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전주 경기전에서 전시를 위해 잠시 빌려간 보물 제931호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의 반환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이를 보존·관리하기 위해 추진중인 어진전 건립사업에도 부정적 의견을 전달해 왔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이러한 행위는 어이 없는 일이요, 오만한 중앙집권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 이유가 납득키 어렵다. 반환하지 않는 것은 경기전의 보관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고, 어진전 건립에 반대하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무분별하게 신축사업을 벌이고 있어 이를 지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재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진과 부속 유물들이 보전할 가치가 없는 것들인가? 또 경기전내 건립코자 하는 어진전이 ‘무분별’한 전시관에 불과한가?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분명히 답해야 할 것이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본향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하여 500여년 동안 왕실문화와 격조 높은 양반문화가 오롯이 보존되어 왔다. 여기서 본향이라 함은 경기전과 조경단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다. 경기전은 조선 왕조의 상징과 같은 존재요, 전주의 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기에 일제때 그들이 조선의 정신을 짓밟으려 경기전 안에 학교를 지어 반토막을 내버리지 않았던가. 어진이 없는 경기전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태조 어진은 조선시대에 제작한 수많은 어진 중 온전히 보존된 유일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국가가 지켜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임진왜란과 동학농민혁명 등 일촉즉발의 위기를 전주시민들이 몸으로 지켜냈다. 그것을 일부 훼손을 빌미로 문화재청에서 가져가 돌려주지 않는 것은 ‘유물 현지주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문화재를 강탈하는 제국주의적 행태와 다름이 없다.
반면 전주시는 한심하기 그지 없다. 위탁받아 관리하는 보물이 훼손된지도 모르는 것도 그러려니와 이것을 어떻게 찾아오고 관리할지 씨나리오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면서 입으로만 ‘돌려 달라’고 하면 끝인가. 특히 어진 뿐 아니라 여기에 딸린 신연과 향낭 등 문화재급 유물을 방치해 빛이 바래고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는 문화재청이 즉시 어진전 건립에 나서고 그동안 국립전주박물관이 어진 등을 보관·전시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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