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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찢겨진 현수막을 내리자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껴안고 죽을지언정 결코 내놓을 수 없다'던 LH공사가 결국 진주로 넘어가고 유치 실패가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비장한 문구의 현수막과 입간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누가 죽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모씨가 이름도 낯선 함거라는 것을 타고 며칠 길거리 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수건 돌리기 식의 책임론 공방이 이어지는 한편으로, 이 정부의 그간 태도로 보아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상경투쟁도 언제 멈춰야 할지 뒷수습이 난감한 형국이 되었다.

 

그간 분산이전 방침을 공언했던 이 정부가 LH 이전문제를 지극히 정략적 속셈에 따라 전북을 버리는 결말로 몰고 간 것은 '국가균형발전' 같은 것은 애초 안중에도 없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일괄유치와 분산유치 전략 중 그 무엇이 현실적이었나 하는 사후논의는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자면 중앙정부가 국가예산과 권력의 모든 분배권한을 배타적으로 차고 앉아 지방정부를 줄세우고 '구걸 자치'로 내모는 현재의 정치 현실에 있을 것이다. 이 구조에서 중앙권력을 누가 먹느냐는 정말 사활적인 게임이 되고 만다. 예산철이 되면 줄줄이 중앙부처 앞에 기다리고 서서 애걸복걸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오늘 전주가 내일 진주가 된들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것으로 전북의 정치권은 면죄부를 받아도 좋을 문제인가. LH문제를 도정 최대 현안으로 잔뜩 부풀리고, 관의 위세에 힘입어 전북 곳곳을 현수막으로 도배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면, 그에 합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누구하나 화끈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이 아니라 분명한 항의의 차원으로 봐도 그렇다. 그러니 전북이 늘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물이 고여온 전북정치의 현 주소다. 초라한 가장, 누추한 살림살이를 들어 애써 바깥을 탓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서울이나 외국의 이름을 내밀며 또 언제 뒤집힐 지 모를 몇 년 몇 십 년 신기루에 도민들의 눈을 붙들어 놓는 수법을 재탕하는 것도 이제 좀 접자. 도민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주는 '논두렁' 정치는 넘어서자. 지방자치 20년, 경쟁 없는 안주의 정치 20년 동안 지역사회의 제반 영역에 굳은살이 박히고 동맥경화증이 너무 심해졌다. 물이 오랫동안 고여 쉰내가 난다면 대접을 뒤집어엎고 새 물을 채우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쓰여진 그 문구 그대로 책임도 지지 못하는, 찢겨진 현수막은 빨리 내리자. 걷어치우자. 도민들의 마음 속에서 지금 거세게 흔들리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그 무서운 민심의 깃발에 먼저 머리를 숙이자. 그런 다음에 전북을 물먹인 이 정부를 넘어설 진짜 큰승부를 준비하자. 지역을 가르고 끊임없이 줄세우는 이 '구걸의 자치' 구조 자체를 들어엎고 진정한 균형발전의 큰 깃발이 전국에 나부끼게 하자.

 

/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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