차다.봄 느린 기차 멤버들과 카메라를 메고 기차마을들을 찾아갔다. 득량은 뜨고 싶어 애를 쓰는 모습이었지만 역 빼고는 마을의 7080풍경들이 세트로 느껴졌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서는 교련복 입은 차장의 만담을 듣는데 조금 조용히 있고 싶었다. 산타클로스가 온다는 강원도 분천역은 그저 귀엽다는 느낌. 의왕에 자리한 철도박물관을 들르니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인 황등역으로 박물관을 뺏어오고 싶었다.한반도를 주유하는 철도 기관사인 박흥수 작가에게 강의를 부탁한 후, 느린 기차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군산에서 임피를 거쳐 익산역으로 들어오는 들판은 한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철도길이지만 철도는 장치산업이다.그 꿈은 도전해 볼 만하다 했다. 곡성 기차마을을 궤도에 올린 코레일관광개발 오선수 지사장은 지자체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훈수를 했다. 맞다.한옥마을을 처음 구상할 때 얼마나 문제가 많았겠는가? 선로와 시간이 문제라면 춘포역에서 두어 시간 쯤 쉬어가게 하면 된다. 춘포마을의 오래된 동네와 만경강 직강공사로 길을 잃은 강이 소(沼)가 된 과정을 돌아보고 만경강 문학공원까지 걷다보면 민간인 갑과 을은 썸을 타는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군산에서 시작 남원까지 가면 더 좋아시장과 도지사에게 일할 거리를 주고 싶다. 코레일 측과 국과장들 함께 임피역과 춘포역에 가서 보시라.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제2의 버스커버스커가 봄개나루(春浦) 같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거나 공유와 김고은이 춘포역에서 한 커트 찍게 하는 것은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몫이다.타협한다. 아무리 느리게 달려도 임피에서 춘포는 너무 짧다. 사실 이 열차는 군산에서 시작해 익산지나 전주까지 호남평야를 느리게 지나가야 맞다. 할 수 있다면 이 기차가 서도역 지나 남원까지 가도 좋을 것이다. 한옥마을을 설계한 문화판의 선수들 그리고 전북문화기획의 고수들, 한 수 가르쳐 주시라.

  • 오피니언
  • 기고
  • 2017.02.07 23:02

사람 중심의 역사·문화정책으로

문화나 역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정신이 포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 지역의 문화정책에서는 혹시 사람 대신 역사의 유적유물만을 중시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문화 대신에 보여주기 좋은 명품이나 공연, 관 주도 축제나 문화공간 만들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본다.기능실리 추구하는 이들의 무지함전주에는 자만동, 옥류동이라고 부르던 유서 깊은 동네가 있다. 승암산을 뒤로 하고 전주 천을 끼고 발달한 이곳은 전주의 탯자리나 다름없다. 후백제 이래 治者들의 흔적으로부터 근세를 힘겹게 산 사람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래서 일제가 이곳을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이곳에는 일제에 맞서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결연한 정신의 지도자였던 최병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유학자들의 얼이 아직도 곳곳에 서려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최근에는 이 마을 곳곳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선조들의 얼을 기리기는커녕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느 도시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요란한 벽화로 덮여 버렸다. 그 벽화를 그린 이들이나 주민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문화 보다는 기능과 실리를 추구하는 이들의 무지함, 행정부처의 무심함을 탓하고 싶다.안동은 전주와 자매도시이며, 전통문화를 내세워서 문화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점은 사람에 초점을 둔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동시의 홈페이지를 가면 60명 선인들의 행적을 문화관광 란에 올려 두었다. 경상북도청에는 1,692명이 역사 인물로 올라와 있다. 그런데, 전주시와 전라북도 홈페이지에는 역사인물란이 없다.지역 곳곳에 숨어 있는 자랑스러운 선조들을 기리는 일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높은 관직에 올랐던 이들, 위대한 학자만을 내세우는 역사 인물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지평을 넓혀서 지역을 위해 몸 바친 선조들을 하루 속히 발굴해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연간 오백만명이 다녀간다는 한옥마을 안에도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나라와 지역을 위해 살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난진이퇴(難進易退)의 청백리 목산으로부터 일제시기 서슬 퍼런 기개로 오목대를 지킨 남강, 왜경이 놓은 화염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금재, 향교를 사수한 고재와 면와, 한묵회를 이끌고 서예의 산실이 된 효산 등이 남긴 이야기는 대대손손 이어가야할 소중한 역사이다. 이들의 행적과 정신을 후손들에게 교육시켜서 지역사를 일깨우게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젊은 청소년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구체적인 역사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한다.자랑스러운 선조들 기리는 일 우리 몫최근에 영남이나 안동이 양반문화의 산실로 비추어지고 있는 바 이는 현대의 역사가 및 정치행정가들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을 빛낸 인물 1,700여명을 발굴해서 도청 홈페이지에까지 올려두고 주민들, 관광객들, 어린 학생들에게 알리는 그런 노력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과거에 아무리 유력한 고장이나 집안이었다고 하더라도 현대를 사는 후손들이 그러한 의식이나 노력이 없으면 역사와 문화는 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사람 중심의 역사와 문화가 발굴되고, 기록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후세들을 교육시키는 그런 역사문화 정책이 세워지기를 정유년 새해 소망으로 삼아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1.31 23:02

부역자

선생들에게 많이 맞고 자랐다. 6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장교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학교는 또 하나의 병영이 되어 ‘일사불란 총화단결’을 말단까지 관철했다. 교사들은 거대한 폭력체계의 끝자락에서 지극한 ‘사랑의 매’로 아직 솜털이 부성부성한 아이들의 맨살을 수시로 터지게 했다. 그날따라 기분이 몹시 안 좋았던 선생이라면 맨손으로 얼굴을 후려치는 것도 부족하여 대나무 뿌리, 슬리퍼로 아이들을 잡았다. 감히 말대꾸를 하면 그야말로 먼지 나게 맞았다. 그 무차별의 폭력 아래 부서져 내린 교실에서 우리는 김칫국물 흐르는 도시락을 까먹고, 교련 선생의 베트남 참전 야사를 무한반복으로 전해들으며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우지 못해 조바심을 쳤다. 그것을 바꿀 수 없는 세상의 질서로 알고 살았다. 천박한 자들에게 굴신해 온 우리들어디 학교뿐이었을까. 집집의 식단과 성생활, 불러야 할 노래, 두발과 치마의 길이까지 관여하는 ‘관’은 무소불위의 힘이었다. 김남주 시인이 “집안에 면서기 하나 순사 하나 산감 하나 나면 왠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썼듯 공무원은 출세의 권력이었고 나라 자체와 같았다. 87년 6월항쟁은 일방통행이었던 국가권력에 수십 년 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제6공화국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제 손으로 선출하는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되찾았고 91년 지방자치선거를 거치면서 지방권력을 일부 제어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아래로부터 교사조합이 시도되면서 학교 현장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87년 대선의 패배로 낡은 것을 제대로 한 번 청산할 기회를 놓치고 긴 우회를 거치면서 수구세력은 더 교묘하고 강건하게 살아남았다. 박근혜의 집권은 수구세력이 이제 시대정신까지 장악하며 완벽하게 복귀한 것만 같았다. 저들의 웃음소리가 권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모욕하는 집권자의 변설을 귀에 담자니 하루하루가 참으로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랬는데 기적처럼 구중궁궐의 권력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 오만과 무지가 만든 제 수렁에 빠진 것이다. 매일 더 추악한 민낯이 폭로되는 박근혜 세력을 보면서 이들이 사태를 명민하게 알아차리고 일찌감치 퇴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행정부, 검찰 등의 공안기관, 언론 곳곳에 틀어박혀 있던 적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낼 수 있었다. 후안무치인 저들의 항변권을 법이 허용하는 데까지 보장하고 매우 답답하게 진행되는 탄핵 절차를 지켜가는 것도 ‘공화국’의 실체와 한계를 몸으로 겪어내는 소중한 시간이다. 마침내 공포 기술자 김기춘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머리칼을 싹둑 자르고 슬리퍼로 모욕하며 몽둥이 찜질을 가했던 평범한 얼굴의 교사들, 경찰들, 지극한 냉소의 눈빛을 흐트러뜨리지 않던 검사와 판관들이 떠올랐다. 악몽이 참으로 길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선생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작은 김기춘들, 부역한다는 죄의식도 없이 완장을 찬 자들. 아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용서하지 못한 것은 저토록 천박한 자들에게 턱없이 굴신해온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오랜 모욕의 시간, 확실하게 선 그어야다가오는 선거에서는 유신의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50대가 캐스팅 보터라고 한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 이 오랜 모욕의 시간에 확실하게 선을 그을 사람. 오십의 나이가 자랑스러울 그 시간을 기다린다. △ 이재규 작가는 치유의 글쓰기워크숍 ‘작가의 방’기획자이고, 저서는〈시와 소설로 읽는 한국현대사〉 〈사람의 숲에서 길을 묻다〉 등을 썼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1.24 23:02

2017년 설, 택배가 살아있다

어느 선배 우체국장 이야기다. 야근하는데 택배 하나가 작업장을 마구 돌아다니더란다. 잔뜩 긴장하고 달려들어 붙잡았는데, 열어보니 살아있는 닭이었다. 닭발이 포장지 사이로 빠졌고, 놀란 닭이 상자를 둘러쓰고 마구 뛰어다녔다는 이야기다. 야근에 지친 나머지 헛것을 봤거나, 졸다가 꿈을 꾸었거나, 상상했거나……? 정말 닭이었을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2017년 설을 앞두고 다이어트 하는 택배가 여럿 있음을 보게 된다. 아직 기간이 남아있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더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들은 서로 말도 한다. “너는 어디서 왔니. 처음 보는데?”질문을 받은 택배가 답한다. “나이 먹더니 눈이 나빠졌구나.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그걸 못 알아본다는 말이야?” “…….”인간은 아름다워지고 싶어 은유 쓴다우체국에서 오래도록 도어 투 도어(화물운송에서 물건이 있는 출하지부터 최종 목적지의 수하인에게까지 서비스하는 것을 말함)를 하다 보니 택배가 생명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침 작업장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뛰고 있는 택배를 보고 있자면 온 세상이 다 그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경건해진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일정한 수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또한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익산우체국의 경우 평상시 하루 평균 4000여 건을 접수하고 4000여 건을 배달한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집배원을 뜻하는 이 영화에는 세계적인 명성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귀양살이하는 집 전담 집배원 ‘마리오’가 나온다. 시인은 마리오에게 시 쓰기를 권하며 은유를 가르친다. ‘은유는 사람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마술과 같아.’라며. ‘들판에서/ 밀의 귀들이 바람의 입속에서 울리고 있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은유를 배운 마리오는 급기야 짝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당신의 미소는 장미, 부서지는 은빛 파도.’라는 기막힌 은유를 써서 마음을 얻는다. 촌뜨기 총각의 은유는 섬 전체를 숨 쉬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다이어트 한 택배가 묻는다. “나 예뻐요?” 이렇게 답해준다. “앙증맞고 귀여워. 그러니 몸매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처음에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어.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이지.” ‘백곰 효과’라는 게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북극의 백곰을 절대로 상상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백곰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을 억누를수록 백곰 생각은 더욱 커졌다. 교수 연구팀은 백곰이 생각날 때마다 빨간색 폭스바겐을 떠올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백곰을 생각하는 빈도가 훨씬 줄었다고 한다. 생각을 가둬놓고 키우는 '백곰효과'규율을 어기지 않는 것 보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리라. 백곰과의 한판 승부도 같은 맥락의 고민 때문일 것이다. 갈등하는 설……. 답을 쉽게 찾자. 내 마음이 택배다. 머릿속에서 형상화 된 장면이 떠오르고 그것이 가슴을 흔드는 것이면 된다.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마리오. 택배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은 물건이라기보다 노래요, 이미지 아닐까. 지금부터 이들의 노래를 적어둬야 하겠다. △이승수 지부장은 익산우체국장으로 저서로는영화에세이 〈울면 지는거야〉, 영화치료 전문서 〈영화치료의 기초 : 이해와 활용〉 등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1.17 23:02

그 때 거리

여수가 대박이다. 여수 엑스포 때문에? 설정은 그렇지만 정서적으로는 버스커버스커가 부른 여수밤바다가 일등 공신이다. 순천에도 훈짐이 퍼진다. 순천만 정원이란 하드웨어에 내일로라는 열차 패스도 한몫했다. 전라선 열차카페는 입석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아날로그적 향수 자극하는 전주군산이 열차가 일단 전주만 지나면 슬림해진다. 왜? 풍남동의 한옥 밀집거리라는 강력한 킬러 콘텐츠 때문에. 꼬치구이가 어떻고 하는 질투의 시선이 난무하지만 한복 입은 젊은 여성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 폰은 전국으로 전주의 풍경을 실시간 실어 나른다. 손에는 첨단기기를 들었지만 먹고 입고 자는 데는 옛것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서해금빛열차 역시 승차율이 높다. 듣기로 열차 내에는 온돌마루와 족욕카페도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이 열차의 핫 포인트는 당연히 군산의 근대화 거리다. 그래, 군산 떴다. 동국사에서 옛 군산세관에 이르는 길에는 단팥빵 종이박스를 든 관광객이 그득하다. 해산물이 풍부한 동네답게 짬뽕집에 긴 줄이 서고 영화 〈타짜〉의 히로스 가옥과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사진관은 거의 순례지다.이 모든 열차의 중심에 유네스코역사문화도시 익산역이 있다. 서해를 돈 금빛열차는 익산에서 다시 용산으로 돌아가고, 용산에서 출발한 KTX복합열차는 익산에서 절반을 분리해 여수 밤바다를 향한다. 주말 오전 10시 12분, 테트리스 닮은 익산역에 내린 손님들이 군산이나 부안으로 향하고 나면 역 광장은 다시 조용해진다.익산역에서 내려 중앙동 오래된 거리를 10분만 걸으면 익산문화재단이 사용하는 100년 다 된 예쁜 건물이 나온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촬영한 장소이다. 원래 전주 풍남문 앞 골목에 위치한 공익질옥이라는 곳에서 촬영하기로 했는데 내부를 게스트하우스로 바꾸었기에 원형이 잘 보존된 일제강점기 시절 익옥수리조합 건물에서 찍게 된 것이다.이 붉은 색 벽돌 건물은 1950년대 대한체육회 건물로 영화 속 그림을 잡으면 좋겠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화제작자 차승재가 익산문화재단 건물을 보고 한 말이다. 늦가을 익산영화인문모임 강의를 마치고 KTX로 돌아가려는 그를 붙잡고 익산 시내 뺑뺑이를 돌렸다. 중앙동 삼산병원 우아한 근대건물부터 20세기 키치모텔에 이르는 그때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세트가 필요 없는 거리와 건물들에 살집이 가득한 이 영화제작자가 스위스 월드컵 영화의 장면들을 기획한다고 나는 믿었다.미륵사지와 왕궁탑은 최고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열차로 움직이는 청년들은 손 내밀면 다가설 수 있는 삼촌과 형님의 역사가 궁금한 것이다. 응팔 시리즈가 그것을 증명하고 역사선생 설민석이 뒤를 받친다. 하여 젊은이들은 래퍼 개코와 광희가 부른 윤동주를 담은 당신의 밤을 랩으로 흥얼거리는 것이다. 디지털세상일수록 아날로그적 향수를 자극하는 전주와 군산을 찾는 이유다.익산도 근대화 시간여행 공간 되길전주와 군산에서 초코파이와 단팥빵을 산 손님들이 이곳 그때 거리를 꼭 다녀가면 좋겠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지만 훈짐으로 묻어가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여수밤바다가 뜨니 순천 벌교가 함께 떴다. 옛날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그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 전주와 군산에 이어 익산이 근대화 시간여행의 세트로 함께 뜨길 바라는 마음에서다.△신귀백 씨는 전북독립영화제 조직위원이며 장편다큐멘터리 〈미안해, 전해줘〉를 감독했고 저서로는 〈영화사용법〉 〈전주편애〉 등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1.10 23:02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청렴한 세상

민주주의를 사수하려는 시민들의 힘은 위대하다. 영하의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을 들고 전국의 거리를 메우고 있는 이들의 수가 백만 명을 훌쩍 넘는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외치는 시민들의 소리가 제야의 종소리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펴졌다. 새해에는 평화의 촛불시위가 승리하여 시민들의 힘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되기를 소망한다. 대립의 구도로 몰아가려는 세력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에 기실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여 만든 큰 함성의 힘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시민의 큰 함성 쉽게 사그라지지 않아시민혁명이 서양의 역사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고 시민의식이 성장한 곳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작은 힘들이 뭉쳐서 분연히 일어난다. 세계가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를 보도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평화로운 시민투쟁의 과정과 그 결말에 대한 궁금함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CNN, BBC, NHK, CCTV 등 세계 굴지의 뉴스 앵글이 부패문화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시민들에게 향해 있다. 백만이 넘는 집회의 규모에 놀라워하거나 인산인해를 이룬 속에서도 평화로운 축제의 한마당을 벌리는 광경에만 놀라워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이 짧은 기간 내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문화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비단 외국인들만 궁금한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사실은 알고 싶은 부분이다. 정경유착의 뿌리깊은 관행과 부패의 문화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른 바 패거리문화라 하는 정치권과 재벌의 유착관계를 과연 쉽게 끊어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패거리 조직과 의식구조가 국가를 경영하는 가장 윗선뿐만 아니라 중간 허리들 그리고 시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아래선 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의 ‘문화’가 만연했기에 ‘김영란법’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어느 국제 조사기관이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국가이미지를 조사해 보았다. 국가의 청렴도를 물었는데, 가장 깨끗해 보이는 나라에게는 1점을 주고 부패의 정도를 숫자로 누적해 가는 방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37점을 받았다. 국가의 청렴도 이미지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명한 사회 시민들 힘으로 가능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법만 가지고는 더 더욱 어렵다. 오로지 시민들의 힘 즉 문화를 만들고 바꾸어가는 사람들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권력을 동원해서 금방 올라선 이들이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에 절망하기 쉽다. 이 어두움 속에서도 수천 명이나 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 그리고 촛불을 들고 결연히 일어서는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의 날카로운 필력이,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이상향을 그리는 화폭이 그리고 마침내는 촛불의 함성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함한희 교수는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이며 무형문화연구원 원장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1.03 23:02

따뜻한 기술을 기대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에 의해 지배되어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매트릭스에서 평생을 1999년의 가상현실을 살아가는 매트릭스가 생각난다. 또 바이센츄리엘 맨이란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의 영화에서 주인공 로봇 앤드류가 생각난다. 그는 창의성을 우연히 갖게되어 여러 창조적 활동을 하지만, 정부가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거부되자, 무한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 양전자 두뇌를 파과하여 삶을 마감한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극적으로 다르게 표현된다.누리는, 나누는, 따뜻한 기술 발전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자료 대부분은 자동화, 초연결화에 따른 편리성과 직업의 변화, 미래의 교육에 논점을 맞추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위의 두 영화에서처럼 미래의 생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기술의 성격이해와 기술 트랜드의 파악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역사상 기술 발전 과정과 4차 산업혁명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앞으로 기술은 누리는 기술, 나누는 기술, 따뜻한 기술로 발전해 갈 것으로 생각한다.사실 모든 기술의 발전은 인간 능력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는 역사상 지속되어 왔다. 문화기술측면에서 기술은 전문적 예술 표현 능력을 확대해 주는 누리는 기술들이 발전해 갈 것이다. 일례로 사진기의 발명은 사물의 정밀 묘사에 노력하던 화가의 영역을 일반인들이 손가락 하나로 가질 수 있게 하였고, 이와 함께 디지털 사진기와 포토샵의 대중화로 많은 사람들은 합성과 이팩트 작업 등의 특수 효과를 작은 시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게임 분야에서도 수억원에 달하였던 게임 엔진들이 무료로 제공되고 그래픽소스, 프로그래밍 소스, 뮤직 소스들을 애셋에서 저렴하게 제공되어 1-2명의 개발자가 게임을 손쉽게 제작할 수도 있다.초연결성의 극대화는 집단지성과 빅데이터 활용기술들이 힘을 가지게 한다. 이에 따라 개방성을 가지고 공유 플랫폼을 지향하는 기술이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는다. 복잡한 전문기술의 활용 측면, 여러 서비스 및 비즈니스 모델의 확대 측면, 사회적 가치의 실현 측면 등으로 나누는 기술이 확대될 것이다. 이는 잘 알려진 우버 택시나 에어비&비 서비스 등이 있다. 자동차와 주택에 대한 공유 시스템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자전거의 경우도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공유 플랫폼을 사용한다면 관광 및 친환경 도시 조성의 측면에서 많은 잇점이 있다. 자전거 수리, 주차, 대여, 반환, 재배치 등에 장점을 가질 수 있다.세 번째로 기술은 우리의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 갈 따뜻한 기술로 나아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해 로봇이 발전하면 인간 생활의 편리성은 증대 되겠지만, 직종이 없어지고, 감정까지 상품화하고, 경쟁이 더 강화되고, 부가 편중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에의 권한 부여에 의한 기술의 민주적 지배체제가 필요하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기술, 지배 세력의 권위에 대항할 수 있는 기술 등을 만들고 지원해야한다.4차 산업혁명 긍정적 미래 기반이번 촛불 집회에서 석정현 작가가 광화문 활주로를 자유롭게 나는 고래와 그 등에 탄 채 우리를 지켜보는 세월호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진실을 인양하는 고래라는 증강현실 앱을 개발한 이군섭씨의 노력처럼 가치를 지향하는 기술, 따뜻한 기술의 개발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을 긍정적 미래 사회의 기반으로 삼게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12.27 23:02

문화적 표현과 문화적 권력의 사이

이제 이 달 12월을 보내면 2017년을 맞이한다. 2016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작년 2015년 한해에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모두 1만 4427명으로, 하루 40여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0만 명 당 자살자가 27.3명으로 우리나라는 13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자살자를 내었다.일반적으로 자살의 원인이 되는 요소로 우울증이 언급되는데, 우리나라가 장기간 연속 1위의 자살률 국가라면 사회 전체가 집단 우울증 상태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재산을 10억 이상 소지한 4%의 국민을 제외한 96% 국민의 경제적인 측면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 건강과 외모지상주의의 외곽에 있는 노년층의 고통과 분노, 학력과 취업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 육아와 양육의 부담에 시달리는 여성 등 대다수의 국민에게 분노와 그 다른 쪽 얼굴인 우울증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일상에 잠식하는 우울증한국자살예방협회의 관계자들은 대부분 자살자들은 필사적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단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뿐이라고 하고, 그들은 자살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좌절과 분노 속에서도 대안을 찾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작은 빛을 발견하며, 살아남는 것이 현재 살아있는 존재들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그 작은 빛을 잃지 않도록 가까운 이웃들과 자신을 쉬게 해주고, 위로해야 하는 12월이다.문화적 표현의 체험은 우리에게 작은 빛의 의미를 선사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작은 빛이 되도록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연극 한 편, 영화 한 편, 음악 한 곡, 전시회의 그림 한 점은 우리에게 작은 빛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창작활동에 직접 참여한다면 더욱 강렬한 빛이 될 것이다.우리는 가정과 사회적 관계에서 학습한 공격적인 언어와 회피적인 행동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지만, 기실 우리의 정서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문화적 표현에는 취약하다.자신의 정서를 잘 돌보기 위해 필수적인 문화적 표현들을 문화적 권력을 지닌 유명 창작자나 기획자들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높이 올려놓고, 우상시했기 때문이다.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표현의 취약성은 우리의 삶을 거칠고, 고립되고, 그래서 힘겨운 상태로 이끌어간다.문화적 표현을 체험하고 실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솔직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표현들은 거친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니 오류를 범하기 일쑤이고, 상황을 악화시킨다. 대부분의 솔직하고 거친 언어들의 메시지는 나는 문제가 없고, 당신이 문제가 있어서 결과적으로 내 삶이 괴롭다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문화적 표현들에 대한 체험은 우리 정서를 객관화시킬 수 있고, 상대방의 정서도 객관화시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문제와 거리를 두면서 숨 고르기가 가능해지고, 판단의 순간들에 여유를 갖게 해준다.문화적 표현 체험을 통한 극복2016년과 완전히 이별하기 전에 문화적 표현을 1인극으로라도 실험하고 실습하면서 실천해 볼 필요가 있다. 지적으로 배우는 것도 좋지만 예술체험을 통한 학습이 효율적이다. 창작의 기능적 훈련을 통해 문화적 권력을 소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창작과 관람의 두 국면을 자율적으로 왕복하면서 문화적 표현을 체험하는 주체가 되어, 집단적인 우울증의 포로가 되지 않는 12월이 되기를 희망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12.20 23:02

공연예술로의 양식화와 규격화

개체는 차이 즉, 서로 다름이라는 다양성 가운데서 존재한다. 다양한 개체 속에서 균일하거나 유사한 개체 또는 집합체를 통해 양식이 만들어 지고 이에 맞게 다양한 개체들이 규격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식화는 그 목적이 미적이거나 기능적일 수 있지만 규격화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특정 목적과 기능에 따라 규격화된 개체들은 다양한 속성, 즉 다양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에 있어 규격화는 늘 경계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배척해야할 대상 또한 아니다. 이는 마치 갈등구조와도 같이 느껴진다. 다양성 그리고 양식화와 규격화... 규격화된 미의식을 추구하였던 고전주의와 이에 대한 파격을 통해 다양성의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던 낭만주의처럼 말이다.민요 규격화에 따른 장·단점우리나라 전통공연예술에서도 양식화와 규격화에 의해 다양성을 잃어버린 개체들이 있다. 삶의 현장에서 불리던 토속민요가 전문가들이 불러 지역의 구분 없이 향유되었던 통속민요의 양식에 맞춰 규격화 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악보화 될 때도 마찬가지로 통속민요의 어법으로 해석되어 서양의 오선보에 기록되다보니 토속민요의 다양성이 쉽게 규격화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생활과 밀접해 현장성과 즉흥성이 생명인 민요가 공연예술화 과정에서 점점 더 규격화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사물놀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물놀이는 무대예술로 양식화된 대표적인 전통공연예술이다. 1978년 2월 서울 대학로의 ‘공간사랑’이라는 자그마한 무대에서 네 명의 연주자가 경기·충청지역의 ‘웃다리풍물’을 연주하였다. 풍물굿이 무대라는 정형화된 공간에서 연주된 것도 또 앉아서 연주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두 달 후 이곳에서 ‘사물놀이’라는 단체명으로 두 번째 공연을 한다(처음에 사물놀이는 단체의 이름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꽹과리, 장구, 북, 징 네 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양식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때부터 김용배,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네 명의 연주자들은 풍물굿을 무대 예술화 하여 관객과 새롭게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산업화와 서구화로 잊고 살았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으며 전통의 소중함과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때 전통문화하면 사물놀이를 연상할 정도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하였는데 무엇보다 더 주목할 점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미 잊힌 풍물굿을 사물놀이 통해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연희자와 참여자를 무대와 객석으로 엄격히 구분시켜 풍물굿의 대동적인 신명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춤과 노래, 재담, 재주, 연극적 요소인 잡색 등의 총체적 연희를 배제하여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축소시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풍물굿이 양식화되고 규격화되며 다양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대예술로 양식화된 개체를 즉, 목적과 기능에 따라 규격화된 개체를 원 속성의 개체와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양식화와 다양성의 갈등 구조무속음악과 관련이 있는 시나위, 시나위의 허튼 가락을 양식화한 산조 또 이들과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판소리 그리고 이들 근간에 존재한 민요. 이 모든 음악들이 공연예술로 규격화되며 다양성을 잃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장성과 즉흥성 또한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성을 위해 규격화된 이들을 다시 해체하여 원래의 상태로 돌려보내야 할까? 아니면 공연예술로 양식화된 이들의 다양성을 최대한 담을 수 있는 규격을 고민해야 할까? 어렵다! 역시 다양성 그리고 양식화와 규격화 이들은 갈등 구조로 얽혀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12.13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