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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아트폴리스 전주 - 김재호

김재호(사회부장)

모악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았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땀을 훔치면서 주변 풍광을 바라보니 전주시가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전주시는 하얀 색깔을 띠고 있다. 마치 조각칼을 이용해 수직으로 곧게 조각해 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같다.

 

조금 가까운 기린봉에 올라 전주시 경관을 보니, 하얀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강도 있고 산도 있다. 콘크리트 더미는 아파트다. 아파트는 전주시를 관통하는 삼천과 전주천, 그리고 화산 등을 끼고 빼꼼하게 줄지어 서 있다. 분명 강과 산이 훨씬 먼저 자리를 지켰을 것이건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뒤늦게 들어선 콘크리트 산이 그들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 됐다.

 

기린봉을 내려와 한옥마을로 들어서니 기와집들이 넉넉하게 맞아준다. 최근 새로 지은 것들이 많아 고즈넉한 풍경은 덜하고 또 기와집 일색이지만, 그래도 한옥마을 풍경은 정겹다.

 

구도심을 지나 진북터널을 통과하니 왕복 4차선 널찍한 도로가 앞으로 쭉 뻗어있다. 그 좌측에 콘크리트산이 있고, 다리를 건너니 우측에 또 콘크리트 산이 서 있다. 이미 강가는 콘크리트 산이 점령한 지 오래다.

 

최근 기반조성이 마무리 돼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는 전주 서부신시가지는 거대한 화선지다. 전라북도청과 전북지방경찰청 건물이 가장 먼저 들어선 후, 요즘 군데 군데 건축 현장이 부쩍 눈에 띈다. 이미 화선지에 물감이 칠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모 저모 살펴보니 아무래도 '요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추어 화공일지라도 이미 물감이 칠해지기 시작한 값비싼 화선지를 구겨버려야 할 상황이다.

 

몇년전 전주시가 서부신시가지를 두고 멋진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붓이 몇번 갔을 뿐인데도 전주시의 다짐은 허공으로 날라가버린 느낌이다. 건축주의 이익, 사유재산권에 밀렸다.

 

황강서원 앞, 문학초등학교 인근 단독주택 두어채를 제외하면 대부분 건물은 상가건물과 다세대주택들이다. 상가건물은 헐거운 법규를 지키느라 형식적으로 나무 몇그루를 심었을 뿐이다. 녹색도시는 거리가 멀다. 건물을 멋지게 짓는다며 씌운 건물 지붕은 국적 불명이다. 용적률을 최대한 부풀려 뚱보가 돼버린 건물 머리 위에 씌운 모자, 참으로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전주의 후덕함, 아름다움, 넉넉함, 여유는 온데간데 없고 급하고, 썰렁하고, 옹색함만 부끄럽게 추녀끝에 걸려있다. 이런 식의 건축이 계속될 경우 화공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화선지를 구기지 않을 배짱이 있을까.

 

이런 상황은 전주시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억대의 땅값을 지불한 건축주들은 허용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지, 애초 '아트폴리스'는 개념 조차 희박하다. 잘 계획해 명품으로 그리기 위해 펼쳐놓은 서부신시가지. 그 넉넉한 공간에 정원을 잘 조성한 단독주택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은 바보스럽다. 투자비 회수가 급선무인 건축주들은 4층 높이의 원룸으로 단독주택을 대신하고 있다. 멋진 정원은 로맨스일 뿐이다.

 

전주시가 멋진 도시를 그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말쯤 확정할 계획으로 추진중인 '전주시 기본경관계획'은 멋진 도시를 만들기 위한 또 한번의 시도이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이쪽에서 또는 저쪽에서 보아도 멋있고 건강한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계획을 만들어 놓아도 정작 실행 단계에서 자기 이익이 앞선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단독주택을 안짓고 원룸을 짓듯이, 또 건물 잘 지어놓고 모자를 옹색하게 걸쳐놓듯이 근거리 경관을 무시한다면, 원거리 경관이 멋있을 리 없다.

 

/김재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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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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