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편집부장)
속 좁고 한심한 로스쿨 지원
#장면 1. 2008년 1월 28일 청와대 기자실 춘추관. 기자는 전북대와 원광대 로스쿨 선정이 확정적이다는 기사 송고를 마쳤다. 다른 지역지 기자들도 그 지역 로스쿨 선정과 탈락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뒤 송고를 마친 경남 지역지 기자가 다가와 "전북은 참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부러움과 비아냥이 섞인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기자는 속칭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의 대학은 단 한 곳도 로스쿨에 선정되지 않았지만 전북은 두 곳이나 선정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도세가 강한 광주·전남도 한 곳만 선정된 점을 비교하면 표정 관리의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그 기자는 로스쿨 선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전북에 두 곳의 로스쿨이 선정된 '배경'을 추정하며 당시 전북 출신 청와대 윤승용 홍보수석의 역할을 은근히 비판하기도 했다.
어쨌든 로스쿨 선정 소식이 전해지자 도내는 잔치 분위기였다. 도내 소재 로스쿨 출신의 법조인을 대거 배출하는 토대가 마련됐음을 기뻐한 것이다.
#장면 2. 로스쿨이 선정되자 전국 각 지방에서는 자기 지역 로스쿨에 대한 지원책을 속속 내놓았다.
제주는 도와 시·농협·기업이 10년간 105억 원을 제주대에 지원하기로 했다. 강원대는 지자체가 정원 40명 중 31명의 4년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고 기숙사 건립비 17억 원도 보태기로 했다. 농협은 부산대에 50억 원을 주기로 했다. 충남대는 도와 대전시 등에서 각각 3억 원씩을 받기로 했다. 영남대에게는 매년 4억 원의 도비가 건네진다. 원광대도 익산시로부터 5년간 100억 원을 받는다. 전북대에 대한 도내의 지원은 최근까지 없다가 얼마전 쥐꼬리만한 예산이 섰다. 도로 10m 개설하는 데 드는 1억여 원 정도.
#장면 3. 이달 5일 첫 로스쿨 시험에서 수도권 출신이 지방 로스쿨을 '점령'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러자 도의회를 포함한 도내 일각에서 이상한 말들이 나왔다. 전북대(1억4천만 원)와 원광대(1억원) 로스쿨에 지원하기로 한 도 예산 2억4천만 원을 삭감해야 한다는 것. 도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도지사와 도내 핵심 기관장 모임인 '이화회' 회원은 물론 도청을 출입하는 일부 기자들도 그 같은 주장을 폈다.
이들은 '수도권 출신 합격생이 대부분인데 도 예산을 로스쿨에 줄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를 폈다. 예컨대 지방대 출신에게 혜택이 가지 않으니 '죽 쑤어서 뭐 줄 필요가 없다'는 식. 이런 분위기에 도의회 예결위는 예산 삭감을 기정사실화 했다. 도의회는 예산 확정 하루 전 언론의 지적을 받고서야 겨우 서툰 '칼질'을 멈췄다.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대 살리기를 외치며 거도적으로 로스쿨을 유치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수도권 출신 합격자가 많다고 지원을 하지 말자라니. 지방대 출신 합격자가 극소수인 게 문제였다면 예산 삭감보다 '지방대 출신 할당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게 순서다. 그렇게 해야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지방대균형발전이라는 로스쿨 선정 취지와도 상통한다.
더구나 수도권 출신의 지방 로스쿨 '점령'은 '지방대 출신 할당제'의 확실한 명분이자 명백한 물증이다. 같은 상황이 벌어진 타도에서 '지방대 할당' 목소리가 커졌지만 전북에서처럼 돌연 로스쿨 지원을 중단하려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를 늘려 명문 로스쿨을 만들자고 난리다.
도내 기관장들이 모인 '이화회'와 예산을 주무르는 도의원, 지사에게 충고하는 기자들의 속좁은 단견이 그래서 더욱 한심하고 어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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