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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류의 다음 질문, 확산보다 랜드마크로

한국문인협회전주지부 정책기획위원장 김형석

한류는 이제 세계의 일상이 되었다. K-팝과 K-드라마, K-문학은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류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지금,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확산됐는가’의 문제보다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한류의 뿌리, 한글이다. 한류의 외연은 눈부시게 확장되었지만, 정작 그 근간인 한글은 여전히 배경으로만 소비되고 있지는 않은가. 한류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한글은 어디에 있는가? 한글은 인류사적 발명이며,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한류 확산과 함께 한글에 대한 세계적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현재 세종학당은 87개국 252개소(약 15만 명)로 확대되어 수많은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여기에 한류팬덤수 약 2억명, 한글산업의 부가가치액 18조에 달할 정도이다. 이는 한글이 이미 교육의 영역을 넘어 글로벌 문화자산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을 집약해 보여줄 상징적 공간, 즉 한류의 절대적인 킬러콘텐츠와 랜드마크는 아직 부재하다.

한글이라는 IP자산이 가진 잠재력은 크다. 조형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지닌 문자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 특성은 디자인, 시각예술, 문학, 미디어아트, 출판과 굿즈 산업까지 확장이 가능한 문화산업적인 IP자산이다. 

이제 한글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과 확장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상징성과 지속성을 갖춘 국제적인 공유플랫폼이 필요하다. 예컨대 세계한상대회와 같이, 글로벌 차원의‘세계한글대회’라는 국제적 문화행사로서 학술, 예술, 산업을 연결하며 상징적인 지역 문화로 확장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한글 관련 행사는 수도권 중심의 단발성 프로그램에 머물러 왔다. 지속 가능한 한글 문화생태계를 구축하기에는 글로컬이란 지역성을 빼놓고선 구조적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전북 지역의 전주는 특별한 잠재력을 지닌다.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자 조선왕조실록과 완판본, 책쾌가 탄생한 기록문화의 도시. 문자와 기록, 출판과 서사라는 한글의 역사적 맥락이 가장 온전히 남아 있는 공간이다.

문화관광의 경쟁은 이제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킬러콘텐츠 기반의 랜드마크의 힘에서 갈린다. 파리에 루브르가 있고, 빌바오에 구겐하임이 있듯, 한류에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결정적 테마공간이 필요하다. 한글의 역사성과 서사를 품은 장소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와 완주 만경강 수변공원은 탁월한 선택지의 하나다. 만경강의 넓은 수변 공간은 한글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걷고 머무르며 체험하는 문화경관으로 확장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한글과 세계문자공원, 한글문화의 거리와 디지털 한글박물관이 조성된다면, 한글은 비로소 ‘보는 전시물’에서 ‘살아 있는 문화’로 전환된다. 산책형 인문 조각공원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야간경관, 시와 음악이 흐르는 광장은 한글을 감각과 사유의 언어로 되살린다. 여기에 고대문자에서 아시아문자, 세계문자와 미래문자 체험까지 더해진다면, 한글은 과거의 유산을 넘어 미래로 확장되는 무형유산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문화외교 자산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글의 랜드마크를 선점해야 할 시점이다. 한류의 다음 30년을 좌우할 킬러콘텐츠는 더 이상 공연이나 영상만이 아니다. 한글이라는 문명 자산을 어디에, 어떻게 담아내느냐의 문제다. 한류는 변해도, 뿌리는 남는다. 한류의 화려한 외연을 넘어,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공간. 이제 필요한 것은 한류 이후를 준비하는 문명사적 전략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한글은 얼마나 오래됐는가’가 아니라, ‘한글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 답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상과 결단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글의 미래를 담아낼 랜드마크를 선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북이 한류의 다음 장을 여는 가장 강력한 정책의 발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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