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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정종균 작가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싸늘한 겨울바람에 벌벌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찾아온 기쁜 전화는 당시의 추위가 모조리 날아갈 만큼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동화를 읽으면서 자랐던 제가, 이제는 동화를 쓰는 어른이 됐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격을 느꼈습니다. 사실 처음에 다소 무거운 소재를 고른 건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모든 이별이 비극으로 귀결되지 않고, 모든 상실이 슬픔으로 끝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짧은 생애를 살아오면서 배웠습니다. 죽음 역시 삶의 당연한 일부분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음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동화가 각자만의 사정으로 힘든 순간을 거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영원한 뮤즈이신 어머니, 제 인생 최고의 후원자인 아버지, 그리고 제 첫 독자였던 동생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과분한 달란트를 주신 주님께 감사 말씀 올리며, 언젠가 뵙게 될 그날까지 순종하는 종으로서 창작을 이어갈 것임을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정종균 작가는 단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중이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4.01.01 16:20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움쑥 - 김서연

기별은 없고, 어머니 영가를 모신 선운사로 향했습니다. 도솔암까지 가는 길엔 눈발이 날렸고 참 멀다고 생각하는 동안 짧은 겨울 해가 걱정이 됐습니다. 지나는 경내 차량이 태워준다고 했지만 못 본척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동생들에게 보였던 늠름함을 잃지 않았는데 빼꼼히 열려있는 법당 문을 보는 순간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 마당 너머 보살들이 머무는 마루 끝에 앉아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가며 뜨거운 것을 닦아냈습니다. 온갖 무장들이 흘러내렸습니다. 절간에서도 나부끼는 성탄 축하 현수막은 어머니의 답장 같았습니다. 아쉬운 소리 못하는 우리 어머니, 하늘에 닿을만한 기도는 얼마큼일지. 이제 정말로 씩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롱이 다롱이, 놓기 아까운 글들을 내려놓고 제 글을 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친정같은 정읍수필 문학회 문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것이 사치 같았던 환경에서도 늘 지지해 주는 내 가족, 사랑합니다. 무슨 인연일까? 내게 와 주신 최윤정 선생님 하늘만큼 감사하고, 아직도 어머니의 기도를 필요로 하지만 내게 글 동냥 시켜가며 빠져나간 영혼을 붙잡아준 동생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말 전합니다. 고맙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김서연 작가는 현재 정읍수필문학회 회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1.01 16:20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고통과 희망 사이, 팽팽한 긴장으로부터 일어서는 글쓰기

글쓰기는 즐겁고, 책을 읽는 일이 행복한 세상이 언젠가는 도래하리라는 터무니없는 믿음! 어쩌면 그런 게 이 세상 모든 글쟁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번 전북일보 신춘문에 응모한 소설들을 살펴보았다. 그런 믿음이 아니라면 글쓰기의 과정 속에 통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모색과 끝도 없이 무한반복되는 되새김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어떨 때는 풍자나 은유, 어떨 때는 깊은 침잠을 통해 길어 올린 잠언적 성찰... 작가들은 제각각 고통과 희망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견뎌내며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구축해 나간다. 이번 심사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응모자들이 자신이 펼쳐놓은 작품 세계 속에서 충돌하는 긴장과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해 도달한 지점에는 어떤 미감이나 어떤 메시지가 존재하는가였다. 150여 편의 응모작 가운데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을 검토했다. 먼저, “초상화와 사진관”은 검정 색조를 적절히 상징처럼 사용하며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뤘으나, 플롯의 흐름을 문장이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문장은 뜻을 담는 그릇이다. 조금 더 넉넉하게 키우길 바란다. “박쥐와 거미”는 무척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끌고 간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결말부로 갈수록 앞에서 제시된 호기심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글쓰기란 어쩌면 자문자답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의 동감을 설득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우리 심사위원은 한 마음으로 “미지의 여행”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그간의 소설작법에 비추어 보면 출발점이 불친절한 편이며 듬성듬성 무언가를 빠트리고 있는게 보여 처음엔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이게 작가의 의도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틈이 메워지면서 작품의 골조가 세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읽는 즐거움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말미에 이르면 이 작가가 도달한 어떤 깨달음이나 발견이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줬다. 신문을 배달하다가 수금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만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또한 차츰 깨닫는 게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관습적 사고를 하는지, 이야기의 영역은 새로운 사고와 도전에 의해 얼마든지 넓혀질 수 있다는 것을! 미덥고 기쁘다. 축하보다 정진을 당부한다. 이제 정말 더 길고 긴 문학의 미로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길을 찾으려는 열망이 끝내 길을 찾게 해준다. / 심사위원 송하춘 소설가, 김병용 소설가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1.01 16:19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시적 긴장이 팽팽한 작품

본심에서 숙독한 작품은 11명의 작품 35편이었다. 치열했던 예심을 통과한 만큼 응모작들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시의 어법과 형식을 무리하게 끌어쓰는 경향이 강했다. 자기 시를 쓰지 못하고 검증된 시 쓰기에 편승하려는 모습은 우려스러웠다. 그런 시는 화자가 시의 언어에 끌려다니다가 결국에는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용기 있게 자기 시를 쓰려는 작품을 앞자리에 놓았다. 그중에서 눈여겨본 작품은 「새점 봅니다」 외 4편, 「주말 극장」 외 2편, 「알비노」 외 2편이었다. 「새점 봅니다」는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시어들이 적재적소에 적중하고 있었다. 차분한 어조 속에 쉽게 휘어지지 않을 이미지의 뼈대를 감춰놓는 수법도 믿을 만했다. 그러나 일상의 순간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그려나가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무심한 어법이 조금 더 팽팽하게 긴장했으면 좋겠다. 「주말 극장」은 화자가 시의 서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시상 전개가 활달하고, 언어의 내적 활력이 시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도 소홀히 읽을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그러나 참신하거나 새로운 인지적 각성을 주지 못했다. 기성 시인의 시적 유전자가 너무 많이 발현된 건 아닌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알비노」는 시적 긴장이 팽팽한 작품이었다. 시어들이 종횡으로 충돌하는 힘이 좋았다. 언어를 운용하는 폭이 넓고, 그 넓이가 시적 사유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기성의 시 문법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적 서사가 좀 더 긴밀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 충분히 극복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논의 끝에 「알비노」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인으로 첫걸음을 떼는 투고자의 시적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의 무게를 견디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김용택 시인, 문신 우석대 교수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1.01 16:19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잔잔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 구성

좋은 동화는 누가 읽어도 ‘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일 것이다. 이런 동화는 발상이 재미있거나 울림이 있고 이야기 구성의 완결성이 높은 작품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제목과 관점이 새로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밀고 가는 힘이 아쉬웠다. 문제 해결 방식도 아이 스스로 노력하고 맞서기보다 등장시킨 대상물에 의존하도록 구현되었다. 판타지를 구현할 때 동화라고 해서 아무런 장치도 없이 마법이 일어나고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건 곤란하다. 이번 본심은 이런 관점에 중심을 두고 심사에 임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거짓말 가방>과 <우주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이였다. <거짓말 가방>은 발상이 새롭고 요즘 아이들에게 심각한 ‘거짓말’을 소재를 다루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판타지 설정에 있어 엄마가 샀던 하얀 에코백이 거짓말을 담는 가방으로 변하는 전개가 결정적으로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우주 보완관이 된 우리 엄마>는 어린 수아를 두고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아픈 엄마와 딸의 이별 과정을 담담하게 구현한 동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은 그 어떤 슬픔보다 아프고 괴로운 일이다. 어린 아이일수록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엄마는 어린 딸에게 달나라에 외계인이 숨어 있어 그 외계인과 싸울 수 있는 지구인으로 엄마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엄마를 따라가겠다는 딸에게 한 번 달나라에 가면 오래 걸리니까 안 된다며 대신 망원경으로 항상 지구를 내려다보겠다는 발상자체가 새롭다. 절제된 이야기 전개로 울림을 주는 이 작품은 뜻하지 않게 부모와 이별한 어린 친구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깔끔한 문장도 이 작품의 지닌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다만 어른 시각의 상황 전개가 조금 아쉬웠다. 동화 한편을 완성시키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크게 발전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김자연 아동문학가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1.01 16:18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수필]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남긴 작품

수필은 본디 1인칭 문학의 정수, 작자 자신을 작품에 내어 놓음으로 삶의 본질과 인생의 다양한 형상을 제시한다. 그 방법이나 진솔함이 소설과는 빗겨서 있는 장르임을 감안할 때, 수필이 가진 직접적인 감동과 울림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본심에 올라온 이십여 편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작품마다 아름다운 문장과 오랫동안 갈고 닦은 글쓰기 솜씨에 탄복하여 쉽사리 당선작을 가리지 못했다. 대부분 수사 가득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니 글의 본질에 닿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나친 수사와 묘사, 문장에 대한 유려함이 오히려 수필이 가진 장르적 덕목을 가리는 듯했다. 작자의 글쓰기 솜씨는 훌륭했으나 생명력 넘치는 작품은 드물었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으로 「움쑥」을 선정했다. 지나친 감정 과잉과 지나친 수사가 넘쳐나던 와중, 「움쑥」은 읽는데 가장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남긴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진심 가득한 글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과 남은 유품을 정리는 작자의 심정이 진솔하게 느껴졌다. 문장은 담백하고 안정적이며 절제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내적 울림이 크게 남은 작품이었다.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누군가 새로 쓰게 되면서 겪는 복합적인 감정의 서술은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었다. 시절이 흉흉하여 시나 소설이, 산문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든 때임에도 좋은 작품을 만나 심사가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부디, 많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여는 작품 많이 쓰시길 고대한다. / 심사위원 백가흠 소설가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1.01 16:18

[신년호-용띠 풀이] 최고의 권위를 지닌 최상의 존재, 용

2024년 갑진년 새해의 지킴이는 청룡이다. 60갑자 중 갑진년(甲辰年)은 천간(天干)인 '갑(甲)'이 오행으로는 나무(木)이고, 오방색으로는 청색(靑色)에 해당되어 '청룡의 해'가 된다. 용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동물이다. 용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이지만, ‘안 본 용은 그려도 본 뱀을 못 그린다’라는 속담까지 생겨날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정형화된 뚜렷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머리는 낙타 같고 뿔은 사슴 같고, 눈은 토끼 같고, 귀는 소와 같으며, 목은 뱀과 같고, 배는 신과 같고, 비늘은 잉어와 같고, 발톱은 매와 같으며 발바닥은 범과 같다. 그리고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 9․9의 양수를 갖추었으며…”라고 『본초강목』에서 용을 설명한다. 여러 동물이 가진 최대의 강점들만을 모았으니 이만하면 최고의 존재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용은 날짐승, 들짐승, 물짐승의 복합적인 형태와 능력을 갖추고 기상천외한 모습과 천변만화하는 조화 능력을 가졌다. 용은 뭇 동물 중의 우두머리요, 힘과 조화의 최고자(最高者)이다. △제왕(임금)·왕권, 씨족시조의 상징 용이 가진 장엄하고 화려한 성격 때문에 흔히 용은 위인과 같은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되면서 왕권이나 왕위가 용으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신화 속의 수신(水神)인 용은 혼인을 통해 국조(國祖), 군주, 씨족조(氏族祖) 등 귀인의 어버이다. 석탈해는 용성국 왕과 적녀국 왕녀간의 소생이고, 백제 무왕(武王)인 서동은 어머니가 과부로 서울 남지변에 살던 중에 그 연못의 지룡과 교통하여 출생하였고, 후백제 시조 견훤은 광주 북촌의 부잣집 딸이 구렁이와 교혼하여 낳았다.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과 용녀의 소생인 용건의 아들이다.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은 용의 후예라고 하는 씨족의 시조 신화로서 나타난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의 덕을 용덕(龍德), 그 지위를 용위(龍位)라 하였고,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龍床)·용좌(龍座), 임금이 입는 의복을 용의(龍衣)·용포(龍袍), 임금이 타는 수레를 용가(龍駕)·용거(龍車), 임금이 타는 배를 용선(龍船)이라 하였으며, 심지어 임금이 흘리는 눈물을 용루(龍淚)라 하였다. 특히 임금이 즉위하는 것을 용비(龍飛)라 하였다. 불교에서도 지혜와 덕망이 높은 고승을 용상(龍象)이라 하고 그런 인물이 머무는 사원을 용상굴(龍象窟), 법력을 용상지력(龍象之力) 등으로 불렀다. 불상을 모신 감실은 용감(龍龕), 사원을 용궁(龍宮), 부처의 좌세(坐勢)를 용좌(龍座)라 하는 것을 보면 부처님을 용으로 비유한다. 용은 운행운우(運行雲雨)를 자유롭게 하는 물의 신으로서, 불교의 호교자로서, 그리고 왕권을 수호하는 호국용으로서 기능을 발휘한다. 나라를 지키는 호국신(護國神), 불교를 지키는 호법신(護法神)으로서 용 상징은 우리나라의 톡특한 역사 문화적 소산이다. △물의 신, 용 용의 상징적 의미가 아무리 상이하고 다양하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용은 물과 관련된다. 용은 물에서 산다. 그래서 용은 물이 되기도 한다. 물이 바다이든 연못이든 우물이든 샘이든 대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용이 산다. 용은 ‘물의 원리를 표상화한 것’ 또는 ‘물을 상징한 것’이다. 용의 변화무쌍한 형체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물의 능력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용은 물에서 살며 물을 지배하는 신으로 받들어졌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부터 일반 민간에 이르기까지 용신제, 용왕제 등을 올리며 용의 조화로운 능력을 믿고 의지하고자 하였다. 풍작을 염원하는 농민들의 마음과 안전한 항해 및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소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용을 위하는 의식과 신앙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물의 신으로서 불(화재)을 막는 용 한국 전통 건축물들은 대부분 목조건물이다. 목조건물은 특히 화재에 약하다. 화재를 막고 집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지책을 써왔다. 경복궁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7년 11월 경복궁 경회루 연못 정비작업 중 동으로 만든 용이 발굴되었다. 이 용은 경회루를 중건하면서 목조건물의 화재를 막기 위해서 넣은 두 마리 중 하나이다. 2001년 경복궁 근정전 중수공사 때 발견된 화재 예방을 위한 부적 2점이 발견되었다. 하나는 붉은색 장지에 작은 크기의 ‘龍’ 글자 1000여 개 정도를 써서 크게 ‘水’자 형태가 되도록 만든 부적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붉은색 장지에 발톱이 다섯 개 달린 오조룡(五爪龍)을 그린 부적이다. 목조건물인 경회루, 근정전을 불로부터 재앙을 막으려고, 물을 다스리는 용의 힘을 빌린 것이다. △태몽으로서 최고, 용 해마다 봄철이 되면 황하 상류인 용문협곡에서 뭇 잉어가 모여 급류를 타고 뛰어 오르는데 이때 성공한 잉어가 용이 된다. 이는 곧 경쟁을 물리치고 과거에 급제하여 신하가 되어 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어변성룡(魚變成龍)이다. 한국인은 꿈에 용을 타거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면, 고위관직에 올라 만인을 호령하게 되고, 자신이 용이 되면 성공을 암시하는 길몽으로 여겼다. ‘용꿈을 꾸고 자식을 얻으면 훌륭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장차 크게 이름을 떨칠 자식을 낳게 될 꿈이 바로 용꿈이다. '용을 타고 하늘을 날면 입신출세한다, 용을 타고 하늘을 날면 승진하고 벼슬에 오른다'는 속담처럼 용은 훌륭한 사람에 비유되며 용이 승천한다는 것은 입신출세, 곧 등용(登龍)을 뜻한다. 한국인이 꾸는 동물 꿈 가운데서 용꿈은 돼지꿈과 더불어 최고의 길조(吉兆)이다. 훌륭한 아들을 낳는다는 용꿈은 태몽으로서 최고의 꿈이다. 장차 크게 이름을 떨칠 사내애를 낳게 될 꿈이 바로 용꿈이다. 『홍길동전』에서는 아버지 홍판서의 꿈에 용이 나타나서 홍길동의 탄생을 점지해주고 있다. 사임당 신씨가 용꿈을 꾸고 율곡선생을 낳은 오죽헌의 방 이름은 “몽룡실(夢龍室))”이다. △용, 꿈을 꾸다 변화와 조화의 용은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일으키며 비∙천둥∙번개와 함께 하는 장엄한 비상과 승천에 있다. 용이 갈구하는 최후의 목표와 희망은 구름을 박차고 승천하는 일이다. 새해에 모든 이들이 바람을 이룰 수 있게 승천하는 청룡 꿈을 꾸자.

  • 문화일반
  • 김영호
  • 2024.01.01 16:03

‘흙에 심은 사랑의 인술, 쌍천 이영춘’ 전 개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은 쌍천 이영춘 박사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흙에 심은 사랑의 인술, 쌍천 이영춘'展을 오는 4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이영춘 박사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교수의 지도를 받아 탄생한 첫 의학박사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을 위해 농촌 보건위생에 평생을 바친 진정한 의료인이다. 이번 전시는 이영춘의 모교인 연세대 의과대학의 동은의학박물관(관장 김세훈)과 공동기획했으며,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이자 한국 의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영춘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유품과 사진, 영상 자료 등이 전시된다. 전시는 총 5개 주제로 구성됐으며 1부는 ‘의사가 된 농민의 아들’, 2부 ‘빼앗긴 들에 찾아온 샘물’ 3부 ‘농민의 의료낙원’, 4부 ‘어둠을 밝히는 별’, 5부 ‘에필로그’ 등이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가 된 과정과 일제강점기 소작농을 위해 군산에서 무료로 진료하는 모습, 농민을 위해 치료와 예방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 영춘의 마지막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쌍천 이영춘 박사의 삶을 다시금 살펴보고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히 이영춘 박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물들을 박물관에 기증해 주신 유족분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이환규
  • 2024.01.01 15:34

'규방閨房, 여인들의 공간 이야기' 전개

김제시는 ‘규방閨房, 여인들의 공간 이야기’라는 주제로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에서 오는 4월 28일까지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추수의 계절인 가을이 지나면 겨울 동안 여자들이 규방(안방)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녀들만의 공간인 규방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일상 생활용품을 보여주게 된다. 전시는 총 4부로, 1부‘규방(안방) 이야기’, 2부 ‘바느질 이야기’, 3부 ‘다듬이질과 다리미질 이야기’, 4부‘재봉(재단과 봉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규방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채취와 감각이 드러나는 하나의 공간으로, 오늘날 한층 세련되고 수준 높은 여성의 문화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조선시대의 한글 수필『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에 나오는 바느질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일곱 가지 도구인‘바늘, 자, 가위, 인두, 다리미, 실, 골무’를 의인화하여 인간 사회를 풍자한 글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규방(안방)은 여성들의 다양한 생활용품의 공간이자 그녀들의 정성, 헌신, 열정으로 한 집안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벽골제아리랑사업소 관계자는“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선보이지 못한 규방(안방)에서 사용했던 이색 유물을 살펴보며 역사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최창용
  • 2024.01.01 15:31

[전북의 문학 명소] 14. 우리 마음 닿는 곳마다 문학이 있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단 하나의 힘, 사랑 세상을 이루는 건 자연이고, 그 자연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 부여한 자연의 가장 위대한 가치는 예술이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마주할 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사랑이라는 말로 부른다. 그러니까 사랑은 어떤 것에 부여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치이자,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이다. 이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 예술적 감성으로 충만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주 자기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그 첫 번째 여정을 초남이 성지로 삼아보면 어떨까? 완만한 능선이 우리의 눈높이에서 부드럽게 물결치고, 숱한 발걸음이 다져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인간의 위대한 사랑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인간의 사랑이 신의 부름 앞에 순교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소설가 서철원은 최후의 만찬에서 그 높고 숭고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림자를 나란히 하면서 초남이 성지를 걷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른 사람을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초남이 성지에서 성스러운 사랑을 보았다면, 남원 광한루원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연정을 만나게 된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과 이몽룡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그네에 오르면, 벅차게 솟구치는 사랑의 감정을 알 수 있다.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광한루원을 걸어보라. 그러면 앞서 걷는 그림자까지도 서로 다정해질 것이다. 그러다가 늘어진 버드나무 그늘에서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 당신이 보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담겨 있는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가 또 있을까? 그 투명한 모습으로 혼불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전 10권에 달하는 소설 혼불의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과 만난다. 수백 년의 시간이 묵묵하게 다져진 길과 무수한 사람들의 눈길이 더듬었을 언덕과 산자락이 마치 누대를 이어온 종가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살았던 연인들의 애끓는 사랑이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 간다면, 그 바람 끝자락에 서 있을 강모를 떠올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혼불문학관에 오르면 신분도, 윤리도, 몽둥이도, 시대도, 사상도… 그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절실히 알게 된다. △ ‘나’라는 별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방식, 외로움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어느 날 세상에 툭 던져진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인간은 본질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도 문득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혼자 훌쩍 길을 나서게 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길은 외로운 걸음이 만든다. 길은 외로움처럼 세상 곳곳으로 이어져 있고, 그래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소설이 외로운 길을 말 없이 함께 걸어주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시인 안도현은 외로운 날에 완주 화암사에 간 모양이다. 그는 시 「화암사, 내 사랑」에서 화암사를 두고 “잘 늙은 절 한 채”라고 표현하였다. 실제로 화암사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외로워할 이유가 사라진다. 늙는다는 건 외로움이 끝난다는 뜻이니까. 외로움쯤이야 세상의 먼지처럼 인생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그걸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외로움의 궁극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기에는 화암사가 제격이다. 세상 가장 깊은 자리에서 외로운 사람을 불러들이는 화암사. 그러니 화암사에서 발길을 돌려나오는 사람의 표정에서 잘 늙은 삶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남원 실상사도 혼자 찾아가기 좋다. 아니, 혼자 찾아가야 하는 절이다. 그래야 도종환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진여실상’을 만날 수 있으니까. 고즈넉한 실상사 마당에 서 있으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하다. 외로움이란 그렇듯 자기중심이 강하게 발현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실상사 입구에는 장승이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렇게 알려준다. 그러므로 외로움을 혼자 견디지 말자. 누군가 우리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주 다정하고 따스한 눈길로. 남원의 옛 서도역도 혼자 찾아가기 좋은 문학 명소다. 억새가 흐드러진 가을 오후라면, 그곳에 혼자 있어도 결코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든다. 외로운 기분으로 찾아갔다가 더는 외롭지 않게 되는 곳이다. 남아 있는 철길이 두 갈래라서 그렇다. 한쪽 선로에 올라 두 팔을 펼치고 균형을 잡고 걸으면, 저쪽 선로에서도 누군가 나란히 두 팔을 펼치고 서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손끝과 손끝이 스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것을 두고 인연이라고 해도 좋고, 운명이라고 해도 좋다. 외로움은 인연과 운명 앞에서 조금 작아질 것 같다. 순창 남계리 석장승보다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 장교철 시인은 시 「석장승 남계리」에서 석장승의 외로움을 “별이 떨어진 그 자리”라고 적었다. 그렇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건, 우리 마음에 언젠가 떨어져 내렸던 별이 있어서다. 그래서 그 별이 반짝거릴 때마다 우리는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석장승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 그래서 가끔 우리 외로워질 때마다 남계리 석장승 옆에 서주어야 한다. 서로가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누군가 점점 다가오는 순간, 설렘 사랑과 외로움은 그 시작과 끝에서 언제나 설레는 감정과 연결된다. 설레는 순간 세상은 새롭게 발견되고, 설레는 순간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 새로운 순간이 모든 예술과 문학의 근원이 된다고 오랫동안 우리는 말해왔다. 삶에 설렘이 없다면 우리의 심장은 얼마나 심심할까? 낯선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 앞에서 마음껏 설레보자. 그 자리에 시집 한 권쯤 동행한다면 설렘이 더 크게 박동하지 않을까? 설레고 싶다면 임실 섬진강길을 걸어보라. 맑은 물살을 옆구리에 끼고 물의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걸으면 마음 어딘가에서도 소살거리며 흘러가는 게 있을 것이다. 그 길에서 사랑에 관한 시를 만난다면 더욱 기쁘지 않을까? 섬진강길에 서 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비 앞에서 천천히 시를 읽으면, 나무도 풀도 구름도 햇살도 모두가 설레어 환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옆에 나란히 선 사람을 마주 보아라. 세상이 온통 설레게 될 것이다. 장진영기념관 영화배우 장진영(1972∼2009)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임실에서 태어난 장진영은 전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녔다. 1997년 KBS 드라마 《내 안의 천사》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나, 2008년 9월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이듬해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진영기념관은 고인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 원작 소설인 김하인의 장편소설 국화꽃 향기를 읽고 가보면 좋은 곳이다. 남원의 만복사지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만복사지는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이다. <만복사저포기>는 죽은 여자와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낸 고전소설이다. 주인공 양생은 만복사라는 절에서 부처님과 내기하여 젊은 여인과 인연을 맺은 뒤 재회를 약속했다. 그런데 그 여인이 3년 전에 죽은 여인이라니.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사랑이 강하고 애절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을 읽고 가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날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방황 살다 보면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날 때가 있다. 두 갈래라면 선택이 조금 쉽겠지만, 무수하게 얽혀 있는 길이 있다면 혼란을 겪게 된다. 그것이 삶이다. 가야 할 길 혹은 가고 싶은 길이 없을 때 우리는 방황하고, 방황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럴 때 힘이 되어 주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과 예술은 인간이 가장 힘든 순간에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열어주는 힘이 있다. 임실 호국원은 국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금 방황하고 있는 당신들에게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임실 호국원에는 자기 인생을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많기 때문이다. 끝없이 세워져 있는 묘비를 손바닥으로 만져보고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나지막하게 읽어보라. 저마다의 인생이 살아간 흔적이 보일 것이고, 그 인생이 나아가고자 했던 길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을 얻는 곳. 임실 호국원에서 돌아 나올 때쯤이면 우리 앞에 선명한 운명의 길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임실 호국원에서 나와 갈담을 지나 전주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섬진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옥정호가 나온다. 옥정호는 섬진강 물길이 전열을 채비하는 곳이다. 그러나 물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길이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옛 흔적들을 잔잔한 수면이 감추어버렸다. 옥정호는 속내 복잡한 가운데 무표정하게 서 있는 우리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수면에 언뜻 그런 모습이 비치는지도 모른다. 근심이나 시름 같은 혼란한 마음을 옥정호 물에 풍덩 빠뜨려 버리면 어떨까? 후련하고 시원하지 않을까? 마음 복잡하고 삶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들러보고 싶은 곳은 이치전적지다.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자락에서 충남 금산으로 나가는 길목인 이치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 민관군과 왜병들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김동진은 역사소설 임진무쌍 황진에서 “적의 보병들이 진격해올 길목마다 날카로운 마름쇠를 뿌려놓았다”라고 묘사한 적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치전적지를 찾아가면, 방황하는 우리 삶의 길목마다 날카로운 마름쇠가 놓여 있을 듯하다. 그래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발길을 붙잡아줄 것만 같다. 그렇게 문학은 인간의 내면에서 빛난다.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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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31 10:00

[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93. “12시입니다”

△글제목: “12시입니다” △글쓴이: 박미소(대구 계성초 5년) 나를 너무 귀여워해 주시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계시지 않지만, 할머니께서는 올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세상을 뜨실 때까지 집이 아닌 요양 병원에서 지내셨습니다. 할머니께선 90세가 된 이후로 급격하게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옆에 가족들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 후 할머니께서는 치매로 인해 생활이 더욱 힘들었습니다. 자꾸 어디에다 두었는지 까먹으시고 밥을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 헷갈리셨습니다. 24시간 곁에서 계속 간호할 수 없었기에 의논 끝에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가까운 요양 병원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요양원에 생활하시면 할머니께서 편안하게 지내시고 회복할 것 같으셨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더 불편하시다면서 집으로 오고 싶다고 하셔, 잠시 집에 모셨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다른 요양 병원으로 옮겼지만, 할머니는 계속 상태가 나빠지셨고, 결국 계속 누워있게 되셨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밥을 드려도 먹었지만 먹지 않았다고 하시고, 치매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치매인 할머니지만, 점심때마다 꼭 내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밥은 먹었냐. 학교생활은 재미있느냐.” 물어봐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것은 헷갈려 하셨지만, 시간은 언제나 잘 아셨습니다. 그 후,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를 하여 집으로 온 날, 할머니 휴대폰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12시입니다.” 그제야 난 알게 되었습니다. 이 핸드폰으로 인해 시간을 정확히 알고 전화해 주신 것이구나. 할머니께선 치매가 있으셨지만, 지난날의 아름다운 날들을 곧잘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할머니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버티시며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인 큰고모가 준 미니 라디오, 접이식 핸드폰이 유일한 친구였던 것입니다. 저를 무척 아껴주신 우리 할머니. 지금도 나의 책상 옆에 매시간 시간을 알려주는 말하는 핸드폰이 있어 항상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 같아 더욱 행복합니다. 그리운 우리 할머니, 사랑합니다! ※ 이 글은 2023년 전북일보사·최명희문학관·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제17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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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30 13:30

[전북의 문학 명소] 13. 강처럼 흐르는 인생, 산처럼 우뚝한 문학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강은 물길이 아니다. 강은 흐르지 않는다. 강은 굽이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은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어야 한다. 그것도 인간의 핏줄 속에서 굽이쳐 흐르는 숨길이어야 한다. 그래서 강은 뜨겁게 살아 있다. 섬진강은 전라도의 대동맥처럼 펄떡펄떡 살아서 섬진강을 지척에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흘러든다. 그 맑고 찰랑거리는 강물을 닮아 섬진강가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므로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그 사람들의 마음을. 그 사람들의 심정을. 그 사람들의 영혼을. 임실 사선대를 돌아가는 섬진강은 임실문학비와 조각공원을 기억한다. 임실문학비는 임실문인협회 기관지『임실문학』 제30호 발간을 기념하고, 협회와 협회원들의 문운과 단결, 애향을 기원하면서 세웠다. 지역의 문학이 이렇게 기념될 수 있는 것으로도 임실의 문학은 충실하다. 사선대 조각공원에는 임실이 고향인 가수 최갑석(1938∼2004)을 기리는 노래비도 있다. 최갑석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활동하며 <태평양 마도로스>, <한 많은 유랑 나그네>, <평안도 사나이>, <정든 목포항>, <내 고향 찾아가면> 등을 불렀다. 문학의 기원이 노래였으니, 섬진강도 밤낮으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사선대를 지나간 섬진강은 굽이치다가 옥정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섬진강댐 물문화관이 있다. 이곳에는 전북문학관에서 기증한 400여 권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어 문학의 향기에 젖어 들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 섬진강댐에서 흘러넘치는 섬진강이 한국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섬진강은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 연작의 영감이 되어 소리 없이 흘러간다. 진뫼에 이르면 “전라도 실핏줄 같은”(김용택, 「섬진강1」) 섬진강은 묵묵히 흘러가면서 많은 시적 영감을 안겨준다. 진뫼는 시인의 마을이자, 시인의 영혼이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이다. 이곳에는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고, 섬진강길을 따라 김용택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시비에 새겨진 「향기」, 「봄날」, 「사람들은 왜 모를까」, 「나무」, 「섬진강1」, 「섬진강3」 등을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에 시가 찾아든다. 그런 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 푸른 하늘을 가르면서 한 줄기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도 보인다. 섬진강은 그렇게 이 땅의 골짜기와 하늘, 인간의 마음을 시심(詩心)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진뫼에는 김용택 시인만 있는 게 아니다. 진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진뫼에서 밭을 일구는 김도수 시인은 시집 진뫼로 간다,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등을 통해 진뫼의 문학적 속살을 보여준다. 이렇듯 문학의 땅 진뫼를 떠난 섬진강은 순창 경계에 이르면 한 번 크게 뒤채며 부서진다. 장군목 유원지에 이른 섬진강은 마지막으로 임실을 돌아보며 하얗게 물보라를 남긴다. 그리고는 유유히 순창으로 접어든다. 임실에서는 임실의 하늘빛을 닮고 임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섬진강이 순창에서는 또 순창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이다. △ ‘만경’창파에 시를 띄워라 임실 슬치에서 흘러내린 전주천과 모악산 자락을 타고 온 삼천이 합류하고, 완주 고산천과 소양천이 몸을 섞어 마침내 만경강 큰 물줄기를 이루는 곳이 삼례다. 그래서 삼례 사람들은 만경강을 일러 큰 하천이라는 뜻으로 한내라고 불렀다. 골짜기의 물줄기들이 삼례에서 비로소 강이 된 것이다. 이렇듯 삼례는 물줄기뿐만 아니라 원근의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모여드는 땅이다. 갑오년 동학농민군이 한양으로 진격하기 위해 세를 규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물이 합쳐지고 사람이 보이는 삼례에 문학적 자산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 첫째 자리는 비비정이다. 비비정에서는 만경강 물줄기의 속살까지 볼 수 있다. 비비낙안이라는 말로 비비정의 풍경을 이야기해온 것을 봐도 비비정의 풍경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서늘한 가을 오후, 비비정에 올라 시를 읽는 모습은 비비낙안에 견줄만하지 않을까? “서로의 가슴속에 저 달을 품어”보자고 했던 김은숙 시인의 시 「비비정에 달 뜨거든」처럼, 비비정은 우리 가슴에 문학이라는 따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만경강이 시작되는 삼례에는 문학적으로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옛 삼례역을 중심으로 삼례문화예술촌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책 박물관’을 비롯하여 ‘그림책도서관’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해 지었던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 자리한다. 당시의 수탈상을 그린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나, 삼례 들녘과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미곡을 야적했던 군산항의 미두장을 다룬 채만식의 탁류 같은 소설을 통해 삼례문화예술촌의 옛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삼례문화예술촌은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문학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삼례시장이나 삼례역도 많은 시인에게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안도현 시인이 삼례역의 기차를 시적 대상으로 삼아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뽕뽕, 하고 운다”라고 시 「기차」에서 이야기한 적 있다. 송하선 시인은 삼례시장의 풍경을 시로 옮기기도 했다. “삼례의 장날/ 그대 장터에 가거든 보아라.// 조선옷 입은 마음으로”라고 「삼례의 장날」에서 읊었을 때, ‘조선옷 입은 마음’이 어떤 건지 삼례시장에 가서 확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만경강은 삼례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척왜척화 척왜척화 밤낮으로 흘러간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마치 우리 인간의 역사와 같다. 물결이 흘러간 뒷자리에 새로운 물살이 밀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뒷강물이 앞강물을 밀고, 앞강물이 뒷강물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이 자연의 이치를 만경강에서 확인하면서, 사람 사는 풍경이 만경강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 강물 위에 달이 뜨면 달빛 아래 만경강의 시가 환하게 반짝거릴 것만 같다. △산자락마다 시인의 마을이 있다 누군가 말한 적 있다. 한 나라의 산 개수와 그 나라 시인의 숫자가 같다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시인의 나라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산이 무더기로 솟아있고, 산비탈마다 시인의 고향 아닌 자리가 없다. 완주, 임실, 남원, 순창에도 시인의 수만큼 산이 우뚝하다. 그리하여 산이 시인을 품고, 시인은 그 산을 노래한다. 이렇게 산은 문학의 고향이자 문학의 대상이다. 완주 모악산은 도심에서 가까워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김해강 시인은 “힘 있게 뻗은 네 기슭에서 내 몸이 났”다고 시 「오오 나의 모악산아」에서 적었다. 바로 그 기슭에서 오랫동안 깃들어 살았던 박남준 시인은 모악산의 풍경을 글로 여러 차례 옮겼다. “모악산방, 모악산 그 산자락 속의 외딴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초여름의 숲은 무성히도 우거져서 벌써 좁은 산길을 덮고 키 작은 내 그림자를 가리워 가더군요.”라고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에서 이야기한다. 시인의 말대로, 모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좁은 산길’을 걸어 자기만의 외딴집을 찾아가는 길인지 모른다. 모악산에서 외딴집을 찾았다면, 순창 회문산을 오르는 길은 역사의 ‘비트’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고도 끝내 침묵하는 회문산이다. 그러므로 회문산은 우리 현대사가 꽁꽁 숨어 있는 커다란 비트가 아닐까? 시인 권진희는 시 「회문산1」에서 이렇게 말한다. “산과 산이 밀물처럼 다가오는/ 회문산 정상에 서서 보라”고. 과연 그 정상에 서면 산과 산이 어깨를 겯고 힘차게 우뚝 솟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때로 그 골짜기가 짙은 그늘에 잠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또 말해보고 싶다. 산자락이 슬그머니 감추고 있는 회문산 골짜기에 들어가 보라.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올려다보았을 우리 역사의 하늘과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작고 동그란, 그렇지만 하늘보다 깊었던 한 인간의 눈을 보라고. 문학은 바로 그 눈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강천산은 착하고 부끄럼을 타는 산이다. 그래서 강천산을 노래한 시에서는 연정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김용택 시인이 “유월이 오면/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갈라네/ 때동나무 하얀 꽃들이/ 작은 초롱불처럼 불을 밝히면/ 환한 때동나무 아래 나는 들라네”라고 시 「강천산에 갈라네」에서 노래한 것처럼, 강천산은 연심과 시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찾는다. 설임수 시인은 강천사의 단풍을 두고 “두견이 가슴앓이/ 진홍빛 바다”라고 시 「강천사 단풍부」에서 적었다. 시인의 시처럼, 가을 강천산은 누군가의 가슴앓이로 온통 진홍빛이다. 이목윤 시인은 완주 대둔산을 두고 “저 아름다이 꽃들이 피워내고/ 봄 갈 여름없이 구름이 멈추어섬은/ 전라향병의 넋”이라고 했다. 그가 시 「대둔산」에서 노래한 것은 대둔산의 첩첩한 산자락과 기암괴석이 이 땅의 역사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조미애 시인도 “깜깜한 어둠을 가르며/ 대둔산의 힘진 소리”를 시로 적었다. 대둔산은 이렇게 전라북도의 역사적 순간들을 온몸으로 기록하는 산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치전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대둔산이 갑오년에는 동학농민혁명군 최후의 보루였음은 당연하다. 우리의 서사문학은 이런 순간들을 피의 역사로 형상화한다. 이렇듯 산자락마다 살아온 내력이 있고, 투쟁의 역사가 있다. 마찬가지로 산자락마다 들려줄 이야기가 있고, 애끓는 가슴앓이가 있다. 이것들이 우리의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다. 그러므로 산이 그냥 산이 아니라 시라는 것. 산이 그냥 산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 따라서 눈을 들어 산을 올려다볼 때마다 우리는 시를 읽고 문학을 경험하게 된다. 마음에 산 하나 들어 앉히는 일이 문학에 빠져드는 일이 된다.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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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30 10:00

[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92. 나의 인생 책, 톰 아저씨와 오두막집

△글제목: 나의 인생 책, 톰 아저씨와 오두막집 △글쓴이: 류하준(서울경인초 4년) 물건은 마트에서 판다. 사람을 마트에서 파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 바로 ‘톰 아저씨와 오두막집’이다. 톰 아저씨는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가족과 주인을 배신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충실했던 톰 아저씨가 링컨의 연설 후에 태어났다면 그런 비참하고 어두운 일들을 맞이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부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손목에 쇠사슬을 차고 사람들에게 차별받던 그 마음, 일로 가득 찬 억센 팔을 가족들을 위해 쓰고 싶은 마음. 백인들은 어쩌면 그런 마음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백인들은 흑인이 상품인 줄 안다. 그래서 박스 같이 사람을 배에 차곡차곡 쌓은 것이 너무나 참혹하다. 매질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 주인을 생각해 도망치지 않은 사람은 톰 아저씨밖에 없을 것이다. 힘든 인생의 꼬임에도 가족들의 품에 가려는 마음이 너무 안쓰럽다. 이 책은 세계를 바꾸었다. 고작 200쪽밖에 안 되는 책이 노예들의 상황을 뒤흔든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이 책을 읽고 노예를 해방하고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연설을 했고, 그 덕분에 남북 전쟁 격전지에서도 역전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흑인들이 과연 그 아픔을 버틸 수 있었을까. 어쩔 수 없이 사망한 사람들도 있고, 삶의 의미를 잃어 스스로 삶을 그만둔 사람들을 보고서라도 백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흑인들이 배에서 물만 마시고 한 달을 버티던 나날들, 절반 정도가 사망하였다. 처음부터 그런 혹독한 일을 저지른 것도 잘못이지만 죽은 사람들을 그냥 바다에 버린 것은 엄청난 무게의 죄인 것이다.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큰 연설을 하였다. 남북 전쟁은 링컨을 지지한 산업이 발달해 노예가 필요하지 않은 북부와 농업이 발달해 노예를 물건 취급하여 무시한 남부와의 전쟁이다. 하지만 링컨은 안타깝게도 노예 해방 반대자에게 피격당해 사망하고 만다. 조지 셸비는 톰이 주인을 믿듯이 톰을 위하여 기울어진 사업도 세우며 노력했다. 그래서 톰 아저씨를 다시 데려온다는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조금 늦은 때 톰 아저씨는 그날 밤 사망하고 만다. 만약 톰 아저씨가 실제 인물이었다면 마틴 루터 킹처럼 큰 연설을 하지 않았더라도 백인이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그만두게 할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힘든 상황이 있었지만 그런 일들을 멈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레글리 같은 악질의 매질을 맞아도 그런 비겁한 차별을 없앨 것이다. ※ 이 글은 2023년 전북일보사·최명희문학관·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제17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3.12.29 13:30

[2023 전북 문화계 결산]③여성, 종교

올해 전북 문화계에서 종교·여성계는 전북여성가족재단의 신년하례회와 함께 힘차게 출발했다. 신년하례회로 도내 여성들의 희망찬 시작을 격려한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는 ‘전북여성가족재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출범식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전북 종교계에서는 불기 2567년을 맞이한 불교의 활발한 활동이 눈에 띄었다. (사)불교문화보존회는 ‘부처님오신날’ 한 달 전부터 도내 곳곳을 연등으로 물들이는 등 4년 만에 코로나19 방역 제약 없이 ‘부처님오신날’을 만끽했다. △여성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는 1월 13일 재단 별관 2층 대강당에서 ‘2023 전북여성신년하례회’를 열고 힘차게 출발했다. 올해 신년하례회는 ‘상생의 시대, 여성의 힘!’이란 주제로 전북 여성의 희망찬 시작을 격려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성장하는 여성들의 힘을 보여주자는 다짐의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전북이 여성과 함께 더욱 건승하는 한 해를 만들자고 서로 격려하고 새출발을 다짐했다. 전북여성단체 연합은 3월 7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제22회 전북 여성대회’를 가졌다. 이날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를 주제로 진행된 행사에서 전북여성단체는 우리 사회의 성평등 민주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또 지난 9월 20일 도내에서 여성의 희망찬 시작과 미래를 응원하는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가 ‘전북여성가족재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종교 올해 (사)불교문화보존회는 불기 2567년을 맞아 일찍부터 도내 곳곳을 연등으로 물들였다. 실제 이들은 ‘부처님오신날’을 한 달 앞둔 지난 4월 29일 전주역 첫 마중길에서 ‘봉축기원탑 점등식’을 진행했다. 5월 13일 전라감영 일대에서는 ‘꿈타는 연등화’ 축제를 개최하며 화합의 꽃씨를 전했다. 이후 5월 27일 김제 금산사에서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봉축 법요식이 4년 만에 코로나19 방역의 제약 없이 진행됐다. 올해 행사에서 금산사 주지 일원 스님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진영과 종교, 민족 간 갈등을 이유로 전쟁의 참상이 계속 되고 있다”며 “만족할 줄 모르고 인류가 더 큰 욕심을 부린다며 곧 재앙으로 다가올 것. 욕심을 줄이고 지금에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 하는 마음으로 절제의 등(燈)을 밝혀야 할 때”라며 봉축사를 전했다. 또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는 5번째 신도회장으로 한광수 남창당한약방 원장이 취임했다. 한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불교 종단 모든 구성원의 화합과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전북불교 발전에 헌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주 성모안식성당은 지난 8월 새 단장을 마치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성당 재정비는 그리스 성화작가 소조스 지아누디스 교수의 총괄 지휘·감독하에 총 40명으로 구성된 성화 작가 팀과 조력자들이 참여했다. 특히 성당에는 ‘만물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 ‘천사들의 성찬 예배’, ‘예언자들’ 등 다양한 작품들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천장과 벽 등에 새겨졌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12.28 17:55

전북문인협회장 선거 앞두고 투표권 잃은 남원지부

제33대 전북문인협회장 선거를 보름여 앞두고 남원문인협회의 투표권이 박탈당해 지역 문학계가 시끄럽다. 28일 전북문인협회(이하 전북문협)에 따르면 현재 김영 현 회장의 임기가 내년 1월 종료된다. 이에 내년 1월 13일 전북문협은 새로운 수장을 뽑기 위한 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는 과거 직선제와 달리 대의원제로 진행됨에 따라 전북문협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일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8일 오후 5시까지 각 산하 지부에 3명의 대의원을 추천할 것을 공지했다. 하지만 당시 문자메시지를 받은 남원문인협회장은 해외여행 중이어서 확인이 늦었고, 귀국 후 휴대전화에 첨부된 서류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으로 결국 대의원 추천 마감 시간을 넘겨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이에 현재 남원문인협회장 A씨는 “대의원제 선거를 처음으로 도입한 올해, 대의원 추천과 관련한 공지는 공문서를 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A씨는 지난 10일에 열린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에게 절차상 오류가 발생한 점에 대한 사과와 함께 남원지부 회원의 선거권을 보장할 것을 건의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관례상 선례를 남길 수 있는 사안이기에 남원지부는 대의원 선정을 할 수 없다’며 반려했다. 현재 남원문인협회는 전북문협 회장과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전북문협 선거관리위원의 부당성에 대한 개선 및 항의서를 보낸 상황이다. 한편 전북문협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대의원 등록 기간 중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 형평성에 맞게 투표권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북문협 선거관리위원회 B위원은 “전북문협 창립 이후 회원들에게 공지사항을 전할 때 공문으로 보낸 적은 극히 드물었다”며 “공문에 대한 이의가 받아지기 위해서는 나머지 시군 지회 역시 같은 이유로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대의원 추천 마감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남원에서만 대의원 추천을 받지 못해 2차례 재공지를 했다”며 “선관위의 착오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났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한 개인의 늦은 공지 확인이라는 이유로 투표권을 다시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12.28 17:55

전주문화재단 전주한벽문화관, 내년 2월 6일까지 기획전 ‘바람에 동화’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그릴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현실로 펼쳐진다. 전주문화재단 전주한벽문화관은 내년 2월 6일까지 ‘바람에 동화’ 전시를 선보인다. 이 전시는 연말연시를 맞아 기획된 전시로 가족 단위 관람객, 특히 지역의 아이들에게 미술이란 장르가 가진 동화적 환상성을 부여하는 전시로 구성돼 눈길을 끈다. ‘바람에 동화’ 전시는 눈과 비, 그리고 구름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과는 달리 오로지 감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처럼 미술이란 장르가 가진 환상성, 그리고 예술성을 동시에 체감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내며 인간이 염원하는 앞날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바람의 의미까지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전시는 이주은, 조혜우, 플라비아 소렌티노, 호세 파블로 작가 등 4명이 참여하고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의 성향, 화풍 등을 고려한 평면, 삽화, 설치 작품 등이 전시된다. 먼저 이주은 작가는 회색빛 도시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가령 화분 속 나무, 앵무새, 달, 공장 굴뚝 등 한때 쓰이다 버려진 물건으로 동화 속 마법 같은 작가의 조형 작업을 통해 새롭게 창조했다. 이로써 잠시 잊혔지만 절대 버려지지 않는 시간을 담은 물상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이어서 조혜우 작가는 꿈에서 봤거나 혹은 상상해왔던 장면을 ‘몽상의 숲’이란 작가가 구가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익숙한 듯 낯선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세계 각지에서 촬영된 사진 자료와 우주에서 항공 촬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색감과 형태로 편집해 콜라주 형태로 결합함으로써 독특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또한 플라비아 소렌트노, 호세 파블로 작가는 ㈜아가월드 몬테소리와 작업하는 대표적인 삽화가로 작품에 친숙함이 묻어난다. 더불어 전시 기간에 주말을 활용한 특별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프로그램 내용은 참여작가와 함께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그리고 작가와 함께 개성 넘치는 스노우볼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사전접수를 통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1월 6일과 13일 2회 운영될 예정이다. 사전접수는 전주문화재단 또는 전주한벽문화관 누리집, SNS를 통해 진행되며 접수 기간은 28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모집한다. 한 회당 최대 15명이 참여 가능하고 선착순으로 접수가 진행된다. 이외에도 이주은 작가가 마련한 상시 체험도 운영된다. 관객 참여를 통해 스스로 예술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전시가 종료되면 관람객들의 발자취가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해당 체험은 전시 운영기간 동안 만나볼 수 있다. 김철민 전주한벽문화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시민들이 양질의 시각예술 콘텐츠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좋은 전시를 기획하고 한벽문화관이 시민들에게 유익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전시는 무료 입장이며 전시 및 부대프로그램에 관한 문의사항은 전주문화재단 콘텐츠사업팀(063-280-7046)으로 하면 된다.

  • 전시·공연
  • 김영호
  • 2023.12.28 17:55

한국전통문화전당 유치원·어린이집 5곳 한복형 원복 보급

한국전통문화전당이 한복의 실생활화를 실천하고자 유치원(어린이집)에 한복형 원복(활동복) 보급에 나선다고 28일 밝혔다.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도영)은 한복형 원복(활동복) 보급을 위해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전주시 지역 내 유치원(어린이집)을 대상으로 공개 추첨을 통해 보급기관을 최종 선정했다. 선정된 보급기관은 송림꽃무지풀무지 어린이집, 교동원광어린이집, 복지어린이집, 교육공동체 꼬마코끼리가는길, 온빛어린이집 등 총 5곳이다. 전당은 선정된 기관의 수요 파악 후 내년 2월 중 제작·보급에 나설 계획이며 어린이집 당 최대 40세트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에 보급될 한복 원복은 일부 자부담이 발생한다. 원복 구성은 티셔츠 2장, 바지 1장, 누빔배자 1장이 한 세트이며, 한복의 특징인 옷고름, 동정, 깃, 색동 등 전통의 미를 살리는 데 초점을 뒀다. 또한 전당은 올 초 보급된 원복에 대한 피드백을 토대로 유아교육 전문가와 전통의복 전문가 등의 자문을 통해 개선안을 마련, 양산 가능성과 실용성을 보완했다. 김도영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은 “어린이들에게 우리 고유의복인 한복의 친숙함을 길러주는 한복 원복 보급사업이 새해에도 이어질 수 있어 뜻 깊다”며 “앞으로도 한복의 올바른 역사관과 정체성을 알리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한복 보급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영호
  • 2023.12.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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