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함석헌 선생의 글 한 편이 준 충격이 아직도 가끔 신선하게 떠오른다. 1958년 8월호 ‘사상계’에 발표했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가 그것이다. 이 글 때문에 선생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갇히고 잡지는 압수되었다. ‘대한민국을 북한 괴뢰집단과 동칭으로 꼭두각시라 하여 국체를 인정치 않고, 사회의 사상 질서를 문란시켰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었다.
8·15 14주년에 맞춰 쓴 것이다. 당시의 정치정세와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참담한가를 선생 특유의 걸쭉한 문장으로 거침없었다. 어두운 시절의 지식 청년층에게 끼친 영향과 감동이 그만큼 컸다.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해방됐다고 하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이 없다. 도리어 전보다 더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던 대신 지금은 들셋인 것이다. 일본시대에는 종살이라도 부모형제가 한집에 살 수 있고 동포가 서로 교통할 수 있지 않았는가? 지금은 그것도 못해 부모처자가 남북으로 헤어져 헤매는 나라가 자유는 무슨 자유, 해방은 무슨 해방인가… 우리나라 시대시대의 정치업자놈들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백성을 짜먹으려만 들었다. …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런 허튼수작들을 버리고 깨끗이 지난 잘못을 회개하여 진정으로 나라 위해 일하라. … 국민전체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예배당에서 울음으로 하는 회개 말고(그것은 연극이다) 밭에서, 광산에서, 쓴 물결 속에서, 부엌에서, 교실에서, 사무실에서, 피로, 땀으로 하는 회개여야 할 것이다.”
걸출한 선각(先覺)이나 지도자라 하더라도 말과 글이 함께 뛰어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한쪽이 빼어나면 한쪽이 그만 못하기 쉽거늘, 두가지가 다 각별하고 남다른 맛을 풍긴다는 점에서 선생은 마침내 독보적이다. 꾸밈이 없으면서 듣고 읽는 자의 가슴에 즉각적이고도 긴 울림으로 와닿는다.
내 경우엔 문장이 특히 좋다. 논리적이기보다는 직관(直觀)의 구어체로 시원하다. 그냥 시원하기보다는 웅숭관깊은 생각의 웅축으로 절묘하다. 도무지 관념의 희롱을 싫어한다.
스스로도 ‘나더러 말이 밉다 곱다 말고, 글에 조리가 있으니 없으니 말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부조리를 깨치고 아우성을 치며, 회오리 바람을 들지 않을 수 없느리라’하였다.(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시문.)
함석헌선생 탄신100주년 기념행사가 한창이다. 현대사에 우뚝한 선생의 위상을 역사적으로 되짚고, 백성을 위해 몸 바친 일생을 재확인하는 뜻깊은 기회려니와, 개인적으로는 ‘문장가 함석헌’도 새삼 기억하고 싶다. 엉뚱하달지 모르나, 선생의 면모를 수식하는 몇몇 대명사들-타고난 야인, 한국의 간디, 씨 광야의 예언자, 흰 고무신과는 다른 차원에서 혼자 하는 생각이다. 선생은 가고 때로는 글 뿐인데, 그게 모두 유별나 새록 새록 읽을 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하기야 선생은 당신을 둘러싼 별칭들을 조용히 사양하셨다. 생전에 두어 차례 갖은 인터뷰 때 ‘야인’이라는 표현이 멋있게 들린다고 하자, 껍데기만 보니까 그렇다고 했다. 이상주의자로 보는 게 옳다고 고쳐주었다. ‘간디설’은 철없는 사람들의 소리로 돌렸다. 간디가 그렇게 쉬우냐, 몇 천년이 걸려야 나온다’고 일축했다. ‘씨 ’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손을 내저었다. ‘그 어른(선생의 스승 柳永模)이 장안하신 걸 써먹기는 내가 써먹는다’며 웃었다. 우리가 항상 마음써야 할 것이 간소한 생활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나온 죽은 말 산 말의 분간을 감명 깊게 들었다. 말씀 역시 잘하신다고 하자 돌아온 대답이 그랬다. 글로 써가지고 조목조목 했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말이 죽는 것 같아 그냥 하는데, 사람들이 좀 어렵다고 한다는 게다. ‘말이 죽는다’는 말이 얼마나 기막힌가. 식사(式辭)같은 꾸밈말의 횡행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요컨대 함석헌 선생은 언문일치를 넘어 언행일치의 경지를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글은 글대로 행동을 전제하고, 말은 말대로 일상의 진솔한 모습을 반영한 폭이다. 땅을 딛고 이상을 접붙이는 과정에서 양자(말과 글)를 적절히 구사한 보기 드문 우리 시대의 거인이었다.
해서 묻고싶어진다. 내친 김에 꼽을만한 탄신백주년기념 인물은 또 누구누구일까를, 또 다시 그럴 필요가 있기나 한지, 세상에 떠도는 이름 중에는 아예 그런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지… 생각하지 난감하여 참 쓸쓸하다.
/ 최일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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