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헌혈에 인색한 나라도 드물다. 아무리 헌혈에 대한 홍보를 해봐야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하여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이라고 배워, 함부로 피를 뽀는 것은 불효를 저지르는 일쯤으로 치부돼온 소인이 큰 것 같다. 또 역사적으로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온 한국인들은 피를 거의 생명과 동일시해온 경향이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넣어주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한방울의 피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를 어쩔 수 없어 돈받고 팔았으면 팔았지, 아까워서 그냥 주기는 꺼리는 나쁜습관이 붙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1950년대 중반쯤에는 매혈(賣血)이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54년에는 국립중앙혈액은행과 몇몇 사립혈액은행들이 생겨났고, 이곳에서 3백80㎖의 피를 팔면 현금 1천환과 미제 쇠고기 통조림 한통을 얻을 수 있었다. 단골손님은 학비를 벌기 위해 고학생이 26% 정도였고, 나머지는 직장이 없어 끼니갈망을 못하던 저소득층이었다. 56년 2월에는 혈액은행에서 피를 팔고 돌아가던 한 고학생이 길거리에 쓰러져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1974년 '세계 헌혈의 해'를 맞아 대한적십자사가 대대적인 헌혈 캠페인을 벌이면서 매혈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먹고살기가 조금 나아져 국민의식이 높아진 덕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헌혈을 하면 예비군훈련을 생략하고 귀가시켜주는 '자의반 타의반'식 헌혈을 유도해 적정량의 피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혈방식이 사라지면서 헌혈 인구는 급격한 감소 일로를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81년에는 혈액관리법이 개정돼 매혈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는 범죄로 규정, 혈액 확보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 4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헌혈이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감소폭이 더욱 커져, 당일 소요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병원에서는 제때 수술을 못하고 미루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 소중한 것은 모두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베푸는만큼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면서 헌혈대에 한번 누워보는것도 복받을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