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너나없이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갈수록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호화판 지하궁전까지 건설한 진시황이 지하에서 땅을 후벼파서 원통해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천지가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이리라.
그러나 한편에서는 굵고 짧은 ‘옥쇄(玉碎)’로 사느냐, 가늘고 긴 ‘와전(瓦全)’으로 사느냐 하는 논란이 끝이 없다. 옥쇄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오래 살되 보람과 기쁨을 쌓아 가야 하며, 끔찍한 꼴, 특히 생때 같은 자식의 죽음을 보는 일 등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언젠가 원로 소설가 박완서씨가 참척을 당하고 슬픔에 젖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며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 때, 어떤 수녀님이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생각하느냐?”며 이상하다는 듯이 질문을 해서, 그것이야말로 터무니 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뉘우침에 부끄러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 ‘참척’이 뭔데 그렇게도 슬펐을까.
슬플 참(慘)에 슬플 척(慽)으로 이루어진 이 낱말은 젊은 죽음의 상사(喪事)를 당한 슬픔을 말한다. 아들 딸, 손자 손녀의 죽음을 보는 것이 참척을 당하는 일이다. 참담하고 혹독한 슬픔을 겪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부터 가슴을 저며 내듯 아프게 구슬픈 자식의 죽음을 ‘애물(몹시 귀하기 때문에 잘 간수해야 하므로 애를 태우는 사람이나 물건)이라 했다.
한데, 선인(先人)들은 손자, 손녀, 딸의 죽음보다는 바로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의 죽음을 한겹 더 슬프게 생각하여 아들의 죽음만은 참척이라 하지 않고 ‘상명(喪明)’이라 했다.
눈앞의 광명(光明)이 캄캄하게 닫혀 버린 상태, 눈앞이 칠흑으로 정전(停電)된 상태를 가리킨다. 빛을 잃고 희망을 앗긴 상태, 인생을 실명(失明)했다는 뜻이니 제발 그런 일은 없었으면 싶지만, 누가 알겠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게 인생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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