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는 ‘금남의 집’이나 마찬가지다. 작가를 직업으로 둔 여성들이 많은데다 방송가에서도 섬세하고 꼼꼼함을 작가의 필수조건으로 여겨,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도내 방송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창립한 전북방송작가협회도 여성일꾼 일색이다. 이들 중 “방송작가는 더 이상 ‘금남의 집’이 아니다”고 목청을 높이는 ‘청이점(淸二占)’이 있다. 원음방송의 문지용씨(27)와 전주MBC의 채원씨(27). 동갑인데다 방송 입문이 1년도 채 안된 신출내기 방송작가들이다.
문씨는 원광대 국문과를 다니며 시쓰기에 몰두해온 문학지망생. 원광대 사회교육원에서 원음방송 김사은PD에게 ‘방송구성작법’을 배운 것이 인연이 돼 지난해 4월부터 ‘WBS음악산책’작가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김PD와 함께 ‘원음의 소리’를 맡고 있다.
전주MBC 시사주간프로그램 ‘인사이드 전북’에 참여하고 있는 채씨의 대학전공은 다소 엉뚱하다. 전북대 기계공학과.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채씨는 영상산업사업단을 복수전공했고, 담당교수들도 그의 글쓰기 재능을 높이 평가했단다.
그래서 방송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경험을 쌓기 위해 지난해 6월 전주MBC에 입사했다.
22일 오전 두 작가는 전주에서 첫 만남을 가졌지만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 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여성작가들이 못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남자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채씨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아쉬움을 털어놓자, 문씨가 이내 화답한다. 남성작가라 방송국내에서 외로울 때가 많다고. 꾸중을 듣고나서 남 몰래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었단다.
동병상련의 정(?)을 나눈 이들은 남성작가라서 더 잘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많다고 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섬세하잖아요. 방송국에서도 작가를 구할 때 남성보다 여성을 더 선호하구요. 남성작가는 한마디로 모험이죠.”
‘기대반 걱정반’.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하루 24시간 방송만을 생각하게 되는 작가생활이 때때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 문씨의 귀뜸.
“모든 일정을 방송에 맞춰야 합니다. 매일 기획과 게스트 섭외, 원고마감이 돌고 돕니다.처음엔 ‘내가 계속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재미있어요.”
채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말이나 연초, 명절 때에는 특집이 많아 남들 쉴 때 더 열심히 일하는 직업이 방송작가라는 것.
힘든 만큼 방송의 즐거움이 많단다. “생방송 끝나고 TV 자막에 제 이름이 올라가면 보람을 느낀다”는 채씨. 이에 문씨는 “나도 가끔 주변에서 ‘니 이름 나가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고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동조하며 섭외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도 덤으로 누린다고 덧붙였다.
많은 방송작가들이 그러하듯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보수와 앞으로의 진로 문제. 높은 이직률로 남성작가의 수명이 짧듯 두 작가도 여러 생각들로 복잡했지만 대답은 명쾌했다. 지금의 생활을 ‘나에 대한 투자’또는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고 했다.
문씨는 경력을 쌓은 뒤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으로 방송대상을 거머쥐는 것이 꿈. 잠깐 접어둔 시쓰기 작업도 포기하지 않았다. PD를 희망했던 채씨는 ‘인간극장’처럼 진솔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쓰는 작가로 터닦음하고 싶다고 밝혔다.
1시간여 지속된 만남의 끝머리, 두 작가는 올해 소망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공교롭게도 ‘1주일간의 휴가’라는 말로 일치됐다. 여행과 휴식을 통해 삶의 지평을 넓히고 충전하고 싶다는 것.
“휴가 이야기 하면 혼날 지도 모른다”며 웃음을 보인 이들이 마음에 담아둔 지표는 ‘방송은 생활이다’.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것을 방송으로 만들어 훈훈하고 밝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두 작가의 작지만 큰 소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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