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섭(전주대 문화관광학부 교수)
엊그제 법성포단오제 학술대회를 다녀왔다. 행사안내장에 “민족문화의 명맥을 잇는 단오제는 동해안의 강릉단오제와 서해안의 법성포단오제가 대표적이다”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전주사람으로서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강릉단오제는 1969년에 무형문화재 제13호로 국가 지정을 받았고, 그 전통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까지 하였다. 법성포 단오제는 최근 법성포단오보존회라는 민간단체가 설립되면서 단오제의 전통을 복원하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법성포 단오제 학술조사보고서를 만들고 여러 고증을 거쳐 문화원형 복원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언론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같은 기간 전주에서도 전주단오예술제가 덕진연못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덕진연못에서 전주단오제의 원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단오날에 덕진연못을 찾아 물맞이하는 사람들의 추억은 선명하다. 아마도 전주에 살아왔던 청장년들은 어렸을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덕진연못에서 발가벗고 목욕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고 단옷날에 덕진연못을 다니던 전주 인근지역 노인들은 지금도 덕진연못에 찾고 있다. 이들에게 덕진연못의 단오난장은 큰굿이요, 물맞이는 통과의례였다. 임실 상관면 어느 마을사람은 단옷날 주민들이 떼지어 덕진연못을 찾는 바람에 마을이 텅비어었다고 기억할 정도로 전주단오제의 명성은 널리 퍼져있었다.
전주단오제의 명맥을 잇고 전통을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전주풍남제를 개최해온지가 49년이 되었다. 그동안 풍남제는 단오제와 달리 엉뚱한 길을 걸어왔다. 올해 처음으로 덕진연못에서 단오제를 열고 선보인 모습이 단오예술제이다. 절반의 성공이다. 단오라는 세시풍속을 되찾고 덕진연못으로 돌아온 것은 성공했으나, 판으로 되돌아왔을 뿐 굿은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예술제는 단오제가 아니다. 굿판에 가야 굿이나 보고 떡을 얻어먹어야 재미있을 터인데, 굿도 못보고 떡도 없으니 난장이 설리가 만무하다. 전주단오제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주단오제의 핵심은 성황제와 물맞이이다. 전주단오제의 전통은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고려 중기에 전주성황제는 매우 권세가 높고 명성이 대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시대 대문장가였던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성황제는 민간신앙이라는 관점보다는 전주지역민의 집단적 신분의 상징이었다. 조선건국 직후 1393년 전국의 성황신에게 작위를 내리는데, 전주성황신은 개성의 송악성황 다음으로 백작(伯爵)의 작위를 받을 정도로 지위가 높았다. 고려의 수도가 개성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전주성황의 권세와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올해 개최된 전주단오예술제에서는 이러한 권세도 찾아볼 수 없고, 근래까지도 물맞이의 전통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던 덕진연못 제방에는 몽골텐트만 무성할 뿐이다. “단오날 덕진연못을 오지 않으면 단오를 안쇤것 같다.”며 다리밑으로 물맞이하러가는 할머니가 잠시 서성거린다. 그곳은 쓰레기가 지저분하여 물로 몸씻을 만큼 청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진연못에 물맞이할 곳이 없다. 그래도 노인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물로 몸을 씻는다. 물맞이는 살려내야 할 전통문화의 원형이다. 더나아가 덕진물맞이는 고려시대 천년의 역사를 가진 무형문화유산의 단오세시풍속이다.
앞으로 전주단오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원형 복원해야 할지는 역사기록과 전통문화로서 충분하다. 전주시가 전통문화도시를 조성하는데,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유형문화를 보존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천년동안 내려온 무형문화를 복원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주전통문화도시에 걸맞게 전주단오제를 원래 모습으로 되찾는데 행정과 시민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 내년에는 제 50회 전주단오제를 맞게 될 것이다. 역사는 진실이다. 그동안 뒤틀리고 혼돈의 연속이었던 풍남제를 종식시키고 천년 전주에서 천년 전통의 단오제를 기대해본다.
/송화섭(전주대 문화관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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