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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좋은 손금(手相)을 만들려면

송현섭 (재경 전라북도민회 회장)

한 해가 저문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낀다. 이 시기엔 우리 삶이 어떻게 될까, 새해엔 어떤 '운'이 찾아올까에도 관심이 쏠리게 된다. 『토정비결』을 끄집어내고, 신문 잡지의 '내년의 운수' 기사에 눈길이 간다.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작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약간의 관심을 쏟을 뿐이다. 필자도 그런 류의 미래예언에 관심이 없다. 인생이 미리 결정돼 있다면, 인간의 노력은 필요가 없어진다. 점쟁이에게서 황제가 될 관상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한 농부가 농사를 팽개치고, 아내를 황후로 큰 아들을 황태자로 부르며 "짐(朕)이 어찌 그런 일을…" 하다가 굶어죽었다는 옛 얘기도 있다. 인생은 개척하는데 의의가 있다.

 

손금과 관련한 에피소드, 1970년 1월 일본 도쿄(東京)의 화려한 도심 긴자(銀座)에서의 일이다. 일요일 오후, 왕복 4차선의 긴자 거리는 차없는 날이어서 사람들 천국이었다. 최고급 백화점 등 건물도 볼만했지만, 못사는 나라 국민인 내게는 가족 단위로 거리를 걷거나 길 옆 파라솔 밑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당시는 우리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

 

신기한 모습도 보았다. 점쟁이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있는데, 부인들이 줄 지어 기다리는 등 손님이 제법 많았다. 우리가 미신으로 타기하는 점쟁이들이 선진국 일본에서 성업중인 모습은 이상하게 보였다. 조금 걸으니 깃발에 손금을 그려놓은 수상(手相) 전문가가 있었다. 막 지나치려다 걸어놓은 깃발에 눈이 가는 순간,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깃발에 그려진 손금이 내 손금과 꼭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봐달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깃발 봤느냐면서, 누구 손금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일본을 4백년 이상 지배한 에도바쿠후(江戶幕府)의 창건자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손금이란다. 일본에선 그의 손금을 최고로 치는데, 같은 손금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며 희한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손금이라니, 내 손에 천하가 쥐어진 것 같아 우쭐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튿날 귀국 비행기를 탔다. 하네다(羽田)비행장 이륙 직후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승객 모두는 크게 놀랐고,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지나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이르렀을 때 기장의 방송이 나왔다. 두 개의 제트 엔진 중 한 개가 이륙 직후 폭발했는데, 엔진 한 개로도 정상비행이 가능하고, 서울이 가까운 곳이라 계속 비행하겠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것. 그로부터 1시간 40분, 비행기 바퀴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닿는 순간까지 200여 승객은 모두 죽음을 옆자리에 태운 기분이었다.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박수를 쳤다.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같은 손금은 비명횡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설마 내가 여기서 죽으랴 하는 생각도 했고, 비행기가 제대로 착륙해서 모두 살게 된다면 그것은 내 손금 덕분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 와중에도 사업 핑계로 고향에 계신 어머님 모시는 게 소홀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살아난다면 어머님께 효도를 다 하리라 맹세했다. 그 후 어머님을 성심으로 모셨다.

 

내가 손금 덕에 오늘을 이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손금이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 손금의 음덕이 있다 해도,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그 덕이 발휘된다. 또 손금은 내가 그리는 게 아니다. 태어나면서 이미 그려져 있는 손금, 그 손금이 좋다면 그것은 조상들의 음덕 탓이 아닐까? 후손들이 좋은 손금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고 싶으면, 지금 음덕을 쌓아야 한다. 연말,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바로 그런 자세가 아닐까?

 

/ 송현섭 (재경 전라북도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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