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4 05:32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지역 chevron_right 지역일반
일반기사

[나의 이력서] 탤런트 김성환 - ⑩

⑩ 조상현선생 '창' 수업

TV탤런트 재교육프로그램·데이타베이스 구축에 관한 간담회. (desk@jjan.kr)

나의 이력에서 '창'을 배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81년, 드라마 '약속의 땅'에서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면서 남도 창을 구성지게 부르는 역으로 출연했다. 이 역을 위해 나는 당시 방송국 측 소개로 명창 조상현 선생에게서 창을 일주일간 배운 일이 있다. 사실 창을 일주일 배워서 어떻게 그 어려운 판소리 연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때문에 생긴, 조상현 선생과의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당시 나는 창을 처음 배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선생이 하라는대로 따라 부를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제법 정확했던 모양이었다.

 

어느날, 창을 가르치던 조상현 선생이 갑자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로 기분이 나쁘다"며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연출자 등 방송국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아니, 지가 창을 배웠으면 배웠다고 말을 해야, 지 수준에 맞춰서 가르칠 것 아닌가. 아, 소리를 잘 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은 무슨 심뽀야!"

 

명창 앞에서 당혹해진 나는 "참말로 창이란 것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하고 간곡히 말씀드렸더니 "자네 시방 나를 놀리는 것이여? 자네 말하는 것 보고, 소리 내지르는 것 보면 다 아는데?" 하고 나무랐다. 곤혹스러워진 나는 "그래도 안배운 것을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제서야 이 분이 감탄을 자아내며 "자네는 참으로 천부적인 소질과 목을 갖고 태어났네"하며 칭찬해 주었다.

 

내 목은 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만큼 소리에 좋은 희귀한 목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까. 나는 아무리 소리를 내질러도 목이 쉬지 않았다. 밤무대 하면서 하루 밤에 열 일곱군데에서 일을 했지만, 목이 쉬어서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 때 인연을 맺은 조상현 선생은 지금도 공·사석에서 만나면 "동상, 틈만 나면 와서 듣기만 허소. 귀가 뚫리면 입이 뚫리는 것이여. 소리 안해도 좋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만 집에 와서 들어"하시곤 한다.

 

하지만 내가 정식으로 창을 배울 수 없는 것은 '변성' 때문이다. 창을 배우면 창 목소리로 변하는데, 방송활동에 지장이 있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뺑덕어멈 만나는 대목'을 배웠다.

 

"심봉사 어진 박씨부인도 잃고 사랑시런 딸마저 공양미 삼백석에 팔아먹어 번지고, 겁나게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디, 마침 근처에 사는 뺑덕이라는 싸가지없는 여편네가, 심봉사가 돈 꽤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 이걸 어떻게 갉아먹을까 궁리하다가, 누가 중매할 것도 없이 자원해서 출가를 했는디, 아 그 싸가지없는 여편네, 하는 행동을 볼라친게 꼭 이런 것이었다. 밥잘먹고 술잘먹고 괴기잘먹고 떡잘먹고···"이런 대목이다.

 

그것 하나가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훗날 밤무대에서 내가 풀어놓는 이 판소리 한 토막에 손님들은 넋을 잃고 좋아하며 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고 돌아갔다.

 

내가 밤무대를 통해 재정적으로 성공했지만, 형제들의 생활은 평범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형제들이 골고루 벌어야 할 돈을 장남인 나 혼자 벌 수 있도록 몰아주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많은 돈을 벌었다. 탤런트가 된 후 10여년 동안 참으로 힘든 생활을 했다. 시집간 누님들에게 손 벌리고, 농사짓는 부모님에게 도움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밤무대에서 내 진가가 발휘된 82년 이후 나는 집안에서 장남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힘들 때 도움을 주었던 누나 동생들을 돕고, 아버님이 큰 수술로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밤무대를 동분서주한 덕분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아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모든 일에서 항상 열심히 해 주었고, 이해해 주었다. 나는 그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계속)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지역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