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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

며칠 전 한 전공 교수님께서 이름을 가리고 학번과 함께 중간고사 성적을 공개하셨다. 중간고사 후 바로 공개하면 자신의 성적을 잊을까봐,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를 준비하는데 자극을 주고자 함이었다. 실망스러운 나의 성적을 확인하고, 성적이 나의 모든 것을 말 해주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성적이 나의 가치를 수치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 때의 성적은 취업을 위한 요건 중 중요한 부분이다. 대학교 4학년은 곧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4학년을 앞두고 있는 나의 동기들 중에는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한 친구들이 있는 반면, 나와 같이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1년 후 남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이 휩쓸려 취업 준비를 하다 취업에 실패해 좌절할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불행한 삶을 살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또 취업을 하려면 학교 성적과 스펙도 중요한데 나의 이력서에는 화려한 스펙보다 빈칸이 차지할 것 같다. 이렇게 취업과 같은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여러 가지 고민이 머릿속에 마구 뒤섞인다.이 고민에 한창 빠져있던 중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존경하던 '공부의 신' 강성태가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의 별명대로 공부의 신이 대학생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는 꿈이 없으면 남을 따르거나, 남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요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중에 나의 미래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덧붙여서 그도 뒤늦게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변에 잘 나가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방황 속에서 고민을 하다 보니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해낸 것이다. 그는 험난한 과정을 통해 좋은 직장, 좋은 제안을 마다하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면 진로 결정도 주변 분위기에 따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생활은 풍족하지 않지만 한걸음씩 그의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행복해보였다.나는 지금 나의 꿈을 이루기보다는 찾는 과정 속에 있다. 내 또래나 나보다 어린 사람들 중에는 벌써 그들의 꿈을 찾아서 꿈을 이루거나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을 볼 때면 나도 그들을 따라 조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하지만 나도 공부의 신 강성태처럼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가려고 한다. 그 길을 걷다보면 생각만 해도 설레는 꿈을 발견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방황하며 힘든 시기를 도망가고 싶은 청년들이 많을 것이다.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조언해준다. 무엇이든 즐기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쉽다. 남들보다 늦게 걷는다고 뒤처진다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는데 노력하자.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내가 가는 길, 바로 그 방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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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1 23:02

세상 향한 발걸음

속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또는 성경구절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등 노력과 실천의 중요성에 대한 문구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렇듯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결과를 얻어내고 또 인생의 순간들을 살아간다.이렇게 자명한 진리에 대해서 나는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되돌아보면 내 짧은 삶과 작은 선택들은 결단과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과연 그 실천에 모든 것이 달려있고 또 그것에 매여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 일어나는 상황과 또 선택들이 발걸음을 떼는 것의 의미가 내안에서 더욱 확장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어릴 적부터 "약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던 나는 지금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한 뒤 경력을 쌓고 자연스럽게 인권운동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웬걸. 그토록 오랜 다짐과 꿈꿔오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안일했다. 22살, 대학교 3년차가 겪는 세상은 전혀 생각 같지 않았고 노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절절히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틀 안에 갇혀있던 나는 조금씩 그 틀을 깨기 시작했다. 해외에 나가서 보며 느끼고, 연장자들의 경험을 배우고, 나도 모르던 내 새로운 모습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가치관까지 바꾸려 노력해야했지만 용기를 냈다. 이것이 처음 내딛은 발걸음이었다. 그 후 상상할 수도 없던 기회들과 길들이 차근차근 펼쳐졌다. 사실 현 상태를 깨닫고, 그것을 바꾸려는 용기를 내고, 결단을 통해 행동을 하고, 틈틈이 오는 게으름과 같은 것들을 물리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무엇을 간절히 원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안락한 삶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사는 우리또래에게 노력이나 인내는 참 어려운 가치다. 그러나 노력을 요하는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공통의 목적은 더 나은 결과다. 따라서 겁내지 말고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그렇게 천천히 한걸음, 선택, 용기라는 돌을 발 앞에 놓아가며 걸음을 뗀다면 더 성장하고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내가 가진 철학중 하나는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볼펜을 쓸지, 어떤 커피를 마실지, 어느 학교에 갈지, 누굴 만날지 고민하는 것 모두가 삶의 순간순간인 동시에 선택 혹은 결정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삶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마음속에 상기하며 새기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는 노력이 올바른 삶을 구성하므로 지금 내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조차 매우 중요하며 아름다운 삶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신중한 행동을 결정하도록 노력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인생의 선배들도 그러하겠지만 아무 경험도 없는 우리 청춘들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예측하기 어렵다. 또 모든 것이 겁나고 결정하기 힘들며 인내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찍어낼 발자국은 오히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모험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외려 실패하는 것에서조차 배움을 얻을 것이다. 두려워말고 세상을 향해 나의 가장 소중한 첫 발짝을 내디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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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14 23:02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 찾기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중요하단 말이오."근엄하게 왕좌에 앉아 신하들에게 호통 치던 또랑또랑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조선시대 왕 광해군을 소재로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한 영화 광해. 1000만 관객을 훌쩍 넘고 얼마 전 대종상 15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최고의 영화라며 극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우리는 이 영화의 어떤 매력에 끌렸던 것일까? 광해는 백성을 섬길 줄 아는 왕이었다. 광해가 쓰러진 후 천민이었던 하선이 광해를 대신했다. 처음에는 낯선 궁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 했으나 곧 궁 생활에 익숙해지며 바른 정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를 실행하려고 했다. 충신 살리기, 대동법, 중립외교. 역적으로 몰린 충신을 구제했고 땅을 더 가진 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는 법을 실행했으며 내 나라 백성들이 명나라에 가서 죽는 것을 불쌍히 여겨 금나라와 명나라 사이 중립외교를 펼쳤다. 그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과 맞서며 상식에 맞는, 바른 정치를 했다. 우리는 광해의 이런 매력에 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의 슬픈 현실이 드러난다. 광해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대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옳은 것을 추구하는 광해에 열광하는 이유는 지금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상식에 맞는, 바른 정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마음속에 꿈꿔 왔던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광해를 통해 보고 감동 받은 것이다.요즘 대통령이 되고 싶은 후보들의 경쟁이 한창이다. 각 후보마다 정치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외친다. 이 후보들 중 우리가 많이 선택한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 된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과거 왕처럼 지도자가 된 후에 정치를 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정치를 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도자가 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 실패이다.2012년 12월, 우리에게 우리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우리는 가끔 '대통령으로 뽑을 사람이 없다.', '누구를 뽑든 다 똑같더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며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후보들의 성품과 정치 비전을 보며 그가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인지,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대학생인 우리들은 대학 공부를 하고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바빠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우리의 관심사와 관련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틈틈이 스마트 폰으로 후보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그 후보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야 한다. 공약이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공허한 약속이 아닌지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적합한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 훗날 광해를 보며 '저런 지도자가 있었으면'이 아닌 '광해가 꼭 그 지도자 같구나.'하고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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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7 23:02

꿈꾸기에 청춘이다

화창한 날씨의 어느 날, 청춘을 부르짖는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남들과는 색다른 역량을 쌓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명 스펙이라 불리는 토익공부에 매달리고 있나요? 아니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이 사회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청춘이라 불리는 우리는 무한 경쟁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청춘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둡고 컴컴하며 마치 길고 긴 터널을 한줄기의 빛도 없이 그저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죠.1등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 잠재적 능력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전반적인 사회의 인식들이 우리의 가슴을 멍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그 누구보다도 더 진취적이고 패기 있고,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어야 할 청춘은 점차 사라져만 가고, 자기 사리사욕만을 챙기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행태의 모습만을 취하려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무엇이 우리를 열정과 패기의 젊음이 아닌, 마치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처럼, 사회가 미리 정해 놓은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본질을 잊게 만드는 것일까요?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를 한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던 친구.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지금은 호주에 있는 요리대학교인 Le Cordon Bleu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친구와 며칠 전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너는 왜 한국에서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로 갈 생각을 한 거야?"하고 물어봤습니다. 그 친구는 "진실 된 삶이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우선은 내가 하고 싶고, 간절히 바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내 삶과 빗대어 얘기할 때 목표가 있고 꿈이 있다면 때론 그 여정의 길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겨내고 견뎌낼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내선택에 후회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김난도 교수의 대표적 저서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나는 "꿈꾸기에 청춘이다."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청춘이기에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하며 꿈이라는 희망의 등불이 있기에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속에서도 앞을 비춰 나아갈 수 있기에 말이죠.얼마 전 신문기사를 읽다가 '우리들의 청춘은 빛이 아닌 빚으로'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과 이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과 알바를 반복하는 학생들, 학자금 대출을 통해 어렵게 등록금은 마련했지만 원리금조차 제대로 갚지 못해 연체를 거듭함으로써 신용불량자가 되는 학생들, 그 중 일부는 애석하게도 자살이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청춘이라는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세상과 작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심각성은 모든 것을 필설로 표현하기에는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시름시름 병을 앓고 있는 우리의 청춘들. 이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숙제이며 해결해야할 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피우게 될 찬란한 청춘의 꽃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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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31 23:02

'스펙' 쌓기 보다 '맞춤형 인재'가 되자

지난 8월에 하반기 채용시장이 열렸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하루에도 몇 개 씩 작성해 지원하고 있다. 내 주변의 4학년 선배들을 보아도 입사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지원시기가 맞물려 있어 비슷한 마감 시간 안에 지원하기 위해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만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채용 기간 동안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기업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그 중에 합격하는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지원자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직무, 기업이 구체적이지 않다. 이들은 구체적인 목표 없이 남들을 따라 스펙(Specification)을 쌓아 자신을 잘 포장하려고 한다. 따라서 원래의 의도와는 벗어난 진정성 없는 봉사 활동이나 국토대장정과 같은 활동을 하고 이력서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 토익과 영어 회화 등을 공부한다.그렇다면 이와 같은 취업준비생들은 왜 가장 중요한 역량을 버려두고 스펙에 더 신경 쓰려고 할까? 필자는 스펙이라는 단어를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다. 그만큼 많은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 즉 스펙을 갖고 있는 신입사원을 원하다보니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유행으로 굳어졌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스펙을 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장 중요한 핵심인 업무에 필요한 역량을 놓친 것이다. 물론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업무를 누구보다 잘 수행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에는 이 문제점을 지각하고 스펙보다는 핵심역량을 갖고 있는 지원자를 모집하려는 기업체가 늘고 있다. 한 기업에서는 학교와 전공, 학점, 영어 점수 등의 스펙을 제외한 업무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바탕으로 한 인턴사원을 뽑는다. 입사지원 부문 중 입사지원 과제에 대한 답변을 받아 지원자의 열정과 역량을 보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맞춤형 인재를 뽑는 열린 채용을 도입했다. 또 다른 기업의 경우 디자인소프트웨어 직군 등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의 절차를 모두 없애고 최종 면접만으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이 기업 관계자는 스펙보다 창의성과 다양한 경험, 도전정신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기업들은 업무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갖고 있는 사원을 고용하고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에 맞춰 취업 준비생들은 학점, 영어, 자격증 등의 '보여주기식' 스펙을 쌓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구체적인 직업을 정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게 자신만의 강점을 갖춰 경쟁력을 높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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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4 23:02

마음을 열어라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감성적인 면이 강해진다. 나도 가을의 영향인지 요즘 겪는 일들 때문인지 매우 우울해있었다. 학교에서도 사람들과 몇 마디 하지 않고 돌아왔고 원룸에 와서도 계속 누워만 있거나 쓸데없이 울곤 했다. 우울감은 한번 젖으면 쉽사리 떨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또한 모든 일에 권태를 느꼈기 때문에 내가 왜 이러는지 하나의 원인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우울해, 외로워"를 입에 달고 산지 3주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홀로 세운 벽안에 갇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소외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사람들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매우 좋아한다. 약 70년을 꾸준히 사랑받는 책. 나는 특히 이 책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들인 양 느껴지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엔 나도 그들처럼 중요한 무엇인가를 깨닫길 기대해서이다. 어린왕자는 사막에 있다. 그런데 책을 몇 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사막은 실재하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사막과 비슷한 특성이 있는 장소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의 특성을 통해 드러나는 '관계없음'과 거기서 오는 외로움이나 인간소외에 대해 말한다.데이비드 리스먼이라는 사회학자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 있다고 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 사람을 만나도 '만난'것이 된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나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우울증, 왕따 문제, 은둔형 외톨이, 심지어는 자살까지. 모든 원인이 인간소외나 외로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들의 근본적인 부분에는 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얽혀있다. 인간은 모두 외롭다. 따라서 서로가 마음을 먼저 연다면, 그래서 서로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삶은 좀 덜 팍팍해지지 않을까. 그러기위해서는 진정한 관계에 대한 이해와 정립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관계에 대해 나만의 기준이 분명하게 세워져있다. 물론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야 내가 손해 보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지금 사람들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간단히 말하면, 나는 나에게와 여러분에게 노력하자고 하는 것이다.노력해도 부딪히는 부분, 상처받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치열하거나 아픈 노력에서 오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는 손해를 보충하고도 남음이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의 벽을 세우지 않는 것, 즉 남이 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열어두는 것이 기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세운 벽에 내가 갇히는 일도, 벽에 걸려 넘어지는 타인도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향해, 네가 나를 향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물질로부터의 소외든지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든지 충분히 이 소외와 분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알프레드 디 수작의 시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러분과 나 자신에게 말한다. "마음을 열어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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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7 23:02

통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공론화하기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300만원.' 한 달 전 학교에 이 문구가 쓰여 진 현수막이 붙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문구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현수막을 보니 전북겨레하나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통일 골든벨에 관한 홍보 내용이었다. 2인 1조로 참여해 통일에 관한 지정도서를 읽고 문제를 푸는 형식이었다. 나는 솔직히 처음에 통일 보다 장학금 300만원이 탐이 나서 통일 골든벨에 참여하게 됐다. 지정도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쓴 '통일을 보는 눈'이었다. 통일에 대해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근거를 제시했다. 과거에는 민족분단의 슬픔, 이산가족의 아픔을 내세우며 하루 빨리 남한과 북한이 통일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분단의 아픔을 겪은 우리 할아버지 세대, 분단의 아픔을 지닌 부모 밑에서 자란 아버지 세대에게나 통하는 말이고 현 대학생 세대는 이를 이해할 수 없으며 공감되지 않는다. 분단의 아픔을 잘 모르는 현재 젊은 세대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감정에만 호소한다면 오히려 거부감을 줄 것이다.우리 젊은이들은 대부분 통일에 대해 반대한다. 통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분단이 됐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을 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경제적 손실이 클 것이라 예상하고 통일에 대해 격렬히 반대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편견임을 지적한다. 한반도가 분단이 된 이래 우리는 전쟁에 대한 공포,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손실(한반도 리스크) 등 때문에 잘 살아오지도 않았고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분단비용이 통일비용 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 저자는 젊은 세대들이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인 예를 들고 정확한 수치를 통해 비용을 분석해 책에 기술해 놓았다. 통일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들어 누구나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나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통일, 북한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바로 잡았다. 점점 공부를 많이 할수록 하루 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난 7일 대회에 참석해 1단계를 통과하고, 2단계 30번 문제까지 풀었다. 하지만 30번 문제가 지나치게 어려워 마지막까지 남았던 나와 한 여학생 둘 다 오답을 썼다. 둘 다 탈락해 골든벨을 울린 사람이 없었다.비록 이번 대회에 골든벨 우승자는 없었지만 참 의미 있었다. 통일 골든벨은 양질의 통일 관련 도서를 읽게 함으로써 통일 문제를 공론화 하고 거부감 없이 대학생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알렸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 학생들이 장학금 혹은 상품이 탐이 나서 대회에 참가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통일에 대해, 북한에 대해 조금 더 알았다. 이 대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전보다 통일의 필요성을 깨닫고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우리 민족 속담을 인용해 표현하면 티끌 모아 태산이고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믿음을 갖고 조금씩 행동을 취하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될 것이고 그 여론이 바탕 된다면 통일은 실현될 것이다. 통일 골든벨 대회가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고등학생,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어 통일의 필요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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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0 23:02

가을이 오면

갑자기 문득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노라니, 기억의 한 파편이 뇌리에 각인이 된 듯 가만히 내 귓가로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하고 물어보던 기억속의 음성이 파도가 물결치듯이 내 귀 언저리에 흘러들어왔다. 누군가는 시골에 가면 넓은 들판에 황금빛의 누르스름한 벼가 무르익어 고개를 숙이고, 그 들판 중앙에는 참새에게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모를 기괴하기 짝이 없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푸르른 창공의 하늘을 동그래한 곡선을 그리며 빠알간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이는 어느덧 가을이 찾아와 푸르스름하던 색상들이 빛바랜 도화지처럼 또는 수줍은 어린소녀의 불그스레한 볼처럼 세상을 노랗고 붉게 물들여놓은 정경이 떠오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날씨로 인하여 독서를 하기에 좋은 계절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었고, 그 당시 나의 대답은 '책'이라는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를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고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참 즐겁고 좋았었던 것 같다. 우리들은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책을 많이 읽어라." 하는 예기를 많이 듣고 자라왔다. 그리고 책을 읽음으로써 즉, 독서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왜 그토록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셨을까?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러하다.첫째, 책을 읽음으로써 무수히 많은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보고 느끼는 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체험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하여 저자가 경험하고 체험한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폭넓은 지식을 책을 통하여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둘째, 창의성이 길러진다. 독서를 하다보면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책속의(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고, 그로인해 한쪽으로 치우쳐진 편협한 생각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생각의 확장을 통한 사고의 유연성으로 인하여 무엇인가에 대하여 상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속의 편의와 편리를 위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실현가능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셋째, 건전한 여가생활을 보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장선상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에 자신이 관심이 있었던 분야에 대하여 책을 읽는다면 이를 통해 자신의 지적양식 또한 쌓을 수 있고 동시에 마음의 심적 안정을 통한 스트레스의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외에도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음에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회는 컴퓨터의 발달과 더불어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컴퓨터게임을 한다든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을 더 할애함으로써 우리는 독서를 하는 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싶다.가을이 왔다. 흔히들 말하는 독서의 계절로 불리는 가을이 왔다. 지금이라도 만약에 그동안 독서를 하는 것에 소홀히 하고 게을리 하였다면 시간이 그동안에 없었다는 핑계는 잠시 저 구석 한편에 놓아두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자 이참에 독서삼매경에 한번 빠져보는 것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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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03 23:02

모든 세대를 위한 예의범절

요즈음 나는 도시 외곽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의 영어수업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가면 어렸을 적 생각도 나고 초등학생들을 만나 즐겁지만 가끔은 그들을 대하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수업시작 종이 쳤는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수업에 늦게 들어오거나,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떠들어서 혼내면 오히려 반항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인터넷과 뉴스 등을 통해 교권이 전보다 붕괴된 것을 알았지만 직접적으로 경험하니 학교 선생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과 지금의 초등학생들을 비교해보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예절을 많이 잃어 버렸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어른을 대할 때의 예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어른에 대한 존경심과 공손한 태도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나는 몇몇 어른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와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아이들이 이러한 예의를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 서구권 나라에서 온 원어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에 와서 웃어른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이러한 우리나라의 예의범절 문화가 부럽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먼저 공손하게 인사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예절이 없어서 웃어른께 예를 갖추지도 않으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시각에서나 우리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우리가 가진 이 예의범절 문화는 자랑스럽고 널리 알리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점점 이 문화가 사라지고 신세대는 서구화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또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어른을 존경하고 공경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모든 어른이 모두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몇몇 어른들은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 부끄러운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한다.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등의 행동들을 보면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기 어렵다. 얼마 전에는 원어민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른 두 명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원어민 친구들에게 한국에서는 사람 사이의 예의가 중요하다고 알려 준데다 동방예의지국의 이미지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 얼굴이 화끈 거렸다. 신세대, 즉 요즘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외동인 경우가 많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므로 아이들도 점점 이기적으로 변하고 어른에 대한 예의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때문에 이 시대에 성장하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으며 공경과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신세대를 위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위해 예의범절 문화를 잘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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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6 23:02

저는 당신과 다른, 이런 사람입니다

사전에서는 '개성이란 사물이 다른 것과 구별되어 독자적으로 갖는 특징이다. 이것은 사물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도 같다. 또한 개성의 신장은 개인이 가진 여러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인은 사회와 동떨어질 수 없으므로 사회의 제약을 받는다.'라고 한다. 나는 요즘 종종 이 개성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아마도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우리의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이 그런 상황을 만들었으리라. 그래서 기성세대만 아니라 나 자신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생각하며, 다름에서 시작되고 이해에서 엇나가는 개성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사람들은 내게 '4차원', '자유로운 영혼', '히피' 등의 별명을 붙여줬다. 그리고 나도 동의한다. 이런 종류의 별명을 갖게 된 이유는 평범하지 않은 옷차림새,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 여행으로 떠돌아다니는 습성 등이 한몫 한 듯하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공부나, 정해진 답이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보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그것을 내 가치관에 맞게 좀 더 발전시킨 것이다.그런데 개성의 정의에서 밝힌 것처럼 개성의 신장은 사회의 제약을 받게 된다. 스스로는 형식에서부터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타인의 시선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겪은 일로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귀국하는 날이었다. 캄보디아의상, 손수건을 두른 머리, 잠자리안경, 기타를 맨 모습으로 베트남에서부터 인천을 거쳐 전주까지 왔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공항이나 휴게소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나보다. "사람들이 너만 쳐다본다."는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별종이네.'하는 눈빛이다. 이런 경우처럼 외모가 튀어서 좋지 않게 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거리에만 나가봐도 제각기 다른 옷차림, 머리모양, 말투, 성격 등 개인주의와 다원화로 인해 외모뿐만이 아니라 가치관에 대해서도 개성이 매우 뚜렷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부사람들은 이러한 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다고 이 모습을 이해해달라고 투정부릴 수 없으며, 기준치에 획일적으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나의 자유는 제한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이러한 개인의 개성에 대해 충돌하는 부분에는 다름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한다.공동체의식이나 집단주의가 낯설지 않은 우리에게 '다름'은 흑백논리나 심지어는 적대감까지도 불러왔다. 그러나 다른 게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저 개인이 가진 외모를 인정하는 것처럼 성격이나 습관, 개성까지도 그 일부로 보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를 이해받을 수 있다. 어쩌면 인정하자는 말은 참 쉽게 들린다. 막상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참 넓은 마음이 있어야 넘길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원화사회,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된 지구촌에 살면서 앞으로 부딪히는 모든 것이 다 생소하고, 색다른 것들을 겪게 될 세대가 아니던가. 따라서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고집은 이제 내려놓고 더 큰 아량을 갖기로 다짐해본다. 색깔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함께 어우러져 다른 색을 내거나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운 하나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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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9 23:02

우리의 도덕성 사용법

"요즘은 기차표 검사를 하지 않는군. 이 기차에 탄 몇 사람들은 표를 사지 않고 탔겠어." "그러게 말이야. 검사를 하지 않으니 기차표를 사는 것은 손해야. 다음엔 나도 표를 사지 않고 기차에 타야겠어." 기차를 타고 집에 가던 중 지루해서 눈을 감고 있는데 옆 좌석 두 남자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토대로 끝내주게 획기적인 무임승차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들의 사고방식에 놀랐다. 그러다가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이해하다가 이 대화가 도덕과 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슬퍼졌다. 도덕과 법. 굳이 둘을 비교하자면 도덕은 강제성이 없고 법은 강제성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 속에 살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할 사람들 간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같다. 두 개념의 의미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약속이라는 공통점에 초점을 두어 보자. 우리는 왜 도덕과 법을 지킬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덕과 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기 때문에, 처벌 받기 두려워서, 지키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도덕과 법을 지킨다. 그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벌 받기 두려워서 도덕과 법을 지킨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콜버그는 이런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도덕과 법을 따르는 것은 매우 낮은 수준의 도덕성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처벌 받기 두려워서 우리 사회의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처벌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도덕과 법을 어겨서라도 개인의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지난 여름방학 때 강원도 삼척시 환선굴에 갔었다. 동굴 보호를 위해 동굴 안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고 적발 시 50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고 표지판에 적혀있었다. 동굴에 입장을 할 때 관리 직원이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동굴 안 곳곳이 포토존이었다. 동굴 안에 통제하는 사람이 없으니 표지판과 동굴 입구에 있던 관리 직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셔터를 눌러댔고 플래시가 터졌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약속인지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누가 보지 않으면 법을 어길까? 왜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만 도덕과 법을 지킬까? 법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법대로 살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도덕과 법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구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누가 볼 때는 지키고 보지 않으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도덕과 법을 지켜야 한다. 양심, 다른 사람, 처벌 등 외부의 조건에 상관없이 도덕과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라야 한다. 도덕과 법이 온전히 잘 지켜질 때 우리 사회가 더욱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이 곧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도덕과 법을 지키는 착한 시민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도덕과 법이 합리적인지 따져보고 잘못 되었다면 논의를 해 진정한 우리 사회의 약속으로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약속이 정말 합당하다고 느껴져 도덕과 법으로 정해졌을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도덕과 법에 대한 신뢰. 기본적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맞게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집행할 때 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덕과 법이 도덕과 법이기 때문에 지켜지는 사회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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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2 23:02

행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현재 당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어 온다면 과연 당신의 대답은 Yes일까? 아니면 No일까? 내 생각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얼마 전 방송매체를 통해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OECD에 가입한 34개국을 대상으로 그들 삶의 전반에 대하여 행복지수가 어떠한지 통계를 내려 그 순위를 매긴 바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그 순위가 뒤에서 두 번째인 32위를 차지하였다고 하였다. 어떻게 하여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일까? 무엇이 우리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 이면에는 무한 경쟁이라는 사회속에서의 치열한 생존원리와 지속되고 있는 경기침체로 인한 불황, 그리고 취업난 등 기타 무수히 많은 이유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행복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행복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일까?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한번 되묻고 싶다. "세상이 말하는 돈과 권력 즉, 우리가 생각하는 부와 권세 그리고 명예를 모두 다 가지고 있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네잎클로버와 세잎클로버에 대하여 저마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잎클로버는 '행운'이라는 의미를, 세잎클로버는 '행복'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우리들은 서로가 네잎클로버를 한번 찾아보겠다고 숲을 뒤지기도 했던 기억을 다들 저마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찾다보면 네잎클로버 보다는 그전에는 그저 무심코 지나쳤던 세잎클로버가 우리에게 더 잘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면서 네잎클로버 찾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네잎클로버를 찾았다며 방실방실 웃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주변을 조금만 더 주위를 기울여 살펴본다면 행복하다고 느낄만한 것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디서 돈벼락 한번 안 떨어지나 하는 심정으로 행운이 있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말처럼 우리 가까이에서, 바로 옆에서 존재하고 있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바라보지 못한 채 그저 우리네 삶을 보다 더 윤택하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작지만 소소한 기쁨들을 외면한 채 살아가면서 삶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는 말 할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고. 그래서 이 삶이 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과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은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한 것일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내 주변을 한번만이라도 되돌아보도록 하자. 내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을 포함하여 사랑스런 가족이 있으며, 나를 언제나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친구들과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내가 꿈을 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수 있고 그들이 있기에 때로는 힘들고 지칠지라도 "그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되새기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항상 내게는 웃음과 기쁨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행복은 저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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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05 23:02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유명한 기업에 취업한 대학교 선배가 얼마 전 학교를 찾아왔다.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대학시절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봉사활동도 하는 등 대내외 활동을 열심히 해 존경하던 선배였다. 자신이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 회사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하지만 그 선배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요즘 행복하다는 걸 전혀 모르겠어, 회사도 그만 두고 싶어" 사정을 들어보니 상사의 압박과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는데 행복은커녕 스트레스 때문에 취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을 먹게 됐는지 생각해봤다. 그 선배는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무엇이 되야겠다'만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한 둘 뿐이겠는가. 아마 많은 취업준비생과 꿈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경제상황이 나빠지는 동시에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져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물질을 좇다가 진정한 행복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 다트머스 대학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총장이 된 한국계 미국인 김용은 오바마의 선택을 받아 세계은행 총재가 되면서 아시아인 최초의 기록을 다시 한번 냈다. 김용 총재는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원동력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로부터 남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다른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질병을 치료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하버드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가난한 나라를 직접 찾아가 각종 질병치료와 빈곤 퇴치에 힘 써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더 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남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한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입시와 취업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후 만족감은 잠시일 뿐, 기대했던 행복을 찾기란 어렵다. 우리나라 부모들도 자식이 좋은 직장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지만 그럴수록 행복과는 멀어질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 학생들도 진정한 행복을 위해 봉사정신을 함양하고 물질을 좇기보다 어떻게 살 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고통보다는 성장통이라고 느끼며 삶을 즐길 수 있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학생뿐만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 꿈만을 향해 가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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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9 23:02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왔다. 별생각 없이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뜨악했다. 신학을 하는 나로서는 노골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세속가치관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검색어에 '부자되'까지만 썼는데 '부자되는 법', '부자되세요', '부자되는 습관' 등의 검색어들이 무섭게 따라 올라왔다. 부자는 어느 시대에든 있어왔고 빈자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언제부터 '부자되기'가 우리 삶 속에 깊이 파고 든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축적하는 것이 아닌 나눔과 만족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나는 지난 7월 23일부터 8월3일까지 국제NGO단체인 '행복한아시아'에서 주최한 '제 2기 전라북도 청소년 해외봉사단'에 스텝으로 참여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물론 청소년들의 글로벌마인드를 고취하기위해 역사, 문화, 종교탐방도 했지만, 봉사단인 만큼 소외계층에 관심을 두고 소외지역과 빈민촌을 많이 방문했다. 그런데 어느 빈민촌에 가든지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쓰레기와 오물이 깔린 진흙길에 화장실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애써 웃어주었으나, 그들은 티 없이 맑은 환영의 웃음과 만족을 보여주었다. 그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깊은 반성을 하게 했다.그들은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대개의 빈민국이 그러하듯 캄보디아의 행복지수도 높은 편이다. 쉽게 말하면 오늘 먹을 것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는 것이다. 즉, 현실에 만족하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가져야 할 것만 보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갖지 못해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땅이든, 돈이든, 사람이든지 간에 계속되는 불만족과 욕심은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반대로,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과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각종 NGO단체들과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나눔과 봉사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왜 자신의 물질을 나누고 후원하고 직접 그 땅에서 봉사하는 것일까. 현장에서 그들과 살을 부대껴 보니 이제야 알겠다. 많이 가지지 않았어도 지금의 내 것에 만족하니, 더 이상 욕심부릴 것이 없어지고 외려 나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이다. 또 나보다 덜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위해 가보니 그들은 이미 만족하며 웃고 있다.봉사기간과 이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에게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답 외에는 대개 나처럼 그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자본주의는 이윤추구가 가장 기본적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더 많은 물질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고 사회가 강요하는 논리에 의해 특별한 이유 없이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그르다거나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맹목적인 부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에 만족하자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고 싶은 편과 나눔의 삶을 사는 편 어느 쪽이든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안다면, 그 삶 가운데서 작은 만족을 뛰어넘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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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2 23:02

당신은 이 곳에 태어나서 행복하십니까?

한 달 전쯤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나라사랑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해 중국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중국에 있는 우리 유적을 답사하는 것으로 나를 비롯한 20여 명의 참가자들은 광개토대왕비, 발해 성터 등에 직접 가서 보고 함께 공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유적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하지만 유적보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한 청년의 말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중국에서 유적지를 답사하는 동안 우리들을 안내해준 가이드는 조선족 청년이었다. 그는 연변 조선자치주에서 태어나 줄 곧 조선자치주에 거주했다고 한다.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그가 매우 신기했다.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언론에서 자주 접하긴 했지만 조선족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모는 우리와 같으나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국어를 사용하며 중국 역사를 배운 그들의 생활, 가치관이 매우 궁금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조선족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가이드가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똘똘한 아이가 "당신은 중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십니까?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중국과 한국 중 어느 나라를 택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내심 한국이 더 좋을 것 같다 혹은 나는 한국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청년은 "나는 중국에 태어나서 매우 행복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중국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조선족은 중국 전통 민족인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중국 정부에서 한족에 대해선 산아정책을 실시하지만 소수 민족들에게는 두 번째 자녀부터 보조금을 주고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또한 각 민족들의 자치주를 인정해 주고 그 자치주 내의 가게 간판은 각 민족의 언어를 우선적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연변에 가니 정말 그의 말과 같았다. 가게마다 모두 우리 한글로 된 간판이 있었고 중국어는 한국어 뒤에 적혀있었다. 연변에 가니 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인정과 이해. 중국이 다른 민족을 대하는 방식을 피부로 직접 느끼며 놀랍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단일민족을 유지해야한다는 어리석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 총각들이 결혼 시기를 놓쳐 국제결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들에게, 국제결혼을 해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결코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굳건히 지켜온 단일민족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존재로 취급하였다. 이런 사고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이단아로 내몰 것이다. 그들은 불행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우리나라 고유 민족이 아니라고 배척하면 우리나라의 발전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불행 할 것이다. 더 이상 그 누구를 위해서도 단일민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중국이 다른 민족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인정하고 곧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한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훗날에 당신은 이곳에 태어나서 행복하냐 물을 때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나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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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5 23:02

꿈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따뜻한 보금자리인 둥지를 벗어나 저 푸른 창공을 향해 날개 짓을 하며 날아오르듯이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도약하고자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나의 꿈을 향해 비상하고자 작년 3월 호주로 떠났다. 처음 호주공항에 내려서 바라본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금발의 외국인들, 한국과는 다른 낯선 대지의 풍광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신기했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호주의 낯선 문화와 환경을 접하면서 나의 외국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남들과 달리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새벽에는 학교청소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이후 아침 9시부터 오후 저녁 늦게까지 어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에 나의 모든 것을 투자하였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나 또한 그러하였기에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한 치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했고, 노력만이 살길이다 싶어서 영어공부에 최선을 다하였다.약간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한번은 잠을 자는데 잠꼬대를 영어로 하던데 무슨 꿈을 꾸었냐고 친구가 물어본 적도 있었고 길을 가다가 분명히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데 영어로 들린다거나 아무도 없는데 영어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가든 무엇을 하든 항상 영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영어는 내게 있어서 낯선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무작정 외국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어 얘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지만 대화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어학원 선생님이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해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 사귈 수 있었으며 그 곳에서 한 베트남 친구의 추천으로 학교에 출품할 작품인 "you and me"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점차 시간이 흘러 호주생활에 나름 적응해 나가고 있을 무렵 나는 레바니즈인이 운영하는 호주에서 제법 큰 water view라는 레스토랑에서 스태프로 일할 기회도 생겼고 그 곳에서 성실히 일한 결과 총매니저인 제임스의 추천으로 한국인 담당매니저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거머쥘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를 비롯하여 멜번 그리고 타즈매니아 등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파티에 참여하면서 외국의 전통음식, 결혼식 등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접하면서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호주에서의 생활들은 내게 값진 경험과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현재 나는 나만의 소중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자 준비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 미래의 내가 존재한다면, 현재의 내가 끊임없는 도전과 준비가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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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8 23:02

직업엔 귀천(貴賤) 있다?

어머니 曰 "너는 땡볕에 나가 힘들게 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냉난방 잘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 수 있는 그런 안정된 곳으로 취직하렴."딸 曰 "그럼 저는 버스기사가 될래요."어머니 曰 "아니, 왜?"딸 曰 "버스 안에도 시원하고 따뜻하게 냉난방 잘되고, 컴퓨터는 없지만 앉아서 안정되게 일할 수 있잖아요"어머니 曰 ""위의 대화는 필자가 나눴던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이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말이기에 웃어 넘겼지만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취업을 해야 되는 상황에 몰린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직업엔 귀천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안정된 직장을 얻어 일하는 것으로 변질되어버린 요즘 20대 젊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힘든 일은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EBS에서 방송되는 '극한직업'에서는 더운 여름날 뜨거운 불속에서 작업하고, 아슬아슬한 다리 위에서 케이블 교체 작업을 하는 등 힘들고 위험한 직업 또는 일들을 소개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언젠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일을 하면서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단 생각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어느 직업이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또한, 그 보람을 느끼면서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천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더러운 것을 만진다고 하여,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하여 그 사람들이 뒤떨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나온 것.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수입을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아 평가하는 현실에서 돈을 가지고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생각이 취업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대기업,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종에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취업난이 일어난다고 말은 하지만 조금만 옆(중소기업)을 살피면 정작 사람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것이 직업에 대한 귀천을 따지는 것이 아닐까?한편 호주, 캐나다 등 타 국가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기술직이라고 해서, 어느 힘든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그 직업을 천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못한 일들을 하고 있기에 그 직업과 사람들을 존중해 준다고 한다.약육강식의 자연 생태계처럼 모든 직업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직업을 얻어야 먹고사는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상황에 자신이 나눈 직업의 귀천에 자신이 휘둘리는 것만큼 슬픈 것이 어디 있을까?필자가 전국에 있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감히 물어보고 싶다. '자신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원하는 연봉을 받으며 살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라고.대학생들이여! 청춘들이여! 너무 안이한 직업만을 추구하려 말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일 때 여러 가지 인턴생활을 하면서 직업을 탐색해보며, 귀천을 따지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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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1 23:02

느리게 걷는 즐거움

다른 이들과 함께 걷다 보면 "빨리 오지 않고 거기서 뭐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그리고 "조금만 천천히 걸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느리게 걸어야만 마음에 들어오는 것들을 담아둘 여유를 갖게 되었다.며칠 전, 볼 일 때문에 서울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지하철을 이용하고 걷는 내내 일행과 나는 서울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쁘냐는 질문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전주로 돌아와 원룸으로 향하는 길, 어두교에서 보이는 학교의 고적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고서야 평온을 되찾았다.요즈음 우리는 꼭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야한다는 의무감이나 해낸 일에 대한 인정 등 성과주의 내지는 결과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세태속에서 우리는 늘 바쁘고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 해내는 일들이 아니다. 사회 혹은 속한 집단의 요구에 맞추어 내야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조급함을 삶까지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무엇이든 바쁘게, 빠르게 해내야한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잃게 되었다. 사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므로 내 세대가 걱정하는 취업, 자격증, 어학연수와 같은 스펙이 아닌 세상말로 '사색과 성찰'을 해야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도 학생인지라 성적이나 내 욕심에 채워져야만 하는 것들 때문에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빠르게 걷는다. 그럴 때면 나는 늘 탈진상태가 되어버린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소중함과 같은 의미들은 퇴색되어 버릴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느리게 걷는다. 그것을 여유라고 생각하는데 내 경우에는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보며 느리게 걷고 자유롭게 여행을 해야 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나면 다시 내 모습을 되찾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꼭 거창한 여유가 아니어도 된다. 느리게 걸으며 주위를 보면, 매일같이 보던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바짝 말라서 고여 버려 썩을까 봐 걱정될 정도였던 하천이 비 온 뒤 얼마나 힘차게 흐르는가를 보기도하고 비 온 뒤 큼지막해진 대추알을 보며 침을 삼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내 삶에 직면해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고 또 나를 다시 성찰해 본다. 그렇게 내가 관심 갖지 못했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여유가 생기고 그것들을 통해 내 삶을 재조명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늘 보아오던 것들을 느리게 걸으며 다시 바라보는 것이란 늘 다른 의미를 준다.나는 전북이, 전주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내 고장이 참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뒤쳐졌다고, 성과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느림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 또한 그 옛날 뒷짐을 지고 느리게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며 이 길을 걸었던 양반들의 정취를 느끼고자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그 느림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이제 나는 여러분과 다시 빨라지려하는 걸음을 늦추고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시선을 옮기며 그를 통해 진정한 내 모습을 다시 발견하며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배우려한다.※ 한 편집장은 2010년부터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신학부 3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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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25 23:02

우리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한다면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책에서 우리의 인생을 시간에 비유했다. 인생을 팔십년이라 가정하고 이를 24시간에 비유하면 20대 우리의 시간은 7~8시라고 한다. 우리 나이는 이제 막 집을 나설 시간이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힘을 내어 집을 나설 준비를 하라고 한다. 우리는 집을 나설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 20대, 자유롭기에 즐겁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 선생님 등 우리를 얽매이게 했던 존재들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진다. 사회에서는 우리를 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 심지어 학교생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대학에서 출석을 하지 않아도 집으로 전화해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학부모 면담을 하지 않는다. 대학 생활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롭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차 자유로워지는 만큼 나의 삶을 내가 책임져야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결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행동을 바탕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님, 선생님, 어른이 나의 삶을 조언해 줄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나의 삶을 설계해야하는 시기가 온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설계하기에 많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 선생님 말씀만 듣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만 열심히 했던 우리는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자꾸만 어서 사회로 나가라고 한다. 우리는 막막하고 불안하다. 사회로 나가야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고 머리만 아파온다. 고민 끝에 우리가 택하는 길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기. 고시공부, 스펙 쌓기, 인턴십 등을 하며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충족한다.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인가 나에게 질문을 해봐야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을 접어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이번 방학에도 전국에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방학을 즐기지 못하고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우리에게, 아직 작은 우리에게 사회는 큰 우리가 되길 원한다. 20대가 되어 갑자기 다가오는 진로에 대한 막막함, 불안함을 없애려면 중고등학교 때 입시공부만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민이 끝났다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진로 탐색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꾸준히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지금 20대들의 불안함, 막막함은 줄어들 것이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미리 준비하고 생각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너그러움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 강 편집장은 2010년부터 전주교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2년 전북 학생기자단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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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8 23:02

청춘의 끝에서 외치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취업은 안돼요." "어서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남들처럼 살고 싶어요." 같은 말들을 종종 듣고 살아가는 현대에서 꿈과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우리들의 이름은 대학생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나름의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꿈을 향해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기도 하고 때론 실패하여 좌절하기도 하며 쓰러진다 할지라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빛나는 청춘'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들의 꿈은 어느 샌가 빛바랜 도화지처럼 사회현실이라는 거대한 문턱 앞에서 점차 퇴색되어 버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렸을 적 우리 모두는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가 되어 사람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고 싶어 했을 수도 있고, 또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 문명의 발달을 선도하는 선구자가 되고 싶어 했을 수도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꿈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꿈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경제적 관념이 생겨나면서 '돈'이라는 굴레 또는 적자생존이라는 법칙 앞에서, 즉 '승자 만이 존재하는 비정한 사회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무너져 버리게 되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나 또한 이러한 사회현실의 생리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어찌 보면 이 사회의 피해자 아닌 희생양이라고 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무엇이든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되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던 것 대신에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타성에 쉽게 젖어 버리게 됨으로써 그저 무작정 아무런 목표 의식조차 없이 회사에 들어가는 일꾼으로 아니면, 한번 들어가면 평생직장이 되어 버린다는 공무원이 되기 위하여 우리들의 삶에 대한 선택을 다른 곳으로 서서히 돌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현시대에 있어서 꿈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과 삶에 대한 주제로 한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방송에 나온 출연자들 중에서 한 여성은 여태껏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고 바라던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항공사의 기장이 되어 푸른 창공을 날아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녀는 그 당시 대사관에서 일도 잘하는 재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기장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자신만의 소신을 가짐으로써 도전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은 중국의 한 항공사에서 기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 참 흔한 말이죠. 지금 내 현실에 있어서 내 꿈은 저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든 것 같지만 꾸준히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이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마세요"라고 했었는데 어찌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던지 아직까지도 내 기억의 한편에서 소중한 디딤돌의 하나로써 기억되고 있다. 나는 말하고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론 포기해야 할 것도 있으며 그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고될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내가 가야할 방향의 등불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빛나는 청춘을 가지고 있는 우리. 우리는 이대로 꿈을 상실하고 혼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고 먼 훗날 '나'라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게끔 꿈을 되찾고 그것을 향한 청춘의 여정을 떠나보는 것은 어떠할까?※ 최 편집장은 2011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거쳐 대학 동아리 손짓사랑 고문을 맡고 있으며 호원대 법경찰행정학부 4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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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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