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불었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딴살림을 차렸다.
그 뿐인가. 하나 있는 딸은 항상 삐쳐 있고 속 얘기는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랜 백수 생활을 끝내고 미용실을 차리려 하지만 대출받을 담보물이 없어 은행으로부터 퇴짜맞는다.
뭐 하나 되는 일 없는 카티(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마이데). 삶은 그녀에게 늘 적의를 보인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불친절한 삶을 견디며 절망적 상황을 이겨내는 무기가 있다. 바로 웃음과 긍정의 태도다.
영화 '헤어드레서'는 '파니 핑크'(1994),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을 연출한 독일의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의 작품이다. 100㎏이 넘어보이는 거구 여성의 행복찾기를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냈다.
'파니핑크'에서 "컵에 있는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는지, 아니면 반이나 남았는지"라는 화두를 통해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조명했다면 '헤어드레서'에서는 "낙천적인 사람은 반쯤은 이기고 들어간다"는 비슷한 화두로 뚱뚱한 이혼녀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는 미용실을 차리기 위한 카티의 고군분투를 주로 그리지만 돈이 궁해진 카티가 베트남 이민자를 밀입국시키는 에피소드를 끌어오며 불법 이민이 만연한 독일 사회의 단면도 보여준다.
대출을 받을 때 은행직원이 카티 남편의 직업을 물어오자 "남자가 (대출을 받고자 은행에) 오면 아내의 직업도 물어보느냐?"라는 카티의 답변 등을 통해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억눌린 여성의 인권 문제도 건드린다.
일견 어두워 보일 수도 있지만 되리 감독은 묵직한 소재를 심각하게 그리기보다는 영화의 밝은 톤에 어울릴만한 적당한 무게로 전한다. 영화는 중간 부분이 다소 느슨하지만 이후 코믹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재미의 동력을 되찾는다.
영화에 풍성한 울림을 주는 건 여주인공 슈마이데의 연기다. 옷을 벗는데도 주저하지 않는 그는 거구지만 구김살 없으며 말 많은 카티를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불법 베트남 이민자 티엔 역에는 한국계 독일인 김일영 씨가 맡았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한 되리 감독은 처음으로 남이 쓴 각본을 토대로 영화를 찍었다.
되리 감독의 작품 가운데는 범작에 속하지만 상영시간 106분이 흐르고 나면 관객들은 조금 더 단단해져 있는 카티의 삶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7월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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