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기획취재부장)
경기가 하향기에 접어들어도 소비는 하방 경직성이 높다. 왠만한 불황이 찾아와도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평소 익숙한 소비 행태와 소비량을 갑자기 줄이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게 그동안 경제 관련 통계치를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요즘 경기 침체는 여느 때와는 강도가 다르다는 판단이다. 서민들이 이미 전방위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맨데 이어 상위 5% 부자들마저 점차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이를 반증하는 사례가 명문 골프장 회원권 값이 곤두박질 치지만 수요는 살아나지 않고 있고, 명문 백화점 경기도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인들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고 부유층들이 즐겨 찾는 서울 강남 일대 음식점들마저 '강남 불패'에 걸맞지 않게 맥을 못추고 있을 정도다.
미국 금융시장 혼란으로 촉발된 주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이 부자들의 씀씀이에까지 영향권을 확대하며, 전 국민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경기 침체의 그늘이 길게 드리우자 정부가 감세(減稅)카드를 들고 나왔다. 세금을 줄여주면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높아지고, 이를 통해 밑으로만 향하는 경기를 추스리겠다는 전략이다.
감세 정책의 경제학적 기저에는 미국의 경제학자 래퍼(A. Laffer)의 이론이 깔려있다. 교과서에도 소개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래퍼 이론'은 최대한의 조세 수입이 보장되는 세율이 어느 지점인지를 찾기 위해 고안되었다. 즉 세율이 0%이면 세금 수입은 전혀 없을 것이고, 세율이 100%라면 창출된 소득이 모두 세금으로 걷히므로 아무도 일하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0-100% 어디쯤엔가 세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학술적으로 별다른 흠을 찾기 힘들다.
이 이론이 현실에선 어땠을까. 로널드 레이건, 조지 W부시 정권이 래퍼이론을 바탕에 깔고 감세 정책을 과감히 추진했다. 하지만 정책 결과를 분석하는 학자들은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 이론이 현실화하려면 소비자와 기업가들이 줄어든 세금을 소비와 투자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대전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레이건 정부는 감세정책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조세의 소득 재분배 효과에 악영향을 주어, 빈익빈 부익부만을 심화시켰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판이다.
우리 정부가 래퍼이론에 따라 감세 정책을 채택했다는 공식적인 설명은 없지만, 관련 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래퍼이론에 따른 감세 정책의 가장 큰 결점은 감세가 소비나 투자로 곧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경제적 분석의 근거는 없지만, 인간의 심리는 극한 상황이 닥치면 예상치보다 더욱 움추러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주식이 폭락할 땐 일상적인 분석치나 예상치를 벗아나는 사례에서도 비슷한 심리가 읽힌다.
이같은 추론이 현재 상황에도 적용된다면 줄어든 세금이 호주머니로 들어가 오랫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세수만 줄어들뿐, 경제는 더욱 냉각기로 빠져들 수 있지는 않을까.
더욱이 종부세에 매달리는 정부의 자세에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굳이 지금인가. 물론 조세 논리상 종부세가 흠결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책에는 시기가 있고, 완급이 필요하다.
그렇잖아도 부자들만을 위한 정권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감세정책이란 틀 속에 종부세를 끼워넣을 때는 아니다. 정책의 순수성만 해칠 뿐이다.
/김경모(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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