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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디드 커피

그쪽이 기억하고 있는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한 동안 SNS 에 돌고 돌았던 서스펜디드 커피에 관한 사진 한 장은 나를 뜨겁게 만들었고 금세 차가운 얼음과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다. 서스펜디드 커피란 하나의 운동이나 캠페인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커피숍에 커피를 맡기는 것으로 그 방법은 커피를 3잔이나 4잔 주문하고 "2잔은 마시고 2잔은 맡겨 논다."고 말하면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누군가가 찾아와서 서스펜디드 커피가 있는지 물어보고 마시는 것이다. 작은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모두의 주목을 끌고 여기저기서 자신들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서로가 경쟁의 구도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공격해야하고 나에게 돌아올 공격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함께할 수 있다는 작은 즐거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도 나도 동참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미 경쟁구도의 관계에서 떨어져 흔히 말 하는 낙오자의 개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한 잔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스펜디드 커피라는 개념이 나눔의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든 위로의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없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들이 그들에게 보여야 하는 태도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스펜디드 커피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그들이 사회에서 멀어지기 전에 감싸주지 못했고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는 커피한잔을 사주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덮어버리는 것일 수도 혹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 괜찮아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도움을 주려면 확실한 도움을 주어야하고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필요한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커피 한 잔의 여유일지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새로운 모습의 캠페인이 커피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음식에서도 적용되어지고 있는데, 결국 그들의 문제에 대한 1차적인 해결일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에게 커피 한 잔이 아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들이 가지는 배움의 의미가 나만 잘 살아가면 된다는 의미에서 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바뀐다면 그래서 경쟁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닌 나눔 속에서 경쟁이 존재한다면 사진 한 장에 담긴 나눔의 모습에 감동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서스펜디드 커피 문화를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감동이란 부분은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에서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멀어지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 나와 같은 사회라는 공간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혹시 커피를 맡겨두는 누군가가 있다면 봉사를 하고 있다거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자신을 포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자신이 함께 성장하는 하나의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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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22 23:02

스트레스는 꼭 풀어야 한다

바짝 날이 서서 모든 것이 짜증날 때가 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집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더부룩하며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마다 화가 날 때가 있다. 말하는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앞에서 말한 모든 걸 한꺼번에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이 당신에게서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나는 스트레스를 '잼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잼이 병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처럼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빈 공간을 설탕과 과육으로 가득 채운 잼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주변의 진심어린 충고도 들리지 않는다. 빈 틈 없는 그 공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힘이 들고, 쉬고 싶다. 병과 잼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날이 서서 모든 일이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런 '잼과 하나 된 상태'가 계속 된다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자신에게 지쳐버리곤 한다.그렇게 너무나도 지쳐서, 스트레스를 푸는 중이라면 남의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스트레스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 정지해 있으면 안 된다. 스트레스는 당신이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든다. 당신에게서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당신이 스트레스를 푸는 그 행동이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당신의 활력을 깎아먹기만 하는 '스트레스 잼'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둘러 싸여 있는 건 당신에게 좋지 않다.나에게는 B라는 친구가 있었다. B는 항상 잼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B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다양했다. 남자친구가 전화를 안 받았기 때문이었고, 하는 게임에서 남보다 좋은 장비를 얻지 못해서였다. 지나가던 버스가 자신에게 물을 튀겨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고, 엄마가 동생을 돌보라고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처럼 B는 다양한 스트레스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항상 갇혀 있었던 것이다. B는 항상 답답해했고 사소한 것에서 화를 냈다. 그렇지만 B는 스트레스를 풀 줄을 몰랐다. 화를 내면서도 자신이 왜 화를 내는지를 몰랐다. 스트레스는 고양이 있는 집에 털이 쌓이듯 빠른 속도로 쌓였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행동은 매우 미약했다. B는 제법 예쁜 편이었다. 그렇지만 웃지 않았다. B는 항상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지를 못하니까 곱던 얼굴도 미워 보였다. B 곁에 가까이 있던 친구들은, B를 보며 점점 지쳐갔다. 그녀에게 말을 걸 때 마다 짜증을 냈기 때문이었다. 잼 속에 갇혀 있는 B는 스스로 그 뚜껑을 놓지 않았다. 결국 B의 잼 뚜껑은 열리지 않았고, B는 고립되고 말았다. 내 친구 B가 점점 고립돼 간 것처럼, 과도한 스트레스는 당신을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 자신에게 지쳐 있는 사람이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뚜껑이 열리지 않는 잼은 언젠가 썩어버리기 마련이다. 차라리 방치해서 썩어버리는 것 보다는, 뚜껑을 밀어내서 잼을 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잼 뚜껑을 잡고 자신을 닫아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다. 어서 뚜껑을 열어버리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갇힌 공간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5월이다. '즐거운'날이 많은 만큼, 사람들과 마찰이 생길 일도 많을 것이다. 남들이 다 즐거운데도 짜증이 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들어있는 병 안에, 차곡차곡 잼들이 쌓일 것이다. 그럴 때의 당신은 텔레비전을 봐도 좋고, 아이돌 콘서트를 따라다녀도 좋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고, 시 한편의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잼 속'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스트레스가 주는 상처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어여쁜 그대여, '잼'을 발라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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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15 23:02

영화 '지슬'을 보고

독립영화 '지슬'이 관객 13만 명을 넘어섰다.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하한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다. 한국말이지만 제주도 방언이 나오기 때문에 자막이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인 4·3 사건은 1948년 '섬 해안선 5㎞ 밖의 사람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된 사건이다. 해안선 5km밖은 사실 바다 밖에 없다고 한다. 즉, 제주도 주민들 대부분은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영화에서 나오는 몇몇 대사 중에는 "밥 쳐 묵을라믄 폭도들 목을 따오라고!", "근데 폭도가 있긴 한거냐"에서 사람들은 무지한 채 삶과 죽음이 오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갈등한다.마을 사람들은 동굴 속에 숨어서 군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감자로 버틴다. 이 안에서 오고가는 마을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순수하기하다. '일제 총, 미제 총'을 두고 승강이하는 대목, 순덕이의 짝사랑 이야기, 제 목숨 위태로운데도 '홀로 남은 돼지 밥'을 걱정하는 원식이 삼촌의 대사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무동 어멍(어머니)이 불에 타 죽으면서 남긴 감자, 군인에게 유린된 순덕의 주검 옆에 놓인 감자를 보면서는 눈물이 흐른다. 제목이 '지슬'인 까닭이 여기 있을 것이다.왜 힘없는 사람들이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과 씁쓸함을 남기며 영화가 끝나고 제주 민요 '이어도 사나'가 엔딩곡으로 흐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리를 뜨질 않았다. 아마 영화가 주는 가슴 저린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중들은 무언가 여운을 가지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4·3 사건을 생각했을 것이다. 인권보다 이념이 중요했던 시대,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직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을 다니고 죽음을 맞이했다.여기서 정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거대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과 죽음이다. '지슬'에서 토벌대를 피해 산에 숨어든 사람들이 삶은 감자를 놓고 벌이는 갈등과 나눔은 진정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생략돼 있음으로 인해 관람자들은 사실의 한 면만을 두드러지게 바라보게 된다.잘잘못의 가르기 시작하면 서로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더 깊이 주민들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4·3의 진실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의문을 증폭시켜 나갈 때 한국현대사는 부당하게 왜곡되고 비참하게 희생당한 주민들은 다시 정치권력의 이용물로 전락했다. '지슬'은 담담하게 사실을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 감동적이다. 그러나 역사나 사실의 해석에서는 부분적이다. 투쟁할 힘도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을 잊지 않고 역사에 기록해야 하는 것은 후대의 의무다. '지슬'은 남북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분열과 통합의 과정에서 한국현대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방향성을 시사한다. 이제는 말과 역사가 잊혀져가고 있다. 4·3과 감저(고구마)와 지슬(감자)이 모두 잊혀져 간다. '지슬'이라는 말에는 잊혀가는 '4·3'과 사라져가는 제주 사투리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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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08 23:02

고체가 된 대학생

"우리학교는 고시에 관심이 너무 없다. 다른 학교가 200명 지원해서 20명 합격한다면 우리학교는 100명 지원해서 10명 합격하는 꼴이다", "고시 유입인원을 늘려야 한다. 이것이 곧 학교 위상을 올리는 길이다." 한 대학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글이다. 아마 이 글의 작성자는 고시 합격률이 높아지면 자신이 취업전선에서 이익을 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추측해보건대, 이 글은 고시생이 쓰지 않았다. 고시생의 눈에는 합격생 20명, 10명보다 합격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해 망연자실하는 180명과 90명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일부 기성세대는 대학생들이 보수적이고 이기적이라며 지탄한다. 근거 있는 비난이다. 비인기학과가 사라져도, 학교가 개입해 총학생회 선거를 무산시켜도, 대학언론사 예산이 삭감돼 제대로 된 학교소식을 듣지 못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계산하기에 따라 오히려 좋은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대학평가 순위가 올라 취업에 조금이나마 도움 되겠거니 한다. 뭐가 됐든, 나한테만 피해 없으면 장땡이다. 예능 프로 「1박2일」에서는 이런 세태를 한 마디로 압축해서 풍자했다. "나만 아니면 돼!"53년 전 이맘때쯤, 이 땅의 대학생들은 부정선거에 저항한 혁명을 이끌었다. 수만 명이 동참한 시위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홍안의 선배들이 목숨을 바쳐 투쟁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려대 4·18선언문이 기록했다.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사회 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하랴."강산이 다섯 번 변했다. 세상은 진보했고 대학생은 보수가 됐다. 취업이 우선이라는 대학의 부채질에 끓어 넘치던 혈기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도서관 구석에 앉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고체다. 고체화된 청년들의 모난 가슴은 서로의 연대를 어렵게 한다. 어지간한 불의는 우리의 끓는점을 자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배들의 투쟁기를 들으면 생각한다. '그땐 취업걱정 없었으니까!'심리학적으로 볼 때, 젊은 시기에 경제적 곤란을 자주 겪을수록 보수적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국 사회 대학생 다수는 등록금과 주거 문제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취업률은 나날이 떨어져 간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요원하다. 투쟁이니 연대니 하는 단어는 토익 단어장에나 존재한다. 20대가 X새끼니 어쩌니 하는 어른들의 질타는 그들을 꼰대로 보이게 할 따름이다.한국 경제의 앞날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쟁력이 되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들 한다. 창조경제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중심에 대학생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창조경제는 창의력에서 시작한다. 창의력은 진보의 유의어다. 진보적인 대학생에게서 창조경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대학생을 제외하곤 고체마냥 머리가 딱딱하게 굳었다.그들에게서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말랑말랑한 생각을 끄집어내는 방법은 안정적인 복지정책에 달려있다.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는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을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을 '비용'이라 말하는가?"라고 말했다. 대학생을 향한 복지는 위험은 높지만 세상 무엇보다 수익이 큰 투자다. 그 투자만이 대학생을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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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01 23:02

'사랑도 청춘이다'

4월이다. 전주 동물원 야간개장이 끝났다. 연분홍색을 자랑하던 벚꽃 잎도 바람에 흩날리고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중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봄타나보다.'라고 말하는 그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 여기저기 커플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시기에 연인과 손잡고 꽃구경 가는 설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벚꽃이 떨어지는 시간이 왔다. 벚꽃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다음해 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을 보내는 청춘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떨어진 벚꽃 잎 마냥 다음해 봄을 기다린다는 마음처럼 흘러 보내버린다. 나는 이런 이유를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상대의 마음보다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더 높이 바라보는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각자가 보여줄 수 있는 '조건들이 사랑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이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서로 같을 때 더 빛난 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런 계산 없이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행동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리운 누군가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아직 충분히 계산 없는, 진짜 마음이 가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아직 '청춘'이라는 단어에 묶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청춘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저. 김 난도)'에는 청춘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청춘이란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그렇다 청춘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래서 더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적용하고 싶다. 우리들은 청춘이기 때문에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야하며 사랑 또한 이와 같다고 말이다. 내 앞에 서있는 그 누군가는 나와 같은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청춘에게 현재는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조건들을 따지려 한다면 그것은 반칙이라고 말하고 싶다. 축구경기에서 반칙을 사용하면 경고를 주며, 반칙이 두 번 이상일 때는 퇴장을 당한다. 축구경기 뿐 아니라 모든 경기에는 규칙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사랑에도 규칙이 존재한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반칙에 언젠가는 퇴장을 당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퇴장이 상대에게서 나온 것일 수 있고 혹은 스스로 주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결국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척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청춘들이다. 완벽해진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완벽함을 만들어 가는 순간들인 것이다. 그 중 한 가지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균형이 중요하듯, 청춘이 단단해지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라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그러니 떨어지는 벚꽃 잎을 그냥 보내지 말고 지금 사랑하고 싶은 누군가와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있다면 좋겠다. 벚꽃은 매해 볼 수 있지만, 때마다 공기와 날씨가 다르고, 꽃잎의 모양도 다를 것이며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순간이 다르다. 지나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에 나중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춘이기에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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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24 23:02

고교생에게 문학 읽기를 허하라

'청춘예찬' 원고를 처음 의뢰 받았을 때, 나는 최대한 글을 일상적인 소재로 부드럽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일상의 작은 소재를 보고 독자들이 두근거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가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탁 터놓고 강한 어조로 말할만한 급이 안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원고는 조금 강한 어조로 '이렇게 하라'고 외치고 싶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내 동생이 겪었던 일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내 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연합고사를 치러 들어가는 지금에도 지역 명문 소리를 듣고 있는 고등학교이다. 최소한 익산 시내에서 그 교복을 입고 다니면서 불이익을 받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이미지의 학교이며, 내가 그 학교에 재학할 때도 논술 및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 오는 소위 명문이었다.내 동생은 그 고등학교의 사서 동아리 소속이다. 사서 동아리는 학교 도서실에 있는 책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책을 신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분기에 책을 신청할 때, 담당 선생님께서 시집과 소설책 목록을 보시며 이런 책들은 구입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 책들은 이미 서가에 많이 꽂혀 있으며, 그런 책들을 보면 공부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과연, 과연 그럴까.독서는 마음에 양식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좋은 책은 많이 보고 꼭꼭 씹어 먹을수록 좋은 법이다. 한 권의 책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꾼다. 내 대학교 은사님께서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고 힘을 내셔서 학문에 정진하셨고, 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읽었던 백석의 시집과 김형경 작가의 소설 때문에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에 책이 많은 만큼 사람의 인생을 바꿀 책 또한 찾기 어렵다. 그러기에 청소년-청년기에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책'들로 지칭된 '문학'은 사람의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사람의 인생을 휘어잡기도 한다. 청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문학을 접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세우는 것이다. 여러 자기소개서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물어보는 것도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야자에 시달리는 고등학생들이 가장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도서실이기 때문인지, 모교의 도서실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청춘이란, 책을 읽어야 한다. 인생을 바꿀만한 단 한권의 책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영역 문제집에 밑줄을 쳐가면서 '역설적 표현.' '공감각적 심상' '비유적 표현' '주인공이 ~함을 암시.' 라고 적어놓을 게 아니라, 문학을 읽으면서 생각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대학에 갈 공부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인지 수능에 나올 문학이 아니면 읽지 못 하는 건가 싶어서 맘이 아파온다. 그나마 언어영역은 국사처럼 선택과목이 아니라 참 다행일 뿐이다.괜히 마음이 텁텁해져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친구는 웃으면서 자신의 친구는 너무 책을 많이 읽는다고 교무실에 들어가서 상담을 하고 나왔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를 해준다. 웃으면서 할 이야기를 입술을 깨물면서 하고 있는 꼴이다. 괜히 전화 받기가 퍽퍽해져서 매 달 독서토론에 나간다는 엄마가 형광펜을 치면서 읽고 있는 책을 떠들러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책을 읽는 게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걸까, 라고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야자시간에 책을 읽다가 책을 뺏긴 경험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런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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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17 23:02

대학, 자연스러운 독서문화 조성해야

지난달 16일과 21~22일 원광대학교가 주최하는 '후마니타스 장학금' 장학생 선발이 끝났다. 올해 3회를 맞이했지만 처음에 시행됐을 때만큼의 열정은 사그라들었다. 원광대는 지난 2011년 11월 후마니타스 장학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증진시키고 글쓰기 실력을 높이기 위한 이 제도는 '독서시험', '독서논술', '독서토론' 등 총 3개의 부문으로 나눠 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장학금 제도는 취지도 좋고 책을 읽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 학생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조금 억지스러운 느낌이다. 대학생이 책을 읽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장학 제도까지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 않은가. 또한 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후마니타스 제도가 용돈벌이로 전락해버릴까 우려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오늘날 대학생들은 자투리 시간에 책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책을 읽으러 가기보다는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학생들은 시험성적이 취업 성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최근 국내나 미국의 유수대학들도 인문학적 소양교육의 강화를 위해 독서 장려에 팔 걷었다. 경희대의 경우, 지난 2011년 출범한 학부 교양교육전문 대학인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올해로 3년째 운영하고 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경희대가 문명을 성찰하는 교양인 양성을 목표로 출범했다. 경희대 학생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35∼56학점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고 한다. 성균관대의 경우, '오거서(五車書) 운동'이 있다. 오거서 운동은 성균관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독서 진흥 운동으로, 학생들은 정해진 날짜에 모여 자율적으로 책을 선정하고 토론한다. 더불어 '성균관대 오거서 홈페이지'에서 각자 책을 읽은 후 독서노트를 올리면 회원들이 서로 댓글을 남기며 글을 추천하고 추천 수가 많으면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활발히 활동을 하는 회원에게 점수를 부여해 우수자와 열독왕 랭킹에 선정되면 장학금과 2박3일 여행의 혜택이 주어진다. 이밖에도 책을 읽고 팀별 발표를 하는 '독서PT대회'도 열린다. 미국의 세인트 존스 대학교의 경우, 의무화된 커리큘럼으로 '그레이트 북스 프로그램(Great Books Program)'이 있다.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서양 문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100여권의 저서를 읽고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작성해야 한다. 세미나 형식의 토론 수업은 보통 20여 명의 학생과 두 명의 독서 전문가가 함께 진행하며 전문가들은 학생들에게 가이드와 동료 질문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독서 골든벨부터 힐링캠프, '독서졸업자격인증제' 실시까지 각양각색이다.대학의 독서 장려는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원광대도 이러한 추세에 편승해 후마니타스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자연스러운 독서문화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이 독서를 장학금을 타기 위해 매개체로 이해한다면 독서에 대한 진정한 흥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독서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이를 생활화 할 수 있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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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10 23:02

영화 '지슬'과 대학생의 동병상련

오늘은 제주 4·3사건 65주기이다. 65년 전 제주도의 오늘을 주제로 한 독립영화 '지슬'이 화제다. 지난 1월 한국 영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아 작품성을 입증한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누적 관객 6만 명을 넘겨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이 사건은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무장봉기로 시작했다. 이후 1954년 9월, 한라산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했다. 현재까지 신고된 사건희생자는 1만5100명으로 집계됐지만, 최대 3만 명가량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제주도 주민이 30만 명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10분의 1가량이 사망한 것이다.'지슬'은 반공이념에 목숨을 빼앗긴 순박한 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흑백필름에 담긴 영상은 마치 이분법에 가려져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개인의 삶보다 집단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냉혹한 전체주의를 지적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단지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떨떠름한 감정이 떠나질 않는다.사실 전체주의의 망령은 지금도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특히 대학이 그렇다. 오늘날 대학은 효율성과 경쟁력을 자신의 이념으로 삼고 독단적인 행정을 일삼고 있다. 지난해 원광대는 재정지원 제한대학의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업률과 재정기여도가 낮은 6개 학과를 폐지하기로 했다. 윤정환, 김태영 등 스타선수를 배출한 동아대 축구부는 최근 3년간 성적이 좋지 않아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부산외대는 학생 재적률이 낮다는 이유로 러시아인도통상학부를 통폐합시키겠다고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수도권 대학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연세대는 올해부터 강제로 신입생 수업을 국제캠퍼스에서 진행한다.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다. 교육 환경은 기존 캠퍼스보다 상당히 열악하다. 연세대와 한국외대는 자율전공학부를 폐지하고 각각 융합학부와 언어외교학부를 신설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략됐다.로스쿨이 생긴 대학의 법대는 신입생 모집이 폐지됐다. 각 대학은 최대 2017년까지 법대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공수업은 교수 대신 시간강사가 하거나 교양수업으로 대체되니 강의의 질이 좋을 수 없다. 게다가 지난해엔 교육과학기술부가 법대를 당장 폐지하라는 지침을 내려 물의를 빚었다. 위의 사례들은 최근 1년간의 일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기에는 지면이 벅찰 만큼 대학은 무소불위의 전체주의 체제를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계란에 바위치기 같은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제주도에서 반공이라는 이름의 총칼에 희생된 이들은 효율성과 경쟁력, 행정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권리를 빼앗긴 대학생들과 오버랩된다. '지슬'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며 혼령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대학에게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만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을 통해 무고한 희생자를 필수로 동반하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조금이나마 얇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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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03 23:02

여행의 묘미

며칠 전 집에 내려가기 위해 전주역을 찾았다. 나는 전주역을 들릴 때 마다 꼭 챙겨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작은 공간이 있다. '내일로' 여행을 하며 전주를 들러 준 소중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들.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이 아쉬워 대일밴드 종이에 적어서 밴드로 그 이야기를 붙여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그 글을 보자마자 그들의 작지만 강한 사랑의 힘이, 그리고 아픔이 느껴졌던 공간이다. 많은 추억이 담겨져 있는 전주역에서 이번에 내가 발견한 것은 '기차를 놓쳤다. 어쩔 수 없지 이게 여행의 묘미, 더 좋은 추억을 만들다 가자'라는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보자마자 마음이 뭉클했다. 여행을 할 때는 예정된 시간에 타지 못한 기차가 추억이 된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라는 사람들이 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그런 묘미를 즐기지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 보다 즐겁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과정에 급급해 진정한 인생의 묘미가 뭔지도 모르고 모두들 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사람들 모두 상처입기 두려운 것처럼, '이 정도면 안전해.' '이정도면 상처가 깊지는 않겠지.'를 당연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안전한 것에 더 마음을 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그러면서도 삶은 늘 도전의 연속이라는 말을 듣고 산다. 어느 것에 도전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나의 도전을 존중받을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하지만 도전이라는 것은 늘 우리들 주변에 존재하여왔다. 아직 나 또한 잡아본 적 없는 도전이라는 단어를 어느 누군가에게 강요하듯이 던져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역에서의 짧은 만남의 글이 나에게 '돌아보다'라는 단어를 선물해 주었다는 말은 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서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리고 뒤돌아본다는 것을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나가는 방법만 학습 받아왔고, 강요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뒤돌아 내가 지나온 길을 조금 관찰해 볼 생각이다. 이러한 나를 혼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의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판단이 들게 했다면 혼나면 된다. 그리고 혼난 만큼 도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만큼 응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응원이라는 가뭄에 시달려 메말라가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지금이 아닌 더 먼 삶에는 지금과는 다른 시간이 존재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과거의 시간에 어울리는 모습의 인생이 있다면 변화하는 시간에 어울리고 존재하는 인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직 그 시간을 살아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고, 혹 예측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우리는 추측이 아닌 현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틀에 너무 얽매여서 자신을 만들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가 경험하지 못 한 것이기에 두려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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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27 23:02

나는 문득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다

날 처음 겪는 사람들은, 내 머리카락 색을 보고 나를 굉장히 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뒤에 나를 살짝 간을 본다면 내가 상당히 얌전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답답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도박을 싫어한다. 결과를 내가 컨트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예비하지 않은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 것도 싫어한다. 쓸데없는 부분에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의외로 가끔씩은 충동적이고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도 좋아한다. 얌전한 평소 성격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내 충동적인 행동은 대부분 '좋아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으로 충동적이었던 에피소드를 말해보자면 인피니트 성규의 솔로 데뷔무대를 보기 위해서 갑자기 서울에 갔었던 일일 것이다.때는 바야흐로, 성규가 솔로앨범 'Another Me'를 발매했던 추운 겨울이었다. 집 안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성규가 노래하는 걸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성규 팬이었던 동생이 나에게 '뽐뿌질'을 넣고 있었고, 나는 당장 용산으로 올라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다음 날이 공개방송 날이었기 때문이다. 익산에서 서울로 가는 일은 의외로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 서울로 공개 방송을 보러 가는 일은 대단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심야 열차여행이라고 할지라도 새벽 한시 기차를 타고 용산으로 가서, 한 시간 정도를 지하철을 기다린 다음에, 그 지하철을 타고 최대한 빨리 방송국에 도착해야 한다. 여섯 시에 인원체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하드한 스케줄을 감수하고도 성규 보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충동'이 필요하다. 본래 소심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내 성격으로는 절대로 연예인 하나 보겠다고 공개 방송을 뛰는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간간히 고개를 내미는 '충동'은 내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충동이 없었으면 바티칸전을 보러 서울로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어벤져스 4D를 보러 광주로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익산역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서 간 경험도 없었을 것이며 머리카락을 투톤으로 물들이는 경험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작법서를 읽어보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과 간접경험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경험해본 것이 있어야 글에 리얼리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기에는 성격이 매우 소심하다. 처음 하는 일을 할 때에는 심장이 너무너무 두근거려서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못하겠다. 여행을 갈 때에도 '혹시 모르니까' 라는 불안감 때문에 일단 내가 안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기고 본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간히 나오는 나의 충동에 따라 행동할 때, 나는 갑자기 용감해진다. 산책을 할 때도 막 골목길로 들어간다. 나는 길치이다. 일 년 정도 정해진 길로 다녀야 겨우 길을 외우는 정도다. 그렇지만, 길을 잃더라도 다른 길로 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갑자기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상황이 좋다. 머리가 비워지고 신선해지는 기분이 든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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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20 23:02

새 학기, 자신만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모든 것이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이다. 국가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였으며, 북한,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도 새로운 정권에 의한 미래를 만들어 나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 학교도 신입생과 복학생, 그리고 얼마간의 방학을 마친 재학생 모두가 새 학기를 시작했다. 방학 중에 고요했던 캠퍼스가 새내기까지 더해져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우리대학의 자랑 캠퍼스 역시 싱그러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대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고등학생 때와 달리 좀 더 자유로워지고 내가 진정한 시간의 주체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찼다. 그렇지만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자기 결정권이 더 많아진 만큼 자기 책임 역시 커지기 때문이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자유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인 시간적 여유를 그냥 흥청망청 만끽하다 보면, 마냥 대학생일 것 같던 대학 시절도 흘러가버릴 것이다.계획을 세워 스스로를 제어하지 않는다면 졸업 후의 진로는 더욱 막막해질 것이다. 대학교 입학한 새내기에게도 지금부터 준비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한 가지라도 목표의식을 갖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보자. 굳이 스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한 방법은 주변에 무궁무진하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학교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아직 새내기라고 망설이고, 또 너무 늦었다고 주춤거리지 말고 말이다. 이제 신발 끈을 조이고 해답을 찾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움직여야 만날 수 있고, 움직여야 배울 수 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많은 발전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다.만약 공모전을 준비한다면 팀원과 머리를 맞대고 밤을 지새울 각오를 해야 한다. 새롭게 아이디어를 짜내고, 논리를 구성하고 밤새도록 제안서를 수정하고 작성해야한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 대외활동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어떤가. 떨어지고 좌절해봐야 내 안이 단단하게 다져질 것이다. 아프고 힘들어야 몸이 잊지 않고 제대로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기자가 되어보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것이고, 국토대장정을 떠나보면 몸의 한계를 뛰어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수많은 기회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냉정한 인식과 끊임없는 노력이 남들과 차별화된 자기 자신만의 드라마를 만들어 줄 것이다. 새로운 시작에 있어 명심해야할 것으로는 커다란 꿈도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큰 꿈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를 한 번에 이룰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커다란 꿈일수록 그러하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작은 일들을 정성껏 수행하여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들이 몸에 배여 능력으로 승화되고 작은 결과들로 쌓여 나아갈 때, 자신의 능력이 개발되고 주변의 신뢰가 쌓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몽테뉴는 '어디로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모두가 자신의 꿈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말이 아니라 행동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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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13 23:02

질적 대학 평가의 필요성

전북대학교는 장애인을 배려한다. 여기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 건물마다 휠체어 통행을 위한 경사로가 있으며 손잡이가 갖춰져 있다. 장애인화장실은 당연히 마련되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장애인들의 교통 편의를 돕기 위해 길바닥에는 점자블록이 깔려져 있고 전용 주차장도 있다. 그들의 편한 생활을 위해 기숙사는 1층에 배치한다. 2011년도 장애대학생 교육복지 지원실태 평가결과에서 우수대학에 선정되기도 했다.전북대학교는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여기에도 명백한 근거가 있다. 학습도서관은 경사로가 있지만 그 위에는 계단이 있다. 휠체어로는 독서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없다. 1층의 편의점만 이용 가능하다. 장애인화장실은 넓고 조용하지만 전구가 나가거나 변기가 막혀도 잘 고쳐주지 않는다. 인도의 보도블럭은 움푹 패이고 튀어 나왔다. 부서진 보도블럭에 휠체어 바퀴가 걸리면 휠체어에 탄 사람은 바닥에 나뒹굴기 때문에, 그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팔걸이를 붙잡는다. 점자블록은 중간 중간 끊겨있는 곳이 많다. 장애인 전용실이 있는 기숙사는 자동문이 설치되지 않은 건물이다. 휠체어에 앉아서 문을 열려면 갖은 힘을 써야 겨우 열릴까말까 한다. 기숙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그 다음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혼자 힘으로 내려갈 수 없다. 장애학생 도우미가 있긴 하지만 그들이 항상 곁에 있을 수는 없다. 있어도 불편한 것은 여전하다. 한 장애인 학우는 이렇게 말했다. "담당 직원이 휠체어 타고 학교 한 바퀴만 돌아봤더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안 만들었겠죠."그렇다면 전북대학교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학교일까, 배려하지 않는 학교일까? 양적인 평가에 따르면 장애인을 배려하는 학교이지만 질적인 평가에 따르면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학교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시각이 진실일까? 전북대학교의 당사자들은 후자에 입을 모으는 한편, 각종 대학평가와 언론에서는 전자를 바라본다.우리나라의 대학평가는 이렇듯 대부분 양적 지표에 치우쳐있다. 이에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임기 전반에 걸쳐 선진국 수준의 질적 평가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서 후보는 "대학평가의 기준과 절차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수많은 대학평가가 대학이 양적 평가지표를 높이기 위해 꼼수를 쓰도록 강요해왔던 현실을 꼬집었다. 특히 취업률 부풀리기가 가장 심각한데, 일부 대학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허위로 취업했다고 신고하거나 통계를 조작해 교과부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대학이 취업양성소로 변질됐다는 오늘날, 이 기능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대학에 대한 양적 평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일렬로 줄 세우기식의 대학평가는 반대하지만 부실한 대학을 가려내는 평가는 계속 되어야 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대학의 수도 줄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단지 숫자 몇 개로 정해지는 것은 안 된다. 숫자는 때에 따라 계속 변한다. 잠깐의 실수에 명문대도 부실대의 낙인이 찍힐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대학평가다. 양적인 평가와 더불어 질적인 평가도 함께 고려하는 대학평가가 만들어져 대학들 간의 선의의 경쟁이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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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06 23:02

2010년 신입생, 2013년 재학생

2010년 2월 그 어느 날, 나에게도 대학교 신입생의 이름을 가진 그날이 존재했었다. 수능을 끝내고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고 얼마 남지 않은 대학교 입학식을 기다리던 2010년의 2월이 있었다. 현재 지금의 나는 2013년 마지막 대학생활을 기다리는 4학년의 모습으로 4년 전과 같은 2월에 서 있다. 그리고 또 다른 2013년 2월을 가진 누군가에겐 그 날의 나와 같은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대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주는 어느 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설레임이 가득 하기도 했고, 어느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다. 지금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정한다. 그와 함께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어려워 할 것이고 시작이 두려울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러했던 지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가 누군가 곁에서 알려주고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보호의 대상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나아감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과정의 첫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막상 첫 스타트를 시작하는 나의 그 공간은 작은 유리잔에 술이라 불리는 서로의 마음을 채워 담기 위한 자리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지금의 4학년이라는 자리까지 지나왔다. 아마 지금 신입생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누군가도 첫 시작의 순간들과 그 과정들 속에 작은 유리잔이라는 동일한 물건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라 앞당겨 생각해 본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4학년의 이름을 앞세워 그들에게 훈수를 두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작은 유리잔을 올리고 내리는 순간에도 내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잔 속의 흔들림이 자신의 의지를 흔들어 꿈을 놓아버리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주눅들어 학교생활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해 보면서 자신이 찾아 헤매던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대학생활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술자리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대학생활을 가지기 보다는 자신들 스스로가 가진 생각과 의미들이 중심이 되는 대학생활이 될 수 있도록 딱 한 가지만 기억하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나만이 알아주고, 나만이 시작할 수 있는 나의 마음속 깊이 들어 있는 '꿈'이라는 한 글자. 남들과 다른 위치에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마라톤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꿈'이라는 것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에 시작부터 주저앉아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출발점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결승점은 현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는 달려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정신일도하사불성) 수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으로부터 내 주변으로부터 집중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라도 생긴다면, 혹은 이미 가지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점부터 찍고 시작하길 바란다.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남들과 다른 인생들이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더 낮은 위치에서 시작한 결과에 대해 더 열광하는 법이다. 그에 따라 지금 우리는 '열광'이라는 카드를 하나 더 들고 있는 사람들이며, 오히려 내세울 것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역설을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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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27 23:02

요리와 진로 찾기의 공통점

얼마 전에 고등학생인 여동생과 같이 카페에 갔다. 평소에 학원이다 뭐다 바쁜 동생이 모처럼 한가한 오후였기 때문이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 둘이서 스무디 한 잔씩을 앞에 놓고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느새 동생은 나에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었다. 마시고 있는 스무디와 다르게 씁쓸한 이야기였다. 동생은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이 아닐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내가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티니에서도 진학과 진로에 대한 상담글이 많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자신의 수능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을 갔는데 적성이 아닌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내용이 반절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반절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쪽 길로 가서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내용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은 청소년기에, 혹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계속 따라오는 친구들이다. 나는 이 친구들이 죽어라 자신의 그림자를 밟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자신을 잘 모르고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요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재료들이 무슨 맛을 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양파는 그냥 먹으면 살짝 맵지만 볶았을 때에 단맛을 낸다. 마늘은 첫인상은 그 특유의 향으로 인해서 매워 보이지만 볶음요리의 기본 맛을 내주는 친구다. 생강도 마냥 맵게 보이지만 시원한 맛을 낸다. 매실은 달고 의외로 조림 요리에 잘 어울린다. 설탕보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만들 요리에 어떤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를 아는 것은 요리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맛을 내는 건 복합적인 작용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청양고추를 넣는다. 그러나 칼칼한 맛을 위해서 볶은 양파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칼칼하긴 커녕 단맛이 나오면서 맛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또한 무작정 단맛을 내기 위해서 양파를 볶아 넣는 것도 이상하다. 전체적인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설탕이나 매실을 넣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동생의 경우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야기도 이와 같다. 진로고민은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맛'을 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점수가 적성을 고르는 일을 만들면 안 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해결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진로 고민을 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자신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특기와 강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어묵볶음에 들어가야 할 어묵이 미역국에 들어가 있으면 맛이 이상한 것은 당연지사다. 어묵볶음에 어묵을 넣어야 어묵볶음이 된다. 그와 같이 미역은 미역국에 있을 때 빛이 난다. 그러기에 나는 점수에 맞춰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걸 싫어한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 없이 요리를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문예창작과를 지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부터 소설가를 지망한 것은 아니었다. 내 처음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발레리나가 될 재료가 아니었다. 발레를 할 만한 신체 구조가 아니었거니와 나는 꾸준히 몸을 쓰는 운동을 싫어한다. 움직이는 것 보다 사색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가 발레를 전공했더라면 아마 지금 하는 것보다 심각한 고민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새 학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시기에 진로조사서를 쓰면서 고뇌한다.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자신을 좀 더 알아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음식이 될 가능성을 타고났다. 자신이 주인공이 될 요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색하자. 다른 요리에 어색하게 손님으로 곁들여지는 것 보다는 자기 요리에서 화려하게 맛을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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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20 23:02

대학생 대외활동, 진정한 의미 살려야

대학생에게 있어 대외활동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대외활동은 대학생만의 특권이라고 한다. 이미 대외활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점, 영어성적과 함께 스펙(SPEC)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을 통해 스펙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외활동 경험은 대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많은 기업과 정부기관은 '서포터스' '홍보대사' '기자단' 등으로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관련 분야 경험을 쌓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외활동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바로 대학생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가로채는 수단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대외활동을 해본 친구들에게 대외활동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실제로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그 기업의 홍보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처럼 홍보글을 쓰거나 전단지를 나눠주고 포스터를 붙이는 등 단순한 일을 많이 한다"고 말을 들어보기 일쑤다.물론 기업의 서포터즈나 홍보대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제시하는 자기소개서 틀에 맞춰서 서류 전형에서 합격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자기소개서에 '기업의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방안을 작성하시오.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 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시오.' 등 실제 취업을 연상케 하는 질문을 요구한다. 단순히 서포터즈나 홍보대사를 뽑는 취지에서 이 같은 질문을 대학생에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공모전의 경우, 지원하는 동시에 포트폴리오 작품의 소유권이 자동적으로 기업에 속하게 된다고 명시한다. 그 기업에서 아이디어를 굳이 채택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사용하더라도 어떻게 따질 수가 없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스펙을 쌓거나, 대외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업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필할 수밖에 없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고 하여도 끝난 것이 아니다. 면접 전형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상품이나 이미지와 관련된 홍보 동영상이나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 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그 영상과 사진을 제작해야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써 대학생들의 대외활동에 대한 열망을 이용하는 것이다.이러한 까다로운 합격 절차를 과정을 거쳐서 서포터즈나 홍보단에 뽑혔다고 하더라도 대학생이 아쉬운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제공하는 수료증을 이수하기 위해서, 이력서에 한 줄 넣기 위해서 기업의 요구대로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료증을 주거나 말거나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대학생은 다르다.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라도 남은 기간 동안 서포터즈 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로서 이루어지는 대외활동의 여건은 진정한 의미에서 긍정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라는 순수한 의미를 살려서 대외활동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대외활동이 단순한 무급 노동으로서 악용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각 기업과 단체에서는 공식적인 법규를 따로 정비하여 대외활동의 본질적인 의미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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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13 23:02

자취의 추억

얼마 전 새벽이었다.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밥이 먹고 싶었다. 말 그대로 밥. 요새 밥을 너무 못 먹었다. 자취방에 반찬은 떨어진지 오래다. 일주일째 시리얼과 라면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왔다. 몸이 스스로 결핍을 느낀 것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밥을 먹고 싶었다. 싱크대 밑을 뒤졌다. 쌀이 없었다. 사실 없는 걸 알면서도 뒤졌다. 밥할 때 섞어 넣던 현미와 잡곡만 조금 있었다. 심난한 얼굴로 여기저기 들춰봤다. 그림자 짙은 구석에 쌀이 담긴 페트병이 보였다. 예전에 엄마가 가져가라고 싸주셨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무 반가웠다.밥을 했다. 쌀을 한 컵 넣고 현미 반 컵, 잡곡 반 컵. 왠지 성에 안차 쌀 한 컵을 더 부었다. 씻고, 씻고, 씻었다. 쌀뜨물을 버릴 때 떠내려가는 몇 톨이 참 아까웠다. 내 손등을 가볍게 적신 그것은 밥통으로 들어갔다. 잠깐 불렸다. 그리고 취사. 뿌연 수증기는 익숙한 냄새를 풍기며 방을 가득 채웠다.맛있었다. 보온, 취사 말고는 다른 기능이 없는 싸구려 밥통으로 지었다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반찬은 없었다. 고추장을 꺼냈다.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볐다. 우걱우걱 퍼먹었다. 맛있었다. 고추장은 곧 없어졌다. 밥 반 숟갈을 들고 고추장통 바닥을 긁었다. 그마저도 없어졌다. 그냥 밥만 먹었다. 밥이 달게 느껴질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물을 병째 들이켜고 숟가락을 또 입에 넣었다.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나왔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외로움과 서러움의 중간쯤. 통학했을 때, 기숙사에 살았을 때, 장학숙에 있었을 때는 느낀 적 없는 감정이었다.넉넉하진 않았지만 부족하진 않았던 삶이 자취를 하면서 깨졌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을 하는 대가로 용돈을 포기했다. 대학신문사 활동도 끝나서 수입이 거의 없었다. 저번달은 여기저기 글을 기고해서 받은 18만5000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대학언론인을 대표하는 단체를 만드는 일에 골몰하느라 알바할 시간이 없었다. 긴축재정이었다. 가장 먼저, 입에 들어가는 것들이 부실해졌다. 반찬이 있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반찬이 없으니 라면은 거의 매일 먹었다. 시리얼을 잔뜩 사서 우유에 홀짝홀짝 말아먹기가 부지기수였다. 도시가스는 뭐 이리 비싼지, 숨 쉴 때마다 입김이 보이는 냉골에서조차 보일러는 틀 엄두도 못 냈다. 라면 끓일 때, 세수할 때는 커피포트로 데운 물을 애용했다.내가 꿈꾸던 자취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환상은 가차 없이 깨졌다. 하지만 난 이 상황에 감사한다. 자취생활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절약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자취를 하면서 절약을 배웠다. 절약은 절박함에서 나왔다. 생활의 지혜가 부족해서 놓치는 것도 있겠지만 나름 아끼는 것 같다. 나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수록 날마다 어른이 돼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생활이 언제쯤 끝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자취하길 잘했다는 것.많은 학부모들은 대학생이 된 자녀들이 자취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자주 보지 못하고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밥은 잘 챙겨먹는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데 대한 불안감도 한몫한다. 너무 걱정할 필요없다. 좀 굶을 수 있다. 돈을 흥청망청 쓰기도 하고 밤늦게 다닐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대학생이라면 자취는 한번쯤은 해봐야한다. 그것이 자취가 내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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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2.06 23:02

우리는 이제 이곳에 집중한다. '청년 Job 談'

2013년 계사년의 해가 떠오르고 18대 대통령이 선출돼 새로운 시작을 알린지도 어느덧 한 달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 청춘들은 두려움도 한가득, 기대 또한 한가득 안아들고 각자의 인생을 시작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청춘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새로운 것, 새로운 결과들을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전북지역 청춘들이 주목한 한 가지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차별성 없는 스펙이 아닌, 진정한 나를 찾아 움직이고 그로써 얻은 나만의 스토리'이다. 잠시 스펙이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출신학교와 학점, 토익점수와 자격증, 해외연수나 인턴유무 등 대학시절 동안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종합해 '스펙'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것들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NO!'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들에겐 스펙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 하다.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전북지역대학 학생들 스스로 이루어낸 취업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청년 Job 談'은 오로지 학생들 스스로 망설이고 있는 청춘들을 위해 취업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와 청춘들이 품어야할 진정한 현실들을 보여주고 답해주고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학생이라는 이름은 그저 수용하는 쪽에서 받아들이기만 했다. 하지만 '청년 Job 談'이라는 행사에서 그 누구도 수용이라는 단어를 경험한 쪽은 없었다. 모두가 주최가 되어 움직였기 때문에 행사의 작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위치를 품을 수 있었다.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에게 들려주는 청춘 이야기와 인사담당자님에게 들어보는 기발한 면접의 이야기들 그리고 졸업한 선배님들에게 들어보는 학창시절 이야기를 통해 짧은 강연시간동안 학생들은 그저 듣는 입장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을 하며 진짜 궁금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지방대학교 학생들에게 현저하게 부족했던 대외활동에 관한 정보들과 그에 관한 사실들이 청춘들 앞에 펼쳐졌다는 것이다. 경험했던 청춘들과 경험하지 못한 청춘들이 동등한 위치에 앉아서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하기 보다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 각자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를 더 나아가 상대방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까지 만들 수 있도록 발끝만 쳐다보던 시선을 들어 올려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행사를 주최한 운영진들 그리고 그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들과 전북지역 학생들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도청의 일자리정책지원과 모두가 '경험'이라는 소중한 한 가지를 더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 시대 청춘들에게 스스로가 배우고 익힌 사실들을 내 현실과 접목시켜 웃음으로 혹은 다짐으로써 돌아올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다. 수용의 자세보다는 대담한 행동의 결과들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이것이 진정한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의 사회'를 구현해 나가는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 2013년에는 전대일(전주대) 진대원(전북대) 원대한(원광대) 설래군(군산대) 한대희(한일장신대학) 다섯 개 대학이 함께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시작은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은 것이 모여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창조의 시작이고 꿈의 무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앞으로 더 큰 비상을 향한 전북 지역 청춘들의 행보가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또 하나의 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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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30 23:02

목련나무와 '칼군무돌'

내 산책로에는 목련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내 키 두 배만 못 한데, 가지런히 가지치기를 해 놓아 매우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뒤에 큼지막한 건물이 있어서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도, 봄만 되면 하얀 꽃을 팡팡 터트리는 게 어여쁜 친구다. 이 목련나무가 가지마다 내 손바닥만 한 흰 꽃을 풍성하게 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절로 두근거린다. 옆에 자리한 벚꽃이 피는 둥 마는 둥 새침때기처럼 꽃을 피울 때, 이 친구는 제 꽃송이를 큼지막하니 벌려 봄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퍽 아름답다.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이 목련나무를 유심히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벌써 털 난 발굽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나 있는 게 아닌가? 작은 건 내 깨끼손가락만 했고, 개중 큰 것은 엄지손가락보다 더 커 보였다. 그동안 쌓인 눈도 녹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졌는데도 이 목련나무는 꽃봉오리로 제 몸을 한껏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이제 이 나무가 목련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가지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봉우리들은 그 가지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나는 하루를 거르지 않고 이 친구가 있는 산책로를 걸어 다녔다. 매일매일 이 목련나무는 매번 앙상한 가지만 있어 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 놓은 것을 늦게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이 많은 꽃봉오리가 하룻밤 사이에 기적처럼 솟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이 친구는 차근차근 가지에 꽃봉오리를 올리고 치장했을 것이다. 목련나무는 중요한 약속 전날에 팩을 하거나, 시험 전에 공부를 하는 것처럼 천천히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다.요즘 십대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인 '틴탑'의 안무는 칼군무라고 평가된다. 여섯 명이서 같은 동작을 동시에 한다고 해도 동작이 어긋나거나 할 수 있을 텐데, 틴탑의 안무는 한 치의 오차도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데뷔곡인 '박수' 때부터, 작년 하반기에 활동한 '나랑 사귈래'에서도 그들은 여섯 명이서 딱딱 맞는 안무를 구사하였다. 무대에서 같은 동작을 동시에 하며 춤추는 모습은 봄철 목련과 같이 화려하다. 이러한 칼군무를 위해 틴탑은 비활동기에도 일곱 시간 이상 연습을 한다고 한다. 무대에서 완벽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겨울'에도 봉오리를 올린 목련처럼, 비활동기에도 매일매일 해왔던 연습이 있었기에 그들이 '칼군무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노래가 무대 위에서 빛을 내는 건 그들이 무대를 완성하기 까지 들인 시간 때문일 것이다. 재능만 가지고서는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없다. 그 재능을 갈고닦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의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은 꾸준히 노력했을 것이다.목련나무가 봄을 하얗게 물들이려면 꽃봉오리를 만들어야 한다. 봄을 위해서는 겨울을 나면서, 꾸준히 꽃봉오리를 밀어 올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겨울 내내 어떻게 지내느냐이다. 목련은 탐스럽고 굵은 꽃을 올려 봄을 알린다. 그 탐스럽고 커다란 봉오리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추운 겨울에도 꽃봉오리를 올린 탓이다.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봄 목련처럼 화려하게 피어날 날을 준비하며 겨울을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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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23 23:02

소통하는 리더에 대한 동경

칭기즈칸은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이 난무하던 시절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몽골고원을 통일했으며 중국 대륙을 정복했다. 당시의 몽골의 인구는 200만 명이 안 되었는데 이 소수 민족이 수억 명의 사람을 정복하고 거느렸던 것이다. 그것도 150여 년 동안이나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꿈이었다. 몽골이 가진 꿈은 다 함께 잘 사는 것이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그 꿈은 하나의 제국을 완성하는 비전이 되었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모든 민족이 목숨을 내걸고 내달렸다.리더의 꿈은 곧 비전이며 그 비전은 혼자의 것이 아닌 공유할 수 있어야만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비전의 공유는 스스로 열린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열린 생각은 곧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리더가 개인의 비전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한의 희생과 복종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이미 아집에 불과하다. 비전의 공유를 위해서는 나의 비전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비전도 이해하는 포용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복잡해지고 다양화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리더의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말하지 말고 대화하라〉라는 책을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들 중 99%는 소통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였다. 저자에 의하면 말뜻을 못 알아들어서 문제가 되고 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해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모두 소통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실제로 우리 주위에서도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기보다는 감정부터 앞세워 사소한 일에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를 흔히 겪게 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개인이나 사회가 가진 목적을 조화롭게 이루기 위해 구성원 모두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리더가 이를 핑계로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닐까?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뜻을 가지고 있으면 대화가 통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이고 나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배척하는 것은 아닌가?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주도적으로 대화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리더가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면 결국 이러한 흐름은 단절되고 마는 것이다. 대화의 단절은 결국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게 된다. 자기주장만으로 소통을 이룰 수 없다. 무조건 내 주장만 펴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그게 더 타당한 것이라면 내 주장을 과감하게 접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내 주장을 관철해야만 승리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패자가 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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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16 23:02

누구를 위한 열정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나 스스로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안 아픈 척하고 사는 것이 버릇이 됐는지도 모른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다.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이 된다, 뭔가를 간절히 상상하면 그게 우주에 전해져서 현실로 나타난다는 둥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금만 비관적인 목소리를 내면 '그래서 네가 그 모양 그 꼴이지',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긍정적인 사람들이다'하는 등의 질책이 돌아온다.긍정주의는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신사상 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사람들은 깊숙한 내면에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면 이런 힘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논리로 이뤄졌다. 초기 신사상 운동은 질병은 마음의 문제라는 견해로 건강문제에 치중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건강보다 성공과 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발맞춰 신사상에 내포된 긍정주의는 번영 지향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오늘날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긍정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개인의 건강문제에 머물러 있었을 때는 좋은 이론이었지만 긍정주의가 자본주의를 만나면서 오히려 개인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긍정주의는 모든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가난, 질병, 실업 등의 고통은 개인에게 원인이 있으며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문제이다. 뭐든 긍정적으로 견뎌내야 한다. 환경을 탓하는 순간 한낱 '찌질이'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뭔가를 바꿔보려고 사람들이 모여서 항의하거나 시위를 하면 '빨갱이'라는 낙인까지 덤으로 찍어준다. 이래저래 비관적이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청년들에게 긍정주의는 '열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열정은 개인의 자아성취를 위해 생산적인 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 열정이 어느 순간부터 착취의 언어로 쓰이는 듯하다. 청년들에게 열정을 다하라는 말은 실상 비합리적인 착취구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가들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줄 테니 와서 열정을 불태우라며 청년들을 유혹한다. 그들이 주는 임금에는 다른데서 못하는 경험이 포함됐으니 액수가 적거나 없더라도 이해해야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해야 한다. 어른들은 네가 아직 사회를 모른다고 하니까, 주위에선 이것도 그냥 좋은 경험한 셈 치라고들 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다.백번양보해서 대학생, 청년들이 알바, 인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보상조차 못 받으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열정 때문이라고 인정해보자. 그렇다면 기업가와 정규직들은 열정이 없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열정이 없어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받는 것일까? 그들은 단지 열정이라는 허울 좋은 표현으로 착취를 정당화할 뿐이다.강요된 열정은 열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열정 없이 살자는 것은 아니다. 긍정과 열정이라는 좋은 말이 대안 없는 무비판적 긍정주의로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열정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이 청년들을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자. 잘못된 현실은 분명히 지적하고 저항해야한다. 아프다고 소리칠 수 있으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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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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