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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체육 비사] (26)박영민 도체육회 부회장

군산 체육史 온몸으로 쓴 '산증인'…군산중때 공수도 입문 50년 체육계 '헌신'

체육 분야만 놓고 볼때 일제시대 이후 군산은 줄곧 전주와 견줄만큼 강한 독자적 권역과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해방 직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군산과 인천에 종합체육관이 생긴 것 하나만 봐도 군산이 체육 분야에 관한 한 선진지 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군산출신으로 지금까지 도 체육회 부회장을 지낸 이는 박원삼, 양희철, 박영민씨 등 3명이었다.

 

이번엔 아마추어 태권도 선수로 출발, 평생을 체육계에 몸담아왔던 박영민 현 도 체육회 부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 체육회 박영민 부회장(67)은 군산시 산북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산중 재학때 어머니의 권유로 공수도(요즘 태권도)를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독자여서 그는 집안에서 보기도 귀한 장남이었는데 어릴때부터 몸이 약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어디가서 기 죽지 말라"며 운동을 권했다.

 

그게 인연이 돼 박 부회장은 50년 넘게 체육계 안팎에서 생활해 왔다.

 

좋든 싫든, 군산체육을 말할때 그의 이름 석자를 빼놓을 수 없는 것도 그의 체육이력이 워낙 오래된 때문이다.

 

그는 고 3때 본격적인 공수도 선수로 활동했고, 건국대에 입학해서도 1년 남짓 선수로 뛰었다.

 

그는 현재 태권도 7단이다.

 

전국 공수도 총재가 건국대 교수였던게 인연이 돼 서울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그는 1965년부터 1972년까지 공수도 지도자 생활을 하는 한편, 이후 오랜 기간 생계를 위해 체육사를 운영하면서 체육계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77년 군산시 종합체육관 관장으로 부임한 그는 4년동안 재임하면서 체육의 틀을 단단히 다지게 된다.

 

유도, 역도, 권투 등 각종 투기 종목을 총괄하는 종합체육관은 각종 체육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는 산실이었다.

 

남중태 전 교장, 고봉신 경찰대 사범, 김광식·고충곤·이근우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군산시 체육회 이사와 부회장 등 시 체육회에서만 25년간 몸담아오면서 지역 체육계와 관여된 일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도 체육회에서도 20년 가까이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열리는 전국체전이나 소년체전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 과정에는 그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군산체육과 전북체육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현재 그는 도 체육회 이사로 3번째 임기를 지내고 있는데, 체육인들이 단 한번도 하기 어려운 이사를 연이어 하다보니 시샘도 받을만 하다.

 

그의 나이 30대 초반에 군산지역에 첫 조기축구회가 만들어졌다.

 

조기축구회의 개념조차 없던 60년대말 군산상고 운동장에서 매일 새벽에 축구를 하는 것은 일반인이 볼때 신기한 일이었다.

 

박노길·채규이·김영배·김완섭·박영민씨 등이 주축이 된 청우회와 군산시 의사회가 조기 축구를 처음 시작한게 벌써 40년도 넘은 먼 옛날 얘기다.

 

지역에서 열리는 가장 규모가 큰 금석배 축구대회가 태동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도 축구협회를 이끌던 최공엽·김문철씨 등의 노력과 더불어 고건·박원삼·양희철·채규이씨 등이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한국합판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업 사이클팀을 창단했다.

 

그 과정에서 군산지역 체육계 인사들이 힘을 모았음은 물론이다.

 

군산 체육계의 거물인 박원삼, 양희철 등은 크고작은 체육계 관련 일이 있을때마다 힘을 보탰다.

 

특히 박원삼씨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민간 체육회장을 맡을만큼 새 역사를 만들어낸 체육계의 거목이다.

 

당연히 현직 시장이나 군수가 체육회장을 맡던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군산지역 체육인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체육계에 몸담으면서 그는 한국합판 고판남·백화양조 강정준 사장 등이 운동하는 지역 후배를 위해 거금을 쾌척하는 것을 수없이 보고 들었다.

 

경성고무 사장이던 이용일씨가 군산상고 야구를 전국 최고의 팀으로 키워내고,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사무총장이 돼 활약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체육계의 거물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박 부회장은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언제부터인가 전주와 군산은 오랜 기간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

 

전주고와 군산고간 농구 경기, 또는 군산상고와 전주고간 야구 경기가 열릴때면 언제나 소란이 일었다.

 

강한 지역적 자존심, 학교간 경쟁심리 등이 겹치면서 심판 편파판정 논란은 기본이고, 게임을 보이콧 하거나, 폭력 사태까지 번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 부회장은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물론 도 체육회에 몸담은 이후 그는 군산의 목소리만을 대변하지 않고 전북 전체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평생 체육계에 몸담아 온 박영민 부회장에게 가장 보람된 일을 묻자 그는 서슴없이 2006년 군산에 처음으로 아시아 역도대회를 유치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제대회를 첫 유치할때 체육인으로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군산에 번듯한 메인 스타디움이 건립되는 걸 보고싶다"며 "체육계 원로로서 그동안 지역사회와 선배들로부터 받았던 과분한 사랑을 후배들에게 맘껏 베풀며 살아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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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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