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뎠던 50년대 우리의 선거문화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유권자를 협박해서 반공개투표를 강요하는가 하면 사전투표, 대리투표, 릴레이투표에 내통식 기표소까지 설치하는 부정을 밥먹듯이 저질렀으니 어디 그것이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행위라 할 수 있겠는가.
부정선거가 당연한 것처럼 자행된 것은 정치판을 말아먹은 독재권력에 전적으로 그 책임이 있다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주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고무신이나 막걸리와 바꿔버린 무지한 국민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기야 당시에는 끼니 갈망을 하지 못하는 절대빈곤가정이 수두룩하던 터라 꼭 탓만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군사독재정권 이후 선거판 역시 혼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정선거가 좀 더 세련되게 치러졌다는 점이 달라졌다면 달라졌다. 참관인을 매수해 대리투표를 하거나 상대 후보의 지지자들을 모아 투표 당일 여행을 보내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그 뿐인가. 개표 때 혼표와 환표를 해서 속여먹는가 하면 심지어 투표함 바꿔치기에 득표수 조작 발표까지 별 기발한 방법 다 동원됐던 것이다.
그래도 그 때 선거판은 한편으로 유권자들에게 모처럼 살맛나는 축제의 장이 되기도 했다. 연단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후보자들을 하나하나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평소 어렵기만 하던 정치인들이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였다. 또 아는 선거운동원으로부터 슬쩍 돈봉투 한 장 건네받아 유세장 주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꺾는 맛이란...
신성한 주권을 돈봉투나 선물 또는 음식물과 거래하는 행위가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뿌리가 썩어가는 일인데 어찌 감성을 앞세워 두둔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너무 과도하게 제한하여 선거판에 찬바람이 돌게 하는 것도 박수 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거리마다 대형 걸개그림을 내걸고 운동원들이 아무리 율동을 해대도 유권자들의 반응이 너무 냉담해서 하는 말이다.
육법전서처럼 복잡한 선거법에 '라면을 접대하면 안되고 김밥은 된다'는 식의 조악한 규정만 들이댄다면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 분위기가 살아날 리가 없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투표참여율이 50%도 채못됐다는데 이번 선거는 어찌 될 것인지 벌써부터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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