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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유감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동네의 병·의원들은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어찌 되었든 병·의원을 개업하기만 하면 3대가 넉넉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모았고 그 사람들도 동네에서 유지 반열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기 신체 일부의 고장에서부터 오는 고통인데, 이것을 담보로 그 고통을 덜어주는 시술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의사들이고, 그 사람들은 대학에서 의과대학의 전공을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왔었다. 물론 의사들이 전임의 자격을 따내기까지엔 많은 어려움과 투자가 선행된다.

 

예과 2년, 본과 4년 전공의 과정 4∼5년 동안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한다. 그 만큼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기란 쉽지가 않고, 또 사회에서도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만큼 대접을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의 의료사태 만큼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기들의 권리가 그 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의약분업에서 의사의 몫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약사들의 대체 임의조제의 근절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전체 의료인들을 똘똘 뭉치게 한 원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히 생각을 해 보자.

 

아무리 의약분업의 현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엄격히 말하면 의사와 약사의 문제이다. 아무 힘없는 일반 서민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당해야 되는가?

 

의사와 약사의 기득권 싸움인데 왜 멀쩡한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가?

 

의사들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환자를 돌보는 행위마저 포기하면서 또 그것을 볼모로 잡고 투쟁한다면, 진정으로 그 뜻을 이룬 후에라도 누가 당신들을 인술을 베푸는 사람들이라고 봐 줄 것인가?

 

정부에게도 물론 책임은 있다.

 

개혁이란 것은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 틀을 바꾸자는 것인데 그 틀을 바꾸기까지엔 그 속에서 안주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반발할 것은 당연한데 너무 서둘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책의 큰 틀이 누가해도 언젠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진행시키는 것이 맞다고 볼 때 현 정부의 고충도 이해가 간다.

 

올바른 방향으로 수십년 묵은 관행을 바꿔보자는 것이니까 이제 이쯤 해서 서로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해져야 한다.

 

자기 몫을 찾는 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이 시기에 이 사회의 엘리트 집단인 의사들마저 환자를 돌보는 책임마저 팽개친채로 거리로 나서는 것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오죽하면 우리가 그렇겠냐”고 이유를 대지만 그것도 당신들이 환자를 돌봐야하는 숭고한 이념마저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은 되지 못한다.

 

그 정도면 국민들도 의사들이 왜 거리에 나서게 됐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모든 집단들이 자기의 이익에 반한다고 모두 반발한다면 이 사회는 무서운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이 거대한 사회의 톱니바퀴는 모두가 자기의 맡은 역할에 대해서 성실하게 임할 때 무리 없이 돌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사회를 선진사회로 진입시키는 단계일진데 모든 톱니들이 제각기 제몫이 작다고 이탈한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다.

 

현대사회의 다양성, 다 기능성, 다변성이 자본주의사상과 뒤엉켜져 그 본질이 모호해지고 있는 이 시기에 이 사회의 상류집단인 의사들마저 집단행동으로 뒤엉켜져 나아간다면, 누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바르게 끌고 갈 것이며 힘없는 서민들의 말못할 고충을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이 박봉 때문에 파업한다면 도둑은 누가 잡고, 불은 누가 끌 것이며, 교사들이 과잉잡무 때문에 파업을 하면 학생들은 누가 가르칠 것이며, 공무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파업한다면 국가 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그런 사태가 온다면 무슨 명분으로 그 사람들의 항의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서로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해져서 이성으로써 진지하게 타협해야 할 때다.

 

서로가 자기의 목소리를 낮추어 조금씩은 양보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서로가 사는 공생의 길이다.

 

여름철 무더위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 짜증나는 더위에 청량제의 역할을 하듯이 의사들의 파업사태가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원광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체육학부 교수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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