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분쟁사태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만약 지난 6월의 남북 정상회담, 8월의 남북 이산가족상봉이라는 충격적인 해피뉴스가 없었더라면 21세기의 첫걸음이 시작된 서기 2000년은 매우 어둡고 혼란스런 한해로 기록될 뻔 하였다.
민주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가 정책에 골고루 반영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개인보다는 집단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 즉 이익집단을 결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익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이해가 엇갈리는 집단끼리 충돌하게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올해 들어 지난 6월과 8월 의료계가 두 차례 폐업을 하여 의료대란을 일으켰던 의약분업파동이다.
이번 의료계의 폐업사태는 정부에게도 그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을 통해 집단간 이해상충을 중재 또는 조정해야할 정부가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의 한 당사자로 전락하여 사태를 중재, 조정해야할 주체가 상실됨으로 인해 의약분쟁 파동이 더욱 더 악화된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정부가 사회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거나 정부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에 과연 누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가? 대안으로서는 국회와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은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여야가 대립되어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시민단체 역시 조정역량과 정치적 힘, 그리고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수단의 부재로 말미암아 그 역할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마지막 카드로서 언론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언론, 특히 TV방송이 분쟁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하였는가? 이를 위해 필자는 1, 2차 의료분쟁 기간의 KBS, MBC, SBS 등 방송 3사의 뉴스를 내용분석하였다. 그 결과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방송사들은 이번 의약파동사태를 매우 관심있고 비중있게 다루기는 하였으나 갈등 당사자들의 입장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이해가 부족하였고, 게다가 전문적 지식도 결여되어 이번 사태를 피상적으로 보도하였다. 또한 기사내용이 주로 의사들의 진료거부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과 고통, 이에 따른 피해 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번 파동을 엉뚱하게 의사와 환자간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이렇게 되다보니까 방송사들은 사태해결을 위한 내용보도를 소홀히 하고 말았고,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우리 방송사들은 분쟁 해결을 위해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는 소위 '갈등의제'를 찾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고, 당사자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위한 대화의 장 마련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이를 제대로 촉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분쟁 조정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제시노력도 매우 부족하였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대체로 공정성을 유지하려 노력하였으나 "정부와 의사단체"라는 이분법적인 관계에서 본다면 의사들에게 과도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결국 제 3자로서의 공정한 자세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한 쪽 편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나 부정적 보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해당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과 적개심을 심어줄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사태의 해결이 더딜 뿐만 아니라 사태가 해결된 뒤에도 그 후유증이 상당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사회통합과 공동체 의식형성을 저해할 위험성이 높다 하겠다.
결국 이번 사태에 대한 언론의 분쟁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낙제점이라 하겠다.
/권 혁 남(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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