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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선거용 걸개그림

최근 지방선거가 본격화되면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큰 건물을 뒤 덮은 대형 선거용 홍보 걸개그림들의 등장이다. 각각의 그림마다 입지후보자들의 매력적인 모습들이 참신하고 한눈에 뜻이 바로 전달될 수 있는 아이디어 문구와 함께 대문짝의 몇 십배되는 크기로 사방 천지에 걸려있다. 이것들은 종래 우리가 익숙해 있던 긴 천에 문구나 구호 등을 적어 잘 보이도록 걸어 놓았던 재래식 현수막과는 개념이 달라진 선전도구들이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선거용 도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거의 전부였던 것에 비하면 이는 엄청난 변화이다. 걸개그림은 1980년대 이한열의 죽음을 추모하던 6월항쟁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 민주화투쟁 기간 내내 한국의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민주화를 위한 무기이자 작품이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미술의 역할을 사회속에 제고시키며 나치에 저항하였던 케테 콜비츠에게는 판화가, 건물벽에 변혁의 시대를 담았던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에게는 벽화가 혁명의 무기였듯이 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며 그 시대의 아픔을 목 놓아 외치듯 펼쳐놓은 함성이었다. 걸개그림은 원래 사찰에서 부처님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려졌던 불교 사찰의 탱화 혹은 괘불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땅의 화가들은 그런 종교적 전통을 박제나 화석이 아니라 현실을 대변하는 몸짓으로 살려냈고 한 시대를 대변하며 그 시대의 예술성을 담아냈었다.

 

그런 걸개그림이 어느덧 이 땅의 빛바랜 민주화의 전통속으로 사라져가 버리고 어느새 지역집단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일꾼을 자처하는 근사한 말과 번지르한 얼굴들로 범벅이 되어 건물들을 뒤덮고 있다. 더욱이 화가들의 생명력이 넘치던 그림의 맛은 사라지고 실사 기계속에서 쭉쭉 뽑혀진 디지털 걸개그림들이 새로운 시대를 책임지겠다고 뽐내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이기는 하지만 못내 아날로그적인 80년대식 걸개그림이 그리운 것은 글쓴이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라며 진정한 일꾼을 자처한 모습 그대로 변함없는 초심을 입지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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