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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월드뮤직, 다양한 소리와 서사(敍事)의 향연(饗宴)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한 축은 늘 월드뮤직이 맡았다. 많은 사람이 국악의 묵직한 존재감을 더 크게 받아들였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이 소중한 행사의 이름을 ‘전주, 세계소리, 축제’라 끊어 읽곤 했다. 만약 월드뮤직이, 혹은 월드뮤직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시각과 태도가 없었다면 이 축제의 역동성은 오래전에 반감됐을 것이다. 전체의 공연 구성에서 국악과 월드뮤직이 혼재했기에 23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더 든든한 뒷심을 키울 수 있었으리란 얘기다. 월드뮤직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기쁨은 ‘다양성의 향연’이다. 올해만 해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폴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비좁아 보이는 이 지구에는 아직도 우리가 존재조차 모르는 음악이 많다. 흔히 세계화를 운운하며 하나 된 세상을 얘기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그들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 없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세상 곳곳에 감춰진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굴해 우리 앞에 펼쳐놓는 월드뮤직 전도사의 역할을 충실히, 꿋꿋이 수행해 왔다. 한쪽에서 농악 장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색의 악기가 낯선 선율을 들려주는 풍경은, 오늘날 음악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설파한다. 우리가 월드뮤직 음악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은, 그 음악만큼 다채로운 ‘서사성의 발견’이다. 단언컨대 단일민족, 단일문화로 이루어진 나라는 없다. 어느 월드뮤직이든 그 안에서는 여러 이질적 요소가 얽히고설키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는다. 반대로 서사에서 출발해 음악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특정 월드뮤직을 처음 마주할 때 그에 관한 역사적 배경이나 서사성을 확인해 두면 감상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종종 월드뮤직 공연을 ‘해설이 있는 콘서트’의 형식으로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월드뮤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980년대에는 민속 음악이 다른 음악과 만나는 현상 자체에 의미를 뒀다. 역설적으로 처음 이러한 시도를 감행한 이들도 제3세계에 관심을 가진 영미권 음악인들이었다. ‘이국적인 사운드’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의 혈통에 깃든 아름다움을 재확인하려는 음악인들의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진행됐다. 정치적으로 구소련의 해체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월드뮤직이 풍성하고 굳건한 흐름을 구축한 데에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민속 음악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한 뒤 이를 현대적으로 고찰하고, 여기에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음악인들의 진지한 접근이 결정적이었다. 만약 우리가 아일랜드의 민속 음악을 도입해 노래를 만든다면, 그건 외형상으로만 월드뮤직일 뿐,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월드뮤직의 철학을 따른 결과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상징 중 하나이자 매년 크고 작은 화두를 던진 개막작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한국형 월드뮤직이었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따를 것인지, 이를 활용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것인지는 온전히 창작자들의 선택이다. 말하자면 월드뮤직은 후자에 무게중심이 실린 경우다.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만난 여러 월드뮤직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소리프론티어를 통해 소개된 한국의 젊은 음악인 삼산의 것이었다. 나는 그 공연에서 강박에 갇히지 않은 건강한 영혼을 봤다. 대다수 월드뮤직은 존재 자체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모두 깊은 예술성을 지닌 것은 절대 아니다. 쉽게 마주할 수 없었다고 해서 갈채를 선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실 월드뮤직 중에는 ‘별것 아닌데도 마치 신비로운 존재인 양’ 회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기성 음악 어법처럼 객관적 평가의 틀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 기획자의 오판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관건은 ‘설득력 있는 주관의 정립’이다. 이를 위해 먼저 역사를 올곧게 인식하고, 월드뮤직이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다른 음악들’에 관해서도 깊이 있고 통시적인 시각을 지녀야 한다. 예컨대 재즈가 없었다면, 월드뮤직은 안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록, 팝, 현대 클래식 등도 같은 맥락에서 월드뮤직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른바 ‘좋은 월드뮤직’을 솎아내기 위해 민속 음악 자체에 대한 고찰 못지않게 새로운 융합을 촉진한 음악들에 관해 연구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 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참여해서 여러 벗을 알게 됐다. 나는 그들과 음악에 관해, 월드뮤직의 철학과 태도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던진 공통의 질문이 있었다. “왜 이미 놓인 길을 가지 않고 굳이 다른 길을 찾는가?” 누군가는 가슴 속에 자리한 “예술혼”을 꺼내 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그게 “더 재미있어서”라고 했다. “돈 때문”이라 말한 이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답은 이것이었다. “어머니가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을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김현준 음악평론가는 1997년부터 음악 관련 방송, 공연, 워크숍 등을 기획 및 연출했다.『김현준의 재즈파일』(1997),『김현준의 재즈노트』(2004),『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2022)』를 출간했고, 제41회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 부문을 수상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09 17:37

영화로 물들인 전주의 가을⋯지역 곳곳서 다양한 영화제

“봄에만 즐길 수 있었던 영화제를 선선한 가을에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너무 매력적이네요.” 지난 6일부터 3일 동안 전주 구도심 일대에서 열린 ‘전주씨네투어 with 폴링인전주’를 즐기기 위해 행사 장소를 찾은 김주영 씨(29·전주시 송천동)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은 봄 시즌에만 즐길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놓쳤던 영화를 만나볼 수 있어 더 특별한 것 같다"며 "영화 팬들이 가벼운 주말 나들이로 방문하기 제격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전주국제영화제 중심 무대로 불리는 ‘전주영화의 거리’ 일대는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팬 ‘시네필’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폴링인전주는 지난해부터 전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전주시의 대표 문화 콘텐츠인 ‘영화’와 전주시만의 관광자원을 접목해 전주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기획된 사업이다. 해마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초 진행되는 ‘2024 전주씨네투어 with 폴링인전주’는 ‘가을에 다시 만나는 전주국제영화제’, ‘맛있는 전주, 맛있는 영화’, ‘영화와 음악이 있는 전주’, ‘영화와 함께 전주여행’ 등 총 4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시네필뿐 아니라 가을 전주 여행을 기대하는 관광객들도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유명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영화와 음악이 있는 전주’와 전주전통술박물관과 함께한 ‘맛있는 전주, 맛있는 영화’ 등 일부 섹션은 매진 행렬을 이루는 등 전주시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티켓파워를 발휘하기도 했다. 실제 이날 아티스트가 직접 선정한 영화를 관람한 뒤 아티스트의 라이브 공연과 토크를 즐길 수 있는 ‘영화와 음악이 있는 전주’ 프로그램도 영화 팬을 비롯해 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객석을 채웠다. 프로그램의 아티스트로는 가수 ‘소수빈’이 함께했으며, 상영 영화로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선정됐었다. 1시간 30분간의 상영이 끝나고 매력적인 음색의 노래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앵콜”을 연호했다. 공연 중간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도 마련돼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과 더불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도 있었다. 한편 같은 기간 전주메가박스 객사점에서는 ‘제17회 전북여성영화제 희허락락’이 진행됐었다. ‘어디에 있는 나는’을 주제로 한 올해 영화제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지키는 여성들을 조명한 영화 12편이 무료로 상영됐다. 영화제를 주최한 전북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올해 영화제의 개막작을 비롯한 대부분의 상영작의 티켓이 80석(125석 중) 이상이 예매되는 등 많은 관람객이 현장을 찾아주셨다”며 이번 영화제를 자평했다. 하지만 홍보 부족 등 현장의 목소리는 아쉬움을 남겼다. 올해 여성영화제를 찾은 김수현 씨(23·전주시 송천동)는 “인권과 성평등 등 다양성을 다루는 여성영화제가 지역에서 개최되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된다”라며 “하지만 마니아층들이 주류인 분위기가 아쉽다. 좀 더 적극적인 홍보와 규모 확장을 통해 내년에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4.09.08 16:14

'지역 축제 연계·뮤지엄 나이트 투어'…전북도립미술관, 체류형 관광지로 도약할까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애선)이 체류형 관람 프로그램 ‘브리콜라주:그러모은 미술관(전북미술주간)’을 추진해 체류형 관광지로의 도약을 준비한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많지만, 실제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의 박물관, 미술관이 오후 6시면 문을 닫아 볼거리가 한정적이라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도립미술관이 9월 전북미술주간 동안 도내 시‧군 7개 공립미술관을 방문해 전시 관람 및 연계 체험에 참여하고, 인근 관광지를 방문해 전북자치도 자연과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브리콜라주:그러모은 미술관(전북미술주간)’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인다. 1박2일과 당일 공공미술투어 프로그램, 스탬프 투어로 구성해 전북의 풍부한 문화자원을 소개하고, 예술과 관광이 결합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마련했다. 또한 폐장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로 연장해 관광객들이 미술관을 들러볼 수 있도록 ‘뮤지엄 나이트 투어’를 진행해 깊이 있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지난 6일 저녁 7시, 전북도립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도슨트로 나선 이애선 관장과 1박2일 프로그램에 참여한 40여명의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전북미술사 연구 시리즈 ‘문복철 특수한 변화’ 기획전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을 보다 떠오른 궁금증에 대해 관람객들이 질문을 하면 이애선 관장이 답변을 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 대신 그림을 보고 느낀 지점을 이야기하고, 문복철 작가에 대한 히스토리를 풀어냈다. 문복철 작가의 연작 ‘대류‧전이’작품 감상이 끝나자 제2전시실에서 해금 연주가 시작됐다. 고요했던 공간이 해금의 구슬프고 애달픈 소리로 뒤덮이며 작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에서 왔다는 신세인씨(39)는 “아이들과 동행이라 과연 미술전시를 잘 듣고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면서 “의외로 아이들이 집중을 해서 그림을 보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미술관을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낮에 무주 축제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저녁 미술관 투어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북미술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일환으로, 도립미술관이 기획하고 시·군 공립미술관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이다. 한국관광공사와 전북관광마케팅종합지원센터가 협력으로 진행되며 지역의 다양한 예술적 매력을 선보이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기회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오는 28일에는 공공미술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관장은 “공립미술관들이 보유한 지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지역이 가진 예술적 요소를 관광과 결합해 도내‧외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며 “향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기획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8 16:12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우리 소리의 오래된 첨단, 국창 신영희·조상현을 만나다

소리가 흔해진 시대다. 거리를 다녀보면 저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심지어 노이즈 캔슬링, 그러니까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차단해 버린다. 오롯이 듣고 싶은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어떤 소리는 결코 캔슬(무효화)될 수 없다. 차고 넘쳐서가 아니다. 되레 희소해서 그렇다. 실은 소리가 소리 위에 집을 지어서인 까닭이다. 일차원적/일회성 청각 자극을 넘어서, 스스로 세월의 더께를 이고 시대의 풍파를 견뎌 끝내 3차원의 건축학적 랜드마크가 돼버린 소리라서 그러하다. 지난달 18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폐막공연, ‘조상현&신영희의 빅쇼’에서 시간과 소리로 건축된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만났다.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그 둘이 나란히 오똑 선 모습을 관람할 수 있어 드물고 귀한 무대였다. 국창의 반열까지 오른 명창 조상현과 신영희. 두 사람은 각각 87세, 82세다. 그들의 소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공연 전부터 모악당 주변을 서성이는 1000여 명의 관객들은 표정에서, 일행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서 모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은 날짜 타이밍도 시쳇말로 죽여줬다. 1995년 KBS TV ‘빅쇼’에서 두 사람이 ‘소리로 한 세상’이란 제목 아래 전 국민 앞에 절창을 함께 쏟았던 것이 바로 8월 18일. 그러니까 그로부터 정확히 29년째 되는 날, ‘빅쇼’라는 타이틀 아래 두 국창이 맞닥뜨린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각각 완창 판소리를 들려준 바 있다. 그래서 이날 무대는 어떤 구성일지가 첫째 관심사였다. 막이 열리고 마주한 이날 공연은 ‘빅 쇼’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그 형식은 음악극에 가까웠다. 박상후 지휘의 KBS국악관현악단이 받치는 가운데 전북의 젊은 소리꾼 10인이 무대 전면에 나섰다. 조상현, 신영희의 인생사를 아니리로 구성해 풀어냈는데, 휴대전화 쇼트폼 세대도 지루하지 않게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사로 엮었다. 빠른 전개가 돋보였다. 두 국창은 각각 스스로 작사, 작창을 해 우리 소리의 신(新-)고전이 돼버린 ‘흥타령’과 ‘사철가’를 부르며 느긋하게 등장했다. ‘빗소리도 임의 소리 바람소리도 임의 소리…’ 하며 임을 그리고,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하며 인생무상을 한탄하는 그 소리가 원곡자의 입에서 터져나올 때 객석에서도 낮은 탄성이 함께 터졌다. 중반부에 마련된 흥보가 한 대목은 1970, 80년대 TV 출연으로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았던 준(準-)희극인으로서 두 사람의 풍모도 엿보게 해줬다. 마당쇠 신영희에게 글 가르쳐주려다 되레 당하는 놀부 조상현의 티키타카와 케미스트리에 객석이 남녀노소 흥겹게 들썩였다. 국악인이자 불세출의 국악 소재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정해가 사회를 맡은 중반부 토크는 짧지만 여운이 길었다. 일단 열연, 열창의 안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힘들어 죽겄소~”(조상현)와 “쓰러지기 직전요~”(신영희)로 화답하며 너스레를 떤 두 사람. 이어지는 음악 철학이 촌철살인이다. 사철가의 작창 배경을 묻자 “인거유흔(人去遺痕·사람이 한 번 가도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을 내놓은 조 명창. 신 명창은 국악 세계화에 대해 “우리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예요. 없어서도 안 되고, 없을 수도 없어요. 소리 축제는 영구히 하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 하고 목 놓았다. 간간이 무대 뒤 스크린으로 투사된 두 사람의 TV 출연 모습과 소싯적 사진은 객석에 흐뭇하고 잔잔한 웃음의 파문을 일으켰다. 젊은 소리꾼들의 패기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KBS국악관현악단의 웅장한 연주 모두 돋보였다. 마지막 한 판은 가히 ‘폭발’이었다. 특히 조상현 명창의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빙의한 듯한 열연, 활화산 같은 절창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세계 어느 디바와 디보가 80대에 두 사람만 한 사자후를 뿜어내랴. 세월이 더께가 되고 도리어 갑옷이 되는 우리 소리의 신비함이 이날 전주 고을에 현현한 것이다. 8월 초, 멀리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 직전. 대한민국의 박태준 선수는 서두에 언급한 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태연자약 노래 한 곡을 듣고 있었다. 요즘 인기 높은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란 노래다. 아제르바이잔 선수를 꺾고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건 박 선수는 경기 전 노래 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서 (그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빅쇼’의 초반, 젊은 소리꾼들의 아니리 가운데 귓전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자네들, 혹시 그거 아는가. 한자에는 소리 ‘성’자가 있고, 노래 ‘가’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가 부르는 것을 노래라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하는지를. 노래는 사람에서 나오지만 소리는 자연에서 나오기 때문이지. (중략) 소리를 잘하는 것은 결국 이 자연의 소리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곧 소리꾼의 사명이다.” 후배들의 입을 빌어 전달됐지만 사실 이는 다름 아닌 조상현 명창이 공연 준비 기간 내내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여러 번 강조했던 경구(警句)이자 당신 음악 세계의 철칙과 같은 것이다. 조상현과 신영희, 두 사람의 소리는 과연 랜드마크이되 회색 콩크리트의 구조물이 아니었다. 웅대한 자연의 배경과 하나가 된 듯했다. 한 페이지가 아니라 여덟 폭의 병풍이, 세월 따라 접고 접은 팔순의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돼있었다. 우리 소리의 정전(正傳)이 무엇인지, 정점(頂點)은 어디인지가 궁금할 때 향후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오래된 첨단으로 꽃 피어 있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전 헤럴드경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KBS 1라디오 ‘오늘 밤 1라디오’, 국악방송 ‘창호에 드린 햇살’ 등에 매주 출연해 음악 이야기를 한다. 저서로 ‘예술기’ ‘망작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등이 있다. 티빙 ‘케이팝 제너레이션’, SBS프리미엄 ‘교양이를 부탁해’ 전문가 출연. @heeyun_lim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08 16:11

[안성덕 시인의 '풍경']책방

책방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경원동 책방엘 갔습니다. 썰렁했습니다, 종이 냄새에 잉크 냄새만 상큼했습니다. 깨끗이 빨아 빨랫줄에 널어 햇볕과 바람에 말려 개켜 놓은 옷가지인 듯, 새물내가 아니 새 책 내가 내내 코끝에 맴돌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눈코 뜰 새 없습니다. ‘빨리빨리’, 재촉하며 건너온 산업화시대 관성 때문입니다. 차분히 앉아있을 틈이라곤 없습니다. 도통 책 한 장 넘길 겨를이 없습니다. 세상이, 세월이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인 우리는 너나없이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습니다. 길고 재미없는 것들은, 숙제처럼 읽어야 할 것들은 컴퓨터가 척척 요약해 줍니다. 그러니 밤새워 톨스토이와 백석을 읽을 일이 없는 것이겠지요. 세상 듣기 좋은 소리 셋은, 내 새끼 책 읽는 소리요, 빈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요, 마른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라 했습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두보(杜甫)의 시구던가요? 조선 선비 장혼(張混)은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속 심장 안에 간직해 둘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 그런데 저물도록 책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만화책을 훔쳐 읽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요?

  • 문화일반
  • 기고
  • 2024.09.07 08:00

'예술의 줄기, 전승공예의 정수'를 마주하다…전북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

제28회 전라북도특별자치도 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이 10일부터 열흘간 한국전통문화전당 4층 기획전시실에서 ‘예맥(藝脈) : 예술의 줄기, 전승공예의 정수’ 를 주제로 펼쳐진다. 전북전승공예연구회(회장 김동식·국가무형유산보유자 선자장)는 선조들의 전통공예 유산과 기능을 보전하고 온전히 전승하고자 1996년 10명의 전통공예 장인들이 뭉쳐 설립한 단체이다. 현재는 국가무형유산과 문화재, 보유자, 명인 등 공예작가 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수, 한지, 부채, 나전칠기, 전통매듭, 궁중의상, 백자, 청자, 옹기, 가구, 창호, 옻칠 , 지우산, 탱화, 칠보, 악기, 목조각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선정한 3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 테마인 ‘예맥(藝脈)’에서 알 수 있듯 예술의 줄기인 전승공예의 정수를 만날 수 있으며, 숙련된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진 장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전시와 달리 이번 작품전은 ‘전시’와 함께 ‘시연+체험’이라는 두 가지 큰 틀의 연계전시 형태로 진행된다. 전당에서 열리는 1차 전시는 작품 감상 위주로 이뤄진다면 오는 23일부터 10월 7일까지 임실한옥 예술공감에서 펼쳐지는 2차 전시에서는 시연과 체험행사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 연구회는 1주차인 28일 오후 2시 김동식(선자장) 장인의 시연을 시작으로 박순자(침선), 김대성(부채) 장인의 체험, 29일에는 김선자(매듭장), 김정화(칠보) 장인의 시연, 권원덕(소목) 작가의 체험을 각각 진행키로 했다. 또 2주차인 10월 5일 오후 2시에는 김종연(목조각장), 강의석(청자) 이수자의 시연, 윤성호(지우산), 전경례(자수) 이수자의 체험, 6일에는 한경치(합죽선), 안시성(옹기장) 장인의 시연, 장정희(침선) 이수자의 체험이 각각 추진될 예정이다. 연구회 권원덕 사무국장은 “우리의 전통공예 줄기 즉,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며 “전시 작품들이 한옥이란 실체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보여주고자 ‘시연과 체험’이란 구성을 통해 관객과의 접근성을 높였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6 18:32

한계를 넘은 기적의 무대⋯장애인 앙상블 연주단 느루걸음 ‘동행’

장애의 한계를 넘어 기적을 공연하는 연주단체 ‘느루걸음’이 오는 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감동의 선율로 물들인다. 느루걸음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천천히 오래도록 걷는다’의 뜻의 용어이면서, 지난 2022년 첫걸음을 뗀 장애인 앙상블 연주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주시 장애 유형별 맞춤형 직무 개발을 위한 일자리 활성화 시범 사업으로 지난 2022년 모인 이들은 장애인 연주자와 발을 맞춰 활동하고 있는 연주단체다. 장애인 연주자들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돕고 전문 연주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체는 7일 오후 5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동행’을 공연한다. 전석 무료. 다양한 음악 서비스 활동을 통해 단원들 간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누며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공연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기획공연 ‘스타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앞서 소리전당은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예술계에 순수예술 장르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 아티스트들의 공연예술 활동 발돋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스타시리즈의 열두 번째 무대로 진행될 이번 공연은 모두가 아름다운 선율을 오래도록 연주하자는 의미를 담아 ‘동행’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이날 무대에 오르는 13명의 느루걸음 단원은 안경일 지휘자와 함께 약 1시간 동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들은 세르비아의 이발사, 헝가리무곡, 카르멘의 서곡과 같은 친숙한 클래식 음악으로 정통 클래식의 맥을 잇는다. 여기에 ‘시네마 천국’, ‘스타워즈’, ‘캐리비안 해적’ 등 유명 영화 OST와 더불어 K-POP 음악 등의 프로그램을 구성해 대중성까지 갖춰낼 계획이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표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성장하고 예술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 공연을 통해 전북 지역예술인들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은 소리전당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전화(063-270-8000)로 문의하면 된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05 17:21

문 너머 사계절 풍경이 펼쳐지다…조화영 '문門(THINKING)'

사계절 풍경이 문(門) 너머로 펼쳐진다. 푸르고, 파랗고, 노랗다가 이내 붉어진다. 캔버스에 올라앉은 색이 물결치듯 일렁인다. 색은 제각각이지만,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혀들어 한 폭의 작품이 됐다. 서양화가 조화영 작가가 ‘문(門)’을 주제로 다음 달 31일까지 삼례문화예술촌 제3전시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문과 창문을 메타포로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 도구인 문을 단순히 물리적 장벽으로 바라보지 않고 의식과 욕망이 결합되고, 일상과 시간 속에서 내재하고 있는 상징성으로 발현해 표현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문을 향하고, 문을 바라보면서 생각한 단상들과 문에 대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독특하게 해석해 비현실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전시 제목 ‘문門(THINKING)’은 작가의 인문학적 깊이를 웅변한다. 그는 공적이며 사적이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내부와 외부와의 연결 도구 ‘문’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쳐가는 단계이자 과정으로 사유를 확장한다. 조 작가는 전시 작품들에 대해 “평소 앙리 마티스를 좋아한다. 창문에 대한 해석과 표현을 캔버스에 담았다”며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반영하는 감각, 감수성, 축적된 시간들을 문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남대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부산, 전주, 광주, 미국,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전주문화재단 도시갤러리 작가 공모, 전주시 이동형 꽃심 갤러리 공모 등에 선정된 바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전북미술협회 회원이며 문화예술교육사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5 17:21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잡색X'

사건명: 20240814-잡색X <잡색X>는 2024년 8월 14일 밤에 명백한 ‘사건’으로 출현(出現)했고, 나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공동의 기억이자 유의미한 대상이 되었다. 이 사실이 어떤 결과나 해석보다 가장 중요하다. 작금의 전통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놀라운 문제 제기 도입부는 마치 전쟁 게임 속 판타지(fantasy)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전방은 새까만 컴퓨터 창(窓)이 되고, 무대 위 인물들은 감시자의 눈을 연상케 하는 철 구조물을 배경으로 두고 서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저(User)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대로 움직였다. 부족 간 전쟁이 있고, 적장이 죽고, 마을 부족의 우두머리[상쇠]가 배 혹은 철탑, 상여로도 해석될 수 있는 구조물 앞에서 적장의 넋을 달래는 의례를 행한다. 연출은 풍물굿의 전통적인 의식(儀式) 행위를 활용하되, 맥락은 제거하고 뼈대 요소만 서사 전개 곳곳에 나누어 이용했다. 제2막에서는 암흑 속에 익숙한 물체[세탁기]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흰빛의 생명들이 연이어 토해졌다. 밖으로 나온 존재들이 눈먼 이들처럼 바닥을 뒹굴고, 기고, 웅크리며, 좀처럼 딛고 서지 못하는 모습일 때, 내 체온이 내려갔다. 체온 하강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경계심과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한 신체 반응이다. 마침내 그 한낱 여린 것들이 하나둘 손을 잡기 시작하고, 일어서고, 큰 하나가 되어 생기발랄해졌다. 비로소 나도 고른 숨을 내쉬었고, 뭉클한 가슴 통증을 즐기는 데까지 나아갔다. 만약 이런 내 반응이 관객의 반응 시퀀스(response sequence)까지 계산한 결과라면 경외감을 표하고 싶다. 무엇보다 필자가 크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 곳곳에서 전통의 본질은 모른 채 표피에만 집착하고 신성화하는 낡은 전통 의식(意識)과 태도를 향해 날리는 문제 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다행히 ‘반항이 아닌 살리고자 하는 열망’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바뀌어도(당산나무 대신 철탑 앞의 제의 장면), 인성과 사회성이 변해도(부족 화합이 아닌 대립과 죽음 장면), 인권에 대한 존중과 위로와 해원(解冤)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 연신 들렸다. 연출은 이전 마을공동체에서 비롯한 풍물굿의 문화 핵심이 그랬고, 여전히 유효함을 힘있게 말하고자 상상력의 최대치를 짜가며 고심했던 게 아닐까? 날것의 풍물굿을 주인공으로 한 키치 스타일(Kitsch style) 다큐멘터리 <잡색X>는 박제(剝製)가 아닌 날것의 풍물굿을 주인공으로 삼은 키치한 단편 사실극 영화였다. 필자는 적어도 이 문장 이상으로는 <잡색X>의 독보적인 특질을 집약해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미학에서 정리하는 키치는 ‘예술이 되지 못한 것’, ‘모조품’, ‘싸구려 문화상품’ 등으로, 주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내리는 말이다. 그러나 ‘작정하고 키치’를 내세운 연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과적 키치가 아닌, 키치를 이용해 작품의 예술적 의도를 완성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잡색X>의 키치함을 ‘작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강렬한 날 것의 냄새, 그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Aura)를 가져온 것은 풍물굿의 플래그십(flagship)이라 할 수 있는 임실필봉농악 깃발과 치배,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함께 구성한 퍼레이드와 재능기놀음 막(幕)이다. 쇠잽이, 자전거동호회 무리, 장구잽이, 해녀 무리, 북잽이, 교복입은 십대 무리, 징잽이, 실버 세대, 열두발 상모잽이, 의사와 간호사들, 할미, 공놀이 하는 아이와 그 가족, 대포수 등등 온갖 인생을 사는 생활인들이 잡색X가 되어 무대를 휘저었다. ‘잡색X’는 무한수였다. 어디에나 있었고, 앞으로 무수히 있을 것이며, 그들이 있는 공간은 무한(無限)·무궁(無窮)이다! 이 클라이맥스로 전막(前幕)에서 돌연 천공이 열리고, 우주인 잡색X들이 행성을 떠돌고, 천체에 있어야 할 별자리가 바닥 아래로 내렸던 맥락을 이제야 비로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잡색X>는 현대적 얼굴을 한 판굿 역시 풍물굿은 생활 주체들의 예술적 놀이일 때 제맛이다. 풍물굿 잽이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생활인을 위해 공연하고, 공동체문화로서의 풍물굿 자리는 생활인들의 인생을 떠받치는 ‘뒷것’이 맞다. 이 면에서 2024년 8월 14일에 첫 출현한 <잡색X>는 분명 ‘현대적 얼굴을 한 풍물굿’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충분히 오늘 풍물굿의 잡색X가 될 권리와 자질이 있다! 양옥경 전북대 학술연구교수 국립국악고와 한양대 국악과에서 국악 기악을 전공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음악학 전공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북대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전통문화대학교·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다. 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 심의위원, 한국공연문화학회·한국민요학회·한국풍물굿학회·한국음악사학회·한국국악학회의 임원 및 정회원 소속으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05 17:21

전주문화재단,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 2차 전문가 심사

전주문화재단은 최근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의 2차 전문가 심사를 진행해 최종 심사에 오를 4개 곡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전주문화재단이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사업’ 예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다이브 투 퓨전: 더 비기닝(DIVE TO FUSION: THE BEGINNING)’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 2차 전문가 심사가 지난 4일 열렸다. 이날 심사위원으로는 윤일상 작곡가와 전 씽씽밴드 멤버이자 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이희문 국악인, 장서윤 소리꾼, ‘소리의 탄생’을 연출한 박규현 전주MBC PD가 참여했다. 이번 심사는 전국 공모전에 출품된 116곡 중 지난 1차 심사를 통해 선발된 26개 곡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그중 4개 곡이 선정됐다. 선정된 작품은 참가신청서와 AI 작업기 등 서류를 통해 창작성·대중성·목적성 등을 기반으로 평가됐다. 최종 심사를 위해 선정된 4곡은 오는 7일 팔복예술공장에서 열릴 청중평가 대상 곡으로 청중평가단의 심사를 받게 된다. 시민 100인의 선택을 받은 대상작은 9일 전주문화재단 누리집을 통해 발표되며 미래문화축제 ‘팔복: The Beginning’의 CM송이자 문화도시 전주를 대표할 곡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최락기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돼 더 신뢰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다이브 두 퓨전 공모전은 퓨전국악 분위기를 AI 작곡 플랫폼이 얼만큼 구현하는지 실험해 보는 장이었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9.05 17:21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성장 동화, ’거짓말을 팝니다‘ 발간

우리는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조금씩 거짓말을 한다. 선의로 하는 거짓말은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처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내뱉었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임의 무게를 가져오는 거짓말에 대해 다룬 동화집이 세상에 나왔다. 김자연 아동문학가가 신작 <거짓말을 팝니다>(보랏빛소 어린이)를 펴낸 것. 김 아동문학가는 이번 책에서 ‘핸드폰 요금 폭탄’이라는 뜻하지 않는 사건을 통해 요즈음 아이들이 겪는 거짓말의 실상과 고통에 집중한다. 동화 속 사건은 주인공 아인이의 집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아인이가 절친 수연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바람에 수연의 핸드폰 요금이 100만 원이나 나왔다는 거짓 소식이었다. 부모님의 꾸중이 무서웠던 수연은 아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고, 아인이의 가족들 역시 아인이를 쉽게 믿어주지 않으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또 이번 책에는 거짓말을 한 아이의 초조한 심리를 잘 표현해 내고 있는 박현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도 수록돼 어린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박 일러스트레이터는 ‘내’ 속에 있는 수 많은 나의 모습,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마음, 그러나 결국 가족과 친구의 품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까지 다채롭게 묘사해 낸다. 작가는 “최근 자녀의 반복되는 거짓말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거짓말을 했다가 들킬까 봐 불안해하는 아이를 만났다”며 “그러면서 부모님께 혼나는 게 무서워 거짓말을 했던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돼, 이 책의 주인공을 통해 거짓말의 무게와 힘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모님께 야단맞지 않으려고 한 거짓말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거짓말을 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이 동화가 그런 아이들에게 숨구멍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자연 아동문학가는 김제 출신으로 지난 1985년 안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과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전북아동문학상과 방정환문학상을 받았으며, 주요 작품집으로는 <초코파이>, <피자의 힘>, <수상한 김치 똥>, <항아리의 노래> 등이 있다. 작가는 현재 도와 잡지 <동화마중>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09.04 17:35

삶의 애환 담은 80편의 詩…허혜숙 시집 ‘너울춤’

삶의 애환을 시로 노래하는 허혜숙 시인(70)이 생애 첫 시집 <너울춤>(조선문학사)을 출간했다. 80여 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는 희망과 빛, 사랑과 행복, 그리움과 같은 묵시적 이미지의 시어들이 돋보인다. 특히 시인은 희망을 여러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희망의 양면성과 양극화를 포착해낸다. “아름다운 세상 잠시 허공 위에 띄우고/그땐 그랬지 지난 추억 소환하고/미움이 사랑으로 변하니/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더라//가는 길 끝자락에는/가끔은 아름다운 꽃길도 걷고/가끔은 울퉁불퉁 자갈길도 걸으며/마른 땅 같은 삶이면 어떠랴/소용돌이치는 물결 같으면 어떠랴/가는 길 끝자락에는/마중 나올 희망이란 님이 있는데”(‘가는 길 끝자락에는’ 일부) 허 시인에게 있어서의 희망은 ‘마중 나올 님’처럼 긍정적 이미지로서의 선과 등가성을 갖는 대상으로 형상화한다. 문제는 이러한 희망이 시인이 실현하고, 실현되기를 열망하는 성취욕의 적극적 추구와는 달리 그 근저에는 희망에 대칭되는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박진환 문학평론가는 시집 평설에서 “시인의 묵시적 이미지들은 반대 개념인 악마적 이미지의 선행에서 시를 출발시켜 묵시적 이미지로 승화시킨다”며 “희망에 대응했을 때는 절망이 되고, 빛에 대응시켰을 때는 어둠이, 사랑에 대응시켰을 때는 미움이나 증오 같은 것들로 대체된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계간 시학에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다. 경북 봉화문협에서 활동했으며,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 입상 경력을 갖고 있다. 허 시인은 “10여 년간 응모했던 많은 습작물이 책으로 출간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라며 “앞으로도 둔탁한 노래를 계속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09.04 17:34

20여 가지 난치병 이겨낸 박중곤 저자, '스무 가지 난치병의 고개를 넘다' 출간

60년간 스무 가지 난치병에 시달리며,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온 박중곤 씨가 <스무 가지 난치병의 고개를 넘다>(꿈과희망)를 펴냈다. 저자인 박 씨는 1959년 생으로 그의 나이 세 살 무렵 소아마비를 시작으로 60여 년의 세월을 심근경색증, 뇌전증, 중증 천식 등 20여 가지 난치병과 싸워 이겨낸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본인이 직접 겪은 20가지 이상의 난치병과 장애를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투병의 기록을 소개한다. 책은 ‘제1장 내 별에 떨어진 운석’, ‘제2장 시지프스의 바위’, ‘제3장 밥상을 약상(藥床)으로’, ‘제4장 진동요법과 자율치료법’, ‘제5장 원초적 질서 한가운데로’ 등 총 5장으로 구성돼, 인간 승리의 기록을 담고 있다. 박 씨는 머리말을 통해 “자신의 질병 경험을 드러내는 것은 치부를 노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당초 이 책을 펴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라며 “그런데 20가지 난치병 경험이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격려가 있었고, 그에 힘입어 이렇게 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갖가지 난치병에서 탈출한 내 간난신고의 궤적이 이 땅의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바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 출생인 박 씨는 현재 자신의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기적의 마음 의술 자율치료법>, <난치병 다스리는 진동요법>, <녹색갈증>, <약이 되는 우리 음식 순례> 등이 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9.04 17: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이보현 '오늘 또 미가옥'

아, 이 마음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정확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사랑인 것이 분명하다. 난데없이 사랑 고백을 하는 대상은 콩나물이다. 나는 콩나물이 정말 좋다. 콩나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좋아하고, 수없이 많은 콩나물을 이용한 레시피도 즐겨 따라 했다. 너무나 좋아해서 나와 콩나물을 다룬 이야기를 101가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콩나물국밥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주를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콩나물국밥을 선보였다. 누구 하나 실망하게 한 적 없이 늘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콩나물국밥 가게에서라면 얼마든지 콩나물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만 대충 세더라도 50가지는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주 사람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품은 콩나물국밥 한 그릇은 가지고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막연하게 누군가는 콩나물을 지독하게 사랑한 이야기를 쓴 것이 있지 않을까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보현의 『오늘 또 미가옥』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콩나물국밥을 사랑하며 쓴 기록의 모음이다. 콩나물국밥에 대한 사랑은 나도 넘치게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 반, 기세등등한 마음 반을 가지고 책을 폈다. “미가옥의 콩나물국밥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맨날 맨날 가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매일 매일 먹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계속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또 미가옥』 中) 책의 서문부터 저자의 두서없는 사랑 고백이 시작된다. 가장 사랑했던 가게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것은 저자의 추억 속 공간이다. 그래서 그는 책 속에서 그곳을 미가옥 사랑점이라고 부른다. 엄청난 기세의 사랑 고백에 나는 초장부터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콩나물국밥을 사랑한다고 말해왔지만, 나의 사랑은 이 정도로 절절한 고백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단 콩나물국밥을 향한 사랑 고백과 찬가로만 가득 찬 글은 아니다. 콩나물국밥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고 확장된다. 엄마가 해주던 어릴 적 떡국 이야기, 사랑점의 사장님과 종업원 간의 미묘한 관계, 콩나물국밥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의 일, 전주의 수많은 콩나물국밥 가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겠다는 포부까지. 저자의 말을 따라 콩나물국밥을 떠올리며 침을 삼키다 보면 어느새 그의 주변을 빼곡하게 둘러보게 된다. 사랑하는 일을 이렇게나 꼼꼼하고 치열하게 기록해 본 적 있는가 하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좋다’ ‘굉장하다’ 말만 늘어놓았을 뿐, 그것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주변을 둘러본 적은 없었다. “계속 콩나물국밥을 생각하고, 먹고, 이야기할 테니 ‘오늘은 어디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까’를 언젠가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때까지 세상의 콩나물국밥을 마음껏 사랑하겠다.” (『오늘 또 미가옥』 中) 나의 콩나물국밥 세계는 한없이 좁고 보수적이었다. 나만의 사랑점을 두고 다른 가게로 눈을 돌려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의 세계를 넓혀볼 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기 위해서!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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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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