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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학생활은 무엇인가?

방학을 맞는 젊음이여남의 꿈을 좇으며스펙 쌓기에 연연하지 말고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활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방학과 동시에 1학기 대학생활이 점수로 매겨지는 성적표!성적이 이미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1학기 성적에 미련을 가지고 자책을 하고 있는가? 또는 성적을 짜게 주신 교수님을 원망하고 있는가?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면 성적을 나쁘게 주신 교수님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탓하길 바란다. 또한 성적으로 대학생활을 평가하지 말길 바란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서는 "이 성적으로 어느 회사에 취직하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에 성적이 좋다고 무조건 취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력서에 활동내용을 가득 채우는 것이 중요하니, 성적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대답해 주었다.대학생활의 끝에 서 있는 4학년 학생으로서 1, 2, 3학년 재학생들에게 말하자면,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를 누리길 바란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누릴 수 없는, 대학교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말이다. 필자는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A+대학생활이란 4.5점의 성적이 적힌 성적표가 아니라 자신이 학업뿐만 아니라 꿈을 설계해 나가는 뜻깊은 활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계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호! 학업에 지친 대학생들이여, 성적은 성적이고, 하계방학이 다가왔으니 실컷 놀자!"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는 말이 있듯이 성적에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여름방학은 A+ 대학생활을 위해 심신을 달래며 재충전하는 시기로 보냈으면 한다. 또한 학기 동안에 해보지 못한 것을 방학을 계기로 경험해 보고, 배낭여행, 국토 대장정 등과 같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활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대학생의 방학기간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기에 다들 아르바이트, 인턴, 자격증 취득 등 여러 스펙 쌓기로 정신없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인턴, 자격증 취득 등의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쉬면서 1학기 동안의 대학생활을 되돌아보고 2학기를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인생은 짜장면과도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짜장면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맛있어 보이는데 막상 시켜서 먹어보면 맛이 그저 그래요. 지금 내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해도 막상 그 삶을 살아보면 그 안에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뇌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생기면 '남이 먹는 짜장면이다!'라고 생각하세요. (혜민 스님 지음,『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中 )책에 있는 구절과 같이 남의 잘된 꿈을 좇으며 스펙 쌓기에 연연하며 너무 잘된 사람을 좇는 사람이 되지 말고,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비난해도 자기만의 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꿈을 좇아 이루길 바란다. 또한, 계획 중에 위에서 말한 것들이 속해 있다면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꼭 실천하여 하계방학을 허투루 보내지 않길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건투를 빈다.※ 김 전 편집장은 2009년부터 군산대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군산대 생활과학부 4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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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04 23:02

현재 당신의 온도는 몇 도 인가요?

끓어가는 물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위기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꿈을 잃고 살고있지는 않은지자신을 돌아보자당신도 끓어가는 물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진 않은가? 나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며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은 비전(꿈)상실 증후군이라 불리기도 하는 사회적 현상을 말한다.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는 물에 개구리를 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넣고 아주 약하게 가열하기 시작하는 실험과 팔팔 끓는 물에 개구리 투입시키는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개구리는 서서히 가열해져 오는 물 속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점 물이 뜨거워짐에 따라 한 번도 뛰어 올라보지 못한 채 결국 죽어갔지만, 두 번째에서는 뜨거운 온도 때문에 바로 튀어나와 생존하게 되는 결과를 보여줬다. 자신이 위기에 처한 것도 모른 채 죽어가는 현상. 비단 개구리에게 비유되는 일만은 아니다. 나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고 꿈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가웠던 물이 팔팔 끓는 물로 변화되기까지의 과정은 우리들 삶에 들어온 자신의 문제점의 크기로 비유될 수 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중에 하면 될 거야'하는 안일한 생각들로 인해 손톱만 했던 문제들이 태산만큼 커져버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삶은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자신의 물 온도를 체크해야 한다. 물이 차가운지, 미지근한지, 아니면 이미 끓는 상황인지 말이다. 즉,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나의 물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두 번째, 내 앞에 펼쳐진 일에 대해 '합리화'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정도 쯤이야'하는 생각의 일들이 합쳐져 커다란 산을 이루고, 결국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야 만다. 작은 변화에 신경 쓰지 못한 우리의 탓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처럼, 지금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합리화시켜 등 뒤에 두지 말고, 바로바로 해결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세 번째, 적당한 고통과 시련이 우리들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앞의 목록들과 중복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삶은 개구리 증후군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편안함과 단순함만 추구한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그저 그런 '도시노동자'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통찰력 있고 지각 있는 인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에게 좀 더 모질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전을 상실해버린 삶은 식물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도전과 열정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할뿐더러 그 어느 곳에서도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을 것이다.계속 나의 몸에 채찍질 해가면서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면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뜨겁게 끓고 있던 나의 물에 찬물을 끼얹는, 곧 나를 죽지 않고 다시금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지금, 무언가가 나의 물을 끓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현재 자신의 온도는 몇 도일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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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27 23:02

대학,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되길

대학에는 만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같은 학교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던가. 술 마실 때만 친구가 아닌, 과제 할 때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과제가 끝나면 전화번호부에서 삭제하는 사이가 아닌, 그런 사람을 대학에서 찾았는가? 실제로 학과, 동아리, 스터디 그룹 등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모임은 많다. 하지만 이는 소수학생에게 해당되고 대학생활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대학생 5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4.5%가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칭 '아싸'라 불리는 아웃사이더는 본래 외부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지만, 요즘 대학가에서는 다른 학우들과 어울리기보다 주로 혼자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 대학생 3명 중 1명은 학과생활에서 겉돌며 혼자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응답에 따르면 대부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아웃사이더가 됐다. 개인주의 성향이 큰 사회환경과 맞물려, 대학생들 역시 서로 어울리고 학우들 간 우애가 강조된 90년대 이전과 비교해 개인주의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인지 대학생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66.7%로 절반 이상의 결과를 보였다. 아웃사이더가 개인의 생활방식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긍정적이고 밝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대학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을 목격하곤 한다. 치열한 경쟁,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 최근에는 얼마전 제대한 예비역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은 필자가 대학을 다니면서 들었던, 정말 우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건을 겪고도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같은 대학, 옆 학과의 학생이 무관심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는 또다른 무관심으로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 '난 혼자가 좋아, 혼자가 편해' 이런 말을 서슴지 않게 내뱉어도 인간은 본디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속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외로움 속에 우리를 무자비하게 던져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도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함께 입학한 모두가 같은 반인 셈이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곳도 자유로운 대학이다. 대학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개인의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대학생이고, 더 이상 엄마 손잡고 다니는 어린이가 아니다. 그렇기에 다가와 주길 바라는 마음만이 아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하다. 먼저 다가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마라. 같은 수업을 듣는 옆자리 학생에게 말을 걸어보고,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공모전, 스터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봐라. 대학 생활 4년 동안 자신을 고스란히 외로움에 구속하지 말길 바란다. 필자도 남은 한 학기를 더불어 살아 대학의 소속감을 느끼면서 다니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20대여, 청춘을 잃지 마라. 무엇인가 포기하기엔 우린 아직 뜨거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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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20 23:02

'딴 짓'을 허하라

드디어 졸업을 한다 생각하니 오래입고 있던 갑옷을 내려놓는 것 같다. 졸업이 뭐 길래 이토록 숨차게 달려왔을까. 대학 입학 전, 세 번의 졸업식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졸업앨범만 의무의 증거처럼 고이 꽂혀있을 뿐, 시간은 말이 없다.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들이 과거가 되어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일. 과거를 생각하면 힘이 든다.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생각이 아니라 노동이라는데 확신한다. 딴딴하게 굳어 도무지 입을 열 마음 없는 벽이 앞에 있다. 그 벽에 무쇠숟가락 하나 들고 동굴을 파보겠다는 심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파고 파내도 끝은 없다. 끝끝내 그것들은 말이 없다. 먼저 졸업한 친구들은 공모전이나 인턴십, 기업체 서포터즈 활동 같은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다. 경험마저 흥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못마땅할뿐더러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 붓길 강요당하는 분위기에 거부감이 드는 까닭이다. 또, 같은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처럼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위로받으러 원정 가는 걸 보면 단체로 기념품이라도 얻어오려고 그러나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똥구멍에 힘을 불끈 주고 끙끙대며 걸어온 4년은 무심하기만 한데 말이다. 개성을 찾고 창의력을 키우라면서도 '딴 짓'을 환영하지 않는 세상에 속아온 우리가 아니던가.얼마 전 한 대학신문에서 '쓸데없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가 있어 유심히 봤다. 평생 영화광으로 산 덕분에 글도 쓰고 진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는 한 시인, 성(性)에 관심이 많아 어렵게 포르노잡지를 구하며 읽었는데 그 때 쌓은 지식 덕분에 최초로 성적담론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한 국문과 교수, 유학시절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쌓은 경험으로 사람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정치인, 대학 축제 때 떡볶이를 팔아 100만원에 가까운 흑자를 낸 일을 기억으로 그때 마음을 평생 교훈으로 삼는다는 출판 사업가까지. 그들의 과거는 참으로 쓸데가 없다. 대학생은 묻는다. 과거를 묵묵히 과거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도도하게 내 갈 길만 가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저것 다 해보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있는가. 하지만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는 것을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대학생(大學生)이 아닐까 싶다. 겪지 않고서는 모두 하찮은 말로 듣는 싸가지 없는 우리지만, 그마저도 모두 버릴 것 없는 삼천포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딴 짓을 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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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13 23:02

6월의 기억

'아니 벌써'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개강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 되었다. 매월 그랬던 것처럼 일정을 체크하려 다이어리를 폈다. 6일은 '빨간 날'이고, 9일부터 유로 2012가 개막한다. 내 생일에 빅 매치가 열리는군. 근데 기말고사는 그 다음날부터고. 그렇게 쭉쭉 일정을 정리하다가 책상에 놓인 종이 쪼가리를 봤다. 아, 예비군 훈련이 있었지. 날짜를 살펴보니 공교롭게도 6월 25일이다. 625에 예비군 훈련이라. 뭔가 느낌이 묘하다. 씁쓸하면서도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6월. 우리에게 6월은 어떤 느낌이고 기억일까.생각해보면 6월에 대한 느낌, 감정들은 세대별로 각자 다른 것 같다. 나와 같은 또래들, 특히 남자들에게 6월은 월드컵의 짜릿함이 떠오르는 것 같다. 벌써 10년 전이지만, 2002년 6월은 온 국민들에게 기쁨이었고 환희였고 감동이었다. 국민들은 모두 빨간 옷을 입어서였는지,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분출되었던 응원의 열기와 함성 때문이었는지 그해 6월 대한민국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와 희망을 공유하고,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때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던 것 같다.우리 아버지세대들, 혹은 흔히 386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에게 6월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간절함이 폭발했던 시간들, 그로인해 승리했던 시간들로 기억되지 않을까. 1972년 10월 유신이후로 15년 동안 지속되던 군사독재에 맞섰던 그 함성들. 마침내 지금의 헌법으로 개정해낸 우리의 선배들에게 6월은 어떤 느낌일지. 똑같은 느낌과 생각일수는 없지만 그때 선배들의 모습들을 생각하며 상상해본다. 개인적으로 '다른 6월들'에 비해 그들의 6월은 비교적 조명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또한 우리의 할아버지들. 그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지켰던 6월.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가 총을 겨눠야 했고 싸워야 했던 그때의 6월은 어땠을까. 그나마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때의 상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던 슬픈 6월. 그 슬픔을, 피와 땀들을 기억하고자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해놨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날은 그저 '빨간 날'이었을 뿐인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물론 현충일은 625 전쟁에서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다.)6월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게 우리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잊어지지 않는, 잊어서는 안 되는 6월인 듯하다. 2002년의 6월은 잊지 못할 감동이었고, 1987년의 6월의 함성은 국민의 열망을 담아 '성문화'가 되어 잊어지지 않으며, 1950년 6월의 피와 땀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 우리의 평온한 6월도 2002년의 행복했던 6월도 1987년의 6월, 1950년의 6월이 있었기에 허락되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나니 이번 예비군 훈련에는 다른 때보다 '비교적' 성실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투복을 입으면 몸이 '천근만근'이며 마치 '피곤한 사람 경연대회'에 선발된 선수처럼 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예비군 훈련 지도하시는 간부님들이 우리네 6월을 '재미있게' 상기시켜 주신다면 좀 더 협조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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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06 23:02

21세기 페미니즘의 현주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이 사회에 팽배했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떠할까. 과거에 비해 현대여성들의 지위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여성 억압의 원인을 밝히고 궁극적으로 여성 해방을 목표로 운동하고자 했던 페미니즘의 시초인 자유주의 이론이 출현하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노력해왔지만 그 빛을 보기에는 아직 역부족한 듯하다. 물론 사회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저 안방마님으로만 살았던 조선시대와 비교한다면 그 변화는 크겠지만 말이다.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점차 페미니즘의 이론이 발전하고 현 사회에 맞춰 그 해결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 성과가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현재까지도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겉으로 남녀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위 말해 '먹을 것이 많은 밥그릇'에는 아직도 남성 비율이 현저히 높은 것이 현 상황. 여성 억압에 관한 수많은 원인 중 가장 신뢰받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뼈 속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도'이다. 안사람, 바깥사람이라는 말로 여성을 집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남성을 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구분 짓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나눠 생활해온 지금까지의 역사가 우리사회 여성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이다. 필자 또한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보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학습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상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을 배워왔다. 때문에 생물학적 성의 역할로 인해,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배제되고, 그 기간 동안 남성지배적 사회가 이뤄져, 결과적으로 지금의 남성지배 이데올로기를 정착시켰다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 억압의 해결책을 생물학적 성역할을 없애야 한다는, 즉 여성이 출산을 하는 과정을 기술의 발전을 통해 남성에게 전가시키는 등의 과정만이 그 '방법이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받아들여지기 힘든 해결책이 아닐까.사실,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 진다해도 남녀가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는 어렵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우리가 갖고 온 수백 년의 역사가 단기간에 치유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인 21C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여성이 완전한 자유를 이룰 때, 비로소 여성억압도 서서히 완화될 것이라고 본다. 이것 또한 지금의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브랜드 MCM으로 유명한 성주그룹 CEO인 김성주 회장은 "여성이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서 부잣집 마나님이 되는 것, 예전엔 나쁘진 않았지만 현대 여성이 추구할 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취집(취직+시집)'이라는 말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녀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증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장해야 할 점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터무니없는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져 버린 축구장에서 어떻게 여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자책골을 넣을 것인지, 오르막길을 올라가 1골을 터트릴 것인지. 이제, 우리가 생각하고 주장해야 할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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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30 23:02

대화가 단절된 가족

게임에 빠진 아들 때문에 우울병으로 점점 말라 가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한집에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는 가족, 의사소통의 부재로 심한 말이 오고가는 아버지와 딸. 가족은 서로를 위로해주지 못하고 하루하루 서로에게 미움과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들에게 없는 것은 바로 대화였다.SBS 스페셜 '무언가족(無言家族)'이 지난 13일부터 2회에 걸쳐 방영됐다. '무언가족'에서는 대화를 포기해버린 가족들을 통해 오늘날 가족이 처한 불편한 현실을 조명했다. 갈등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실제로 나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행복의 울타리라는 가정은 대화가 단절된 채 더 이상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기묘한 동거로 비춰졌다. 우리 현실의 모습이라는 것 때문에 보는 내내 불편한 다큐멘터리였다. 가부장적 사고로 가정을 군림하던 아버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과거, 힘을 통해 가정을 꾸려가야만 하던 시대와 달리 현대 사회는 힘이 아닌 두뇌로 그 노동 가치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는 몰락하고 말았다. 이런 몰락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혼란을 겪을 수밖에는 없었고 그런 혼란은 결국 극단적일 경우 가족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또한 경제 불안정으로 안정적인 직장이 점차 사라지며 불안해진 가장은 부담감을 느끼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가정 전체로 확대됐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무언가족'의 탄생은 예정된 순서일지도 모른다. 개인주의와 핵가족화의 확대는 '무언가족'의 밑거름이 됐다. 더욱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점점 그 범주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무언가족'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개인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해법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가족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무너지는 말과 행동도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만둬야한다. 가족이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한다. 결국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부모님들과 어떤 시각을 공유하고 있는지 혹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가치관만을 투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다.또한 서로를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식사시간이라도 함께 해보자.비로소 제대로 서로를 바라보면 고백과 용서, 그리고 이를 통해 치유가 될 것이다. 가족의 관계 회복은 다가가기 힘들 뿐 절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요즘, 가정에서마저 소통하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더욱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존재를 다시 고민해보길 바란다. 가족의 행복이 바로 자신의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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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23 23:02

그와 그녀가 사는 세상

책이나 신문보다스마트 기기가효율적으로 보이지만실제로도 그럴까?그는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출퇴근 시간의 8할을 지하에서 보내는 그는 가끔 자신이 두더지 같다고 생각한다. 낮과 밤의 시간개념을 상실한 지하철 풍경은 흑백영화처럼 지루하기만 하다. 이곳에선 서로에게 묻거나 답할 일이 거의 없으며 재미없는 농담이나 시답지 않은 얘기 따위는 더더욱 할 사람이 없다. 한 공간에 이토록 밀착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궁금한 일이 없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졸린 눈을 부릅떴다. 한눈에 봐도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 마치 지하철 안이 거대한 스마트기기 천국이 된 것처럼 사람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가장 흔한 모습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이들이 삭막한 도시의 모습을 지하에서 똑같이 재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도시의 잔재라 해야 좋을까? 하지만 지하든 지상이든 한번 발을 들이면 모두 새삼스러워진다는 것을 안다. 가장 낯선 것이 가장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녀가 느끼는 체감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스마트기기를 쓰는 것이라고 이 지하세계는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혁신이라 찬미하고, 디지털 시대의 수준을 몇 단계 올려놓았다고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마치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영화 한편이 법정과 국회를 흔들었다고 광고하는 사람들처럼. 이제 '그'와 '그녀'는 지하철이든 어디든 책이나 신문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을 더 많이 마주할 것이다.그러나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모두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업무가 연장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디지털기기의 특징인 '동시 다중작업 수행(멀티태스킹)'이라고 일컫는데 언뜻 보면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중 과업을 인정하라'는 말과 같다. 예를 들어 가족여행을 가도 제안서 검토 의견을 구하는 동료의 메일에 답장을 해야 하거나, 출장에 가서도 상사에게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독촉 받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당신은 전화를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고, 운전을 하면서 DMB를 시청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가? 그곳이 침실이든 화장실이든 강의실이든 회사든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상사가 업무 시간 이후에 전화를 했다고 받지 않을 강심장은 과연 있는가? 스마트한 시대에 눈 뜬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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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16 23:02

전주·완주 통합, 진정성이 중요

살랑살랑 봄바람이 기분까지 '딸랑딸랑' 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 봄이 우리의 곁에 찾아왔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서 그런지 결혼하고 싶게끔 만드는 날씨이다. 물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도 많은 '시즌'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결혼하는 신랑신부를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두 사람이 같이 살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지난 4월 30일 김완주 전라북도 지사, 송하진 전주시장, 임정엽 완주군수가 전주완주 통합건의에 전격 합의했다. 이들이 발표한 '완주전주 통합 공동 건의 합의문'에는 10가지의 '완주전주 상생발전사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통합시 청사 완주군 배치, 종합스포츠타운 공동 건설, 농업발전기금 확보, 농업농촌 안정적 투자재원 확보,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지역 규제완화 건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신축 이전, 대규모 위락단지 완주군 내 조성, 완주지역 주택아파트단지 조성, 공공기관 및 시설 완주 이전, 택시사업구역 통합 등이다. 사항들을 주욱 살펴봤을 때 전주시의 입장에서는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느껴진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왔던 전주완주 통합의 첫 단추가 꿰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도내 언론에서는 통합의 효과를 기대하며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필자는 느꼈다. 사실 필자는 완주군민으로서 통합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느끼기에 완주군은 충분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느껴진다. 로컬푸드 사업이나, 마을 만들기 등의 사업 등은 지역의 특색에 맞게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여러 가지 정책들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능력도 있고 여유도 즐기는 '나름 골드미스'같은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전주는 뭔가 중후한 멋이 있기는 하지만 특징도 없고 뭔가 궁상맞은 '노총각' 느낌?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사실 그럴 것도 없는 것이 필자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전주에서 보냈다. 완주군 봉동읍으로 이사 왔을때도 전주 소재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며 지금까지도 전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주와 완주는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완주군에서 전주시로 출근하고 등교하고 있으며, 못지않은 사람들이 3공단을 포함한 완주군의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완주군청이 전주시에 있는 것이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타는 버스는 전주시의 버스이니깐. 타 지역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전주 산다고 답할 때가 많다. 전주에서도 바람 쐬며 쉬고 싶을 때, 모악산에도 오르고 고산휴양림에서 심신을 달래기도 한다. 그만큼 전주와 완주는 한동네 같은 느낌으로 서로 이질감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합의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동거한다고 꼭 결혼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결혼은 상대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공유해야 한다. 서로의 통장도 '까서' 경제적 능력도 확인하고, 서로의 성격도 고려해야 하고, 집안환경도 중요하다. 결혼한 수많은 선배들이 말하길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이 번뜩 떠오른다. 통합도 현실이다. 서로가 win-win할 수 있다면 누가 쌍수 들고 만류하겠는가. 단지 서로가 정말로 상생하려면 '주판알 굴리지 말고' 진심이 담긴 '프로포즈'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어차피 집안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혼인신고부터 하고, 살림부터 합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왕 같이 산다면 양가집안 사람들의 축복받으며 친구들의 시샘어린 축하받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잘못하면 집으로 끌려가 두들겨 맞고 머리 깎이고 방에서 못 나올수도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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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9 23:02

'비정규직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소리 쳐 보아도~'. 가수 리쌍의 노래 가사처럼 현재 우리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정치인들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펼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소리 치고 발버둥 쳐봐도 젊은이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끊긴지 오래다.무엇보다, 젊은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 진부한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먹고 사는 일에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말이다. 먹고 살만한 경제력이 있더라도 젊은이들이 놀고먹는 것 보단 사회에 나가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문제는 젊은이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바로 '고용보호'의 도입 때문이 아닐까.'고용보호'는 1970년대 선진국들이 '높고 지속적인 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놓은 정책으로, 쉽게 말해 해고를 어렵게 하는 사회조항이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계속해서 실업률이 상승하자 선진국들은 이에 상반되는 개념인 '노동시장의 유연성'제고에 관심을 가졌다. 선진국들은 고용자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경쟁력을 더 키워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일찍이 고용보호 정책을 제거한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란 개념은 현재 명확하지 않지만 유럽과 미국이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고용자가 마음대로 근로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의미로, 미국은 고용자가 근로자를 강하게 만들고 근로자의 노동이동을 쉽게 하여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지나친 정규직 고용보호와 더불어 경직된 노동시장의 형태를 갖고 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2007년 비정규직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비정규직법'이 이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570여만 명이었던 비정규직이 법을 시행한 이후 600여만 명으로 증가했으니 말이다. 2003년 OECD 국가들의 '고용보호'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26위를 기록함으로써, 1998년에 16위이었던 것에 반해 10계단 더 상승해 고용보호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이는 정규직 해고가 불가능 하고, 따라서 정해진 그릇 안에서 새로운 인재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고용보호 정책이 젊은 인재들에게는 죄어오는 옥쇄를 자리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나친 정규직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법'을 폐기한 후 진정으로 효과적인 새로운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 나라에 보탬이 되기 위해 교육받고 노력해 온 젊은이들의 능력이 도태되지 않도록,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보다 더 많이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더욱 개발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깨달음 있는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악순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정규직법, 과연 그것이 옳은 행태인지 고민해 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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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2 23:02

우리는 아직 젊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뱉어버린 말과 쏘아버린 화살과, 지나간 인생 그리고 지나쳐버린 기회다'라는 아바리안 속담이 있다. 상반기 공개 채용이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 학기에 졸업한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졸업생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부모님의 압박으로 인한 초조함,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함, 남들이 부러워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채용에서 줄줄이 낙방한 실화 등 하나같이 어두운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봄을 즐기지만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들은 겨울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보였다. 대학생 시절에 스펙에 한 줄 더 적을 활동을 하지 않고 시간을 하염없이 보낸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욕심을 가지고 많은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욕심과 욕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헛된 욕심과 아름다운 욕망은 다르다. 헛된 욕심은 자신을 속이고 기계적인 가면의 삶을 살게 된다. 헛된 욕심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이 욕망이라 착각한다. 욕망은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고자,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ABC 뉴스 한국 지국장 조주희 기자는 욕망을 '남을 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욕의 의미가 아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이를 이루기 위해 세우는 구체적인 행동 강령과도 같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는 그저 욕심이 많을 뿐이지, 그 욕심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부족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러면서 '그랬어야 했는데'라며 과거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시간 때문에, 남 때문에 등의 핑계는 집어치우길 바란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큼 달콤한 마시멜로를 먹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나 자신을 지킬 것인지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아름다운 욕망을 꿈꿀 자격이 생긴다.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치를 발견할 줄 알아야만 아름다운 욕망을 이루게 해줄 매력이 발산된다. 매력적인 나 자신을 만들고 우리는 지나가 버린 기회를 후회하는 일이 아닌 다가오는 기회들을 알아차리는 능력과 센스를 길러야한다. 지나간 시간과 놓쳐버린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후회할 필요가 없다. 경험으로 숙련된 노련함보다 조금은 서툴지만 생기 있는 열정을 가진 인재가 신선하다. 비록 지금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한 세상이 펼쳐졌을 지라도 좌절하지 말자.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과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견고함을 가지고 있다면 기회는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우리는 아직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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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25 23:02

헌책방 이야기

작년 이맘 쯤 전주 헌책방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바로 옆 민중서관 본점이 문 닫은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고 몇몇 헌책방도 '임대' 종이만 써 붙이고 닫은 곳이 많아 괜히 울적한 터였다. "다른 데 가서 알아봐요! 약 올리지 말고."하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장사도 안 되고 주변 책방은 하나둘씩 문 닫는데 학보사 기자라고 찾아와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진상손님보다 더했으리라. 같이 간 동료와 나는 이러다 소금 맞고 쫓겨날까 싶어 조마조마해 하며 책방을 관찰했다. 헌책방은 고3 학생들이 팔고 간 문제집과 참고서가 가득했다. 그냥 헌책방이 아니라 헌 참고서 책방이라 해도 무색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 쯤 되자 주변 학교를 다니는 여고생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그 중에 한 학생에게 말을 붙여봤다."팔러 오기만 하고 사지는 않아요." 한 학생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제 2학년 올라가는데 다 읽고 난 책들을 팔러왔단다. 값은 많이 주냐 했더니 어차피 필요 없는 책이라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참고서는 곧잘 팔려 괜찮은 눈치였다. 하지만 다음으로 온 어느 아저씨 손님은 한 눈에 보기에도 무슨 책인지 알아보기 힘든 너덜너덜한 책들을 계산대 위에 턱 올려놓았다. 값을 못 쳐주겠다고 하자 몇 십 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주인에게 상말을 퍼붓고는 돌아갔다. 아주머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헌책방 골목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다시 찾아간 헌책방골목은 카운트다운 하듯 네 곳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제는 행전안전부에서 전주한옥마을을 세계적 명소로 키우려는 발판으로 전주시와 협약을 맺어 떠들썩하고 객사는 열흘 뒤 열릴 전주국제영화제 준비로 분주하다. 하지만 바로 옆 골목은 쓸쓸하기만 하다. 2012년이 전북방문의 해라고 하지만 전북도는 후미진 골목이나 누군가의 추억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나는 자꾸 아쉽다. 반질반질한 한옥마을에 비해 북적이는 객사에 반해 다락방에 혼자 남은 기타 같은 헌책방이 안타깝다. 누군가 조금만 물꼬를 틀고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삼십 년 동안 헌책방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들이 이젠 혜택을 받아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그러기 위해선 똑똑한 전주가 헌책보다 새 책이 더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테이크아웃 카페가 스터디 공간이 되고 만남의 장소가 되듯 헌책방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 어떨까? 전일슈퍼의 가맥이 그 이상을 넘어 전주만의 문화가 되고 있듯 헌책방도 하나의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 전주의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대도시의 헌책방이 어떻게 시민들과 손잡고 걸어가고 있는지 전주가 공부하고 본받았으면 한다. 그래야 먼지 쌓인 책들이 반짝반짝 새 주인을 찾고 골방이 된 책방이 제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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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18 23:02

소중한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

학교를 파하고 친구와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가다가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고, 한 학생은 전단을 나눠주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내용을 살펴보니 '전주시 버스파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합치자, 행동하자, 참여하자'라는 내용의 전단지였다. 정류장 바로 옆에서는 테이블을 펴놓고 서명운동에 참여해 달라며 독려하는 모습도 있었다. 사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로서는 시내버스 파업에 대해서 특별히 체감하고 있지 못했다. 이따금씩 버스를 이용하고자 할 때, 버스가 많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사실 불편함을 느끼기에 버스를 이용할 기회나 나의 관심이 적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활동은 풀린 날씨만큼이나 신선하고 산뜻한 충격이었다. 그들이 정말 자발적으로 벌린 일인지, 학생들이 한 서명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고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지역사회 젊은이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의식과 욕구를 표출하고자 한 것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4월 11일은 대한민국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만 19세 이상(93년 4월 12일 이전 출생)이 참여할 수 있으며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공기관이 발행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가지고 자신의 지역구에 위치한 투표소에서 참여할 수 있다. 흰색 투표용지로 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자를, 연두색 투표용지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2016년 5월 29일까지 각 지역구와 국민을 대표해서 국회의원으로서 4년간의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과거보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진 듯하다. 특히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사는 높다고 본다. 앞선 세대들보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기 편해졌고, 각자의 생각을 거침없이 나눌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책을 찾아서 보기도 하고, 기사를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연일 터지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슈들이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생각들도 쉽게 잘 나눠지고 있다. 정류장에서 봤던 학생들처럼 직접 홍보물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국민들은 자신이 바라는 국가의 모습과 방향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신념과 관점이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작은 사건들, 여론몰이에 말린다면 진정으로 바라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지난 세월동안 권력을 잡았던 자와 세력들은 커다란 단면은 숨기고, 작은 펙트(fact)를 부풀려서 우리 국민들을 요동치게 했고 그들이 바라는 사회와 국가로 만들어 가려 했다. 이제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타당하며 진정으로 공감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투표에 꼭 참여해야 한다. 투표는 헌법 제24조에서 보장하듯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권리이며 또한 국가 권력의 근원인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가는 민주국가라 할 수 없으며 국민이 원하는 국가는 국민이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갈대밭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철새와 같은 사람이 우리를 대변할 수는 없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뿌리 깊은 나무가 될 때, 나무위에 둥지를 짓고 함께 공생할 사람도 찾을 수 있다. 4년 만에 돌아온 국회의원 선거. 지금 작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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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11 23:02

SSM 의무휴업에 선행돼야 할 과제

한번 '복지병'에 걸린 사람들은 불치병에 걸린 것 마냥 그 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가 이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이 모여 기업을 만들고 이 기업들의 경쟁을 통해 나라 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인데, 경쟁을 하지 못하게 품안에만 싸고 드니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주시가 전국 최초로 S SM(기업형 슈퍼마켓)의 의무휴업을 시행한 사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듯하다. 전주시는 지난달 8일, 전주지역 SSM 18곳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 의무적으로 월 2회 휴업을 진행하기로 의무휴업 조례를 개정했다. 때문에 매월 둘째와 넷째 주 일요일에는 의무휴업을 실시하고, 지난달 11일 전국 최초로 처음 휴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의무휴업 첫 날, SSM들은 출입구 유리창을 통해 의무휴업 관련한 안내문을 부착했다. 그러나 휴업 관련 소식을 접하지 못한 시민들은 헛걸음을 쳐야 했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또한 SSM 휴업을 통해 전통시장 활성화를 도모하자는 취지와는 다르게 시민들은 인근 대형마트를 찾아 정작 전통시장의 고객 증대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단다. SSM보다 규모가 큰 대형마트가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현재 정상영업을 진행했기 때문. 과연,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SSM 의무휴업이 성공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전통시장에 익숙하지 않는 젊은이들, 마트에 익숙해진 주부들의 발걸음을 전통시장으로 옮길지 말이다. 'SSM의 진출 등으로 전통시장이 침체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진정으로 침체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먼저 생활용품과 식품 등을 구매하기 때문에 차를 갖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시장에는 기본적인 주차 공간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마트에 비해 다소 깔끔하지도 위생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환경까지. 전통시장은 아직까지 시민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보인다. 약자라고 생각되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위해 복지를 시행하고 있지만, 선택의 권리가 없어진 소비자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처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조례 개정보다 선행돼야 할 과제는 전통시장에 관한 홍보를 진행하고, 각각 시장만의 개성을 살리는 것이다. 더불어 전통시장만이 갖는 특성과 대형마트를 이용 했을 때 느꼈던 만족감과 편리성을 동시에 갖춰 제공해야 한다. 때문에 강제적인 전통시장 이용보다는 스스로 눈길을 옮길 수 있도록 시장 자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사회와 상인들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라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보호'정책보다는 '경쟁'을 부추겨야 하지만, 전통시장과 SSM 대형마트는 한 마디로 '게임이 되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에 선 보호 후 경쟁 제체를 시행해 나가는 것이라 이해하겠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작은 정부의 입장에서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도감독자'의 역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경쟁 없이 복지만을 이룩하려는 사회는 아무런 발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호의를 계속 베풀면 그 호의가 권리인줄 아는 보편적 복지가 아닌,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 나아가 국민 전체에게 이득이 돌아오는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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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04 23:02

값비싼 대학가, 배고픈 대학생

새학기가 시작한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간다. 여전히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대학교는 3월의 봄을 기다리는 새내기들과 재학생, 복학생들로 북적거린다. 겨우내 찬바람이 불던 캠퍼스는 활기를 되찾았지만 정작 학생들의 지갑은 여전히 차가운 한기가 맴돌고 있다. 더욱이 신입생들에게 먼저 대학에 들어온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선배들의 자신만만한 모습 뒤에는 텅텅 빈 지갑만이 남고 있는 봄시즌이다. 학교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점으로 붐빈다. 분식으로 시작해 한식, 양식, 중식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배고픈 학생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뜻 음식점으로 향하기 망설여진다. 바로 개학을 맞이해 상승한 음식가격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과 많은 양으로 방학내 필자가 즐겨갔던 분식집도 인기 메뉴의 가격을 올려 많은 학생들의 아쉬움을 샀다. 매니아 층만 알고 즐겨 찾았던 가게의 가격 상승은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음식가격 상승 현상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2009학년도부터 조금씩 지속적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과거의 가격과 현재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1천 원 이상이 올랐다. 학생들의 지갑을 고려하지 않고 책정된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렇기에 점심시간이 되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봐도 맛집보다는 저렴한 음식을 먹으려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학교 앞 음식점들의 음식 가격은 기본 약 4천 원에서부터 비싸면 1만 원 이상이다. 평균적으로 대략 한 끼에 6천 원인 셈이다. 학내에 존재하는 학생식당은 학교 앞보다 저렴하지만 평균 3천 원 이상이다. 학생식당 가격 역시 지난해에 채소값 상승과 함께 오른 가격이다. 대학생들이 받는 용돈의 50% 이상은 밥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값 외에도 지난해 학교 앞 방 값도 올라 대학생의 생활고는 깊어지는 현황이다. 대학가의 모든 물가가 올라 학생들의 잔고는 가파르게 내려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 더 참혹한 사실은 대학을 졸업 한 후 사회에 첫 발을 내 딛은 졸업생들 중 3만 명 이상이 '신용불량자'라는 것이다. 이는 높은 대학 등록금을 위해 받았던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이유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엔 값비싼 물가가 난무하는 대학가에서 살아남기가 너무 힘들다. 올해 1월, 우리나라의 식품 물가상승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이밖에도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은 11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름값 역시 당분간 고공행진을 계속할 전망이다. 전통 시장 상인들은 오른 채소값 때문에 시장의 방문객들을 잃고, 높은 유가는 기름을 운반하는 차에서 기름을 훔치는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안정된 물가를 위한 해결책이 시급하다. 오는 4월 11일,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많은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내 놓은 공약은 바로 '경제 살리기'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의 현주소가'적신호'라는 것이다. 우리 손으로 직접 물가를 내릴 수 없다면 반드시 투표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이 높은 물가에 성난 서민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잠재울지, 어떠한 해결방안을 내놓을 것인지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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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3.28 23:02

스물다섯의 봄

얼마 전, 믿기 힘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의 소식이었다. 온라인상으로는 여러 번 묻고 답했지만 실제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몇 년 만이라 미안함과 반가움이 뒤섞였으나 그녀는 그럴 틈도 없이 폭탄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폭소로 격하게 호응하고 다시 또박또박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미니홈피에서 커플 사진을 간간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진전됐으리라곤 상상도 못한 터에 배신감과 궁금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는 이 커다란 충격과 공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 여중시절로 빙의된 나는 육두문자로 심정을 대신했다. 친구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며 자지러지게 웃다가 한방을 날렸다. "애기가 벌써 4개월이야!"친구는 아기를 가진 사실을 알고 혼자 끙끙대며 힘들었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아무에게도 얘기 못하고 혼자 어떻게 해버릴까 생각도 했었단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럴 거면 헤어지자며 프로포즈(?)를 했고, 부모님께도 사실대로 말씀 드렸다고 했다. 다행히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친구는 아직 걱정이 많다. 둘 다 직장이 있지만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싶고 친구들은 한창 열심히 자기 계발하고 하고 싶은 것 할 나이에 홀로 유부녀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기까지의 숱한 고민과 망설임도 모성애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듯싶다. 벌써 뱃속의 딸 자랑을 늘어놓는 걸보니 이상하게 부럽기도 하고, 처음부터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십년 전만 해도 주변 친척이나 이웃 언니가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하는 걸 흔히 봐왔지만 지금은 스물다섯도 빠르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시대가 왔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 결혼나이가 서른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고도 그러려니 하고 스물 초중반에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외계인 보듯 하는 것도 일상이 돼버렸다. 흔히 결혼적령기가 늦어지는 이유를 대학 입학자가 80%에 달하고 여성이 사회진출이 많아졌다는 말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뉴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결혼의 개념마저 상실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경제여건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란 말이 88만원세대 보다 더 암울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아, 연애마저 포기해야 하다니!하지만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당당히 첫발을 내딛은 친구가 대견스럽다. 이제 하나를 위해 전부를 포기해야할지도, 혹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를 희생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씩씩하게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지금이야 처음이라 주변에서도 호들갑을 떨지만 몇 년 만 더 지나면 누구나 똑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그 때는 다 겪은 선배로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고 있겠지. 하지만 잊지 않겠다. 학교 축제 때 저 혼자 단상에 올라가 췄던 몹쓸 막춤이며, 우리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꼬깃꼬깃 접어준 고백편지며, 2002년 모든 여학생이 '안정환'에 미쳤을 때 '홍이(황선홍)'을 외쳤던 굳은 의지며, 쉬는 시간 때마다 온 교실이 떠나갈 듯 고성방가를 해대던 천방지축 소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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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3.21 23:02

MT가 '먹고 토하는 날' 인가

3월 개강을 맞아 대학은 학생들로 북적댄다. 강의실을 찾아 허둥지둥하는 신입생들. 그런 신입생들을 영입하려는 각 동아리와 단체들의 학생들이 섞여 방학동안 조용했던 학교는 마치 어린이날 놀이공원처럼 북새통을 이룬다. 나를 비롯한 선배님들(특히 예비역들)은 시끄럽고 정신없어 죽겠다는 짜증스런 얼굴로, 혹은 너희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본다. 매번 개강 때마다 가장 붐비는 곳이 내 생각에는 딱 두 곳인 것 같다. 일단 학교 구내서점.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이 많고 싸기도 하지만 서점에는 새 학기 새 교과서를 사려고 하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어지간한 '타이밍' 아니면 줄을 서서 상당히 기다려야 하고, 막상 서점에 들어가서도 학생들은 왜 그리 많은지. 책을 찾는 학생들과 찾아주는 서점 직원들이 섞여서 지나가기조차 힘들다. 책을 찾아도 계산을 기다리는 줄은 길다. 새 책 냄새와 새 학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나도 줄을 서서 동기와 떠들어 댔다. 그런데 개강 일주일 후, 서점은 한산하다. 학교 구내서점은 '한철장사'인가 보다.개강 때 붐비는 곳 두 번째. 대학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 앞 술집들. '수강신청주' 라고 수업에는 못 봤던 친구들도 이 시간에 이곳에서는 볼 수 있다. 대학로는 사람들로 꽉 차서 밥 먹을 식당 찾기도 힘들다. 자리 있는 집을 겨우겨우 찾아서 자리에 앉으면 다짜고짜 게임을 하고 술을 '말아서' 시원하게 들이키는 술자리. 가게 안이 웃음소리, 게임하는 소리, 고함소리 섞여서 옆 사람 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새벽까지 자리는 이어진다.작년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 의해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음주량이 10년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단다. 그러나 한 자리에서 폭음하는 비율은 훨씬 늘었다고 한다. 음주량이 줄었다는 것은 잘 모르겠는데, 폭음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뭐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는 법이니깐.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당연시 되고, '전통'이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다. 서점은 개강 때만 바쁘고, 술집은 개강 때도 바쁜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통기타'와 '화염병'으로 대표되던 대학문화가 시간이 흘러 이제는 '술' 문화로 굳어져가는 것 같다. 과거에는 스트레스와 열망을 능동적으로 표출하고 풀고자 했다면 이제는 억누르고 다스리고 적응하려하고 잊어버리려고만 하는 것 같아 이 시대 한명의 대학생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또한 얼마 전 기사화 된 모 대학의 MT(M embership Training)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군대식 '얼차려'로 인해 논란을 만들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전통'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학교뿐이겠는가. 많은 학생들이 MT는 '먹고 토하는' 날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문화와 전통은 유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보되고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른바 '대학문화'에 대해서 대학의 주체 중 한 축인 대학생들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학과후배들에게 물려줄 훌륭한 '전통'은 무엇이 있을까. 단지 먹고 마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텐데. 빨리 안취하고 천천히 취하면서 우리 얘기와 생각을 나눠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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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3.14 23:02

그에게서 발견한 별과 희망의 메시지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가게에 들어서는데 직원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 보였다. '왜 그럴까?'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여자 2명이서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가게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수군댔다. '사람들이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나 역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을 보는 시선은 비장애인인 내가 봐도 이상하리만큼 거북했다. 정작 장애인 본인들은 어떠했을까. 이들을 보고 있자니,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 복합 장애인 남편 '영찬'과 척추 장애를 가진 부인 '순호' 부부의 이야기를 풀어낸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이승준 감독)이 뇌리를 스쳤다. 이 부부의 이야기를 접한 것은 지난해 10월, 익산 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익산장애인영화제'를 찾았을 때다. 이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이들의 이야기, 신선하다면서도 짠한 감동이 몰려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이 CM송은 조영찬김순호 씨 부부를 위해 만들어 진 것만 같았다. 영화제에서 직접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승준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인연이 닿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이 감독은 '영찬'과 '순호'가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풀어냈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을 지탱한 것은 그들의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외로움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단다. 처음에는 '시청각 복합 장애인은 어떻게 의사를 소통 할까?'라는 궁금증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이 다큐가 주는 매력 때문에 집중하게 됐다. 그들은 손등 쪽 손가락 위에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하는 방식인 '점화(點話)'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보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남편 '영찬'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에서 느끼는 멋진 구도와 스토리,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생활 그 자체가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때문에 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기간도 1년여 정도로 길었단다. 가공되지 않은 그들의 아름다움 덕에 관객들은 웃고 울고 즐거워했다. 이들은 느림 속에서 우리들이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미처 보지 못한 소소하지만 특별한 것, 그렇게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달팽이의 별'에 빠졌다. 이 감독은 "장애인들에게 있어 소통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리죠.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를 달팽이 같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리고 장애인 친구들이 갖고 있는 세상, 우리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을 별이라고 비유한 것입니다"며 다큐멘터리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그 달팽이는 아내의 도움으로 지난달 나사렛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이달 대학원에 입학했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틀리다'고 인식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과 비장애인들은 '다른 것' 뿐. 우리가 사방에 치어 바쁘게 살고 있을 때, 그들은 세상을 자기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이다. 별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게서 반짝이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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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3.07 23:02

순위에 갇혀버린 대학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2011년 8월과 2012년 2월 졸업생의 취업률을 제출하라'대학은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지표를 높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전체 졸업생 가운데 취업자가 몇 명인지 센 후 적어 보내는 단순 행정업무였다. 허나, 직원들은 일주일간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업무를 행했다. 제출한 자료는 정부에서 검토했다. 그리고 그 수치를 잣대로 대학에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 순위를 대학의 이미지가 돼 버렸다. 대학이 숫자에 얽매이는 현상이 지속화되고 있다. 각 대학들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작년에는 정부가 들이대는 지표를 가지고 대학 구조조정과 부실대학을 선정했다. 일부에서는 대학이 기업화되고 있는데 정부 평가까지 겹치며 대학이 평가에 매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문의 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대학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업률 올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경기도의 어떤 대학에서는 취직이 되지 않은 졸업생 또는 졸업예정자에게 개별 연락해 조교로 2개월 간 일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또한 교수가 운영하는 회사나 지인의 회사에 학생을 서류상 직원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은 이들을 취업자 취급해 취업률을 부풀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7일 대학구조개혁위원회는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도 2~3개 대학을 부실대학으로 선정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러한 평가 지표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학 순위 매기기 전쟁'에 학생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최근 뉴스에서 졸업식 시즌이 돌아왔지만 졸업식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점차 줄어든다는 보도를 접했다.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로 졸업생들은 대부분 취업을 하지 못해서라 답했다. 축하 받아야 마땅한 졸업식이 기피 행사로 전락해버린 순간이었다.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걱정으로 졸업식장은 텅텅 비어가는 반면 대학교 전광판에는 취업률, 대학 평가에 대한 지표 등 학교 자랑에 한창이다. 취업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은 존재하는데, 대학의 취업률이 점점 높아졌다며 좋은 학교라 광고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니 않은가. 물론 좋은 평가는 대학의 이미지를 높이고 학생들이 학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대학 평가 지표가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는 이러한 잣대를 들이대며 좀더 높은 교육의 질과 교육환경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라는 것이다. 평가 순위가 눈에 잘 보이기는 하지만 그 대학에 대한 모든 평가를 보여주진 않는다. 많은 대학이 대학의 평판을 높이기 위해 건물을 짓고, 외관만 번지르르하게 바꾼다. 가시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양상은 지양해야한다. 대학은 학생들의 학문 정진에 앞장서는 공간이다. 절대 학교의 성과를 위해 학생이 희생될 수는 없다. 또한 대학은 평가 지표만을 쫓는 것이 아닌 학생에게 진실 된 교육의 질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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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2.29 23:02

서바이벌의 시간

올해 브라운관은 여전히 오디션과 서바이벌의 시간이다. 영화로 치면 천만관객 돌파 쯤 되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가 대흥행한 이후 간판만 바뀌었을 뿐 줄거리와 주제는 그대로거나, 장르만 바뀌거나, 규칙만 변형된 파생 작품들이 셀 수 없이 생겨났다. 그중 서바이벌의 방식과 조합이 매끄럽지 못한 것들은 한번으로 자취를 감췄다. 대통령도 오디션으로 뽑으라는 말과 함께. (어쩌면 그래야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성질이 얼마나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변모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밤새도록 토론해도 모자랄 듯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흥미롭게 시청하는 것은 대중들이지만 그 대결과 가장 상관없는 사람 또한 대중들이다.관계도 없고 상관도 없는 일에 왜 열광하는가? 사람은 대개 주변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어떻게든 그 원인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럴 때 누군가의 일목요연한 말이나 해설을 들으면 일종의 면죄부가 생기게 된다. 이런 심리를 '결백한 방관자'라 부르는데 어떤 사건사고에 대해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인과관계에 따른 가치판단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생각하고 토론할 자료를 확보하고 그 글에 동의하거나 반대함으로서 그 과정을 손쉽게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오디션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시청자와 재능을 기반으로 신분상승의 막차를 탄 지원자, 그리고 시청률 전쟁에 뛰어든 방송사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라고 전문가가 말할 때 대중은 그 비평을 소비함으로써 정서적 안도감을 찾는 것이다. 한편 방관자는 TV 뒤에 숨어 기대와 실망을 반복한다. 그리고 채널을 돌리며 또 다른 안도감을 찾아다닌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아빠뻘이 넘는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더라도 놀랍지 않은 것은 회가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지원자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방관자는 콜로세움의 고대 로마인이 된 심정으로 검투사가 제대로 싸워 누군가를 짓밟아주길 기다린다. 그들은 공명정대한 '서바이벌 신'을 믿고 있다. 그러나 TV를 끄면 방관이 아닌 현실이 펼쳐진다. 그리고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모두 방관자가 된다. 우리네 삶과 달라 열광하지만 실은 소름끼치도록 똑같아 좌절하게 만드는 것, 서바이벌은 자신의 얼굴 반쪽을 닮았다.우리가 듣고 보는 모든 사건사고는 누군가의 분석과 진단을 기다리고 있다. 불행한 일이 닥치면 일단 원인규명부터 해야 한다. 이유를 모르면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사건에 조금이라도 개입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죄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한 동료가 그만둔다는 소문이 돌면 그와 친했던 지인의 해설이 필요하고, 뉴스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을 보면 가해자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정신과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하고, 어떤 사회적 화두가 떠오르면 그에 따른 시대현상을 분석한 베스트셀러를 읽어야만 한다. 누구든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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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2.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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